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령

잃은 영혼을 구원하라 (눅 15:3-7)

비전의 사람 2021. 3. 1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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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은 영혼을 구원하라 (15:3-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15:7).

 

예수님께서는 잃은 양의 비유를 통해서 영혼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그는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잃은 양을 찾으러 나갑니다. 그때 그 사람이 잃은 양을 찾게 되면 그는 즐거운 나머지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벗과 이웃을 불러 함께 잔치를 벌이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가 잃은 양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양이 산에서 늑대의 희생이 되거나 추위에서 얼어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렇게 잃은 영혼이 돌아올 때에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15:7). 이 땅에서 죄인 한명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올 때에 하늘에서는 의인 아흔 아홉보다도 더욱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천국의 기쁨은 잃은 영혼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왔을 때인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잃은 양이 돌아오기를 기뻐하실까요? 잃은 양은 하나님을 떠나서 방황하는 영혼들을 의미합니다. 한 영혼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영혼 구원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요일 4:9).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심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죄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렸고 죄와 사망의 어두움에서 방황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영적인 분리가 이루어진 인간은 어둠속에서 고통하며 방황하게 된 것입니다.

 

마치 양이 목자의 품을 떠나 산에서 방황하듯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점점 죄의 깊은 수렁에서 고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구원하기를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희생하심으로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일서는 하나님의 사랑은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시고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린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로마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5:8) 라고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게 하심으로 그 분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왜 목자는 99마리의 양을 들에 남겨두고 한 마리를 찾기 위해서 산을 헤매며 찾았을까요? 왜 목자는 잃은 양을 찾았을 때에 동네 사람들과 함께 잔치를 베풀었을까요? 잔치를 베풀게 되면 양한 마리보다 몇 배의 비용 지출이 있을텐데 말입니다. 이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인 것입니다. 잃은 양을 향한 목자의 사랑인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잃어버린 인간을 찾기 위해서 독생자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을까요? 왜 하나님은 아들을 이 땅에서 십자가의 엄청난 희생을 당하시며 죄의 저주를 받게 하셨을까요?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은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나요? 우리의 마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하나님을 본 적도 업는데 어찌하여 우리를 사랑하시나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본성은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셨고 사랑하셨습니다. 아니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창조하신 것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3:17). 하나님은 전능자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하여 기쁨을 참지 못하시며 잠잠히 사랑하시며 즐거이 노래하며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은 우리를 구원하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사랑은 희생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를 희생하시면서 자신의 참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결과는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16). 하나님의 사랑이 없이는 사람은 아무도 구원받지 못하며 영원한 심판의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가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 보여주셨고, 누구든지 믿는 자는 영생을 얻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2. 영혼 구원은 그리스도의 속죄 희생의 댓가입니다.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요일 2:2).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사랑으로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요한일서는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요일 2:2) 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죄를 위해서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심판을 당하신 화목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희생의 죽음이었습니다.

 

침례요한이 예수님을 향하여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일 1:29)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한 사람이나 이스라엘의 죄를 위해서 어린 양이 희생되었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대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안에 구원의 은혜가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으시고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53: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희생양이 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고통중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시며 참으셨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53:7). 주님은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고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53장을 통해서 사람을 의롭게 하며 죄악을 친히 담당하시는 의로운 종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하여 사람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구원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잃은 영혼에게 다가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잃은 영혼들이 돌아갈 선한 목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잃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보혈의 능력으로 영혼들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십니다. 세상의 소망은 어디에 있나요? 세상이 영원히 의지할 반석이 어디 있나요? 세상의 유일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죄를 사함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 나아가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할 때에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영혼들이 구원받고 영원한 안식인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면 천국에서 큰 잔치가 벌어지며 하나님의 교회에서 기쁨이 가득한 그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3. 영혼 구원은 성령의 구원하시는 역사를 경험하게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3:5).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승천하시고 난 후에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안에 내주하셔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위로하시며 깨닫게 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며 중보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말씀으로 정결케 하시며 하나님의 사역의 통로가 되도록 은사를 주셔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도록 하십니다. 성령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삶은 성도가 누리는 특권인 것입니다.

 

성령님의 많은 사역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역은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거듭나는 것은 말씀과 성령의 능력인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마음에 죄를 깨닫게 하심으로 예수님께로 나아오게 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은 죄의 결과가 영원한 지옥의 심판임을 깨닫게 하심으로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와 구원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죄인임을 깨닫게 하심으로 회개하게 됩니다. 그리고, 구원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도록 환경을 여시며 마음을 변화시키시고, 말씀을 들을 때에 깨닫게 하시는 은혜를 주십니다. 복음을 깨닫지 못한다면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복음의 위대한 진리를 깨닫게 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주님께 나아가 구원받는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3절에서는, “...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 예수를 구원자이며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성령이 일하시는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순간 성령은 우리와 듣는 자에게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전하는 우리에게는 성령의 권능을 부어주시고 듣는 자에게는 죄를 깨닫게 하는 역사가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힘쓰는 것은 성령의 역사하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빌립이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서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했듯이, 우리도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순종하며 주님의 복음을 영혼들에게 전하는 열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4. 영혼구원은 지옥의 문을 막는 것입니다.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20:14-15).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랑을 독생자의 희생을 통해서 보여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죄의 결과로 인한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될 때에 그 영혼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게 됩니다. 그 심판은 백보좌 심판으로서 자신이 행한 행실대로 형벌을 받아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생명책은 구원받은 자의 이름이 기록된 책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영혼은 영원한 불못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혼을 예수님께로 인도해야 하는 이유는 구원받지 못한 영혼은 영원한 지옥불에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지옥에 대해서 가장 많이 가르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지옥은 실존하는 것이며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감당해야 할 고통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10:28) 라고 하셨습니다. 몸과 영혼을 지옥에서 멸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세상이 두려워야 할 존재는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몸과 영혼을 불타는 지옥에서 멸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끝날에 주님은 천사를 보내어 의인과 악인을 나눌 것입니다. 의인은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게 될 것이지만, 죄인은 풀무 불에서 울며 이를 갊이 있을 것입니다. 울며 이를 가는 것은 심판에 대한 고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마가복음에서 지옥은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한다고 하셨습니다.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 (9:48-49). 지옥은 구더기도 죽지 않는 곳입니다. 그리고, 불도 꺼지지 않기에 영원한 고통을 당하는 곳입니다. 어떻게 지옥의 심판을 피할 수 있나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피난처로 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방주가 되시기에 주님을 영접하여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며 생명의 길입니다.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20:10). 지옥에는 마귀가 있고 적그리스도가 있으며 거짓 선지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거절한 영혼들이 죄의 결과로 지옥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지옥은 넓게 열려 있어서 수많은 영혼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 길은 넓은 길이라 찾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옥의 넓은 문을 막는 유일한 길은 종교나 선행의 열심히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지옥의 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영혼을 정결하게 할 때 닫혀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찾아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리 토마스는 길 잃은 이들을 위해서 누군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결코 구원 받을 수 없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길 잃은 양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찾아가지 않는다면 그들은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복음의 능력을 확신하는 가운데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여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가 죽임당하는 고통을 지켜보아야만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믿는 자를 구원하십니다. 그러나, 이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는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마음에 품고 복음의 능력을 신뢰하며 한 영혼에게 찾아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주님은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18:14) 라고 하셨습니다. 작은 자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주님께서는 이제 우리를 통해서 잃은 자를 찾으십니다.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서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에 순종함으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기쁨을 누리며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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