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강해 (41) - 침례 요한의 사명과 순교(마 14:1-12).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요 1:23).
오늘 우리는 침례요한의 사역과 순교를 통하여 얻는 영적인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하면서, 메시야의 길을 예비할 자로 침례요한의 출생을 예고했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사 40:3). 침례요한은 하나님이신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며 평탄케 하는 자로 예언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이 가까이 오자 하나님은 메시야를 보내셔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메시야가 오셔서 세우실 나라는 공평과 정의로 세우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다. 그리고 메시야가 오시기 전에 그의 길을 예배하는 자가 광야에서 외치는 자로 보냄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선지자들이 메시야에서 대해서도 예언했지만 침례요한에 대하여 예언한 것은 그의 삶과 사역이 갖는 큰 의미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그의 출생을 알리며 나이든 사가랴와 엘리사벳에서 출생하는 침례요한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태어났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침례요한의 순교의 현장을 목격하면서 그가 걸었던 사역과 선지자로서의 절망, 그리고 마지막까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서 사명을 감당해야 했던 선지자의 삶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침례요한은 어두운 시대에 진리의 빛을 비추는 자였습니다.
침례요한이 태어나고 자랐던 시기는 예수님과 동시대로서 영적으로 어두웠습니다. 정치적으로 혼탁하여 유대인이 아닌 헤롯왕과 그의 아들들과 같은 이방인들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는 헤롯왕이 임명한 대제사장은 아론의 혈통이 아닌 자들이 부정하게 임명되어 성전을 더럽히고 있었습니다. 저는 침례요한과 관계된 헤롯가의 정치와 도적적인 타락을 배경으로 설명하고자 합니다.
침례요한을 옥에 가두었던 권력자는 분봉왕 헤롯이었습니다. “그때에 분봉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마 14:1). 분봉왕 헤롯은 헤롯 안디바로서 헤롯 대왕의 아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에는 헤롯 대왕이 이스라엘 나라를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인 안티파테르는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를 도와 신임을 얻어 로마 시민권을 얻고 유다를 다스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안티파테르가 독살을 당하자, 헤롯이 로마 황제의 승인을 얻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통치하였습니다. 헤롯은 에서의 후손인 이두메 사람이었기에 유대인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습니다. 헤롯 대제는 건축광이라고 불릴만큼 큰 건축물을 남겼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업적은 예루살렘 성전이며, 헤로디움이라는 헤롯 궁전, 가이사랴 도시, 그리고 맛사다 요새, 여리고의 헤롯 별궁, 마케루스 요새 등이었습니다. 헤롯이 죽고 난 후에 로마의 총독과 더불어 헤롯의 아들들이 영주와 같이 분봉왕으로 유대 땅을 나누어 다스렸습니다.
헤롯 대왕이 예수님이 태어났을 즈음에 베들레헴의 남자 아이 두살 이하로 모두 죽인 것처럼 그의 아들들도 포악하게 통치했습니다. 헤롯 대왕은 자신의 권력을 위하여 10명의 부인 중에 한 명을 죽이고 여러 아들들을 죽인 자였습니다. 그의 아들들은 헤롯 아켈라우스, 빌립, 안디바가 분봉왕으로 통치했습니다. 마태복음 2장은 아겔라오에 대하여 잠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마 2:22-23). 요셉이 헤롯왕을 피하여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유대의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고 갈릴리의 나사렛으로 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아켈라오의 잔인한 폭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켈라오는 성전에서 시위하는 3,000명을 군대를 동원하여 학살하였습니다. 성전에 모여 시위하는 3,000명을 죽인 아켈라오의 잔인함에 요셉 조차도 유대 땅으로 가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침례요한을 옥에 가둔 헤롯 안디바는 갈리리와 베레아 지역의 분봉왕으로 AD 39년까지 통치했습니다. 침례요한이 옥에 갇힌 이유는 헤롯 안디바의 죄를 공개적으로 책망했기 때문입니다.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마 14:3-4). 헤롯 안디바는 그의 동생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결혼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레위기 18장 16절은 “너는 형제의 아내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이는 네 형제의 하체니라.”라고 했습니다. 헤롯 안디바는 이복 형제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와의 결혼을 위하여 자신의 아내와 이혼했습니다. 헤롯 안디바의 아내는 페트라에 위치했던 나바티안 왕인 아레타의 딸이었습니다. 그후에 아레타 왕은 딸의 수치로 인하여 헤롯 안디바와 전쟁을 하여 크게 승리했고 결국 헤롯 안디바는 로마에 의하여 리옹이라는 곳으로 추방되었습니다. 헤롯디아는 그 당시의 권력자인 헤롯 안디바와 결혼하기 위하여 자신의 남편과 이혼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 여왕의 우상 숭배와 권력 앞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릎을 꿇었지만 하나님의 선지자였던 엘리야 선지자가 그들의 죄를 책망했던 것처럼, 침례요한은 그들의 죄를 공개적으로 책망했습니다.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든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막 6:17-18). 헤로디아는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나 죽이지 못한 것은 헤롯 안디바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어두움의 빛이 밝게 비추듯이 영적으로 어두움의 시기에 하나님의 사람은 진리의 빛을 비춥니다. 성막의 등잔대가 올리브를 찧어 낸 기름으로 밝혀 성소를 밝혔듯이, 침례요한은 자신을 희생하며 회개의 메시지를 거침없이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외침은 헤롯 안디바에 의하여 감옥에 갇히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하나님의 빛은 자신을 희생하는 고난으로 밝게 타오르는 것입니다. 시대가 어두울 때에 사탄의 역사는 거세지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무너트리기 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을 지켜주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기에 흔들림없이 굳게 서는 것입니다.
2. 침례요한은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구별된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자를 보내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사 40:3). 기름부으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믿는 자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메시야의 가는 길을 예비하도록 침례요한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가브리엘 천사는 침례요한이 주 앞에 큰 자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눅 1:13,15). 그는 엘리야의 능력으로 많은 사람을 회개케 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눅 1:17). 침례요한은 이사야 선지자의 에언과 같이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 구별되었습니다. 부친 사가랴가 성령이 충만하여 침례요한의 사역에 대하여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예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얻게 하리니.”(눅 1:76-77). 부친 사가랴는 침례요한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침례요한의 사역은 회개의 메시지를 통하여 메시야의 나라에 회개함으로 들어가도록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도록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메시야가 정치적인 왕으로 오셔서 로마군대와 헤롯왕가를 물리치고 의와 공의가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열망했습니다. 그러나 메시야가 오셔서 하시는 사역은 정치적인 나라가 아니라 죄의 회개를 통하여 믿음으로 죄 사함받고 구원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침례요한은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자로서 주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어떠한 삶과 사역을 살았는가요? 침례요한은 유대 광야에 거하며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습니다(마 3:3-4). 가브리엘 천사는 침례요한이 주 앞에 큰 자로서 나실인으로 구별된 것을 언급합니다.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눅 1:15). 나실인은 하나님께 드려진 자로서 삼손이나 사무엘이 어릴 때부터 하나님께 구별되었습니다. 침례요한도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자였고, 가브리엘 천사가 그의 출생과 사명을 언급한 자로서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 광야에 거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침례요한은 마침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팎한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회개를 외쳤습니다. 그의 회개의 외침을 듣고 하나님의 선지자로 인정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더니.”(마 3:5-6). 침례요한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향하여는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책망하여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했습니다. 침례요한은 엘리야 선지자가 아합왕을 책망하고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칼로 죽였듯이, 엘리야의 능력과 마음으로 하나님의 강한 책망을 전했습니다. 그의 외침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침례를 받았고 많은 사람들이 침례요한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침례요한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기경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이도록 길을 예비하였습니다. 그리고 침례요한은 예수가 세상의 죄를 담당할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소개했습니다. 요한복음은 침례요한은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요 1:6-8). 그는 참 빛이 아니기에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침례요한의 메시지와 대중적인 인기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 선지자 이사야의 마로가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했습니다.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요 1:23). 그리고 주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렇게 외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 침례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는 대속죄일에 백성의 죄를 지고가는 염소와 같이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이 땅에 오셨다고 선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임을 최초로 증거했던 자가 침례요한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실 때에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에 진실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했습니다(마 3:16-17). 침례요한이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36)라고 고백하자 그의 제자중 두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침례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세상 죄를 위하여 대신 죽을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셨음을 처음으로 증거한 자였습니다. 이와같이 침례요한은 자신을 높이지 않고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도록 철저히 낮아짐과 더불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침례요한을 구별하셔서 주님의 길을 예비하셨듯이 우리를 구별하셔서 주님의 뜻을 위해서 준비하십니다. 우리는 침례요한과 같이 자신의 부르심을 알고 쓰임받고 있는지 자신의 삶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향하여 그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구별하여 세우셨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렘 1:5).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구별하셔서 선지자로 세우신 것처럼, 우리를 세상에서 구별하셔서 왕같은 제사장으로 세우시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침례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고 평탄케 한 것이 부르심이었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사명에 대한 확신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구별되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졌는가요?
3. 침례요한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였습니다.
침례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지목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 순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침례요한을 두고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침례요한에게 찾아와 두 사람을 이간질하려고 했습니다. “저희가 요한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침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요 3:26). 그동안 침례요한을 참 선지자로 알고 많은 유대인들이 그를 따르며 회개하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침례요한이 침례를 주었던 예수에게 더 많은 사람들이 따르기 시작했고 주님도 제자들을 통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셨습니다. 이때 침례 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 3:30)라고 고백했습니다. 침례요한은 역사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셨기에 그 분의 사역이 나타남을 기뻐했던 것입니다. 침례요한은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할 자라고 한 것입니다. 자신이 쇠하여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오셔서 모세의 율법을 지켜지는 시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언약의 시대, 즉 은혜의 시대가 시작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요 3:29). 신랑이 신부를 취하는 날은 결혼의 축제일입니다.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신부는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입니다. 함께 기뻐하는 친구는 신랑도 아니고 신부도 아니라 친구로서 결혼 예식을 축하하기 위하여 온 사람입니다. 신랑과 신부의 혼인 의식을 보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듯이, 침례요한은 예수님이 사역을 통하여 죄사함과 구원을 선포하셔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시는 모습을 보고 크게 기뻐하는 것입니다. 침례요한은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라고 선언했습니다. 침례요한의 위대한 선언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진리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제 죄사함은 소나 양과 염소와 같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진리를 선언했습니다. 이제 침례요한의 사명은 예수님이 유대와 갈릴리에서 나타나셔서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는 사역을 보면서, 자신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역사의 뒤로 사라져야 하는 존재임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마태복음 14장은 헤롯 안디바가 침례 요한을 옥에 가두고 죽인 사건에 대한 배경을 설명합니다. 분봉왕 헤롯은 예수의 갈릴리 사역을 듣고는 침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 능력으로 사역한다고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헤롯 안디바는 동생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결혼하기 위하여 자신의 아내를 버렸습니다. 이일로 인하여 요한은 헤롯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책망했습니다.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마 14:3-4). 침례 요한의 지적은 그를 선지자로 아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흔들어 헤롯 안비다에 대한 정치적인 소요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헤롯 안디바는 침례요한을 옥에 가두었고 그를 죽이고자 했지만, 그를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했기 때문에 죽이지 못했습니다.
침례요한은 마케루스라는 헤롯의 요새에 10개월간 갇혀 있었습니다. 이때 요한은 마케루스 감옥에서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내어 그가 진정 메시야인지를 물었습니다. 자신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희생하였고 그 분의 이름을 유대 온 땅에 알렸지만, 그리스도 이신 예수는 자신을 위하여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에 실망이 찾아왔을 수도 있었습니다. 자신은 감옥에 갇혀 죽음의 날을 기다리고 있을 때에 자신의 유일한 소망은 분봉왕 헤롯을 능가하는 하나님이 아들이신 그리스도 예수 뿐이었습니다. 그 분이 구약의 예언대로 메시야의 나라를 세우신다면 로마와 헤롯 일가를 물리치시고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세우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도 감옥에 나와서 자신이 증거했던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칭찬과 존귀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요한은 예수님에게 사람을 보내어 자신의 믿음에 대한 확신을 얻고 싶었습니다.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마 11:3). 침례 요한의 질문에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 11:5). 주님은 그 분이 행하시는 사역이 이사야 61장 1절의 메시야의 사역을 행하고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주님 자신이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라고 답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침례 요한을 향하여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마 11:6) 라고 하셨습니다. 비록 감옥에 갇혀 절망과 고난의 시간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서 넘어지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갖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침례 요한의 제자가 떠난 후에 그는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마 11:13) 라고 하시며 침례요한의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침례요한은 주님의 응답을 듣고 자신의 사역과 믿음이 옳았다는 것을 확신했을 것입니다. 자신은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자였기에 그리스도가 현장에 나오시면 쇠퇴해야 할 자였습니다. 그는 주님과 경쟁하지 않았습니다. 침례요한은 주님의 신들매 끈을 푸는 일도 감당치 못함을 알았던 것은 그리스도는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침례요한은 인생의 마지막을 평안 가운데 숨을 거둘 수가 있었습니다.
헤롯 안디바는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는 연회 자리에서 헤로디아의 딸인 살로메가 춤을 추어 기쁘게 하자 맹세를 합니다. “... 무엇이든지 너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 또 맹세하되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하거늘.”(막 6:22-23). 이때 헤로디아는 그동안 자신을 비방한 침례 요한의 머리를 구했습니다. 왕은 심히 근심하였으나 자신의 맹세와 앉은 자들로 인하여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목을 베어 소반에 가져오게 했습니다. 헤롯 안디바는 탐욕이 가득한 자로서 하나님의 선지자를 죽인 죄를 범하였고, 그 후에 예수님이 여우라고 칭함을 받았습니다. 헤로디아는 자신의 딸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의로운 자를 죽이도록 한 죄를 범했습니다. 역사는 헤로디아의 딸인 살로메가 자신의 삼촌인 헤롯 빌립과 결혼하여 살다가 얼음에 미끄러져 죽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산상수훈을 통하여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팝박하였느니라.”(마 4:10-12). 주님은 팔복에서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의 복에 대하여 다른 일곱 가지 복보다 더 많은 설명을 하셨습니다. 침례 요한은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의를 선포함으로 왕이 적이 되었습니다. 침례요한의 순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가리키는 그림자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침례요한이 죽인 후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마 17:12). 예수님은 침례요한을 엘리야로 비유하시면서 그를 임의로 대우하였고, 인자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받을 고난에 대하여도 언급하셨습니다. “...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침례요한과 같이 낙심과 고난을 만나기에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아 그 분을 따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다가 자신이 주님보다 낮아질 때에 당황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주님보다 높아져서 영광을 받아야 하는 유혹앞에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다고 환경이 악화될 때에 주님을 섬긴 보상이 이것이가 하고 낙심하고 믿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때로는 사람들로 받는 상처나 환경이 주는 시련 앞에 침례 요한이 했던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주님 제가 계속 이 길을 가야 하나요?” 저는 얼마전에 폐암 4기로 고통당하며 죽음의 길목에 서서 투병하시는 선교사님의 카톡을 받았습니다.
요즘 세상은 저에게 말합니다. “안 됬다, 가망 없다, 끝났다, 마지막이다, 안타깝다 등등"
2010년 파송 받고 전쟁의 나라, 남수단으로 향하던 때가 많이 생각납니다. 파송 받기 전에 2007년 2008년 2년에 걸쳐서 하나님께서 선교사가 되기 위해 마지막으로 저에게 요구하셨습니다. “복음 전하는 것에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말라고” 2007년 남수단 국경에서 있었던 교통 사고로 경추 6번,7번이 부러져서 2번의 수술과 6개월의 재활 치료 가운데 하나님께서 “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데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겠다” 사도 바울의 신앙 고백으로 저를 도전 하셨습니다. 2008년 쌍둥이 은진(1.8kg) 은선(800g) 이가 8개월의 미숙아로 태어나고 3개월간 소아 중환자실에 생사를 오고 가고 있는 때 하나님께서 같은 동일한 말씀으로 가족들의 생명까지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지 않아야 된다는 말씀으로 저를 도전 하셨습니다. 수 많은 사건과 사고가 지난 선교 사역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 모든 상황들은 모두 저의 생명과 직결된 것들이 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그 모든 사역을 감당하게 해 주셨습니다. 2007년 저는 그 교통 사고로 죽었습니다. 전쟁의 나라 남수단에서 있었던 모든 상황 가운데 저는 이미 죽었습니다. 지금 까지 살아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기적입니다. 지난 9년 동안 수 많은 상황 가운데 저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요즘 저는 이렇게 세상에 대하여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저의 삶에 중심에 살아 계시다” 세상의 소리와 말에 귀 기울지 않겠습니다. 세상의 판단과 결정에 영향을 받지 않겠습니다. 나의 삶의 중심에 살아 계셔서 저와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집중하고 그분과 함께 또 다시 저의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지 않겠다고 선포합니다. 다시 한번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많은 분들을 귀한 동역자로 부르셔서 저의 이 귀한 선교의 사역에 동참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다시 한번 저의 신앙 고백인 “복음 증거하는 일에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선교사님은 주님을 따르다가 생명의 위협을 당하고 폐암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고통을 당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복음 증거하는 일을 계속하기를 원하는 모습에서 깊은 감동을 주셨습니다. 침례 요한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다가 마케루스의 차가운 감옥에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의 감옥에서 목베임을 당했습니다. 스데반은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주님은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는 우리를 향하여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마 11:6)고 격려하십니다. 어떠한 순간에도 주님으로 인하여 실족하여 넘어지지 아니하고 온전히 주님을 따르는 하나님의 종으로 살기로 결단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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