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나는 성숙한가?

비전의 사람 2022. 2. 5.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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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4:13-15).

 

우리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남으로 새 생명의 삶을 살아갑니다. 이때 우리는 영적인 아기로 출생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성장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하기까지 성장하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영적 성숙을 기대하십니다.

 

우리가 영적인 성숙을 위해서 제자 훈련 사역이나 목장 모임을 통해서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기자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알아가는 일에 하나가 되어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배워갈 때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면 어린 아이처럼 요동하지 않고,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미완성입니다. 즉 영적 성숙을 완성한 것이 아니라 완성해 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가 성숙하는 과정을 신학적 용어로 성화의 구원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자신이 영적으로 성숙하고 있는지 아니면 영적으로 퇴보하고 있는지 자신을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영적인 성숙을 이루어가는 삶이 무엇인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성숙한 사람은 공동체의 유익을 우선시 합니다.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살전 2:8).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위대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모님들은 자신의 유익보다는 자녀들을 위해서 희생하는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은 아직 어리기에 자신의 유익만을 생각합니다. 자신을 위한 공부와 여가 생활 등을 하지만 다른 가족을 위한 희생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신의 유익만을 생각하지 않고, 끝까지 자녀들의 학업과 결혼, 그리고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무한한 책임을 지며 희생합니다. 아침마다 자녀들의 식사를 챙겨주고 저녁을 준비해서 먹이고, 빨래를 해주고, 직장 생활하여 번 돈으로 자녀들의 교육비와 학원비 등을 지출합니다. 본인을 위해서는 돈을 사용하지 않지만, 자녀들의 필요가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빚을 내서라도 그 필요를 채우려는 마음의 부모의 희생적인 마음인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성숙하면 할수록 자신에 대한 관심이나 유익을 구하지 않고, 교회와 지체들의 유익을 위해서 희생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 라고 했습니다. 성숙한 사랑은 자신보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인 가정과 교회, 자신이 속한 국가의 유익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려는 군사적인 움직임이 나타나자, 우크라이나의 여성들이 총을 들고 훈련하며 자신의 나라는 자신들이 지킨다 라는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조국이 위험해지자 그들은 총을 들고 나서서 한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개인주의로 살도록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가족의 일원이 되었고, 교회에서는 한 지체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성장할 수록 개인의 유익보다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유익을 우선 순위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미성숙한 자는 자신의 유익만을 생각합니다.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의 특징은 원망과 불평입니다. 그러나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섬기는 자는 그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희생하며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자신이 유모가 자녀를 기르듯이, 그들을 돌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복음을 주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 주기를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살전 2:8). 이는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교회를 세운 후에 핍박이 찾아오자 목숨이 위급했던 상황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사도 바울은 복음의 볼모지인 데살로니가에 복음으로 교회를 세웠고, 그 후에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 주기를 기뻐했던 희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성숙한 사람은 어려운 상황에서 교회를 지키기 위한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이후로 사명을 포기했더라면 어떠했을까요? 그는 그냥 평범한 그리스도인으로 삶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그리하면 전 세계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은 상당히 지체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의 유익보다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상을 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로 결단했습니다. 그의 영적인 책임감은 그로 하여금 위대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한 것입니다. 그의 생애는 그가 희생했던 분량만큼 위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살지 않으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를 위해서 사시며, 우리를 위하여 생명까지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10:11,15).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 분은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사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를 위하여 목숨까지 버리셨습니다. 그 분이 온 세상을 위하여 사신 것은 온 세상을 향한 비전을 품으셨고,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영적인 사명을 감당하신 것입니다. 빌립보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온 세상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가장 존귀한 이름이 되셨음을 증거합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2:8-11).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드리셨기에, 그 분의 이름은 가장 존귀하며 온 세상의 주가 되셨습니다.

 

자신의 유익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자는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자신의 세계관에 자신이 중심이 되기에 외롭고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삶은 성경이 가르치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풍성한 삶을 초청하십니다. 하나님이 초청하는 삶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세상을 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은 더욱 가치있고 존경을 받으며 주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윌리엄 캐리는 자신보다는 세상을 품었기에 위대한 선교사의 삶의 자취를 남길 수 있었습니다. 아도니람 저드슨은 남들이 현실에 안주하고 있을 때에 자신의 삶을 버마라는 불교 국가에 던져 복음을 전함으로 위대한 선교사로서의 자취를 남길 수 있었습니다. 그가 희생하여 복음을 전한 곳에 그리스도인이 생겨나고 교회가 세워졌으며, 성경이 번역됨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졌습니다.

 

2. 성숙한 사람은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감당합니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4:16).

 

성숙한 사람과 미성숙한 사람, 또는 리더와 팔로워의 차이는 책임감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입니다. 가정에서 부모님은 자신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알기에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직장을 지키고 사업체를 지키는 것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큰 도전이 찾아올 때에 그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그 책임을 완수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어려움이 찾아오면 책임을 회피하거나 포기합니다.

 

부모님이 연로하시면 성숙한 자녀들이 그 부모님을 향한 책임을 다하게 됩니다. 저희 가정에서도 형님이 곁에서 어머님을 모시면서 책임을 다하는 모습에 항상 감동을 느낍니다. 처가집에서도 몸이 불편하셔서 거동을 못하시는 아버님을 위해서 어머님이 24 시간 간호하시고, 처남이 매일 아침 목욕을 시켜 드리고 아내와 아들로서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가정의 하나됨이 깨어지지 않고 잘 지켜가며, 그러한 책임을 다하는 분들로 인하여 가정이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책임을 다하시는 분들은 많은 괴로움과 아픔을 참아내야 하는 인내의 모습을 견디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후에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교회로서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의 교회는 저절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각 성도님들의 큰 희생과 헌신, 그리고 기도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 위하여 각자 자신의 유익을 포기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후로 실망하여 갈릴리로 돌아가서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이때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을 다시 부르셨습니다. 그들이 처음 주님으로 부르심을 받을 때에 고기가 아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그들이 있을 곳은 고기를 잡는 갈릴리 바다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있어야 할 곳은 영혼들이 있는 갈릴리의 동네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들을 더 가치있는 삶으로 부르셨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주님은 제자들이 감당해야 할 영적이 책임이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복음을 전하고 양들을 말씀으로 먹이는 삶은 그들의 삶을 더욱 가치있고 위대하게 만드는 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예배를 드릴 영적인 특권이자 책임을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의 영광이 동시에 교회가 영적으로 충만하게 하는 통로가 됩니다. 우리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 예배의 시간임을 확신하며 예배를 사모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배에서 한 사람이라도 빠지는 것은 교회의 충만함을 저해하는 요소가 됩니다. 우리는 모두가 함께 하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를 충만히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복음 전도와 선교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명은 어두운 땅에 복음의 빛을 비추는 것이며, 세상을 품고 선교사를 후원하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 교회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사명은 복음 전도의 사명입니다.

 

병원의 존재이유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함인 것처럼, 교회의 존재이유는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병원이 환자들을 방치하거나 거부한다면, 그 병원은 존재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코로나 초기에 유럽의 병원들이 코로나 환자들을 치유하면서 의료진들의 사망이 잇따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 알기에 그 사명을 회피하지 않는 것입니다. 군인들의 존재 이유는 나라를 지키는 것이기에 적군이 공격해오면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교회의 존재이유는 복음 전도입니다. 우리는 힘을 다하여 어두운 땅을 밝히는 복음 전도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는 복음 전도 뿐만 아니라,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선교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계에 다니며 전하지 못하기에, 선교사님들의 사역을 물질로 후원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갈 수 없는 몽골이나 중국, 그리고 멕시코나 일본, 아프리카의 나라에 선교사님들이 가셔서 복음을 전하도록 물질과 기도로 후원하는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선교를 위해서 선교 헌금으로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하나됨을 지켜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존재합니다. 몸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가 될 때에 건강한 몸으로 자라갈 수 있습니다. 질병이란 몸의 한 군대가 끊어지거나 막힌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수술로 그 막힌 곳을 뚫어주거나, 부러진 곳을 연결해서 몸이 원활하게 활동하게 합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가 되도록 서로 연결하여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기자는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4:3)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성숙한 사람은 교회가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지만, 미성숙한 사람은 다툼과 원망으로 교회를 분열시키려 합니다. 우리는 성숙한 자로서 교회의 지체들이 서로 연합하도록 돕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됨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우리를 연합하게 하며 하나되게 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가정이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될 때에 가장 행복하듯이, 교회도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될 때에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됨을 지키기 위해서는 다른 지체에 대하여 비방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4:29). 하나님은 미리암이 모세에 대하여 비방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비방하여 분열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서로의 허물을 감추어 주며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교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주님의 몸을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주님 안에서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며 품어주어야 합니다.

 

그 외에도 우리는 교회의 재정적인 필요를 위해서 십일조를 드리고 그 외에 건축 헌금 및 감사 헌금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재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드리는 것은 우리의 믿음과 성숙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위하여 감당해야 할 영적인 책임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교회에 대한 영적인 책임을 게을리하는 부분이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숙할 수록 교회에 대한 영적인 책임을 감당하며 물러서지 않는 성숙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3. 성숙한 사람은 서로를 세우는 일에 헌신합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4:15).

 

성숙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세우는 일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을 세우는 일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이 세워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교회도 세워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기자는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가라는 것입니다.

 

성장이란 결코 혼자 일어나지 않습니다. 영적 성장은 항상 영적인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우리의 영적 성장은 교회라는 영적인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사랑하는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리더의 가르침을 통하여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1:26). 사도 바울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하여 모든 지혜를 각 사람을 가르친다고 했습니다. 이는 각 사람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사도 바울이 애쓰는 모습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통하여 디모데와 같은 믿음의 제자들이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저희 교회에서도 제자 훈련과 목장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 중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사역의 현장에서 헌신하는 임승룡 목사님이나 민재홍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 분들은 각자의 사역 현장에서 귀하게 쓰임받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쓰임받을 수 있는 이유는 교회에서 훈련을 통하여 영적인 사람으로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영적인 부모가 되어 개 교회에서 목회자로 귀하게 쓰임받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수 많은 사역자들이 저희 교회를 통하여 배출되어 하나님의 교회에서 섬기고 있습니다. 사역자들 외에도 교회에서는 영적인 리더들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학생부에서 성장하여 대학부 청년부가 된 이후에 그들은 다시 주일학교와 학생부 목자로 섬기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청년부 목자로 섬기며 다른 제자들을 세우고 있습니다.

 

청년부에서 훈련받은 후에 결혼 후에는 장년과 주부에서 목자로 섬기는 리더들로 세워졌습니다. 그 중에는 집사 직분을 받아 하나님의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기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와같이 영적인 리더들이 세워지게 되는 비결은 교회가 한 사람을 세우는 일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영적인 사람들이 세워져서 하나님의 교회가 굳건히 세워지고 재생산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사역에서 끊임없이 제자들이 세워지고 또 다른 제자들이 세워지는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사도 바울은 영적으로 성장하여 목회를 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 2:2). 사도 바울은 충성된 사람들을 가르쳐서 그들을 영적인 리더로 세워가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들이 또 다른 사람을 가르쳐서 영적인 리더로 키워진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리더가 영적인 리더를 세우는 것입니다. 리더의 재생산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우리는 함께 제자를 세워가는 사역을 지속적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청소년들이나 주일학생들이 지금은 열매가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귀한 열매를 맺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23년 전에 미국의 L.A. 에서 사역을 할 때에 학생들이 방황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고 양육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들 중에는 목회자나 선교사가 배출되고, 교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교사들로 세워져 헌신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세우셔서 그 분의 뜻을 행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태어났을 때에 그가 장차 이스라엘을 구원할 위대한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 되었다가 살인 한 후에 미디안으로 도망한 후에 40년이 흘렀습니다. 모세라는 사람은 그냥 잊혀진 사람이었고, 모세 자신도 모든 비전을 잊고 목자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부르시고 함께 하시자 그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받을 수 있었습니다.

 

목자가 양들을 인도하며 세워가듯이, 우리는 양들을 인도하고 세워가는 영적인 리더로서의 비전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녀를 주님의 제자로 세울 수도 있고, 목장의 누군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가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을 세워가는 비전을 품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일하시는 것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성장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성장하도록 돕는 자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워가도록 말씀으로 인도하고 양육하는 자인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다른 사람을 세우는 일에 헌신하는 성숙한 리더인가요?

 

오늘 우리는 성숙한 사람에 대한 모습을 나누었습니다. 성숙한 사람으로서 우리는 자신의 유익보다는 교회의 유익을 우선시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교회에 대한 영적인 책임을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부르심에 순종하여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다른 사람을 세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세우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성숙한 사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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