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마 22:1).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의 비유로 메시야와 그의 나라를 거절한 이스라엘을 책망하시며, 믿는 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실 것에 대하여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행적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혼인 잔치의 비유로 가르치신 것은 주님의 사역의 마지막 주의 수요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금요일이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것입니다. 그릐고 주일에 주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난 삼년 동안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야이시고, 세상의 구주이심을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거절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들인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장로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적대시하며 죽이려 했습니다. 이제 이틀이 지나 금요일이 되면 그들은 예수님의 처형을 위해서 로마군에 넘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도착하신 것은 토요일이었습니다.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갈릴리에서부터 많은 순례객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오셔서 베다니의 마리아와 마르다, 나사로의 집에 머무셨습니다. 일요일에 주님께서는 수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보기 위하여 모인 군중들을 보시고 그들과 시간을 보내셨습니다(요 12:9-11). 월요일에 예수님께서 성전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고, 군중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마 21:9)라고 하며 메시야이신 주님을 찬송했습니다(마 21:1-11), 그리고 화요일에 주님께서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고(21:18-19), 성전을 정결해 하셨습니다(마 21:12-13). 수요일에 주님께서는 성전에 가셔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두 아들의 비유)마 21:28-32)와 악한 농부의 비유(마 21:33-46), 그리고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 비유(마 22:1-14)를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왕이 베푼 아들의 혼인 잔치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왕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에 청중들은 왕이 하나님을 지칭하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왕의 아들은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아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그를 보낸 아버지를 모욕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왕이 자신의 아들을 위하여 고급 연회를 열어 사람들을 초청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위하여 베푸시는 연회는 약속하신 메시야의 잔치와 연관하여 볼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열리게 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되었으니”(계19:7).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신부는 구원받은 성도들입니다. 즉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 공중에서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상 사역의 마지막 주에 왕의 아들을 위한 잔치의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독생자이심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의 초대를 거절하고 심지어 종들을 죽인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혼인 잔치의 비유를 통하여 주시는 영적 의미에 대하여 나누고자 합니다.
1. 천국에 들어가기 위하여 하나님의 초청에 응해야 합니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마 22:3).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왕이 자기 아들을 위하여 베푼 혼인 잔치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왕이 아들의 혼인 잔치를 준비한 후에 종들을 청한 사람들을 초청했습니다.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마 22:3). 예수님께서는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유대 사회에서 왕은 결혼 전에 혼인 잔치가 있을 것을 알리고 혼인 잔치에 초청했습니다. 왕의 아들의 결혼 잔치에 초청받는 것은 큰 영예이기에 사람들은 참석한다는 답변을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잔치가 준비되었음을 알리며 다시 초청합니다. 왜나하면 왕의 혼인 잔치는 많은 준비가 필요했기에, 만찬을 준비한 후에 손님들을 초청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 잔치에 참석하는 것은 사회적인 의무이기도 했습니다. 만일 혼인 잔치에 초청을 받지 못한다면 그는 무시를 당한 느낌이라 수치심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이나 고위층의 혼인 잔치에 초대 받는 것은 영광이었고, 그 잔치에 참석하는 것이 예의였습니다.
특별한 이유없이 왕의 초청을 거절하는 것은 왕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했습니다. 혼인 잔치에 참석한다고 했기에 만찬의 음식을 잘 준비하였기에 그들이 올 것이라고 기대를 했는데, 초청을 거절하는 것은 왕에게 수치심을 갖게 했습니다. 왕의 초청에 거절한 사람들은 이스라엘로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하나님께서 메시야에 대한 약속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를 거절했습니다. 왕은 오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정중하게 다시 초청했습니다.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마 22:4). 왕은 다시 종들을 보내어 오찬을 위하여 소와 살진 짐승을 잡아 준비하였으니 혼인 잔치에 오라고 간청했습니다. 왕의 초청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초청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 영혼이 다시 사는 은혜를 얻도록 초청을 의미했습니다. 하나님은 긍휼의 마음으로 영혼을 초청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간절히 초청하시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롬 10:21). 하나님께서는 순종치 아니하는 그의 백성을 향하여 손을 벌려서 돌아오라고 손짓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반복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거절했습니다.
왕의 초청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기 밭으로 일하러 가거나, 자기 사업을 하러 갔습니다. 남은 자들은 왕이 보낸 종을 잡아 모욕을 주고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저희가 돌아 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마 22:5-6). 그들은 왕이 초청을 거절했을 뿐 아니라, 왕이 보낸 종들을 잡아 죽이는 일을 범함으로 인하여 왕을 더욱 모독했습니다. 왕의 초청을 거절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주셨습니다.
2. 하나님의 초청을 거절하는 자는 진노를 당합니다.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마 22:7).
왕은 자신이 보낸 종을 죽인 사람들에 대하여 분노하였습니다. 왕의 특사를 죽이는 행위는 반역을 의미했고 선전 포고와 같은 것입니다. 이에 왕은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동네를 불살랐습니다.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마 22:7). 왕은 자신의 호의를 모욕으로 갚아준 사람을 용서하지 않고 심판했습니다. 왕은 우리에게 두 가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은혜의 마음으로서 아들의 혼인 잔치를 예비한 후에 초청하는 모습입니다. 그는 거절한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종들을 보내어 소와 살진 고기로 준비된 만찬에 초청했던 것입니다. 왕의 다른 모습은 진노하는 모습입니다. 자신의 종들을 죽인 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고 군대를 보내어 진멸하고 심지어 동네마저 불살랐습니다.
왕이 진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동네를 불사르는 것은 예루살렘이 회개하지 않음으로 멸망할 것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책망하시면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마 23:37-38).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이 선자자들을 죽이고 하나님이 보내신 자들을 돌로 쳤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암탉이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그 자녀를 모으려 했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절하고 배척했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황폐하고 버린바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로마에 넘겨 십자가에 죽으신 이후에 예루살렘은 결국 A.D. 70년에 로마 디도 장군에 의하여 함락당하여 황폐화가 됩니다. 그 이후로 유대인들은 이천년간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아가다가 1948년에 이스라엘에 돌아와 나라를 건국하면서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영광의 상징이었습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보내신 선지자를 돌로 치고 배척하면서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 결과로 예루살렘이 황폐화가 되고 그 백성은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셔서 칠십년 만에 다시 돌아오게 하셔서 성전을 건축하고 예루살렘 성을 증축하게 하심으로 다시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죽인 유대인들을 심판하심으로 예루살렘을 황폐케 하시고 성이 불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이천년 만에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하여 완악한 이스라엘이 다시 회개하고 돌아와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롬 11:25-2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아와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은 사랑과 공의를 포함합니다. 거룩은 죄와 함께 거하실 수 없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우리를 거룩하게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나 사망에 이르자 하나님은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사랑을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를 위하여 죽게 하심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들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의 혼인 잔치에 초청한 것은 천국으로의 초청을 의미합니다. 천국으로의 초청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우리는 하나님의 초청을 받은 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 값 없이 의롭게 되었습니다. 왕의 초청을 거절한 자는 왕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초청을 거부한 이스라엘 민족과 같이 종교인들이나 세상 사람들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초청을 거부하고 자신의 사업을 하러 갑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할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일도 합니다. 초대 교회에서 유대의 왕들이나 제사장들이 사도들을 핍박하였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헤롯 안디바는 침례요한을 목베어 죽였고, 헤롯 아그립바는 야고보를 처형했습니다. 그 후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따르며 복음을 전하다 핍박을 당하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죄에 대하여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또한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를 용납하지 않으시고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이 보낸 종들을 죽은 죄로 인하여 그 사람들을 진멸하고 성을 불태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로마 장군에 의하여 황폐케 하셨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진노는 천국 잔치를 거절한 수많은 사람들을 향하여 백보좌에서 영원한 지옥의 형벌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초청에는 사랑과 공의의 메시지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3. 택함을 받은 자는 예수님의 의를 입은 자입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4).
왕은 종들을 불러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이 거절했으니 다른 사람을 초청하라고 했습니다.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마 22:8-9). 왕은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라고 했습니다. 왕이 만나는 대로 사람을 초청하게 한 것은 사람의 신분여부를 따지지 말고 누구나 혼인 잔치에 초청하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큰 잔치의 비유를 설명하면서 주인의 초청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종이 가로되 주인이여 명하신대로 하였으되 오히려 자리가 있나이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눅 14:21-23). 주인은 종에게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이나 불구자들이나 소경들을 잔치에 초청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아직 잔치의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종들에게 길과 산울 가로 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집을 채우라고 했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영혼을 초청하여 하나님의 집을 가득 채우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려 오셨기에, 그의 제자들도 잃은 자를 찾아 예수님께로 인도하여 구원하는 일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왕의 명령에 종들이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자리에 손님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왕이 혼인 잔치에 들어오자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마 22:12). 그가 대답을 하지 못하자 왕은 종들에게 명하여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고 했습니다.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마 22:13). 결혼 예복을 입지 않아 수족이 결박되어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져진 자는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결혼 예복은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에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왕의 잔치에 예복을 입지 않았기에 왕은 그를 바깥으로 내어 쫓았던 것입니다. 혼인 잔치에 참석하기 위하여 입어야 하는 결혼 예복은 바로 그리스도의 의를 의미합니다. 결혼 예복은 왕이 준비해 두었다가 들어오는 자에게 주었습니다. 그가 예복을 입지 않은 것은 결혼 예복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혼인 잔치에는 악한 자나 선한 자가 모두 있었습니다. 이는 마치 교회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씀을 배우며, 교제하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에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입으로는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하지만 마음으로는 믿지 않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알곡과 가라지가 있다고 하셨고,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세상 끝에 천사들이 와서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한 자를 구별하듯이,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신다고 하셨습니다.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13:49-50). 하나님께서는 심판 날에 의인과 악인을 갈라 내어 악인을 불못으로 심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왕이 결혼 예복을 입지 않은 자를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던지라고 한 것은, 그리스도의 의를 입지 않고 교회에 다닌 자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모든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죄를 용서받고 그리스도의 의를 입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거룩과 의가 되십니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의를 입어 거룩함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자신이 죄인됨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은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은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4)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나라에 초청을 받은 자는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을 믿지 않기에 천국 잔치에 들어가지 않으려 합니다. 그들은 심지어 하나님이 보내신 종들을 핍박하거나 죽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자는 천국 잔치에 예복을 입고 들어가게 됩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한 자는 바로 택함을 입은 자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택하신 믿음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초청을 받는 것은 우리에게 큰 은혜이며 영광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초청을 받아 천국에 입성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생의 삶은 우리로 하여금 감사하게 하며 어린양이신 주님을 찬양하게 합니다. 그리고 교회로서 우리는 길가나 시장에 나가 만나는 사람에게 주님이 주신 초청장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천국 잔치에 함께 가자고 초청하는 것이 바로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태복음강해(68) - 최고의 계명(마 22:34-40). (0) | 2020.12.19 |
---|---|
마태복음(67) - 산 자의 하나님(마 22:23-33). (0) | 2020.12.12 |
마태복음 강해(64) - 예수님은 모퉁이 돌이십니다(마 21:33-46). (0) | 2020.11.14 |
마태복음강해(63) - 예수님의 권세를 인정하는 삶의 열매(마 21:23-32). (0) | 2020.11.06 |
마태복음(62) - 열매를 맺는 비결은 믿음입니다(마 21:18-22). (0) | 2020.10.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