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탐구

에스겔의 부르심과 메시지 I (1-24장)

비전의 사람 2021. 2. 2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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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의 부르심과 메시지 I (1-24)

 

갈대아 땅 그발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1:3).

 

에스겔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가 포로로 잡혀간 시기는 주전 597년으로 여호야긴이 포로로 잡혀간 해 였습니다. 바벨론이 유다의 백성들을 주전 605년에 다니엘을 비롯한 귀족들을 일차적으로 포로로 잡아갔고, 2차는 주전 597년에 에스겔을 비롯한 여호야긴과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 갔습니다. 그리고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이 느부갓네살왕에 의하여 멸망하면서 예레미야를 비롯한 가난한 자들만을 남기고 시드기야와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에스겔은 바벨론의 텔아빕에서 약 593년부터 571년까지 22년간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로 활동했습니다.

 

에스겔의 이름은 하나님이 강하게 하신다.’라는 뜻입니다. 에스겔은 부시의 아들로서 제사장 가문의 출신이었습니다. 제사장이 직무를 시작할 때는 30세이듯이, 그는 예루살렘에서 제사장으로 준비되다가 25세에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후에, 30세에 바벨론의 그발강 가에서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제 삼십년 사월 오일에 내가 그발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 여호야긴왕의 사로잡힌지 오년 그 달 오일이라.”(1:1-2). 에스겔이 제사자이면서 선지자로 30세에 사역을 시작했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으로서 30세에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에스겔은 30세에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은 후에 52살 까지 사역을 했습니다.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에스겔은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는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1.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 사면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사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곧 엎드리어 그 말씀하시는 자의 음성을 들으니라.”(1:28).

 

하나님은 친히 영광을 보이시면서 바벨론의 그발강 가에서 에스겔을 선지자로 부르셨습니다. 에스겔은 북방에서 오는 폭풍과 큰 구름이 오며 불이 번쩍이며 빛이 비취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때 불 가운데 네 생물의 형상을 보게 됩니다. 네 생물은 네 얼굴과 네 날개를 가진 그룹이라는 천사였습니다. 네 얼굴은 사람과 사자, 소와 독수리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좌편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1:10). 생물의 네 얼굴은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사자는 마태복음에서 지칭하신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사람은 인자로 오신 마가복음의 예수 그리스도, 소는 종으로 오신 누가복음의 예수 그리스도, 독수리는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요한복음의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기도 합니다. 그룹은 네 개의 날개가 있었고, 날개 밑에는 사람의 손이 있었습니다. 그룹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 동산에서 쫓아내신 후에 그룹을 두어 지키게 하셨습니다(3:24). 그리고 성막의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 속죄소를 덮는 그룹이 있었습니다. 그룹이 가진 네 얼굴은 요한계시록 4장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생물로도 다시 나타납니다.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을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네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4:7).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 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찬양하는 천사들을 지칭합니다.

 

생물 곁에는 바퀴가 있었습니다. 바퀴 안에는 다른 바퀴가 있어서 사면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었고, 바퀴에는 눈이 가득했습니다. 바퀴에 눈이 가득한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을 보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바퀴에는 영이 있어서 영이 가려고 하는 곳으로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어디든지 신이 가려하면 생물도 신의 가려하는 곳으로 가고 바퀴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신이 그 바퀴 가운데 있음이라.”(1:20). 바퀴가 하나님의 신으로 움직이는 것은 그 바퀴의 생명이 성령에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네 생물과 그룹들 위에 궁창이 있고, 그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었습니다. 그 보좌의 형상 위에는 한 형상이 있는데 사람의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었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엎드립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패역한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세우신다고 하셨습니다.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에게 보내노라 그들과 그 열조가 내게 범죄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나니.”(2:3).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강팎한 백성에게 보내신다고 하셨습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은 가시와 찔레와 전갈 가운데 거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에스겔은 자신의 생각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만을 전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의 두루마리를 입에 넣어 먹게 하셨습니다. 에스겔이 두루마리를 먹자 입에서 달기가 꿀 같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은 먹는 자에게 꿀과 같이 단 것임을 보여줍니다. 다윗도 시편 119편에서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119:103)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꿀보다 단 말씀을 먹으며 성장해야 합니다.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파숫군으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3:17). 파숫군은 망대에서 적들이 오는 것을 알려 성안의 사람들이 대비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파숫군이 졸면서 사명을 게을리하면, 적들이 쳐들어올 때에 어떠한 신호를 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깨우치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 피를 에스겔에게서 찾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겔이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악인은 자신의 죄악 중에서 죽을 것입니다. 에스겔은 파숫군으로 책임을 다했기에 그의 영혼은 보존될 것입니다. 에스겔은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이 선지자로 부르시면서 그가 벙어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이 집에 들어가 문을 닫고 있어야 했고, 사람들이 와서 줄로 그를 동여매어 나오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혀로 입천장에 닫게 하여 벙어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에스겔이 벙어리가 된 것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만을 전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패역한 백성들을 향하여 분을 내거나 다른 말을 하지 못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와 말할 때에 네 입을 열리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3:27). 에스겔은 평소에는 벙어리로 지내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때만 말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주전 593년에 벙어리가 된 이후에 예루살렘이 멸망한 소식을 들은 후에 그의 벙어리가 풀리게 됩니다. “우리가 사로잡힌지 십 이년 시월 오일에 예루살렘에서부터 도망하여 온 자가 내게 나아와 말하기를 그 성이 함락되었다 하였는데 그 도망한 자가 내게 나아오기 전날 저녁에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내 입을 여시더니 다음 아침 그 사람이 내게 나아올 임시에 내 입이 열리기로 내가 다시는 잠잠하지 아니하였노라.”(33:21-22). 에스겔은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은 후부터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까지 약 7년간을 벙어리로 지내야 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백성들의 죄로 인하여 자신의 자유를 잊어버리며 사역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2. 에스겔은 상징적인 행위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너 인자야 박석을 가져다가 네 앞에 놓고 한 성읍 곧 예루살렘을 그 위에 그리고 그 성읍을 에워싸되 운제를 세우고 토둔을 쌓고 진을 치고 공성퇴를 둘러 세우고.”(4:1-2).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에게 대언할 말씀을 주시면서 상징적인 행동으로 메시지를 전하게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에스겔은 예루살렘이 포위되는 모습을 토판에다가 예루살렘을 그림으로 설명했습니다. “너 인자야 박석을 가져다가 네 앞에 놓고 한 성읍 곧 예루살렘을 그 위에 그리고 그 성읍을 에워싸되 운제를 세우고 토둔을 쌓고 진을 치고 공성퇴를 둘러 세우고.”(4:1-2). 때는 아직 예루살렘이 포위되어 멸망하기 7년이 남은 시기였습니다. 에스겔은 토판에다가 예루살렘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 주위에 포위하여 공격할 수 있는 운제와 공성벽을 세우고, 토둔, 그리고 전쟁 무기인 공성퇴의 모형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전철로 예루살렘 성읍을 에워 쌓습니다. 철판을 두른 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단절된 관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징조가 되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에스겔은 좌편으로 390일을 눕고, 우편으로 40일을 누워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을 당해야했습니다. “너는 또 좌편으로 누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당하되 네 눕는 날수대로 그 죄악을 담당할찌니라.”(4:4). 에스겔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로 인하여 총 430일을 누워 지내야 했고, 심지어 하나님이 줄로 묶어서 이리 저리 돌리지 못하게 하셨습니다(4:8). 에스겔이 430일을 누워서 지내야 하는 것은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고통을 당하며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밀과 보리와 콩과 팥과 조와 귀를 가져다가 떡을 만들어 이십 세겔의 분량과 물 힌 육분 일씩을 삼백 구십일 동안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이십 세겔은 228g의 음식이었고, 물 힌 육분의 일은 0.61리터의 분량이었습니다. 이는 예루살렘 백성이 바벨론 군대에 의하여 포위되었을 때에 기근으로 먹어야 하는 분량을 의미했습니다. 에스겔은 소량의 음식과 물로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는 보리 떡처럼 만들 때에 인분을 불을 지펴야 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열방으로 흩어졌을 때에 부정한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이때 에스겔은 자신은 부정한 것으로 영혼을 더럽힌 일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내가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나는 영혼을 더럽힌 일이 없었나이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죽은 것이나 짐승에게 찢긴 것을 먹지 아니하였고 가증한 고기를 입에 넣지 아니하였나이다.”(4:14). 에스겔은 다니엘과 같이 부정한 음식으로 자신을 더럽힌 적이 없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인분 대신에 소똥으로 떡을 구으라고 허락하셨습니다.

 

에스겔은 날카로운 칼을 취하여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야 했습니다. 그는 저울에 달아 삼분의 일은 성읍 안에서 불사르고 삼분의 일은 성읍 사방에서 칼로 치고, 삼분의 질은 바람에 흩어야 했습니다. “그 성읍을 에워싸는 날이 차거든 너는 터럭 삼분지 일은 성읍 안에서 불사르고 삼분지 일은 가지고 성읍 사방에서 칼로 치고 또 삼분지 일은 바람에 흩으라 내가 그 뒤를 따라 칼을 빼리라.”(5:2). 그리고 그는 얼마를 가져다가 불에 던져 태워야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심판하시는 메시지였습니다. 삼분의 일은 온역과 기근으로 죽고, 삼분의 일은 칼에 엎드려지며, 삼분의 일은 사방에 흩어진 후에 칼에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우상 숭배로 인하여 그 성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보다 악을 더 행하고, 우상의 가증한 것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를 더럽혔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에스겔은 행구를 준비하여 이사할 물품을 모두 넣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밤에 성벽을 뚫고 행구를 어깨에 메고 나가야 했습니다. 이는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함락이 임박해지자, 시드기야 왕이 성벽을 뚫고 도망하는 것을 상징한 것입니다.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것은 예루살렘 왕과 그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온 족속에 대한 예조라 하셨다 하고.”(1:10). 시드기야 왕이 밤에 몰라 도망하다 여리고 평지에서 사로잡힙니다. 그리고 그의 자녀들은 죽고 시드기야는 눈이 뽑혀서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에 에스겔은 떨면서 음식을 먹고 놀라고 근심하여 물을 마심으로,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에 놀라고 근심하게 될 일에 대하여 징조가 되게 하셨습니다(12:18-19).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의 눈에 기뻐하는 것을 쳐서 빼앗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인자야 내가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을 한번 쳐서 빼앗으리니 너는 슬퍼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하지말며.”(24:16).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의 아내의 죽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에스겔은 아내가 죽어도 다른 사람처럼 슬퍼하거나 장례의 음식을 먹지 말아야 했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내가 죽어도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침에 백성에게 고하였더니 저녁에 내 아내가 죽기로 아침에 내가 받은 명령대로 행하매.”(24:18). 에스겔의 아내가 죽는 것은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상징이었습니다. 에스겔에게 아내가 눈에 기뻐하는 소중한 존재이었듯이,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의 처소였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우상 숭배와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의 아내가 죽는 것은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표징이 되었습니다. 에스겔의 아내가 죽은 시기는 예루살렘이 포위되기 시작한 시점으로 주전 588년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약 2년 후인 주전 586년에 함락됩니다. 에스겔은 예루살렘이 함락된지 약 6개월이 지난 주전 585년에 생존자로부터 소식을 듣게 됩니다. 에스겔은 예루살렘이 멸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에 그의 벙어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상징하는 것으로 아내를 얻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평생 독신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호세아는 음란한 여인 고멜을 아내로 얻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향하여 영적으로 음란해졌기에, 호세아 선지자는 음란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해야 했습니다. 선지자들은 시대를 향한 메시지를 말씀의 선포로도 전했지만, 종종 상징적인 행동으로 나타내었습니다.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보여주는 상징은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사랑을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의 복을 누리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한 자는 하나님의 진노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형벌에 떨어질 것입니다.

 

3. 에스겔은 예루살렘의 가증한 죄를 책망하며 심판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내가 보니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그 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2:10).

 

에스겔은 1장에서 5장은 에스겔 선지자의 부르심에 대한 말씀이고, 6-7장은 예루살렘을 심판하시는 예언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8-11장은 하나님의 성전이 우상으로 더럽혀짐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2장에서 24장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6-7).

 

너 인자야 주 여호와 내가 이스라엘 땅에 대하여 말하노라 끝났도다 이 땅 사방의 일이 끝났도다 이제는 네게 끝이 이르렀나니 내가 내 진노를 네게 발하여 네 행위를 국문하고 너의 모든 가증한 일을 보응하리라.”(7:2-3).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주신 메시지는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였습니다. 당시에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에스겔은 바벨론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에스겔이 선포한 메시지는 임박한 심판이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재앙이로다, 비상한 재앙이로다 볼찌어다 임박하도다 끝이 났도다, 끝이 났도다, 끝이 너를 치러 일어나나니 볼찌어다 입박하도다.”(7:5-6). 예루살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처소인 성전이 있는 거룩한 도성이기에, 그들은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성전을 의지하는 의식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유다는 산과 작은 산과 시내와 골짜기에 우상을 숭배하는 산당과 제단이 있었고, 태양을 숭배하는 상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읍이 사막이 되고, 산당과 제단이 황폐하고 우상들이 깨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살륙 당하여 우상과 제단 사이에, 산꼭대기와 푸른나무 아래와 상수리나무의 분향하던 곳에 시신들이 가득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때에 밖에는 바벨론의 칼이 있고 성 안에는 온역과 기근이 있어서 칼과 기근과 온역에 망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두려움과 수치가 가득할 것이며, 그들이 사랑했던 은과 금이 더러운 오물과 같이 여겨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심판의 때에 은이나 금이 그들의 필요를 채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 이후에 자신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3:8).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자식이 가장 고상했기에 자신이 자랑했던 모든 배경과 학문, 율법의 지식을 배설물로 여긴 것입니다. 이 세상이 소중히 여기는 금과 은은 심판의 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심판의 날에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성전의 가증함으로 인하여 성전을 떠나십니다(8-11).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예루살렘의 성전의 가증한 모습을 환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심판하시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시기는 육년 유월 오일이라고 했습니다. “제 육년 유월 오일에 나는 집에 앉았고 유다 장로들은 내 앞에 앉았는데 주 여호와의 권능이 거기서 내게 임하기로 ... 그가 손 같은 것을 펴서 내 머리털 한 모숨을 잡으며 주의 신이 나를 들어 천지 사이로 올리시고 하나님의 이상 가운데 나를 이끌어 ...”(8:1-3).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환상중에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셔서 성전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성전으로 이끄셔서 성전의 뜰로 인도하셨습니다. 그곳에는 아세라 신으로 추측되는 투기의 우상이 있었습니다. 투기의 우상이란 하나님의 질투를 유발하는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아세라 신은 바벨론에서 최고의 신인 엘의 배우자로서 하늘 여신으로 지칭되었습니다. 아세라는 폭풍신인 바알과 함께 풍요의 여신으로 숭배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서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영광을 우상에게 드리며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가증한 일을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성소를 멀리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뜰 문의 담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담을 허물라 하시기고 에스겔은 담을 허물고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벽에 새겨진 곤충과 짐승의 우상 앞에서 향로를 들고 분향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들어가보니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을 그 사면 벼게 그렸고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 중 칠십인이 그 앞에 섰으며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도 그 가운데 섰고 각기 손에 향로를 들었는데 향연이 구름 같이 오르더라.”(8:10-11). 애굽이 신전에 각종 곤충과 짐승의 문양을 벽에 새기고 숭배했듯이,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의 벽에 각종 부정한 곤충과 짐승을 그리고, 그 새겨진 우상을 향해 분향하며 경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의 북문으로 들어가자 담무스를 위해 애곡하는 여인들을 볼수 있었습니다.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거기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8:14). 담무스는 바벨론의 풍요의 신이었습니다. 고대 바벨론 사람들은 뜨거운 여름이 되어 식물들이 타서 죽게 될 시기는 담무스 신이 죽어 지하 세계로 들어간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배우자인 이쉬타르(Ishtar)에 의하여 봄에 다시 지하 세계에서 지상으로 올라와 봄에 만물을 다시 소생케 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의 담무스 월(4)은 태양력으로 6,7월경에 담무스 신의 죽음을 애도하는 종교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성전에서 여인들이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는 것은 바벨론의 우상숭배를 가져온 혼합주의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성전을 등지고 동을 향하여 동방 태양을 경배하고 있었습니(8:16). 태양신은 애굽의 라 신으로 이스라엘에서 태양신이 성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로 인하여 진노하셨기에 분노로 갚으시고 긍휼을 베풀지 않으시겠다고 하시며, 기도하여도 듣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아껴 보지 아니하고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8:18). 하나님의 진노는 샬륙하는 기계를 가진 여섯 사람을 보내셔서 칼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심판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우상의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슬퍼한 사람의 이마에 표를 하셔서 살리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소에서부터 심판을 시작하실 때에 죽은 자의 시체가 더럽혀진 성전에 가득하고 성읍에 죽은 자의 피가 가득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이 우상으로 더럽혀졌기에 더 이상 그 곳에 거하실 수 없었습니다. 우상으로 더럽혀진 하나님의 처소는 더 이상 성전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성전에서 떠나가셨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성읍 중에서부터 올라가서 성읍 동편 산에 머물고.”(11:23).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 감람산으로 떠나가심으로 그 분의 영광을 거두셨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께서는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2:5). 에베소 교회가 하나님을 향한 첫 사람을 잃어버리자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 가시고 더 이상 사용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목적은 우상의 가증한 것을 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이 그리로 가서 그 가운데 모든 미운 물건과 가증한 것을 제하여 버릴찌라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11:18-20).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칼과 기근으로 심판하시며 이방으로 흩으셔서 그들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고난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정결하게 되어 새로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셋째, 예루살렘의 심판의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12-24).

 

나는 여호와라 내가 말하리니 내가 하는 말이 다시는 더디지 아니하고 응하리라 패역한 족속아 내가 너희 생전에 말하고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12:25).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행구를 준비하여 밤에 성벽을 뚫고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또 말하기를 나는 너희 징조라 내가 행한대로 그들이 당하여 사로잡혀 옮겨 갈찌라 무리가 성벽을 뚫고 행구를 그리로 가지고 나가고 그 중에 왕은 어두울 때에 어깨에 행구를 메고 나가며 눈으로 땅을 보지 아니하려고 자기 얼굴을 가리우리라 하라.”(12:12). 이는 예루살렘의 징조로서 느부갓네살왕이 성을 함락하기 전에 시드기야가 성을 뚫고 도망갈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짓 선지자들이 자기 생각대로 말하는 메시지와 점을 치는 복술 행위로 더욱 영적으로 혼돈하고 강팎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 너희는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고 얼굴을 돌이켜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14:6)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칼과 기근으로 심판하실 때에 노아, 다니엘, 욥과 같은 의인이라도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피투성이로 버려진 아기를 살리신 비유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부터 건지시고 인도하심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에 버려진 아기를 돌보아 주어서 자라게 하셨습니다. 좋은 옷과 패물로 입히시고 화려한 면류관으로 꾸며서 왕후의 자리에 까지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의복과 보석으로 우상을 숭배하는 죄를 범하고, 심지어는 자녀를 몰렉의 우상에서 불에 태워 드리는 가증한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 대하여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네 어렸을 때를 벌거벗어 적신이었으며 피투성이가 되어서 발짓하던 것을 기억지 아니하고 네가 모든 가증한 일과 음란을 행하였느니라.”(16:22). 그들은 어릴적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가증과 음란을 행했던 것입니다. 에스겔 20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에굽에서 우상을 숭배하고 광야에서도 우상을 숭배했지만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 가운데 더럽히지 않으려고 그들을 멸하지 않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와서도 우상을 음란하게 숭배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왔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왕이 암몬의 랍바와 예루살렘의 갈랫길에서 점을 칠 때에 모든 점이 예루살렘으로 향하도록 인도하심으로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이십니다.

 

에스겔 22장은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들의 죄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부모를 업신여기고, 나그네를 학대하며 고와와 과부를 해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물을 업신여기고 안식일을 범함으로 더럽혔고, 우상의 제물을 먹고, 이웃의 아내와 음란을 행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이웃의 것을 훔치는 일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모든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율법을 범하고 거룩함과 속된 것을 분변치 아니하고 부정함과 정함을 분변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힘을 받게 했습니다(22:26). 선지자들은 거짓된 이상과 복술을 행하며 백성들을 미혹하였고, 방백들은 불의의 이를 취하려고 피를 흘렸습니다. 백성들은 강포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압제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을 쌓고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하나님이 그 성을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찾으셨지만 한 사람도 찾지 못하셨습니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고로.”(22:30). 하나님은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모세와 같은 사람을 찾으셨지만, 그러한 사람이 없었기에 하나님의 진노가 불같이 쏟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에스겔의 아내가 죽음으로 징조를 보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이 사랑하는 아내를 취하심으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성전을 무너트릴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기 시작한 그 시기에 에스겔의 아내가 죽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 뜻을 정하심을 보이신 것입니다.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성소는 너희 세력의 영광이요 너희 눈의 기쁨이요 너희 마음에 아낌이 되거니와 내가 더럽힐 것이며 너희의 버려 둔 자녀를 칼에 엎드러지게 할찌라.”(24:21). 하나님께서는 성소를 이방인의 손에 더럽게 하시고 자녀를 칼에 엎드러지게 하심으로 그 성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성취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로잡힌지 십 이년 시월 오일에 예루살렘에서부터 도망하여 온 자가 내게 나아와 말하기를 그 성이 함락되었다 하였는데.”(33:21).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은 함락되어 멸망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에스겔은 하나님의 손이 임하여 입이 열려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하여 징조가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을 시작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대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벧전 4:17-18).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심판하신 후에 이방 나라들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면서 구원받은 자로서의 거룩과 믿음을 지켜가야 합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이 죄와 우상 숭배로 더러워지자 하나님께서 그 성과 성전을 무너트리셨습니다. 히브리서는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6:5-6).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은 자로서 의의 선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나 가시와 엉겅퀴를 낸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여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항상 정결하고 거룩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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