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마태복음(67) - 산 자의 하나님(마 22:23-33).

비전의 사람 2020. 12. 12. 17:55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22:32).

 

바리새인들이 로마에 내는 세금의 이슈로 예수님을 시험한 후에, 두 번째로 사두개인들이 부활에 관한 질문으로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에 예수께 와서 물어 가로되.”(22:24). 사두개인들은 몸의 부활을 믿지 않는 그룹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시대에 이스라엘 나라에는 네 가지의 유대교의 종교 그룹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바리새인들입니다. 바리새파는 분리된 자라는 뜻이었습니다. 바리새파는 세속에서 분리하여 거룩함을 추구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에 열심히 있었고, 그들에게 전해지는 구전의 가르침도 성경 만큼의 권위에 두고 철저하게 지키려고 했습니다. 그들의 종교적인 열심은 물건과 곡물과 채소와 향로까지 십일조를 바쳤고, 매주 두 차례 금식을 했고, 매일 세 차례씩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종교적이었기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보다는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위선적인 사람들로 변질되고 있었습니다. 바리새파는 주로 자신들의 상업활동이나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율법을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종교적인 열심은 자신의 소출과 포도주와 올리브 기름 등은 바리새파 규정을 지키는 자에게만 팔았습니다. 그들은 죽은 자의 부활과 사후 세계와 심판와 천사를 믿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약 6,000 명의 바리새인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성경에는 니고데모가 바리새파였습니다.

 

둘째, 사두개파입니다. 사두개파는 당시의 기득권층이었습니다. 사두개파는 사독 제사장의 후손들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대제사장직과 같이 성전의 요직을 차지했습니다. 그들은 71명으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회의 다수를 차지하면서 정치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종교적인 열심 보다는 정치에 더욱 힘을 쏟았습니다. 그들은 로마에 협조하면서 자신들의 종교적인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성전의 제물 판매권을 독점하면서 성전세를 관리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기득권 계층이었기에 대중들의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두개인은 모세오경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였기에, 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고 심지어 사후 세계도 부정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은 소멸한다고 믿었고, 천사나 마귀의 존재도 믿지 않았습니다.

 

셋째, 열심당입니다. 열심당은 로마의 통치에 반대한 독립군과 같은 그룹이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칼을 품에 다니다가 친 로마인들을 살해하는 일들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은 우상 숭배라 하여 납세를 거부하였습니다. 열심당은 예루살렘이 함락 당할 시, 주후 73년 마사다에서 최후 항전을 벌이다가 전멸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시몬은 열심당으로서 반 로마파였지만, 세리 마태는 친 로마파였습니다.

 

넷째는 에센파입니다. 그들은 세상과 아주 구별된 삶을 사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이 부패한 것으로 간주하여 사해 근처의 동굴에서 생활하면서 구약 성경을 필사하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하루에 두 끼씩 만 먹었고, 흰옷을 입었으며,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려고 배변도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는 에센파는 언급되지 않지만, 침례 요한이 에센파에 속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찾아와 부활에 대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두개인들의 질문에 답변하시는 말씀을 통하여 영적인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1. 사두개인의 질문은 계대 결혼이라는 질문에 바탕했습니다.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찌니라 하였나이다.”(22:24).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찾아와 묻습니다.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찌니라 하였나이다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장가 들었다가 죽어 후사가 없으므로 그의 아내를 그 동생에게 끼쳐두고 그 둘째와 세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그런즉 저희가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22:24-28). 사두개인들은 죽은 자의 부활이나 사후 세계를 믿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께 부활에 대한 질문을 던진 것은 모세의 율법을 통하여 예수님을 곤경에 빠트리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두 개인은 예수님을 신학적인 논쟁에 끌어 들여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하는 자신들을 합리화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사두 개인들은 부활과 계대 결혼이라는 주제를 혼합하여 예수님께 어려운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계대 결혼에 관한 모세의 율법에는 신명기 25장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형제가 동거하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가지 말 것이요 그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그 여인의 낳은 첫 아들로 그 죽은 형제의 후사를 잇게 하여 그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25:5-60). 형제가 결혼한 후에 아들이 없이 죽으면, 남편의 형제가 죽은 형의 아내와 결혼하여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다하여 첫 아들로 죽은 형제의 후사를 잇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죽은 형제의 후사가 이스라엘에게 끊어지지 않게 했습니다. 성경에는 계대 결혼의 제도가 창세기 38장의 유다와 룻기의 보아스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유다가 가나안 여인에게서 엘, 오난, 셀라를 낳았습니다. 엘이 다말과 결혼 한 후에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징계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 후에 동생 오난이 형의 이름으로 후사를 낳기를 거절하자 하나님이 악하게 보시고 징계하심으로 죽었습니다. 유다의 자녀들과 다말과의 관계가 중요했던 이유는 메시야의 혈통이 유다의 혈통으로 이어졌기에 유다의 혈통이 이어지는 것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보아스도 기업무를 자로서 룻의 가까운 친척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룻을 아내로 맞이하여 죽은 남편인 엘리멜렉의 이름으로 후사를 잇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보아스와 룻의 후사에서 다윗이 태어나고, 그의 혈통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났습니다. 계대 결혼의 풍속은 죽은 형제의 이름으로 후손이 이어지고, 더 나아가 여성 혼자서 부양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경제적인 혜택을 주기 위한 제도였습니다.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찾아온 이유는 도덕적인 해법을 찾거나 법적인 질문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부활의 교리가 가져다주는 딜레마를 설명하면서 자신들의 믿음을 정당화하기 위함이었습니다. , 그들의 질문은 형이 죽은 후에 일곱 형제가 모두 그의 아내와 결혼을 하였는데, 부활 때에는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성경에서 가르치는 부활의 본질에 대하여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22:29).

 

사두개인들은 당시의 종교적인 기득권을 누리던 제사장들 그룹이었고 부를 독점하던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말씀으로 도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도전을 받으시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22:29). 예수님께서는 사두개인들이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사두개인들은 부활의 본질에 대하여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구약에서도 부활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서는 몸의 부활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12:3). 다니엘서는 자는 자 중에 깨어 영생을 얻는 자가 있고,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즉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일이 있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혜 있는 자는 하늘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며,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췰 것이라고 했습니다. 욥기는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19:25-26)고 했습니다. 욥은 자신의 구원자가 살아 계시기에, 그 분이 땅 위에 서실 것에 대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때 자신의 몸이 썩은 후에 부활 하여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16:10)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않게 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이신 메시야가 썩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다윗은 자신이 부활할 것에 대한 믿음과 메시야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실 것에 대한 예언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두개인들에게 성경을 알지 못한다고 한 것은 그들의 영적인 무지를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두개인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부활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22:30). 예수님께서는 부활이 있을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부활 때에는.” 모든 자들이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5:28-29). 예수님께서는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고 하셨습니다. 이때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자를 의미합니다.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절하고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불순종을 의미합니다.

 

부활의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하게 되면 새 몸을 입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육체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주신 몸입니다. 그래서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부활의 몸은 천국을 위한 몸으로서 결혼이나 자녀를 낳거나, 죽음을 경험하지 않는 몸을 갖게 됩니다. , 천국에서는 결혼을 해서 자녀를 양육하거나 사망에 이르지 않습니다. 천국에서는 천사들과 같이 변하지 않는 영원한 몸을 갖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 땅에서는 사람들이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죽음에 이르지만, 천국에서는 천사들과 같이 결혼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몸이 부활시에 새로운 몸을 주실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기에 오해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이 존재하게 하신 분이기에, 그 분의 생각과 말씀은 불가능한 것이 없는 전지전능하십니다.

 

부활은 초대 교회의 중요한 믿음이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오순절의 설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2:32, 36). 사도 베드로는 이스라엘 사람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주였지만, 하나님이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초대 교회가 성령 충만을 입고 역동적으로 부흥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믿음이 흔들릴 수 없는 것은 죽었던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 사십일 간 그들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산헤드린 공회에 잡혀 심문을 받을 때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있는 것을 보고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바울이 그 한 부분은 사두개인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인인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문을 받노라.”(23:6). 그러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고 했지만 바리새인은 다 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23:8).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전 15:49)라고 했습니다. 부활의 본질은 더 이상 흙에 속한 형상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의 새로운 형상을 입는 것입니다. 그 때는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할 때는 썩지 아니하는 새로운 몸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는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3:21)고 했습니다. 부활의 때에 우리의 몸은 예수님의 영광의 몸과 같이 새롭게 변화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3. 하나님은 죽은 자가 아닌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찐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22:31).

 

예수님께서는 사두개인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읽어 본적이 없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찐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22:31-32). 예수님께서는 사두개인들이 모세 오경만을 믿었기에, 출애굽기 36절의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3:6). 하나님께서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모세를 부르실 때에 자신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과 관련하여 가르치신 것은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이 죽은 형을 위하여 그의 아내에게 장가들고 모두 죽으면 부활 때에 누구의 아내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주셨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21:38)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죽었고, 이삭이 죽었고, 야곱이 죽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의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며, 이삭의 하나님이시며, 야곱의 하나님이신 것은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의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주셨던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야곱과 이삭은 육체는 죽었지만, 그들의 영혼은 낙원에서 살아있기에 그들의 하나님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부자와 거지의 비유에서 부자는 죽어 지옥에 떨어졌지만, 거지는 아브라함의 품에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낙원에서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신을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자가 살아있습니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다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영적인 자녀는 육체적인 죽음으로 관계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는 육체를 뛰어넘어 영적으로 영원한 관계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영원히 죽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체적인 삶이 마쳤다 할지라도 하나님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5-26)고 하셨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육체적인 생명이 끝나도 죽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영생이 있기에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이 주님의 품안에서 안식을 누리고 있듯이, 우리도 주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입니다.

 

로마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되었다가 새 생명으로 태어났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제 주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자는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에 대하여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어다.”(6:11)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있는 자가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주신 새생명 또는 영으로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비록 우리의 육체가 땅으로 돌아간 다 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주님안에서 영원히 살아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영적으로 살아있는 자로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부활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더욱 신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영적으로 무지한 자가 아니라 성경을 읽고 배우고 깨달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며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때 말씀은 더욱 생명력이 있게 되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살아서 함께 하시며 기도에 응답하시며, 위험에서 지키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