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탐구

성경으로의 여행(27) - 한눈으로 보는 레위기

비전의 사람 2019. 11. 27.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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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의 여행(27) - 한눈으로 보는 레위기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로 나의 소유를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20:2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제사장의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하여 이방 민족 중에서 구별하셨다(19:5-6).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별하셔서 성막을 짓게 하심으로 그들 가운데 거하기를 원하셨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25:8).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성막이 거룩해야 구별되어야 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거하시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같이 거룩해야 했다.

 

레위기의 주제는 거룩이다. 레위기의 히브리의 이름은 그리고 그가 부르셨다.’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세상에서 분리하여 하나님께로의 부르심이다. , 세상과 성별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의 부르심이다. 레위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거룩한 삶을 통하여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하는 길을 가르친다. 교제의 기초는 희생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는 것이며, 교제의 조건은 세상과의 성별을 통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다. 레위기 1장부터 16장 까지는 제사를 통하여 거룩한 백성이 되는 길을 보여주며, 17장부터 27장 까지는 거룩한 삶을 통한 교제의 삶을 보여준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하여 이스라엘은 구별된 제사(1-7)를 통하여 예배를 드려야 했고, 성막에서 제사를 드리는 대제사장직이 임명되어야 했다(8-10).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이방인과 구별된 백성이기에 부정한 것에서 자신을 구별해야 했다(11-15). 레위기 16장은 이스라엘 백성의 부정한 죄와 성막을 정결하게 하는 대속죄일의 의식을 자세하고 보여준다. 레위기 17-27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룩한 행실을 가르치고 있다. 거룩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며 이방인의 풍속에서 떠나 하나님의 거룩함을 삶의 현장에서 나타내는 것이다. 다음은 레위기은 주제별 구분과 의미에 대한 설명이다.

 

1. 다섯 가지 제사법과 제사장이 지켜야 할 규례(1-7).

 

제사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드리는 제사는 감사, 속죄와 하나님과의 교제의 목적이 있었다.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번제와 소제를 드려 자신의 헌신을 표현했고, 자신의 죄를 속죄받아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기 위하여 속죄제와 속건제를 드렸다. 화목제는 희생 제물을 통하여 속죄를 받은 후에 하나님과 화평의 교제를 누리게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희생 제물을 통한 속죄를 통하여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할 수 있었다. 희생의 피로 인한 속죄는 이스라엘 백성을 정결하게 함으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었다. 특히 이스라엘의 제사의 특징은 속죄를 통한 거룩이었다. “그 송아지를 속죄제의 수송아지에게 한것 같이 할찌며 제사장이 그것으로 회중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들이 사함을 얻으리라.”(4:20). 속죄(atonement)는 히브리어의 코페르라는 단어로 깨끗케 하다(cleanse), 씻어내다(wipe)'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번제단이나 분향단과 같은 성소의 기구에 피를 발라 깨끗하게 하는 것과 같다(16:33). 속죄의 다른 의미는 '몸값을 지불하다(ransom price)'이다. 대속물이란 죽음의 정죄에 이른 사람이 사형을 피하도록 값을 지불하는 것이다(21:30). 즉 속죄는 생명을 대신하여 몸값을 지불하는 것이다. 이는 희생 제물의 생명을 상징하는 피로써 죄로 인하여 죽어야 되는 사람의 몸값을 지불하여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는 것이다. 다음은 다섯 가지 제사가 주는 의미와 제사장의 역할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 번제는 대속물을 통한 속죄를 상징한다. 번제는 제물 전체를 불에 태워드리는 제사이다. “ ...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1:9). 번제는 제물의 피를 단에 뿌리고 전체를 번제단에 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였다. 번제는 죄인이 희생 제물을 드려 속죄받는 것을 의미한다. 예배자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함으로 죄를 회개하였고, 희생 제물은 죄인을 대신하여 피흘려 죽음으로 대속물(ransom)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번제물의 피와 죽음을 보시고 죄인을 용서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대속물로 자신을 드리셨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죄인의 생명을 위한 대속물이 되셔서 죄인을 구속하셨다. 죄는 죽음을 통하여만 속죄 될 수 있었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영원한 속죄를 위한 대속물이 되신 것이다. 둘째, 소제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상징한다. 소제는 주로 번제와 함께 드려졌고 짐승의 희생 제물이 아닌 곡물로 드리는 제사였다(28). 고운 가루나 화덕이나 번철에서 굽거나 부친 곡물을 하나님께 드리면 일부는 하나님께 불로 태워 드리고 나머지는 제사장의 몫으로 사용되었다. 소제는 일상적인 음식으로 드리는 제물로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표현하였다. 신약 시대에는 소제의 의미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찬양과 사역자들의 필요를 공급하는 것이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13:15).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찬양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제사이다. 소제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의 양식으로 구별되었듯이, 성도가 드리는 헌신이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사역자들의 필요를 채우는 양식이 되는 것이다(고전 9:13-14). 셋째, 화목제는 하나님과 교제를 통한 감사이다. 화목제는 주로 번제와 함께 드리되 번제물 위에 함께 드리는 제사였다. 속죄를 뜻하는 번제물 위에 화목제물을 드리는 것은 속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화목을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단 윗 불 위에 있는 나무 위 번제물 위에 사를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3:5). 화목제의 역할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서원, 자원하는 헌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희생 제물의 기름과 콩팥, 그리고 간을 번제단에 드린 후에, 나머지는 제사장과 예배자가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고기를 먹었다. 히브리어의 화목(peace)은 전쟁이 없는 것을 넘어 건강과 번영, 그리고 하나님과의 화평을 상징하였다. 화목제는 하나님 앞에서 성물을 예배자가 제사장들과 가족들과 함께 먹음으로 기쁨을 나누었다. 이와같이 신약의 성도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속죄함을 얻은 후에 하나님의 자녀들과 연합을 이루며 함께 떡과 잔을 나누는 만찬에 참여함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거룩한 집에서 성도들이 함께 말씀과 음식을 나누는 교제의 삶은 화목제를 통하여 음식으로 교제와 같은 영적인 의미이다. 넷째, 속죄제와 속건제는 속죄를 통하여 정결해지는 것이다. 속죄제는 주로 부지중에 범한 죄에 대하여 회개하여 용서받는 것이다. 속죄제는 희생 제물의 피를 분향단이나 번제단에 뿌리고 제물의 콩팥과 기름을 번제단에 태움으로 속죄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목적이 있었다. 속건제는 죄로 인한 손실을 배상한 후에 하나님께 제물을 드려 용서를 받아야 했다. 제사장이나 이스라엘 온 백성이 하나님께 범죄하였다면 희생 제물의 피를 성소의 휘장 앞에 뿌리고 분향단에 바른 후에, 기름은 번제단에 불태워야 했다. 이때 희생 제물의 가죽과 고기는 먹을 수가 없었고 모두 진 밖에서 불태워야 했다. “속죄제 수송아지와 속죄제 염소의 피를 성소로 들여다가 속죄하였은즉 그 가죽과 고기와 똥을 밖으로 내어다가 불사를 것이요.”(16:27). 그러나 족장이나 이스라엘의 평민이 죄를 범하면 희생 제물의 피를 번제단 뿔에 바르고 희생의 기름을 번제단에 불살랐다. 그리고 나머지 고기는 제사장이 취하여 먹을 수가 있었다. 이스라엘이 범하는 죄는 백성들을 부정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를 더럽게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시며 성막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서는 백성들의 정결함과 더불어 성막의 정결이 필요하였다. 그러므로 속죄제의 피가 성소의 번제단과 분향단에 바르는 것은 성소를 부정함에서 속죄하기 위한 것이었다.

 

성도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드림과 같이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12:1). 이스라엘 백성이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고,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희생 제물로 드리셨다. 이와같이 주님을 통하여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께 자신의 몸을 온전한 희생 제물로 드려야 한다. 이는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인 것이다. 거룩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또한 성도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이다. 이에 성도는 죄로부터 구별하여 자신을 정결하게 해야 한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 7:1).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그리스도의 피로 거룩하게 하였다. 그리스도의 피로 거룩하게 된 성도는 자신을 죄의 더러움에서 지켜야 한다.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비결은 자신의 죄를 자백하여 예수님의 피로 양심과 마음이 정결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속죄제와 속건제는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손해를 끼친 것에 배상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나타낸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자신을 속죄제물로 드리셨고, 우리의 죄값을 치루심으로 속건제물이 되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교제와 예배의 삶을 살게 하는 영광을 얻었다.

 

2. 대제사장의 위임식과 첫제사를 드림(8-10)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짓도록 하시면서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시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거룩하게 하여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 ... 아론과 그 아들들도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며 ...”(29:44).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에서 성막을 짓도록 하신 후에 레위기 1-7장 까지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오도록 하셨다. 이제 레위기 8-10장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거룩하게 구별되어 세워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죄인된 이스라엘 자손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오기 위해서는 속죄의 제물이 필요했지만 속죄의 제물을 하나님께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레위기 8장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제사장 위임식에 관한 내용이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온 회중과 함께 성막문에 이르면, 모세가 아론과 그 아들들을 물로 씻기고 대제사장의 옷을 입혔다(8:6-9). 대제사장의 옷은 속옷과 겉옷, 그리고 에봇과 흉패와 머리의 관과 금패였다. 이는 하나님의 중보자로서 대제사장을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는 것이었다. 그 후에 모세가 관유로 성막과 기구를 발라 거룩하게 하였고 아론의 머리에 부어 거룩하게 하였다. “또 관유로 아론의 머리에 부어 발라 거룩하게 하고.”(8:12). 관유의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하는 것을 의미한다. 관유는 기름부은 자라는 메시야와 같은 히브리어의 뿌리를 두고 있다. 이는 성령으로 기름부어 거룩하게 구별하는 것을 상징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의 사역에 대하여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61:1)라고 했다. 대제사장이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으로 예수님의 사역이 성령으로 기름부은 사역임을 말씀하고 있다.

 

모세는 아론의 위임식을 위하여 소송아지로 속죄제를 드리고, 수양으로 번제를 드렸다. 속죄제를 드려 수송아지 머리에 안숙하고 그 피를 성막의 번제단에 피를 바르는 것은 자신들의 죄를 속죄하고 하나님의 거하시는 성막의 거룩함을 위해서였다. 머리에 안수하는 것은 자신들의 죄가 수송아지에게 전가되는 의미이며, 피를 단에 뿌리는 것은 속죄제의 피가 성소를 정결하게 하여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거룩한 공간이 되게 하는 의미이다. 번제는 죄의 속죄를 통하여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께 자신을 번제물과 같이 헌신하는 것을 상징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드려 우리의 죄를 씻어주신 것과 같이, 이제 우리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모세는 화목제를 드려 그 피로 아론의 오른 귓부리와 오른손 엄지, 그리고 오른발 엄지가락에 바르는 것은 그들의 성별된 삶이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듣고, 거룩한 섬김을 하며, 거룩한 행실을 해야 함을 보여준다. 화목제의 제물은 아론과 제사장이 함께 먹으면서 하나님의 축복으로 평안을 누리는 것을 보여준다. 아론과 그의 자녀들이 제사장의 위임식을 칠일간 하면서 거룩하게 구별되었다. “위임식은 칠일 동안 행하나니 위임식이 마치는 날까지 칠일 동안은 회막문에 나가지 말라.”(8:33). 칠 일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자신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며 희생 제물의 피로 자신들의 죄를 속죄받았다. “오늘날 행한 것은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속하게 하시려고 명하신 것이니.”(8:34). 하나님께 구별되어 쓰임받는 사람은 죄에서 떠나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레위기 9장과 10장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하나님께 첫 제사를 드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론이 대제사장으로 위임되기 전에는 모세가 중보자로서의 직무를 감당했다. 이제 아론이 대제사장으로 세워진 후에는 아론이 속죄제와 번제, 그리고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렸다. 아론은 먼저 자기를 위한 속죄제 송아지를 잡아 단에 피를 발랐고, 기름과 콩팥과 간 꺼풀은 단에 불살랐다. 그리고 나머지 고기와 가죽은 진 밖에서 불살랐고, 그 후에 번제를 하나님께 드렸다. 아론이 자신을 위하여 먼저 속죄제를 드린 것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먼저 속죄를 받아야 함을 보여준다. 그 후에 백성들을 위하여 속죄제의 염소를 드린 후에 번제와 소제를 드렸다. 백성을 위하여 화목제 희생 제물을 드린 후에 기름과 콩팥과 간은 하나님께 드려 단 위에 불사르고, 가슴과 뒷다리는 요제를 드려 제사장의 몫이 되게 하였다. 아론이 하나님께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내려오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태웠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아론이 드린 첫 제사에 불로서 나와 태운 것이다. 제사장의 중요한 직무는 단위의 불을 꺼지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번제단 위의 불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거룩한 불이기 때문이다.

 

아론이 첫 제사를 드린 후에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음에 이른 것은 성막의 직무가 얼마나 거룩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10:1-2).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이 명하시지 않는 다른 불을 담아 성소의 분향단에 분향을 하였다. 이때 불이 하나님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켜 죽음을 당했다. 레위기 1612절은 향로를 가져다가 분향단의 불을 채워 성소의 분향단에 불을 피우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번제단의 불이 아닌 다른 곳에서 불을 가져다가 분향단의 불을 피웠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나답과 이비후가 죽은 후에 하나님의 뜻을 말씀하셨다.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 내가 거룩하다 함을 얻겠고 온 백성 앞에 내가 영광을 얻으리라 하셨느니라.”(10:3).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는 자를 통하여 거룩함과 영광을 얻기를 원하셨다. 불순종은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을 훼방하는 것이기에, 순종으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나답과 아비후가 죽은 후에 모세는 아론의 아자비 웃시엘의 아들들을 불러 성소에서 시체를 진 밖으로 메어 가게 했다. 그리고 아론의 다른 아들인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라고 했다(10:6). 이는 대제사장은 부정하게 하는 시신을 가까이 하여 자신을 더럽히거나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했기 때문이다(21:10-11). 대제사장은 하나님께 거룩히 구별된 자로서 세상의 어떤 관계보다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충성이 더욱 우선시되었던 것이다.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을 통하여 제사장은 포도주나 독주를 먹지 말아야 함을 가르쳤다. 특히 제사장은 거룩하고 속된것, 그리고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여 백성들에게 가르쳐야 할 책무가 있었다.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고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또 여호와가 모세로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10:10-11). 제사장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여 부정하게 된 자는 속죄제를 통하여 정결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하고 정결한 삶을 살아가도록 본을 보이며 가르쳐야 했다.

 

아론과 남은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속죄제의 제물을 먹어야 했지만 불태운 것으로 인하여 책망을 받았다. “그 피를 성소에 들여오지 아니하였으니 그 제육은 너희가 나의 명한 대로 거룩한 곳에서 먹었어야 할 것이니라.”(10:18). 아론이 드린 속죄제는 그 피를 성소의 분향단이 아닌 뜰의 분향단에 뿌렸기에, 그 제육은 제사장이 태우지 말고 먹어야 했다. 그러나 나답과 아비후가 성소의 직무를 하다가 죽었기에 그들은 제사의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모세는 그들의 말을 선히 여기며 더 이상 책망하지 않았다. 하나님께 드린 제물은 성물로서 태워야 하는 부분, 제사장이나 예배자가 먹어야 하는 부위와 장소까지도 정해졌다. 하나님 앞에서의 거룩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아론의 대제사장직은 우리의 중보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한 중보자로서 자신의 피로 성소에 들어가사 우리의 죄를 속죄하셨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9:12).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제물이 되셨지만,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중보자가 되셨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4-5).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중보자로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셨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거룩한 제사장으로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간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벧전 2:5). 성막에서 아론이 대제사장으로 거룩한 직분을 행했듯이, 신약의 성도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거룩한 사역을 감당하는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3. 정결과 부정에 관한 규례와 이스라엘의 대속죄일(11-16)

 

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룩하고 속된것을 분별하고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여 가르쳐야 했다(10:10-11).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이방인과 구별된 삶을 거룩과 정결한 삶으로 나타내어야 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거룩을 삶에서 표현되어져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음식과 출산, 피부질환과 몸의 유출과 같은 일상적인 삶에서의 구별된 삶을 보이시기를 요구하셨다.

 

첫째, 하나님은 정결과 부정을 구별하셨다(11-15)

 

거룩의 개념은 분리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부정한 것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게 하심으로 이방민족과 구별된 민족임을 보이셨다. 의식법에서 부정한 것은 항상 죄를 범하는 의미는 아니다. 왜냐하면, 출산이나 피부병, 몸의 유출등과 같은 부정은 삶에서 경험되어지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죄를 범한 자는 용서를 받았지만, 부정해진 자는 적절한 정결의식에 의하여 깨끗해졌다.

 

하나님께서는 정결과 부정한 동물을 구분하셨다. 육지의 동물은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것은 정결했지만 나머지는 부정했다(11:3). 물의 고기는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정결하고 먹을 수 있었지만(11:9) 나머지는 부정해서 먹을 수가 없었다. 그 외에 맹금류는 부정했고, 곤충은 발에 뛰는 다리가 있어 땅에서 뛰는 것은 정결했다(11:20-23). 이스라엘 백성은 사체의 주검을 만지면 부정했기에 자신의 옷을 빨고 저녁까지 부정하여 자신을 격리해야 했다(11:24-25). 부정한 자는 하나님께 나아올 수 없었다. 레위기 12장은 아이를 낳은 여인의 정결 규례를 다루고 있다. 아들을 낳은 산모는 일주일간 부정했고 팔일 째에 아들에게 할례를 행해야 했다. 그리고, 삼십 삼일이 지나면 성소에 가서 희생 제물을 드려야 했다. 이는 정결의식으로 아들을 낳은 산모는 40일간, 딸을 낳은 산모는 80일 간 정결기간을 지켜야 했다(12:1-5). 정결 기간이 차면 출산한 여인은 번제와 속죄제를 제사장에게 드렸고, 제사장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린 후에 속죄받을 수 있었다(12:8). 이는 여인은 제사장의 제사로 인하여 죄가 용서받는 것이 아니라, 부정에서 정결하게 되었다. 이는 산모의 출산이 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레위기 13-14장은 피부 질환에 관한 규례를 보여준다. 피부의 털이 희어졌거나 피부가 우묵해졌으면 이는 문둥병의 환처로 제사장은 그를 부정하다 여기고 칠일동안 혼자 거하게 한 후에 피부병이 퍼지지 아니하였으면 정하다고 했지만, 피부병이 퍼졌으면 문둥병으로서 부정하다고 진단하였다. “제사장은 그 피부의 병을 진찰할찌니 환처의 털이 희어졌고 환처가 피부보다 우묵하여졌으면 이는 문둥병의 환처라 제사장이 진단하여 그를 부정하다 할 것이요.”(13:3). 문둥병이 발생한 자는 부정하여 혼자 진 밖에 살아야 했다(13:45-46). 문둥병과 같은 피부질환에서 나은 자는 새의 피로써 자신을 정결케 한 후에(14:207), 자신의 털을 밀고 옷을 빨고 몸을 물에 씻었다(14:9). 그 후에 그는 속죄제와 속건제, 그리고 번제와 소제를 드려 정결하게 하였다(14:14-19). 제사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여 하나님께 예배자의 삶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문둥병은 죄에 대한 상징으로서 죄는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어지게 한다. 하나님은 끊어진 죄의 저주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으로 끊으시고 다시 교제의 관계를 회복시키셨다. 레위기 15장은 몸의 유출에 관한 규례이다. 남자의 유출은 임질과 같은 성병을 의미한다. “그 유출병으로 말미암아 부정함이 이러하니 곧 몸에서 흘러 나오는지 그것이 엉겼든지 부정한즉.”(15:3). 유출병으로 부정한 자는 만진 물건이나 앉았던 자리도 부정하였기에, 그가 누웠던 침상이나 접촉하는 자도 부정하여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는 정결 의식을 거쳐야 했다(15:11). 남녀가 동침하여 설정하면 둘다 저녁까지 부정했다(15:17). 이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이방인의 음란한 우상 숭배를 금하기 위하였다. 이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을 거룩하게 하심으로 성적인 행위가 성전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여인의 유출은 월경과 비정상적인 출혈로 인한 것이다. 여인의 월경은 칠일간 부정하였기에(15:19), 월경을 하는 자는 옷을 빨고 몸을 물로 씻어야 했다(15:21-22). 비정상적인 출혈을 하는 경우에는 부정하게 여겼기에 그녀의 침상이나 의자를 만져도 부정하게 되었다. 만일 부정한 여인이 앉은 자리에 앉거나 접촉하는 경우에는 옷을 빨고 몸을 씻는 정결 의식에 참여해야 했다(15:25-27). 성병이나 비정상적인 출혈로 인한 부정함에서 정결하기 위해서는 산비둘기나 집비둘기로 번제와 속죄제를 드려 속죄해야 했다(15:29-30). 이스라엘의 정결은 부정한 것과 분리하는 것이다. 만일 부정해졌다면 정결의식과 제사를 통하여 속죄한 후에 하나님과 이스라엘 공동체와의 연합을 회복할 수 있었다.

 

왕같은 제사장으로 구별된 성도는 세상의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분리해야 한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고후 6:17). 하나님의 사람은 부정한 것에서 나와서 따로 거하는 삶은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비결이다. 주님은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마음에 품은 죄라고 하셨다(7:20-23). 마음에 품은 더러운 죄가 입으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기에 자신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입술의 말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만일 성도가 죄로 인하여 더러워졌다면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죄를 자백함으로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함을 얻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하나님은 깨끗한 자를 사랑하시며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성취하신다.

 

둘째, 하나님은 대속죄일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정결하게 하셨다(16)

 

대속죄일은 이스라엘 달력으로 710일에 지켜진 절기로서 이스라엘 백성이 부정에서 정결하게 되는 속죄의 날이었다.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 하리니 너희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16:30). 대속죄일에는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번 지성소에 들어가 희생 제물의 피로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는 날이다(16:34). 속죄는 히브리어로 카파르로서 희생 제물의 피로 죄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희생 제물의 피가 속죄소에 뿌려질 때에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누그러지고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죄로 인하여 더럽고 부정한 곳에 거하실 수가 없으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며 성막안에 거하시기 위해서는 성막과 이스라엘 백성의 정결이 요구되었다. 성소는 제사장들의 죄로 인하여 더러워질 수 있고, 성막의 뜰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인하여 더러워지기에 대속죄일에는 성막과 이스라엘 백성을 피로써 정결하게 하는 날이었다.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인하여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16:16).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죄는 지성소와 성막이 부정해지기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는 희생의 피로써 속죄하여 정결해야 했다.

 

대제사장은 거룩한 세마포 옷을 입고 물로 몸을 씻은 후에 자기와 권속을 위하여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잡아 피를 지성소의 동편과 앞에 일곱번 뿌렸다.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앞에서의 죽음을 피하기 위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워야 했다. 대제사장은 자신과 가족을 위하여 속죄한 후에 이스라엘 백성을 속죄하기 위하여 속죄제를 위한 수염소를 잡아 지성소의 동편과 위에 피를 뿌렸다. 속죄소는 자비의 자리로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희생 제물의 피를 통하여 용서하시는 곳이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하여 속죄소 또는 자비석이 되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3:25). 하나님이 예수님의 피로 통하여 화목제물로 세우셔서 우리를 의롭게 하셨다고 했다. 화목제물은 헬라어로 λαστριος 로서 속죄하는 자리인 속죄소 또는 자비석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통해서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한 속죄의 제물이 되셔서 자신의 피를 뿌리셔서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다.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번 속죄제물의 피를 뿌리는 속죄소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속죄의 피를 아론과 이스라엘을 위하여 뿌린 후에 대제자상은 아사셀을 위한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고하여 광야로 보내었다.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찌니.”(16:21). 아사셀은 광활한 지역의 광야를 의미하는 것으로, 염소가 희생양이 되어 죄의 짐을 지고 먼 광야로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우리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의 길을 가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상징한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29). 아론은 물로 몸을 씻고 대제사장의 옷을 입은 후에 자기와 백성을 위한 번제의 제물을 드렸다. 그리고, 속죄제의 수송아지와 염소의 피가 성소에 들어가 속죄하였기에 그 가죽과 고기와 똥은 밖으로 불살랐다(16:27). 대속죄일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속죄의 희생 제물의 피로 정결하게 되는 날이었다.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 하리니 너희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16:30).

 

속죄일은 이스라엘 백성과 성막을 부정에서 정결하게 하는 날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사역을 상징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 염소나 송아지의 피로 아닌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9:1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대제사장이 되셨고, 우리를 위한 속죄의 제물이 되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속죄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한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19).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막이 희생 제물의 피로 정결하게 되었듯이, 하나님의 자녀는 회개를 통하여 깨끗하게 되는 것이다(요일 1:7,9).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과 같이 거룩한 자로 살아가야 한다.

 

4. 이스라엘은 거룩한 행실을 보여야 한다(17-27).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한 삶을 실천해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소유 삼으시려고 만민 중에서 구별하셨기에 그들은 하나님과 같이 거룩한 삶을 보여야 했다.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로 나의 소유를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20:26). 이스라엘 백성의 거룩의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었다.

 

첫째, 제사와 피의 거룩함(17)

 

레위기 17장은 예배를 드리는 제사와 피의 거룩에 관한 규례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오직 하나님께만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성막에서만 도살하도록 하셨다(17:3-4). 성막에서 도살하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에게 몰래 제사를 드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17:7). 이스라엘 백성은 성막에서 하나님께 화목제물을 드린 후에 지신들을 위한 양식으로 먹어야 했다. 그리고, 생명이 피에 있기에 피를 먹지 말아야 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셨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17:11). 피가 죄를 속하는 이유는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위한 대속물이 되기기 위하여 피를 흘려 죽으심을 보여주는 것이다(10:45).

 

둘째, 관계에서의 거룩함(18-20)

 

레위기 18장에서 20장은 관계에서의 거룩한 삶을 설명한다. 가나안은 우상을 숭배하며 성적인 타락이 관영했던 곳이다. 바알을 숭배하며 신전에서 창기들의 성매매가 범람하여 땅이 더럽혀졌고, 그들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은 그들을 쫓아내시고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주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이방인과 구별되어 성적인 거룩을 지켜야 했다. “너희가 그 거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좇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18:2). 애굽과 가나안의 풍속은 우상 숭배와 관련된 성적인 타락이었다. , 이러한 민족들은 종교와 관련된 성매매, 근친상간, 동성애와 같은 죄들이 나타났다. 특히 가나안에서는 아들을 몰렉의 제물로 바치거나, 뱀을 예배하거나, 종교와 관련된 성매매가 성행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성적인 거룩은 배우자 외에 어떠한 성적인 연합을 금해야 했고, 몰렉에게 자녀를 바치거나 동성애, 그리고 짐승과 교합하지 말아야 했다(18:20-23). 유목 생활을 하며 지파안에서 결혼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관계의 범위를 아는 것은 중요했다. 만일 성적으로 문란하면 땅이 더러워지고 땅이 그 거민을 토하여 낼 것이다. “너희의 전에 있던 그 땅 거민이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고 그 땅도 더러워졌느니라 너희도 더럽히면 그 땅이 너희 있기 전 거민을 토함 같이 너희를 토할까 하노라.”(18:27-28). 이스라엘의 성적인 죄는 하나님의 소유인 그 땅을 더럽히기에 거룩해야 했다. 만일 몰렉에게 자녀를 주는 자는 죽임을 당해야 했다(20:1). 그리고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남자와 여자를 모두 반드시 죽여야 했고 짐승과 교합하거나 동성애를 하는 자도 죽여야 했다(20:10,13,15-16). 이방인의 가증한 풍속을 쫓는 것은 자신을 더럽히는 것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것이다.

 

레위기 19장은 거룩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부모를 경외하며 안식일을 지키고 우상을 숭배하지 않는다(19:3-4). 그리고 거룩함을 사모하는 자는 가난한 자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양식을 나누며(19:9-10), 이웃을 압제하거나 품군의 삯을 다음 날까지 의도적으로 남기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서로를 사랑하기를 원하셨다. 특히 사회적인 약자를 함부로 대하거나 장애물을 놓아 조롱하지 않게 하셨고(19:14),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않고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해야 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19:18).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형제를 속여 거짓 저울을 사용하지 않으며 노인을 공경하며 심지어 타국인이라도 동포같이 여기며 자상함을 보이는 것이다(19:32-37).

 

셋째, 제사장의 거룩과 순결(21-22)

 

레위기 21장과 22장은 제사장직의 거룩을 가르친다. 제사장직은 아론과 그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막에서 섬기는 직분이었기에 일반 백성들보다 더욱 거룩함의 기준이 요구되었다. 특히 대제사장직은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했기에 흠이 없는 삶이 요구되었다.

 

제사장의 정결은 가족과 형제의 시신과 접촉하지 아니함으로 지켜져야 했고 이방인들과 같이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하거나 수염 양편을 깎거나 살을 베지 말아야 했다(21:1-5).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칠 일간 부정했기에 하나님의 성소를 섬기는 제사장은 거룩함을 유지했다. 대제사장의 거룩은 부모의 장례로 인하여도 더러워지지 말아야 했다(20:10-11). 제사장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자로서 거룩해야 했기에 그의 결혼도 거룩함을 지켜야 했다. 제사장은 기생이나 부정한 여인, 그리고 이혼 당한 여인을 취하지 말아야 했고(21:7), 특히 대제사장은 거룩한 기름을 부은 자이기에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야 했다. 흠이 있는 자는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수가 없었고(21:17), 흠이 있는 제물도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질 수 없었다(22:20). 제사장이 부정하게 되면 하나님의 성물을 먹지 말아야 했다(22:3).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거룩함을 받으셔야 했고, 특히 제사장으로 구별된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그들의 거룩한 삶으로 높여야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제사장인 중보자가 되셔서 우리의 죄를 속죄하셨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4:14). 예수 그리스도는 흠없으신 분으로서 하나님께 나아가셨다.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7:26). 예수 그리스도는 흠이 없는 자로서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셨듯이, 이 땅의 성소에서 섬기는 제사장은 흠이 없는 자로서 하나님을 섬겨야 했다.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는 영적인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흠이 없이 거룩의 삶을 살아야 한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벧전 2:5). 구약의 제사장은 거룩한 특권과 책임을 가진 자로 세워졌듯이, 신약의 성도는 성령과 예수님의 피로써 거룩하게 된 자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한 제사장으로 섬겨야 한다.

 

넷째, 이스라엘의 일곱 절기(23)

 

하나님의 거룩은 날과 절기를 통하여도 구별되어졌다. 안식일이 하나님이 구별하신 거룩한 날로서 이스라엘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했다. 이스라엘은 안식일에 일을 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했다. 그 외에도 이스라엘은 연중에 일곱 절기로 하나님의 거룩을 인정하며 순종해야 했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애굽에서 출애굽하면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기이다(12:14-20). 하나님께서는 정월 14일은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으로 구속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도록 유월절 절기로 제정하셨고, 15일부터 22일 까지 칠일간은 누룩을 넣지 않는 떡을 먹는 무교절로 정하여 애굽의 죄와 풍속을 본받지 않도록 하셨다. 이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죄 없으신 인품을 보여주는 것이다. 초실절은 안식 후 첫날에 첫 이삭 한 단을 하나님께 바치는 절기로서 첫 열매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초실절이 유월절이후 사흘째 되는 날이 되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칠칠절은 초실절이 지난 후 오십 일째 되는 날에 떡 두개를 하나님께 드리고, 번제와 속죄제 등의 제사를 드리는 날이었다(23:15-21). 이는 신약 시대에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이후 오순절에 강림하신 것을 상징한다. 일곱째 되는 달에는 세절기가 있었다. 먼저 나팔절로서 칠월 일일은 안식일로서 나팔을 불어 기념하였다(23:24).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이 천사들의 나팔소리와 강림하심을 상징하는 것이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 4:16). 속죄일은 칠월 십일에 거행되었다. 이날은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번 지성소에 들어가 송아지와 염소의 피로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죄하는 거룩한 날이었다. 백성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금식하며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야 했다. 속죄소에 뿌려지는 피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피를 흘리시고 하늘의 성소에 뿌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한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9:12).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으로서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셨고 자신이 대속물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자신의 피를 흘리셨다.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칠월 십오일부터 칠일간 초막에 거하며 애굽에서 출애굽 할 때에 초막에 거하던 때를 기억하도록 하셨다.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23:43). 초막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천년왕국을 세우셔서 통치하시는 것을 의미한다(14:16).

 

이스라엘 백성은 시간에서도 하나님의 날을 거룩하게 구별해야 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은 소유와 시간 등 전부가 하나님께 속했음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삶의 시간에서도 구별하여 그 분을 기억하며 예배하는 삶을 통하여 높였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속죄함을 얻었기에 삶의 시간에서도 하나님을 위하여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한다.

 

다섯, 거룩한 성막과 이름(24).

 

하나님의 거룩은 그 분이 거하시는 처소의 거룩함을 요구되었다. 성막의 성소는 순결한 감람유로 금촛대의 불을 끊이지 않고 켜야 했다. “아론은 회막 안 증거궤 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항상 등잔불을 정리할지니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24:3). 제사장은 진설병 열두 개를 두 줄로 상 위에 진열하고 그 위에 유향을 두어야 했고 매 안식일에 새로운 떡을 진설해야 했다. “항상 매 안식일에 이 떡을 여호와 앞에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24:8). 제사장은 새로운 떡을 진열하며 원래의 떡은 거룩한 성물로 거룩한 곳에서 먹어야 했다(24:9).

 

성막의 촛대와 진설병은 세상의 빛과 생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각각 상징한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으로 오셨다고 하셨고(8:12), 생명의 떡으로 오셔서 영생을 주신다고 하셨다(6:35). 신약의 성도는 주님과 같이 세상에 복음의 빛을 비추어 어두움을 밝혀야 하며,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함으로 영혼의 양식을 취해야 한다.

 

하나님의 거룩은 그 분의 이름조차 거룩함을 가르치고 있다. 아비가 애굽 사람이고 어미는 이스라엘 단 지파의 아들이 다른 사람과 싸우다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하며 훼방하였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저주한 사람을 끌어내어 온 회중이 돌려 치라고 하였다.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라 ...”(24:16).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 공개적인 모욕은 이스라엘의 주되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손했기에 죽음의 형벌이 요구되었다.

여섯, 안식년과 희년(25)

 

레위기 25장은 안식년과 희년에 관한 규례이다. 안식년과 희년은 안식일과 같이 거룩하게 지켜져야 했다. 안식년은 육년 동안 농사를 짓다가 칠년 째에는 땅을 안식하도록 파종하거나 추수하기를 금하는 것이다(25:4). 이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순종하기를 배워야 했다. 희년은 안식년을 일곱번 지난 다음해인 오십년이 되는 해에 이스라엘에 자유를 선포하는 해였다. 희년의 선포는 속죄일에 나팔을 불며 시작되었다(25:9). 오십년이 되는 해는 거룩하여 이스라엘 백성 중에 종 되었던 자들은 자유하여 집으로 돌아갔고 땅은 원래의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제 오십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찌며.”(25:10). 희년은 나팔을 의미하는 요벨이라는 단어에서 왔다. 왜냐하면 희년은 속죄일에 나팔을 불어 알리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구속자가 되셔서 이스라엘의 종되었던 자들을 자유하게 하며 땅을 돌려주는 것을 상징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속자로서 우리를 죄의 종에서 자유하게 메시야의 사역을 상징하기도 한다(61:1).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로 오셔서 성령의 기름부으심 가운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고 갇힌 자에게 놓임을 주시는 사역을 하셨다.

 

일곱, 순종과 불순종, 서약의 이행(26-27)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축복이나 진노를 가져오는 것은 삶의 양식(lifestyle)임을 가르치셨다. 하나님의 축복을 가져오는 것은 순종하는 삶이며,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는 것은 불순종을 선택하는 삶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것이다. “너희가 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26:3).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은 추수 때에 풍족한 비가 내리고(26:4), 땅에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26:6).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이 거하는 땅에서 사나운 짐승을 제하시고 전쟁을 막으시며 전쟁이 일어나도 하나님이 그들을 쫓으시기 때문이다. 특히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축복은 이스라엘이 누리는 참된 복이었다. “내가 내 장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26:1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순종 가운데 함께 하심으로 그들 가운데의 장막을 옮기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하나님으로 다스리실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불순종은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온다. 이스라엘이 재앙을 만나 폐병이나 열병과 같은 질병을 만나고 파종이 헛될 것이다(26:16). 그들은 전쟁과 염병(26:23-26)을 만나고 결국 땅에서 추방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열방 중에 흩을 것이요 내가 칼을 빼어 너희를 따르게 하리니 너희의 땅이 황무하여 너희의 성읍이 황폐하리라.”(26:33). 하나님의 백성의 거룩은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준행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며 축복을 더해 주시는 것이다.

 

레위기의 마지막 장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지키는 것에 관한 규례이다. 만일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구속하고자 한다면, 그는 오분의 일의 값을 치루어야 했다. 이는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거룩하여 지켜져야 함을 가르치는 것이다. “사람이 예물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 생축이면 서원물로 여호와께 드릴 때는 다 거룩하니.”(27:9).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자는 성소의 세겔에 따라 값을 정하여 드려야 했다. 이는 성소에서 섬길수 있는 자격은 제사장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성소의 세겔대로 값을 정하여 드려야 했다(27:1-8). 당시에 한달 노동자의 품삯이 일 세겔이었고 성인은 성소의 은 오십 세겔을 드렸다. 그리고, 동물을 드리는 서원을 한 자는 변개하지 않고 드려야 했고, 마음이 변하여 다른 동물을 드리고자 한다면 둘 다 거룩하여 모두 하나님께 드려야 했다(27:10). 부정한 동물을 하나님께 드리려다 무르려면 그 값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드려야 했고, 집이나 토지 같은 부동산을 하나님께 드리려다 무르려면 오분의 일을 더하여 드릴 때에 자기 소유가 될 수 있었다(27:15). 생축의 첫 새끼는 하나님께 속했기에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릴 수가 없었고(27:26), 부정한 짐승이면 오분의 일을 더하여 값을 치루고 자기 소유로 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 이미 드려진 것은 다시 속할 수 없었고 하나님께 지극히 거룩한 소유가 되었다(27:28-29). 땅의 십분 일은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성물로서 자신의 소유로 하려면 생축을 제외한 곡식은 오분의 일을 더하여 값을 치룬 후에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었다(27:30-33).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가벼운 것이 아니기에 꼭 실행해야 했고 취소하려면 원래의 값보다 오분의 일을 더하여 값을 치루어야 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23:21).

 

레위기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1-16)과 세상과 구별되어 거룩한 삶(17-27)을 살아가는 길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예수님의 모형인 성막, 그리고 제물과 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죄인된 인간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기에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룩함을 얻어야 하며, 하나님의 자녀들은 거룩한 제사장으로서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행실로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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