성경탐구

성경으로의 여행(17) - 성막의 영적 의미 (출 25-31장)

비전의 사람 2019. 7. 1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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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의 여행(17) - 성막의 영적 의미 (25-31)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찌니라.” (25:8-9).

 

하나님은 모세에게 십계명이 기록된 돌판을 주시기 위하여 시내산으로 부르셨고, 모세는 사십일간 산 위에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사십일 사십야를 산에 있으니라.” (24:18). 이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짓도록 하신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25:8). 하나님은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기 위하여 성막을 짓도록 하셨다.

 

1.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이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25:8).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짓도록 하신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25:8). 하나님은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기 위하여 성막을 짓도록 하셨다. 성막을 일컫는 명칭을 통하여 하나님이 의도하신 성막의 목적을 발견할 수 있다.

 

출애굽기 258절에 언급된 성소는 거룩히 구별된 장소(sacred place, sanctuary)를 의미한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은 죄인들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거룩한 장소였다. 특히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임재하시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방 나라와 구별된 거룩한 백성임을 증거하는 것이었다. 259절에서 언급된 장막은 거주하는 공간으로서 ‘dwelling place, home' 을 의미한다. 출애굽기 2636절은 개역 성경에는 성막이라고 했지만, 히브리 원어에는 천막인 ’tent' 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는 성막이 이동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구조물임을 보여준다. 네번째는 회막이라고 했다.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을 인하여 회막이 거룩하게 될찌라.“ (29:42-43). 회막은 정해진 모임 장소(tent of meeting) 를 의미했다. ,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다른 장소가 아니라 성막에 와서 하나님을 예배해야 했던 것이다. 회막에 사용된 מוֹעֵד 지정된 시간, 장소, 모임을 의미할 때에 사용되었다. 회막의 אֹֽהֶל־מוֹעֵ֖ד(Exo 29:42)지정된 텐트 또는 지정된 장소라는 뜻이다. 회막은 하나님께 거룩한 예배를 드리는 장소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성막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만나고 그들에게 말씀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다섯번째 성막은 증거막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증거의 장막은 십계명을 보관하는 장소의 의미이다. 언약궤에는 십계명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 만나를 보관함으로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인도하심, 그리고 공급하심을 증거하는 장막인 것이다. 성막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거하시면서 그들의 예배를 받으시고,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는 거룩한 곳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성막은 하늘에 있는 성소의 모형과 그림자라고 했다. 모세가 성막을 지을 때에 하나님이 보여주신 대로 지어야 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하늘의 성전의 모양을 본따서 지으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 (8:5). 성막은 하늘의 성전의 모형과 그림자로서 하늘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처소를 이 땅에 모형으로 만들어 하나님이 거하시도록 한 것이다.

 

2.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의 모형이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9:12).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을 보여주는 모형을 보여준다. 요한복음 114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라는 표현으로 말씀이신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을 보여주었다. 거하시매라는 표현은 성막을 치다, 성막안에 거하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to fix one's tabernacle, abide (or live) in a tabernacle) , 성막안에 임재하신 하나님과 같이,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성육신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인 것이다. 성막은 성소와 지성소, 그리고 뜰로 나뉘어져 있다. 지성소에는 언약궤와 속죄소가 있었고, 성소에는 진설병을 놓는 상, 금촛대, 분향단이 있었다. 성막뜰에는 번제단과 물두멍의 기구가 있었다. 다음의 각 기구를 상징하는 영적인 의미이다.

 

첫째,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다. (25:10-16).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으며 가장 거룩한 지성소에 두었다.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찌며.” (25:16). 언약궤 안에는 하나님이 기록하신 십계명을 기록한 두 돌판을 두어야 했다. 하나님이 성막의 기구중 언약궤를 처음으로 지시하신 것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곳이기 때문이다.

 

언약궤는 조각목으로 만들어야 했다. 조각목은 아카시아 나무의 종류로 싯팀 나무라고 불리운다. 조각목으로 언약궤를 만들 대에 가로가 이 규빗 반이고, 세로와 높이가 일 규빗 반으로 만들어야 했다. 한 규빗은 45.6 cm 로서 가로가 114 cm 이고, 세로와 높이가 68.4 cm 였다. 조각목으로 만든 언약궤는 정금으로 싸야 했으며, 주변에는 금 고리를 만들어 장식하고 금으로 만든 막대기로 운반해야 했다.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고 그 채를 궤 양편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채를 궤의 고리에 꿴대로 두고 빼어내지 말찌며.” (25:13-15). 언약궤를 만든 후에는 하나님이 기록하신 십계명을 두어야 했고, 그 후에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만나가 든 항아리를 두어야 했다 (17:10, 9:4-5).

 

둘째, 속죄소는 죄를 속죄하는 곳이다.

 

속죄소의 의미는 כַפֹּ֖רֶת(Exo 25:17) 로서 죄를 덮는다(cover over sin)’ 라는 뜻이다. 속죄소는 문자적으로는 속죄 덮개(atonement cover)이다. , 이스라엘의 죄를 피로 속죄하는 곳이다. 시은좌라고 번역한 자비석(mercy seat)은 속죄소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장소라는 의미이다. 속죄는 죄인된 사람이 죄가 가리움을 받아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일년에 한번 대제사장이 속죄소에서 짐승의 피를 일곱 번 뿌림으로 백성의 죄를 속죄하는 곳이었다. 속죄는 죄를 덮는다.’ 라는 뜻이다.

 

속죄소는 언약궤를 덮는 순금으로 만든 덮개였으며, 양 끝에는 두 날개를 편 천사의 모양인 그룹을 만들어 서로 향하게 하였다 (25:17-20). 이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 (9:5) 라고 했다. 속죄소의 크기는 가로와 세로가 이규빗 반, 일규빗 반으로서 각각 114cm 68.4cm 의 크기였다. 속죄소는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곳으로서 성막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곳에서 짐승의 피를 보시고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셨고, 이스라엘을 만나며 그 곳에서 말씀하셨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25:22).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는 곳은 거룩한 곳이다. 대제사장은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 황소의 피를 일곱 번 속죄소에 뿌리는 의식을 통하여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였다. 구속자로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흘리신 보혈은 인류의 모든 죄를 속죄하셔서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9:12). 로마서 325절은 속죄소를 속죄 또는 화해(propitiation) 으로 번역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 제물이 되셔서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소에서 자신의 피를 드려 영원한 속죄를 이루심을 의미한다. (9:23-28).

 

셋째, 진설병을 두는 상은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37:10-16).

 

진설병을 두는 상은 조각목으로 길이가 두 규빗(91.2 cm), 너비는 한 규빗(45.6cm), 높이는 한 규빗 반(68.4 cm)으로 만들어야 했다. 진설병을 두는 상은 조각목에 금으로 싸서 턱을 만들었다. 그리고, 식탁용품인 대접과 숟가락과 병과 붓는 잔을 같이 만들었다 (25:29). 상을 만든 후에 진설병을 항상 있도록 했다. 진설병(the bread of presence)이란 얼굴들의 떡이란 의미로서 하나님 앞에 보이는 떡이었다. 진설병은 매주 안식일에 구워서 교체해야 했고 (24:5-8), 제사장 외에는 이 떡을 먹어서는 안되었다. 열 두 덩이가 되는 떡이 항상 성소에 있는 것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있음을 보여준다.

 

떡은 생명을 유지하는 필수 음식이다. 이스라엘은 떡이라고 번역된 빵이 주요 식사로 생명의 공급을 상징한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표현하셨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6:35).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떡으로 그로 인하여 영생을 얻으며 그 분의 말씀을 먹음으로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주님은 자신의 삶이 세상에 주는 떡이라고 하시면서 자신을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고 하셨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6:51). 성막은 거룩한 장소로서 성막의 각 기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진설병은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인 것이다.

 

넷째, 금 촛대는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25:31-40).

 

성막의 성소에는 진설병을 놓는 상의 마주편에 금촛대가 있었다. 금촛대는 무게가 한 달란트로서 34 kg 가 들었다. 금촛대는 정금을 쳐서 만들었으며 살구꽃 형상의 잔과 꽃받침, 꽃이 묘사되었으며 일곱 개의 가지를 만들었다. “너는 정금으로 등대를 쳐서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을 한 덩이로 연하게 하고 가지 여섯을 등대 곁에서 나오게 하...” (25:31-32).

 

금촛대의 등잔에는 감람유를 사용하여 등불을 키고 항상 그 등불을 켜도록 했다.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감람으로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말고 등불을 켜되.” (27:20).

 

하나님은 어두움을 밝히시는 빛이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안에 거할 때에 어두움에 다니지 않고 빛 가운데 거하는 것이다. 요한일서는 “ ...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요일 1:5) 라고 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빛을 비춰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8:12).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으로 오셔서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는 생명의 빛을 얻는 것이다. 일곱 개의 금촛대는 하나님을 상징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을 행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믿는 자에게 성령을 주셔서 세상에서 빛으로 살아가도록 역사하심을 보여준다.

 

다섯째, 성막 자체는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을 표현한다.

 

출애굽기 26장은 성막을 만드는 교훈을 주고 있다. 성막의 첫 번째 덮개는 열 폭을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을 수 놓아 만든 앙장이었다. “너는 성막을 만들되 앙장 열 폭을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을 공교히 수 놓아 만들찌니.” (26:1). 앙장이란 텐트를 덮는 일종의 휘장(covering)을 의미한다. 성막을 덮는 휘장을 네 가지의 실로 그룹을 수놓아 만드는 것이다. 휘장의 크기는 길이가 12.6 m, 넓이는 약 1.8 m 이다. 두번째 덮게는 염소 털 휘장이었다. “그 성막을 덮는 막 곧 앙장을 염소털로 만들되 열 한폭을 만들찌며.” (26:7). 염소털로 만든 휘장은 두 번째로 성막을 덮었다. 세번째는 숫양, 네번째는 해달 가죽으로 만든 덮개를 가각 덮었다. “붉은 물 들인 수양의 가죽으로 막의 덮개를 만들고 해달의 가죽으로 그 웃덮개를 만들찌니라.” (26:14).

 

성막을 덮은 덮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 그리고 대속의 죽음을 상징한다. 성막을 덮는 첫번째 휘장은 네 가지 색깔로 예수 그리스도이 인성과 신성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염소털로 덮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는 모습이며, 수양의 가죽도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의 예표이다. 또한 해달의 가죽은 멸시당하시고 고난 당하시는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성소는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 장을 갈고리 아래 드리운 후에 증거궤를 그 장안에 들여 놓으라 그 장이 너희를 위하여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리.” (26:33). 휘장은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하였고 지성소에 언약궤를 두었고 성소에는 진설병을 놓는 상과 금총대, 그리고 분향단을 놓았다. “너는 지성소에 있는 증거궤 위에 속죄소를 두고 그 장 바깥 북편에 상을 놓고 남편에 등대를 놓아 상과 대하게 할찌며.” (26:34-35). 지성소에는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번 대속죄일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제사장이라도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지성소에는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죄를 위하여 속죄제물로 드리신 그 날에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짐으로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열렸음을 보여주셨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27:50-51).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신 후에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님께로 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10:19-20).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는 휘장은 그리스도의 육체를 상징한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혔던 휘장을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길을 열어 놓으셔서 예수의 피로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여섯째, 번제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희생을 의미한다.

 

놋 제단은 조각목으로 만들어 놋으로 입혔고, 크기는 가로와 세로가 2.3 m 에 높이가 1.4 m 였다. 놋제단은 모퉁이에 뿔을 만들고 놋으로 감쌌다. “너는 조각목으로 장이 오 규빗, 광이 오 규빗의 단을 만들되 네모 반듯하게 하며 고는 삼 규빗으로 하고 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되 그 뿔이 그것에 연하게 하고 그 단을 놋으로 쌀찌며.” (27:1-2). 놋제단을 만들때에 제물이 타고 남은 재를 제거하기 위한 통과 부삽, 대야와 고기 갈고리를 놋으로 만들었다.

 

번제단의 역할은 제물을 태우는 곳이었다. , 이 곳은 사람의 죄로 인하여 동물들이 대속의 죽음을 당하는 곳이었다. 죽은 동물의 피는 제단 바닥에 뿌렸고, 동물의 몸은 제단 위에서 불로 태웠다. 죄인이 성막에 들어와 처음 마주하는 곳이 번제단이다. 번제단에서 자신의 죄를 짐승에게 전가하여 죽인 후에 피를 제단에 뿌리고 사체를 태움으로 속죄제를 드리는 곳이다. 제단에서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불태워지는 것은 죄의 대가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일깨워주는 것이다.

 

놋으로 만든 번제단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모형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의 죽음이 대속의 죽음임을 예언하였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53: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죽음으로서 우리의 죄를 속죄하셨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자신을 단번에 드리셨다고 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 (9:28). 번제단에서 죽임을 당하는 동물들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하여 속죄의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일곱째, 분향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을 상징한다. (30:1-10).

 

분향단은 조각목으로 만들어 금으로 입혀야 했다. 분향단의 규모는 가로와 세로가 일 규빗으로서 45.6 cm 이고 높이는 이 규빗으로서 91.2 cm 였다. 분향단은 지성소 앞에 있는 휘장 밖에 두어야 했다. “그 단을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장 밖에 두라 그 속죄소는 내가 너와 만날 곳이며.” (30:6). 분향단의 향은 아침 저녁으로 켜서 항상 향이 켜 있어야 했다.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정리할 때에 사를찌며 또 저녁 때 등불을 켤 때에 사를찌니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끊지 못할찌며.” (30:7-8). 분향단의 향을 켤 때에 하나님이 명하시지 않은 다른 향을 사르지 말아야 했으며, 대제사장은 일연에 한번씩 향단 뿔을 위하여 속죄제의 필로 속죄해야 했다. 분향단은 하나님께 지극히 거룩한 곳이었다.

 

분향단에서의 향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기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7:25). 예수 그리스도는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하고 계신다. 로마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우편에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라고 증거했다. “...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8:34).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계시는 분이시다. 분향단은 또한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상징한다.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8:3).

 

여덟째, 물두멍은 말씀으로 정결케 됨을 의미한다. (30:17-21).

 

물두멍은 놋으로 만들어 회막과 번제단 사이에 두어야 했다. “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만들어 씻게 하되 그것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그 속에 물을 담으.” (30:18). 물두멍의 역할은 제사장들이 성막에서 섬길 때에 손과 발을 씻어 정결케 하는 것이다. 만일 물로 손과 발을 씻지 않고 회막에 들어가면 죽임을 당하였다.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화제를 여호와 앞에 사를 때에도 그리 할찌니라.” (30:19-20). 물로 손고 발을 씻는 정결의식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하나님 앞에서 섬기는 자는 정결해야 함을 물두멍이 보여준다. 번제단은 제사를 드리기 전에 자신의 손과 발을 씻었다. 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마음과 생각을 정결케 해야 함을 보여준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 (24:3-4).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는 말씀과 보혈의 능력으로 마음과 행실에서 깨끗함을 나타내어야 한다. 믿는 자가 자신을 정결케 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보혈이 믿는 자를 새롭게 할 때에 양심을 깨끗하게 했기 때문이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9:14).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여 죽은 행실을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것이다. 정결하게 받은 양심이라도 세상에서의 삶은 양심을 더럽게 하는 유혹을 받는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마음과 양심의 악을 깨닫고 날마다 새롭게 하는 은혜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10:22).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날마다 자신의 마음과 양심으르 날마다 말씀으로 깨끗케 함으로 순결하고 깨끗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3. 성막은 자원하는 헌신과 속전으로 세워졌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성막을 짓기 위한 재료들을 자원함으로 드리도록 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찌니라.” (25: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필요를 공급하셨다. 애굽에서 탈출할 때에 애굽 사람들에게서 은혜를 입어 금과 은 등의 보석을 얻게 하셨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를 만들기 위하여 자신의 소중한 보물들을 드려야 했다 (25:3-9). 하나님께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들에게서 받으라고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원하는 예물을 가져오기 시작하는데 너무 많이 가져와서 더 이상 가져오기를 멈추라고 했다(36:3-7).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을 구속하시고 광야로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신 은혜를 감사의 예물을 드림으로 표현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린 예물은 각 기구를 만들기 위하여 사용되어질 것이다. 출애굽기 3011-16절은 성막을 위하여 각 사람이 내어야 할 생명의 속전을 가르치고 있다.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따라 조사할 때에 조사 받은 각 사람은 그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찌니 이는 그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온역이 없게 하려 함이라.” (30:12). 속전은 성막의 유지와 운영을 위하여 내는 헌금이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스무 살 이상 되는 자는 세금을 내어 하나님께 드려야 했다. 이는 생명을 속하기 위하여 드리는 생명의 속전이라고 불리웠다.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에 세겔대로 반 세겔을 낼찌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찌며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 곧 이십세 이상 된 자가 여호와께 드리되 너희의 생명을 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 (30:13-15). 생명의 속전이라 함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은혜에 감사함으로 의무적으로 내어야 하는 종교적 세금이었다. 고대 사회에서 노예가 해방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값인 속전을 지불해야 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노예에서 구원하신 것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감사의 표시로 사람 몸값의 육십 분의 일인 반 세겔을 내라고 하신 것이다. 이러한 속전은 인류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드린 예수 그리스도의 몸값을 예표하는 것이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20:28).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하여 자신을 대속물인 속전으로 하나님께 드린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속전을 내는 것은 성막이 유지됨으로 지속적인 속죄의 필요를 볼수 있게 하였다.

 

성막이 완공되자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다.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40:34). 하나님이 성막 가운데 임재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하고 구름이 회막을 덮었다. 이때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하여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다. 하나님이 거룩한 성막으로 이스라엘 가운데 임재하신 것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성취였다.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17:7).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 임재하시며 다스리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