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창조 목적은 예배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창 2:15).
창세기는 기원이나 근원을 설명하는 책입니다. 이에 창세기는 죄와 타락, 노아와 홍수와 구원, 이스라엘의 기원과 하나님의 구속에 대한 해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육일간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사람과 짐승을 육일째에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의 이름은 아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 하나님이 흙으로 지은 사람의 이름은 아담(אָדָם)입니다. 아담의 뜻은 사람(man)입니다. 사람이 흙에서 지음을 받았듯이 흙이라는 뜻도 아다마(אֲדָמָה)입니다. 사람이 죄를 범한 후에 하나님께서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 3:19)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흙으로 지음을 받았기에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이 흙은 아담과 같은 단어의 뿌리를 가진 아다마입니다. 즉, 사람의 존재는 흙에서 지음을 받아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른 피조물과 다르게 흙으로 지은 사람에게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셨습니다. 생기는 ‘생명의 호흡'(breath of life)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기는 하나님의 영을 사람에게 넣어 주셔서 사람의 생명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람의 창조는 모든 피조물의 으뜸으로서 구별된 이유는 하나님의 영이 사람의 존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영으로 하나님과 영적인 관계를 맺으며 교제하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후에 에덴 동산에 아담이 거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에덴 동산에서 지켜야 할 사명을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시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5-17).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에덴 동산을 다스리시며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사명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예배는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목적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창 2:15)
하나님이 에덴에서 주신 에덴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창 2:15). 하나님의 명령은 에덴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라는 것입니다. ‘다스리며’의 히브리어는 아바드(עָבַד)입니다. 아바드라는 단어는 ‘일하다, 섬기다, 예배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아담이 에덴 동산을 다스리는 것은 그 땅에서 일하며 섬김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예배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아바다는 레위 자손들이 성막에서 봉사하는 것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회막 앞에서 아론의 직무와 온 회중의 직무를 위하여 회막에서 시무하되(아바드) 곧 회막의 모든 기구를 수직하며 이스라엘 자손의 직무를 위하여 장막에서 시무할찌니(아바드).”(민 3:7-8). 레위 지파가 성막에서 섬기는 것이 아바드로서 예배였습니다. 이는 에덴 동산과 성막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이 땅의 성전된 개념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담은 피조물로서 창조주 하나님을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며 말씀에 순종함으로 예배해야 했습니다. 아담이 지켜야 할 말씀은 선악과를 먹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으므로 인하여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사망이 찾아왔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었습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습에서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즉 하나님을 예배하는 주의 백성과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인들이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가인과 예배는 두 가지의 예배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창 4:3-5).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아벨이 드린 어린양의 제물로 드린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죄로 인하여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과 분리되었기 때문에 죄를 속죄하는 제사를 통하여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벨이 드린 어린양의 제사는 여자의 후손으로 와서 인류를 구원할 자에 대한 믿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가인의 제사는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드렸지만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과 같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우상을 숭배하는 예배로 자신의 영적인 필요를 채우려고 했습니다. 가나안에서는 바알이나 아세라 신들을 숭배하였고, 애굽에서는 태양신을 비롯한 짐승이나 버리지와 같은 우상의 형상을 만들어 하나님을 대체하여 예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롬 1:23,25). 사람들은 흙으로 지어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숭배하는 어리석은 일을 범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대상은 우리가 누구인가를 보여주는 정체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백성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영광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나님께 그 분의 이름에 합당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시편 기자는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시 95:6)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흙에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 분의 생명을 불어넣으셔서 사람이 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그 분의 이름에 합당한 예배를 드리는 삶은 우리를 지으시고 구원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2. 예배는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찌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찌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찌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찌어다.”(시 96:8-9).
성경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모습이 설명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려 예배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제물에는 세 가지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헌신과 감사, 그리고 속죄의 의미였습니다.
1) 아벨은 믿음으로 어린 양을 드렸습니다.
아벨이 드린 어린 양의 제물은 믿음의 예배였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히 11:4). 아벨의 제사는 의로운 자라 하는 증거였습니다. 왜나하면 제물이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2) 셋의 혈통인 에노스는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담이 나은 아벨이 죽임을 당하자 셋을 낳았고 셋은 에노스를 낳았습니다. 이때에 비로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했습니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 4:26).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3) 노아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고 약속을 받았습니다.
노아가 홍수 후에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노아의 예배를 받으시고 노아가 드린 번제물의 향기를 흠향하셨습니다.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창 8:20-21). 하나님께서 노아가 드린 제물을 받으시고 더 이상 물로 심판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9:1).
4) 아브라함은 단을 쌓아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 단을 쌓아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창 12:8).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 단을 쌓아 번제를 드리고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예배는 이삭을 드리는 믿음에서 온전한 헌신의 모습을 증거했습니다. “...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린 믿음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린 아브라함의 헌신이었습니다. 그의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더욱 축복하셨습니다.
5) 이스라엘 백성은 제사장의 거룩한 나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에서 인도하신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5-6). 이스라엘 백성의 존재이유는 이방 나라와 구별된 거룩한 백성이 되어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나라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가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다섯 가지 제사법으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번제는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을 표현하였고, 소제는 하나님께 소출에 대한 감사였으며 화목제는 하나님께 감사와 서원을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그리고 속죄제와 속건제는 죄의 속죄에 대한 예배였던 것입니다. 특히 화목제는 하나님께 서원하거나 감사할 제목이 있으면 제물을 하나님께 드려 번제단에 태우고 정해진 제사장의 몫을 돌리고, 나머지는 예배자가 하나님 앞에서 가족이나 친구를 불러 함께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속죄제나 속건제는 죄를 범하면 속죄받기 위하여의무적으로 드려지는 제사였지만, 나머지 번제와 소제, 그리고 화목제는 헌신과 감사의 의미로 드려지는 자발적인 예배였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는 것이 이스라엘의 제사의 기본 원칙이었습니다. “... 빈손으로 내 얼굴을 보지 말찌니라.”(출 34:20).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는 예물을 가지고 나와 하나님을 경배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께 예배할 때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삼하 24:24).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는 희생 제물의 값을 치루고 하나님께 나아왔던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찌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찌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찌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찌어다.”(시 96:8-9)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 예물을 가지고 들어가 하나님을 경배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려야 하는 예배의 시기를 정하셨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 아침과 저녁에 한 어린 양을 드려야 했습니다. “... 너희가 여호와께 드릴 화제는 이러하니 일년 되고 흠 없는 수양을 매일 둘씩 상번제로 드리되 한 어린 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 양은 해 질 때에 드릴 것이요.”(민 28:3-4). 이스라엘 백성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번제를 성막에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에 하나님께 번제와 소제, 그리고 전제를 드렸습니다. “안식일에는 일년 되고 흠 없는 수양 둘과 고운 가루 에바 십분지 이에 기름 섞은 소제와 그 전제를 드릴 것이니.”(민 28:9). 이스라엘은 매월 첫 날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월삭에는 수송아지 둘과 수양 하나와 일년 되고 흠 없는 수양 일곱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되.”(민 28:11). 그 외에 유월절과 칠칠절, 나팔절과 속죄일과 장막절과 같은 절기에 제사를 드렸습니다(민 29장). 이와같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은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렸고,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회개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다윗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을 구분하여 세웠습니다. “다윗이 군대 장관들로 더불어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자손 중에서 구별하여 섬기게 하되 수금과 비파와 제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게 하였으니 그 직무대로 일하는 자의 수효가 이러하니라.”(역상 25:1). 찬양과 악기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는 수효가 이백 팔십 팔인으로서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배운후에 하나님을 성전에서 찬양했습니다. 바벨론 포로 시대이후에는 학사 에스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해석하여 백성으로 깨닫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느 8:8).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찾아온 것을 깨달을 이스라엘 백성은 학사 에스라가 강단에 서서 전하는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3. 신약 시대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 4:24).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예배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입니다. 우리는 흙으로 와서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존재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영생을 주시고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께 영으로 예배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 4:25).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듯이,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막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기 때문입니다.
신약 시대에 이르러 예배는 성전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려졌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날도 안식일이 아닌 주님이 부활하신 날인 안식후 첫날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고전 16:1). 그리고 성도의 예배에는 희생 제물이 드려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의 희생 제물이 되셔서 세상의 죄를 영원히 속죄하셨기 때문입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히 9:12).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속죄 제물이 되심으로 우리의 죄가 씻음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며 교제하는 특권을 얻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드리는 제물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같이 자신을 제물로 드리는 희생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우리가 드리는 제물은 자신을 살아있는 희생 제물로 드리는 헌신입니다. 진정한 영적 예배는 자신의 삶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자신의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는 경험을 합니다. 자아가 살아서 죄에 거하는 어두움을 빛 가운데서 드러냄으로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또한 예배를 통하여 구원과 공급하시는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드립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은 지존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감사를 기뻐하십니다. 시편 기자는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리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것이라.”(시 69:30-31)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찬양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그 분의 임재를 가져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찬양 속에 거하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시 22:3). 예배 때에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 4:25)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진정은 진리입니다. 신령과 진정은 성령과 진리 안에서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성령은 진리 안에서 역사되어지며, 진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물은 자신의 소유 전부가 하나님께 속했음을 인정하는 믿음의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노예에서 구속했듯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하셨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속죄나 구속은 소유권의 이전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십일조는 자신의 소유가 전부 하나님께 속했다는 믿음으로 인정하며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선교와 구제, 건축 헌금은 하나님의 교회와 세상의 선교를 위해서 드려지는 귀한 예물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예물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십니다. 사도 바울은 헌금을 내는 자의 자세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는 물질을 드리는 헌금이 포함되는 것입니다.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시도록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얻는 비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나와 예배를 드리지 않거나 세상의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는 고통을 겪게 됩니다. 우리가 새해의 첫 주일에 예배의 소중함과 원리를 배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삶의 가장 중요한 우선 순위로 삼고 드리는 귀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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