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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의 여행(21) - 레위기의 제사법(레 1-7장)

비전의 사람 2019. 10. 2.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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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의 여행(21) - 레위기의 제사법(1-7)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일러 가사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생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찌니라.” (1:1-2).

 

레위기는 거룩에 관한 책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어린 양의 피로 구속함을 받았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하여 세상과 구별되어야 했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희생 제사로 자신을 거룩하게 함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희생 제물의 피흘림을 통한 속죄가 이스라엘 백성의 거룩의 기초가 되었다. 하나님께 희생 제물의 속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드리는 제사는 다음의 다섯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번제(1), 소제(2), 화목제(3), 속죄제(4-5:13), 그리고 속건제(5:14-19)였다. 이러한 다섯 가지의 제사는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 자손의 믿음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제사의 규례를 정하셨기에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믿음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음의 세 가지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예배를 드렸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의 헌신, 희생 제물을 통한 죄의 속죄, 그리고 하나님과의 화목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제사를 통하여 헌물을 드림으로 하나님을 향한 헌신, 자신의 죄를 희생 제물의 피로 속죄함을 얻었고, 하나님과의 화목으로 인한 교제를 누렸다.

 

레위기 1장에서 67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려야 하는 제사의 규율을 기록하였다. 예배자가 희생 제물을 성막으로 가져오면 예배자와 제사장들이 지켜야 할 제사 규율을 설명하고 있다. 68절에서 7장은 제사장들을 위한 희생 제사를 드리는 규율이었다. 이는 주로 희생 제사를 드리고 난 후에 제사장들이 취해야 할 희생 제물의 부분들과 같은 규율이다.

 

다섯 가지 제사의 절차와 의미는 다음과 같다.

 

1. 번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한 속죄를 의미한다(1, 6:8-13)

 

번제는 제물을 불로 완전히 태워 전부를 드리는 제사이다. “...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1:9). 번제는 희생 제물의 전부를 단 위에 불사르는 제사법으로서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었다.

 

제사를 드릴 수 있는 동물은 소나 양과 염소 중에서 흠없는 수컷으로 드릴 수 있었다(1:2,10). 그리고, 새로도 드릴 수 있었는데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드릴 수 있었다(1:14). 번제의 예물을 선택하는 기준은 자신의 경제적이었으며, 누구든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번제를 드리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셨다. 번제는 속죄와 헌신의 의미이었기에 자신의 경제적인 여력에 따라 하나님을 향한 헌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었다. 사냥으로 잡은 짐승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기에 제물로 드려질 수 없었다. 번제는 여호와 앞 회막문에서 드려져야 했다. 예배자는 번제물을 아무 데서나 잡지 말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막에서 드려져야 하는 것은 이방인들의 우상 숭배를 따르지 않기 위함이었다.

 

예배자는 자신이 가지고 온 희생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여 속죄를 받아야 했다. 이는 번제의 목적이 속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찌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1:4). 예배자는 자신이 가져온 짐승의 머리에 손을 올려 안수를 하였다. 안수의 의미는 자신을 제물과 동일시하며 자신의 죄를 희생 제물에게 전가하는 것을 의미했다. 예배자는 자신의 죄를 희생제물에 전가하였고, 희생제물은 죄를 범한 사람을 대신하여 피를 흘려 죽었다. 그러므로, 희생제물은 예배자를 위한 속죄의 제물이 되는 것이다. 속죄의 의미는 덮다(cover), 씻어내다(wipe out), 대속물(ransom)’이라는 세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다. 속죄는 대속물의 희생으로 인하여 죄인의 죄가 용서받는 것이다. 번제가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분노가 속죄의 희생 제물의 피를 보시고 분노가 누그러지고 예배자와 화목하시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기 때문이다(17:11). 죄의 속죄를 위해서는 반드시 피흘림이 있어야 했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9:22). 짐승의 피로 사람의 죄가 속죄함을 얻게 되는 것이다.

 

번제를 드릴 때는 예배자와 제사장에게 다른 책임이 주어졌다. 예배자는 여호와 앞에서 동물을 잡아 가죽을 벗기고 각을 떠야 했다. 그리고,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어야 했다. 그러면,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그 피를 회막문 앞 단 사면에 뿌리고 단 위에 불을 두고 나무를 벌여 놓아 동물의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벌여 놓아 불살랐다. 번제를 드릴 때에 예배자가 제사장과 함께 참여하는 것은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을 향한 예배에 참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제물 전체를 단 위에 불사르는 것은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었다(1:13). 제사장은 단 위의 불이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해야 했다. “단 위에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찌니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 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 사를찌며 불은 끊이지 않고 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찌니라.”(6:12-13). 제사장은 번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항상 피워야 했고, 재는 진 바깥의 거룩한 곳에서 버려야 했다.

 

번제는 하나님께 자신을 전부 드리는 헌신의 의미를 담고 있다. 제단 위에서 불로 완전히 태우는 것은 온전한 헌신을 의미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속죄하기 위하여 자신의 피를 하늘의 성소에 뿌리고 자신의 몸을 희생 제물로 드린 온전한 희생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번제물이 되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속죄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드리셨다. “ ...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5:2). 예수님은 자신의 전부를 향기로운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헌신은 우리의 죄를 속죄함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받으시는 속죄물이 되셨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10:45).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희생하셨다. 빌립보서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2:8) 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이는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속죄함을 받은 성도는 이제 자신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려야 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12:1). 자신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은 우리가 매일 드려야 하는 영적 예배이다. 번제는 하루에 두 번 아침과 저녁에 소제와 전제와 더불어 어린 양으로 드려졌다(29:38-42). 네가 단 위에 드릴 것은 이러하니라 매일 일년 된 어린 양 두 마리니 한 어린 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 양은 저녁 때에 드릴찌며.”(29:38-39). 제사장은 가죽을 제외한 제물의 전부를 제단에 드리고 불에 태웠다. 그리고, 번제물의 가죽은 제사장의 몫으로 돌려졌다(7:8). 번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향한 헌신을 상징하는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께 매일 자신을 드려 주님을 섬겨야 하는 헌신의 의무를 보여준다.

 

2. 소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격을 상징한다.

 

소제는 피가 없는 제사로서 곡물을 드리는 제사이다. 소제로 드리는 예물은 고운 가루와 기름, 그리고 유향의 혼합물로 만들어졌다.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2:1). 소제의 예물은 요리하지 않은 것으로 드릴 수도 있고, 요리한 것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요리한 곡물은 화덕에 굽거나 번철에 부치거나 솥에 삶은 것으로 드릴 수가 있었다.

 

예배자가 소제물을 가져오면 제사장은 일부분을 취하여 단 위에 불살랐다. “그 소제물 중에서 기념할 것을 취하여 단 위에 불사를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2:9). 일반적으로 소제는 독립적으로 드리기 보다는 번제나 다른 제물과 함께 드려졌다. 예배자가 가져온 소제의 일부분은 제단에서 불태워지고, 나머지는 제사장의 몫으로 취하게 하였다.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찌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2:10). 제사장은 땅을 기업으로 얻는 대신에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양식으로 살았다. 이에 소제의 곡물은 제사장들이 날마다의 일용할 양식으로 취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였다. 제사장이 제사하고 남은 곡물을 취하여 양식을 삼은 것은 하나님이 구별하신 자로서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을 대표하는 거룩한 자의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다. 제사장이 드린 소제의 곡물은 온전히 불사르고 제사장들이 먹지 말아야 했다(6:23).

 

소제는 하나님께 감사의 의미로 드리는 선물 또는 공물을 의미했다.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땅에서 추수하여 얻은 곡물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중한 곡식이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거룩한 추수 중에서 첫 소산물이나 소중한 곡물을 가져와 감사의 예물로 드렸다.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너의 소제를 삼되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찌니 이는 소제니라.” (2:14-15). 이는 예배자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리하지 않는 고운 가루의 예물이나 화덕이나 번철, 그리고 솥에 삶은 곡물을 드리는 것은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자는 하나님께 빈손으로 오지 아니하고 곡물의 예물을 통하여 감사를 드리며, 하나님의 주 되심과 날마다 공급하시는 은혜에 대한 감사와 헌신의 의미를 표현하였다.

 

소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겸손의 인격을 보여준다. 소제로 드리는 예물은 고운 가루와 기름, 그리고 유향의 혼합물로 만들어졌다.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2:1). 고운 가루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상징하며, 기름은 예수 그리스도를 충만케 하신 성령을 상징한다. 그리고, 유향은 그리스도의 도덕적인 인품을 상징하며, 누룩이 없는 것을 드려야 하는 것은(2:11), 그리스도가 죄가 없으신 거룩하신 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시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4:15). 소제는 고운 가루처럼 자신을 철저하게 순종하며 의로운 삶을 사신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누룩과 꿀은 제물에 넣을 수는 없었지만, 모든 소제에 소금은 첨가하라고 하신 것은 소금은 변하지 않는 것으로 영원한 언약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변하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언약이시다. 첫 이삭의 소제를 드릴 때는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드리라고 했다.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너희 소제를 삼되.“(2:14). 첫 이삭이 볶아 찧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고난 가운데서도 원망과 불평하지 않으시는 온전한 인격을 상징한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53:7).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을 당하시며 괴로울 때에도 입을 열지 아니하시고 어린 양과 같이 순결하셨다. 성도는 주님 안에서 주님과 같은 인격으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성도는 주님의 겸손을 배워서 겸손한 인격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주님의 인격이 우리가 변화되어야 할 성품이다.

 

3. 화목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하나님과 화목을 상징한다.

 

화목제는 예배자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교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화목제는 대속의 제물을 드린 후에 제단에 드린 부분을 제외하고는 제사장과 함께 거룩한 곳에서 예배자가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화목제의 희생은 소나 양, 그리고 염소 중에서 수컷이나 암컷으로 드릴 수 있었다. 번제는 수컷으로 드린 반면에 화목제는 음식을 제사장들과 예배자들이 먹는 제사였기에 비둘기와 같은 새의 제물은 드려지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화목제는 번제물 위에 드렸다.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단 윗 불 위에 있는 나무 위 번제물 위에 사를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3:5). 그리고, 번제와 같이 자신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짐승을 잡아 피를 제단의 사면에 부리고, 내장에 덮인 기름과 콩팥은 제단위에서 화제로 태워 드렸다. 화목제물을 드릴 때는 감사와 서원, 그리고 자원하는 마음이 있을 때에 드릴 수가 있었다. 감사제물을 드릴 때는 드린 날에 먹어야 했지만, 서원이나 자원의 예물은 다음 날까지 먹을 수가 있었으나 삼일 째 남은 고기는 불살라야 했다(7:15-17). 하나님께 불에 태워 드린 기름을 제외하고 고기의 가슴이나 우편 뒷다리는 제사장의 음식으로 먹도록 드려지게 하였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 중에서 그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를 취하여 제사장 아론과 그 자손에게 주었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을 영원한 소득이니라.” (7:34). 그리고, 나머지 고기는 예배자가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이는 화목제물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어 함께 음식을 나누는 친밀감의 상징이었다.

 

화목제는 희생 제물의 피로서 속죄함을 받은 후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문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3:2).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자는 피로써 자신의 죄를 속죄해야 했다. 그리고, 예배자는 제물의 가장 소중한 부분을 하나님께 드렸다. “그는 또 그 화목제의 희생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찌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단 윗 불 위에 있는 나무 위 번제물 위에 사를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3:3-5). 하나님께 드리는 기름과 콩팥과 간은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생명의 중심으로 간주하였다. 화살이 사람의 간을 간통하며 그 결과는 죽임이기 때문이다. 특히 기름은 최고(best)로 간주되었기에(45:18), 예배자가 하나님께 기름을 드리는 것은 희생 제물의 최고의 부위를 드린 것이다. 이는 예배자가 하나님께 자신의 삶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는 것을 상징했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음식을 먹은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의미하는 화목제의 원초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더라.” (24:11). 하나님은 그 분의 임재 안에서 식사하는 자들과 함께 하셨다. 또한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신 후에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리고 백성들에게 떡과 고기를 나눠준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상징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그 예비한 자리에 두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니라 ... 모든 백성 곧 온 이스라엘 무리의 무론 남녀하고 떡 한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한덩이씩 나눠주매 모든 백성이 각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삼하 6:17,19). 희생 제물은 하나님을 향한 선물이기도 하지만 음식을 먹는 모습에서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화목 제물이 되셨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라.” (3:25).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목 제물이 되셔서 우리를 의롭게 하셔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며 기뻐해야 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셔서 믿음으로 거룩하게 된 자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1:20). 하나님은 우리와 화목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다.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1:22). 예수 그리스도의 우리의 화평이 되셔서 하나님과 사귐이 있게 하셨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일 1:3). 우리의 사귐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이다. 거룩하게 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지체들과의 연합에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을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4. 속죄제는 인류의 죄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상징한다.

 

번제의 속죄는 인간의 원죄와 같이 죄인된 인간의 속죄라고 한다면, 속죄제는 삶의 현장에서 범하는 구체적인 죄에 대한 속죄를 위한 것이었다. 속죄제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죄하여 정결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가 제사장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로 더러워진 것을 정결하게 하는 데에 목적이 있었다.

 

속죄제는 희생제물의 피가 죄를 속죄함으로 예배자가 범한 죄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함을 얻는 것이다. “그 송아지를 속죄제의 수송아지에게 한것 같이 할찌며 제사장이 그것으로 회중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들이 사함을 얻으리라.”(4:20). 속죄제의 피는 죄를 범한 자의 죄를 용서하도록 속죄하며, 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죄로 인하여 더러워진 성소를 정결하게 하였다.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리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의 죄로 인하여 부정한 중에 있는 성막을 정결하게 한다고 했다.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인하여 지성소를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 ... 도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위에 일곱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단을 성결케 할 것이요.”(16:16,19). 하나님은 거룩한 곳에 거하시는데, 이스라엘 백성의 죄는 성소를 부정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은 대속죄일에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죄하고 성막을 속죄하여 거룩하게 하였다.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며 회막과 단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제사장들과 백성의 회중을 위하여 속죄할지니.”(16:33). 속죄제에 뿌려지는 짐승의 피는 이스라엘 백성과 성막을 거룩하게 하였다.

 

속죄제는 제사장과 이스라엘 온 회중의 죄를 구분하였고, 족장과 평민이 범한 죄를 구분하였다. 제사장와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한 속죄제는 수송아지를 드려 피를 가지고 성소의 휘장 앞에서 일곱번 뿌리고 향단 뿔에 발라야 했다(4:3-7, 13-18). 나머지 피는 번제단 밑에 쏟았다. 그러나, 족장이 죄를 범하면 수염소를 희생 제물로 드렸고, 평민은 암염소를 희생 제물로 드렸다(4:23,32). 그러나, 경제적인 여럭이 부족하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둘을 드릴 수 있었고, 그나마 여력이 없는 경우에는 고운 가루 에바 십분 일을 드려 속죄 제물을 드릴 수 있었다(5:11).

 

예배자는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희생 제물을 가지고 성막에 온다. 이때 예배자는 희생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짐승을 죽인다. “곧 그 수송아지를 회막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4:4). 머리에 안수하는 것은 자신의 죄를 희생 제물에 전가하는 것이며, 희생 제물은 그 사람을 대신하여 제단에서 피흘려 죽었다. 예배자는 자신이 범한 죄로 인하여 희생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 했다. 이는 인간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어린양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상징한다. 제사장은 희생 제물의 피를 제사장이나 온 회중을 위하여는 성소의 휘장에 일곱번 뿌리고 또한 성소의 분향단의 불에 발라야 했다. 나머지 피는 번제단 밑에 쏟았다. 다음에는 속죄 제물의 기름과 콩팥과 간의 꺼풀을 취하여 번제단 위에 불살랐고, 나머지 가죽과 모든 고기와 내장은 진 바깥의 재 버리는 곳에서 불로 태웠다. 희생 제물의 피가 성소에 뿌려진 제물은 모두 진 바깥에서 불태워야 했지만, 놋제단에서 피를 흘린 제물의 고기는 제사장의 몫으로 돌려졌다. “죄를 위하여 제사드리는 제사장이 그것을 먹되 곧 회막 뜰 거룩한 곳에서 먹을 것이며 ... 그러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 성소에서 속하게 한 속죄제 희생의 고기는 먹지 못할찌니 불사를찌니라.” (6:26,30). 놋 제단에 피를 바르는 경우는 족장과 평민의 죄를 속죄할 때였다. 이때는 제사장이 기름과 콩팥과 간의 꺼품을 번제단에 태우고 나머지는 제사장이 거룩한 곳에서 먹었다.

 

속죄제는 죄를 슬퍼하며 회개하는 제사였기에 고운 가루로 드릴 때는 유향이나 기름을 섞지 말아야 했다(5:11). 속죄제는 먼저 제사장의 범죄가 백성들에게 죄를 입게 함으로 수송아지의 피를 성소의 향단뿔에 발라져야 함을 가르친다. 제사장은 이스라엘의 영적인 지도자로서 그의 죄는 온 백성이 죄를 범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죄는 이스라엘 온 회중의 죄와 같이 무거운 죄로 간주되어 수송아지를 희생 제물로 드리고 제물의 피는 성소의 휘장 앞과 분향단에 뿌려졌다. 속죄제는 부지중에 죄를 범했다고 자신의 죄를 깨닫고 난 후에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였다.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그 범한 죄를 깨달으면 회중은 수송아지를 속죄제로 드릴찌니 그것을 회막 앞으로 끌어다가.”(4:13-14). 속죄제는 부지중에 범한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희생 제물을 드려 자신의 죄를 속죄하였다. 부지중에 범한 죄에는 자신이 본 일이나 아는 일을 진술치 아니하거나 악한 맹세를 한 것에 대하여 깨닫는 것이 포함되었다(5:1-5). 그러나, 하나님께 의도적으로 반역한 죄는 속죄할 수 없었다. 민수기 15장은 부지중에 그릇 범죄하면 속죄제를 드려 속죄함을 받을 수 있으나, 하나님을 훼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명령에 불순종하는 자는 백성에게서 끊쳐졌다. “본토 소생이든지 타국인이든지 무릇 짐짓 무엇을 행하면 여호와를 훼방하는 자니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 그런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 명령을 파괴하였은즉 그 죄악이 자기에게로 돌아가서 온전히 끊쳐지리라.”(15:30-31). 속죄받지 못하고 죽음을 당하는 예는 안식일에 일을 하는 경우는 죽임을 당하였다(15:35). 왜냐하면, 그는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였기 때문이다. 만일 실수로 사람을 죽이는 자는 도피성으로 피하여 죽음을 면할 수 있었지만, 철 연장이나 돌을 들고 원한으로 죽인 자는 속죄받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였다(35:16-17). “살인죄를 범한 고살자의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고 반드시 죽일 것이며.”(35:31). 이와같이 의도적인 살인은 속전으로 속죄할 수 없었고 자신의 피로 속죄해야 했다. 히브리서 6장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본 자가 타락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받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한 자는 다시 회개케 할 수 없다고 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면서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자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죄악 가운데 살아가는 자이다. 그러한 자는 하나님의 버림을 받아 저주함에 가까운 자가 된다고 경고했다.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6:5-6).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린 자가 복음을 떠나 세상의 죄에 거하는 자는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자이다. 하나님은 이와같이 의도적으로 불순종하고 반역하는 자에 대하여는 다시 회개케 할 수 없다는 강한 경고를 주셨다. 이는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반역하는 자를 다시 은혜의 교제 안으로 초청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일을 범하거나 원한으로 살인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을 향한 의도적인 불순종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끊어지게 한 것과 같다. 그들을 위한 속죄이 없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신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함을 입은 자이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10:10).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거룩하게 된 성도는 성전된 자신의 몸을 정결하도록 양심과 마음의 순결을 지켜야 한다.

 

속죄제물이 흠이 없어야 했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흠이 없는 자로서 하나님께 자신을 속죄제물로 드리셨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53:6).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담당하셔서 우리의 죄를 속죄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친히 담당하시기 위하여 죽음에 자신을 드리셨다. 속죄제는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벧전 1:18-19). 예수 그리스도가 피를 흘려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대속물이 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죄를 속죄하고 거룩하게 하였다. 이에 성도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다. 성도의 몸은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이기에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성도가 죄 가운데 거하면 하나님이 충만함으로 거하실 수가 없다. 그러기에, 자신의 몸을 성전과 같이 정결하도록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성도는 자신의 양심과 마음을 정결케 함으로 하나님과의 교제에 힘써야 한다. 성도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 속죄제의 피가 성막을 정결하게 함으로 하나님이 거하셨듯이, 성전된 성도는 하나님의 거하시는 거룩하고 정결한 자가 된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속죄제는 자신의 죄를 깨달은 자가 하나님께 희생 제물의 피로 자신의 죄를 속죄받아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에 있었다. 이와같이 자신의 죄를 깨달은 성도는 하나님께 나아가 죄를 자백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함을 받아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5. 속건제는 인간의 죄값을 치루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한다.

 

속건제는 배상을 위한 제사의 의미이다. 속건제에는 흠없는 수양을 제물로 드려야 했고, 범죄한 부분에 대하여 오분 일을 더하여 배상해야 했다 (5:15-16). 속죄제에서는 황소와 염소, 암양과 새들을 제물로 드릴 수 있었다. 그러나, 속건제에는 수양만을 드리는 점에서 속죄제와 차이가 있다.

 

속건제는 예배자가 흠없는 수양을 번제단으로 가져온다. 민수기 57절에서는 자신의 죄를 자복하는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그 지은 죄를 자복하고 그 죄 값을 온전히 갚되 오분지 일을 더하여 그가 죄를 얻었던 그 본주에게 돌려 줄것이요.” (5:7). 그러므로, 속건제에서도 예배자는 짐승을 죽이기 전에 자신의 죄를 자복하여 동물에게 전가하도록 머리에 손을 얹었을 것이다. 번제나 화목제와 같이, 피는 단에 뿌려지고 양의 기름과 꼬리 부분, 그리고 두 콩팥과 간에 덮인 꺼풀은 제단 위에서 태워졌다 (7:1-5). 그리고, 제사장은 나머지 부분을 거룩한 곳에서 먹도록 허용되어졌다 (7:6-7).

 

속건제를 드리는 경우는 여호와의 성물에 범과하였을 때이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성물에 대하여 그릇 범과하였거든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되 ...” (5:15). 하나님께 범죄하는 범과에 대하여 성경은 간음이나 우상을 숭배하고 이방인과 결혼 하는 경우를 지칭하였다. 하나님께 범죄했을 때에 속건죄를 드려 자신의 죄를 속죄 받아야 했다. 성물이란 거룩한 것으로서 성소나 거룩을 의미한다. 여호와의 성물이란 하나님께 드린 제사 제물을 의미한다.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은 화목제를 제외하고는 제사장들과 그들의 가족들만이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제사장 외에 다른 사람이 부지중 성물을 먹으면 그 성물에 오분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주라고 하셨다. “사람이 부지중 성물을 먹으면 그 성물에 그 오분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줄찌니라.” (22:14).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은 거룩하여 사람이 함부로 취하여 더럽히지 말아야 했다(27:9). 속건제는 부지중에 범한 허물에 대하여 속죄를 받을 수 있었다. 부지중에 범한 죄에 대하여 구속받기 위하여는 흠 없는 수양을 속건 제물로 드려 속죄를 받아야 했다. 그는 자신이 취한 것에 대하여 오분의 일을 더하여 배상한 후에 양을 제단에서 잡아야 했던 것이다. 하나님께 희생 제물을 드리기 전에 자신이 취한 것에 대하여 오분의 일을 더하여 배상해야 했다. 속건제는 의도적으로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강도질 한 후에 그 사실을 부인하는 경우이다. 그리고, 남의 잃은 물건을 얻고도 거짓 맹세로 그 사실을 부인하는 죄에 해당한다. 누구든지 의도적으로 죄를 범했다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였다면 그는 자신이 취한 물건을 주인에게 오분의 일을 더하여 돌려주어야 했다(6:5). 그리고, 자신은 속건제를 드리기 위하여 수양을 제사장에게로 가져와 제물로 드려야 했다. 그리하면, 그는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었다.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는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얻으리라.” (6:7).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종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속건제물로 드려졌다고 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시고 죽임 당하셔서 우리의 죄를 속죄하심을 보여준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 (53:10).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들의 죄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신 것은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시기 위하여 대속의 제물이 되신 것이다. 속건제는 죄의 값을 양의 희생으로 드리듯이, 인류가 범한 죄를 주님께서 자신의 피값으로 값으시는 것을 보여준다. 속건제는 사람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여 죄의 값을 치루어야 하지만, 드려진 희생 제물로 값을 대신 치루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하나님은 죄에 대한 값을 희생 제물을 통하여 만족하시는 것이다.

 

산상 수훈에서 주님은 속건제의 비유로 형제와의 화해를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5:23). 주님은 형제에게 잘못한 일이 있다면 형제에게 끼친 손실을 배상한 후에 화해를 하고난 후에, 하나님께 나아와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다. 이는 속건제가 자신이 범한 죄과에 대하여 오분의 일을 더한 후에 하나님께 수양으로 희생제물을 드리는 원리에서 나온 것이다.

 

레위기의 제사는 죄인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보여주는 것이다. 제사를 드려질 때는 한 종류의 제사보다는 여러 종류의 제사가 혼합되어 드려질 때가 많이 있었다. 화목제는 번제물 위에서 드려졌고 소제의 제물도 함께 드려졌다. 제사장을 위임하는 제사에는 번제와 속죄제, 그리고 소제가 함께 드려졌다. 아론이 드린 첫 제사에서는 번제와 속죄제, 그리고 화목제가 같이 드려졌다 (9). 번제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화목하는 길을 보여준다. 이는 죄인된 인간은 죽어야 마땅하지만 자신을 대신하여 동물이 피흘려 대신 죽게 하였다. 이때 하나님은 인간의 생명을 위한 대속물로 동물의 희생을 받으시고 사람과 화목하셨다. 속죄제는 정결을 의미하는데 사람의 죄로 인하여 사람과 세상이 더러워짐으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실 수 없게 되었다. 이때 동물의 피가 성소를 정결하게 함으로 하나님이 그의 백성과 함께 거할수 있게 된 것이다. 속죄제는 성소와 사람을 정결케 하는 희생 제사이다. 속건제는 죄에 대하여 대가를 지불함으로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제사이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셔야 하지만 희생된 제물이 그 값을 지불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만족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제사의식은 우리의 죄 값을 위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묘사하는 그림자이다.

 

인간은 죄인으로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짐승의 피로 죄를 속죄한 후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었다. 신약에서는 구약의 제사를 영원한 속죄로 성취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고 있다. 침례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 ...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1:29) 라고 선포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셨다. 히브리서 926절은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없게 하시려고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리셨다고 했다. “...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9:26). 구약의 제사는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인 것이다. 구약의 제사는 완전하지 않기에 해마다 드려야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단번에 드리심으로 인간의 죄를 단번에 속죄하셨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9:12).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리심으로 우리를 위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의 죽음으로 믿는 모든 자들은 죄를 속죄받고 거룩함에 이르게 되었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0:10).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사함을 받은 자들은 거룩함과 온전함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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