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마태복음강해(68) - 최고의 계명(마 22:34-40).

비전의 사람 2020. 12. 19. 19:16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22:37-38).

 

예수님께서는 월요일에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리고 화요일에 성전에 가셔서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책망하시고 내어 쫓으시는 성전 정화 사역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 집에 머무신 후에 수요일에는 성전에 가셔서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과 교만을 책망하시며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율법사들의 질문을 받으시며 진리를 전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가이사에 내는 세금의 이슈로 정치적인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의 이슈를 통하여 예수님에게 신학적인 접근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율법사가 영적인 문제를 통하여 예수님을 도전하며 접근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사두개인들로 더 이상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듣고 한 율법사를 예수님께 보내었습니다. 율법사는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시험하는 질문은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22:36)였습니다. 율법사는 모세의 율법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자로서 율법의 권위자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율법사를 보낸 것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모세의 율법을 부정한다면, 율법을 삶의 중심으로 삼는 유대인들에게 큰 배척을 받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잘 아는 사람을 통하여 예수님을 시험하여 그 분의 권위를 떨어트리려고 했습니다. 율법사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가장 큰 계명을 통하여 우리가 배우고 실천해야 할 영적인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최고의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22:37-38).

 

이스라엘 백성에게 중요한 세 가지는 율법과 성전, 그리고 제사였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제사장의 나라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였습니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이 거룩한 나라로 세워지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실 때에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20:2-3)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시면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종 되었던 애굽에서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이스라엘을 구속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애굽의 종에서 자 유를 얻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더욱 사랑해야 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9-10).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구원하셨고, 성령을 마음에 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심으로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지 않은 자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최고의 계명으로 여기신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신명기 64-5절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님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6:4-5).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가르치며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미간에 붙어 표를 삼으며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은 손목과 이마에 이 말씀을 넣은 가죽 상자인 경문을 달고 하루에 세 차례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집의 문설주와 바깥문에 이 말씀을 기록하여 항상 하나님을 사랑하는 계명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바리새인들은 넓게 하여 자신들의 경건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어 주님의 책망을 받았습니다(23:5). 주님께서는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첫째,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마음이란 우리 존재의 가장 중심되는 곳입니다. 마음은 헬라어로 카디아로서 심장을 의미합니다. 심장이 육체의 중심이듯이, 마음은 영과 혼, 육의 중심이 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잠언서는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4:23)라고 했습니다. 생명의 근원이 바로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것은 생명을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5:8)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으로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했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15:18-19). 우리가 정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마음에 악한 생각과 미움과 같은 살인적인 생각들, 간음과 음란과 탐욕, 그리고 거짓된 마음을 가지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키우던 양을 곰과 늑대로부터 지켰던 신실한 목자였고, 이스라엘을 조롱하던 골리앗을 무너트린 전사였습니다. 그리고 공평과 정의로 나라를 다스린 왕으로서 복을 누리며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야에 대한 언약을 받은 자였습니다. 그 중에서 다윗을 위대하게 만든 것은 그의 중심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가득한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오벳에돔의 집에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고오자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걸으면 그곳에서 소와 살진 것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습니다(삼하 6:13-14). 다윗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가득했습니다. 시편에서 다윗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18:1-2). 다윗이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반석이시며 요새시여 구원의 뿔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했기에 하나님의 집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는 다윗과 같이 예배에 대한 사모함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예배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말씀 묵상과 기도의 시간으로 하나님을 묵상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두 개의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새 생명으로서 영적인 생명입니다. 이는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영생으로서 영원히 살아가는 생명입니다. 또 다른 생명은 육체의 생명입니다. 우리가 호흡하는 육체의 생명입니다. 육체의 생명은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주어지는 제한된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는다고 할 때는 육체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생명보다도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열정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함을 가르치시며 심지어는 주를 위하여 목숨까지도 희생할 각오를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16:25). 주님을 따르는 자는 주를 위하여 목숨까지 희생할 각오가 되어야 함을 말씀하시며 목숨을 잃으면 다시 찾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목숨거는 일이 무엇인가요? 우리가 진정으로 목숨걸고 싸우는 일이 무엇인가요? 우리가 주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있는가? 아니면 자신의 사적인 이익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있는가요? 우리는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는 삶은 우리가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합니다.

 

사도행전은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며 교회가 세워지는 길은 주의 일꾼들이 핍박과 고난의 현장이었고, 복음 전도자들이 순교자가 되어 피를 흘린 곳이었습니다. 순교자가 흘린 피가 씨앗이 되어 복음의 위대한 역사가 꽃을 피웠습니다. 사도행전 6장에서 7장은 스데반 집사가 복음을 전하는 장면을 설명합니다.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자 유대인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았지만 회개하지 않고 도리어 스데반을 성 밖에 내치고 돌을 던졌습니다.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서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7:59-60). 스데반은 하나님을 죽기까지 사랑한 자였습니다. 그는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최고의 계명에 순종한 것입니다. 스데반의 죽음이 씨앗이 되어 사도 바울이 회심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옵니다.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 그리스도가 온 세상의 구주가 되심을 믿고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열정으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보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0:24).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목숨보다도 복음을 더욱 사랑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목숨을 다하여 사랑한 것은, 복음 전하는 일에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으로 증거했습니다. 우리도 스데반 집사나 사도 바울과 같이 하나님을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최고의 계명입니다.

 

셋째, 우리는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뜻은 지적인 영역으로서 이해와 통찰력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맹목적인 무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이 주신 진리의 말씀을 이해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는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벧후 3:18)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이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와 지식에서 자라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배움에서 시작됩니다. 말씀을 통하지 않고는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영적인 성장이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움으로 은혜가 자라가고, 말씀에서 나타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배워감으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에디오피아 내사가 예루살렘의 절기를 마치고 병거에 타고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경건한 유대인이었기에 이사야 선지자를 읽고 있었지만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빌립이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내시에게 다가가 이사야 선지자에 예언한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8:35). 빌립이 이사야 53장에서 가르치고 있는 메시야의 고난과 죽음에 나타난 예수님을 전하자 에디오피아 내시가 믿었습니다. 이에 내시가 구원을 받고 즉시 물 있는 시내에서 침례에 순종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소망하며 저희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10:2-3).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지식이 없을 때는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율법적인 열심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은 베뢰아 교회를 소개하며 말씀을 받은 후에 그 말씀을 날마다 상고했다고 했습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17:11). 베뢰아 사람은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은 후에 그 말씀을 깊이 상고했습니다. 상고했다는 의미는 열심히 공부했다(study carefully)라는 뜻입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신사적이어서 말씀을 깊이 공부하면서 진리를 발견하고 예수님을 믿은 자가 많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사랑해야 합니다. 말씀을 사랑함으로 그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 즉 깊이 배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깊이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와 긍휼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에덴에서 시작된 구원의 역사를 배우며 하나님 안에 더욱 뿌리 내리는 것입니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 영어 킹제임스본은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분별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되도록 공부하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말씀을 이해하고 분별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넷째, 우리는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께서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심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12:30). 힘을 다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힘과 능력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힘은 영적인 힘이나 육체적인 능력, 그리고 지적인 힘이나 재정적인 능력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힘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바브로디도의 헌신을 격려합니다. 그는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힌 줄을 알고 빌립보 교회가 모은 사랑의 헌금과 필요를 가지고 로마로 출발합니다. 사도 바울에게 오는 길이 힘들었기에 병들어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긍휼히 여기심으로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에바브로디도를 영접하고 기쁨으로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고 했습니다.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3:30). 에바브로디도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 자였습니다. 로마서 16장에서 사도 바울은 동역자들을 격려합니다. 그 중에서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사도 바울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희생할 수 있는 충성된 자였습니다.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나 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16:4).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사도 바울의 사역을 위하여 자신의 전부를 희생할 만큼 충성스러운 동역자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기 전에 한 여자가 지극히 비싼 향유를 가져다가 예수님의 머리에 부으며 주님을 경배했습니다. 그러자 가룟 유다가 어찌하여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리아의 힘을 다하여 섬기는 모습을 격려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26:13).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은 믿음으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장사를 미리 준비한 것입니다. 세상의 구주로 오신 예수님을 옥합을 깨트려 기름을 머리에 부음으로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자신의 힘과 능력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길 때에 힘들고 지치는 것은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겼기 때문입니다. 이때 우리는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길 수 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은 예배의 삶에 철저한 헌신을 요구합니다. 마음은 우리 존재의 세계입니다. 그곳에서의 갈망이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사도 바울이나 스데반과 같이 복음 전도의 열정을 요구합니다. 증인은 순교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복음 전도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우리가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제자훈련과 성경공부와 같이 말씀을 배우며 성장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베뢰아 교회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함으로 지식에 기초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사역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사역은 제사장적인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사역을 힘을 다하여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정결해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 대한 욕구가 크다는 것은 가증한 우상이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더욱 사랑하는 것은 십계명의 첫째 계명을 깨트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는 모든 삶의 영역이 무너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마음가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