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강해

에베소서 강해(7) -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엡 2:1-10).

비전의 사람 2023. 4. 2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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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7) -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2:1-10).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2:4-6).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것이 과거의 죄로부터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은혜를 얻으려면 두 번째 축복을 받아야 하는데, 이런 것은 기도해서 성령을 받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소유한 자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풍성한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며 완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받는 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이며, 거듭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상을 숭배하는 일본이나 태국에 가서 복음을 전하면, 그들이 예수님을 영접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는 진정한 의미를 모르기에 자신의 신에 다른 신을 한 명 더 두는 다신교적인 개념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영적인 축복과,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시는 교회의 지체로 살아가는 미가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에서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부르시고 구속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설명한 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영적인 눈으로 하나님이 주신 풍성한 은혜와 부르심의 소망, 그리고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알기를 소망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셔서 그 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늘로 올리우신 후에 하나님의 우편에 앉히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능력은 믿는 우리에게 역사하여 우리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몸의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옮기실 것입니다. 그런데, 에베소서는 우리에게 육적인 몸은 이 땅에 있지만 영적으로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21-10절에서는 구원의 다양한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3절은 구원받기 전의 모습, 4-6, 8-9절은 현재의 모습, 그리고 7, 10절은 구원받은 자의 미래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는 허물과 죄로 죽은 자였습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2:1-2).

 

성경은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살리셨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영적으로 죽은 상태를 의미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리심을 얻기 전까지 우리는 영적으로 죽은 상태였습니다. 에베소서 418절은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4:18)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는 것은 영적으로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었다는 것은 육체적인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는 영적인 상태를 의미합니다. 영적으로 죽은 것은 육체적으로는 살아 있으나 영적으로 죽었기에 하나님을 향하여 죽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겉사람은 살아있으나 속사람은 영적으로 죽어 있기에 하나님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말씀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은 어떠한 외부적인 충격이 와도 아무런 반응을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큰 소리가 들려도 듣지 못하고, 아무리 좋은 음식이 있어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죽은 자는 생명이 없기에 결국 썩어지기에 땅에 장사지내게 됩니다. 이와같이 영적으로 죽은 자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구원받지 않은 자들은 영적으로 죽어 있기에 하나님을 향하여 죽은 자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는 영적으로 살아났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여 회개하기도 하고, 순종하며 그 분의 음성을 듣기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죽은 이유는 아담이 범죄로 인하여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를 범해서 죄인이 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허물과 죄는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지만, 사람이 사탄의 유혹에 빠져서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불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영혼을 죽게 한 죄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자기의 만족과 고집대로 행하여 죄를 범했습니다. 이러한 죄로 인하여 우리는 영적으로 죽어 있었고 사망아래 있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허물과 죄로 죽어 있었습니다. 이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에 대하여 죽어 있었기에 세상을 따라 살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2:2). 우리가 전에는 이 세상 풍속을 따르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전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성경 구절을 잘못 해석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보게 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이 의미하는 이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가 다스리는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 사탄이 구축해 놓은 죄악된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대적하는 진화론과 같은 인본주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질서를 거부하는 동성애, 트랜스젠더 같은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의 주가 되심을 부인하는 안락사 같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을 부인하는 쾌락적이고 방탕한 세상의 가치가 있습니다. 이러한 부도덕한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 풍속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의 풍속의 배후에는 사탄이 있습니다.

 

사탄에 대하여 성경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고 했습니다. 더 정확한 표현은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 (the prince of the power of the air)입니다. 공중의 권세를 잡은 의미는 무엇인가요? 공중은 일차적으로 우리가 바라보는 하늘과 같은 곳이기도 합니다. 이 곳에서 권세를 잡은 사탄이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다니엘서는 하나님께서 다니엘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셨는데, 바사국 군이 막았다고 했습니다. 이는 페르시아 지역에 역사하는 사탄의 수하로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공중은 우리가 보는 하늘 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침투된 어두움의 세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사람은 진화론을 만들어 하나님의 창조론을 부인하였고, 유물론 사상을 만들어 모든 것은 물질로 되어 있고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유물론 사상 위에서 공산주의가 생기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기독교인을 핍박하는 일들을 했습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문화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가치가 이 세상에 뿌리내리게 합니다. 음악에 사탄을 찬양하는 코드가 들어가 있고, 영화나 드라마에 동성애나 성의 자유 같은 타락한 것을 넣어 사람들의 가치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국제적인 정세에서 전쟁을 일으켜 다른 나라에 침공하거나 내전을 일으키는 일들 모두가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배후에서 활동하는 모습들입니다.

 

에베소서는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2:2)라고 했습니다. 사탄이 역사하는 곳은 불순종의 아들들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죽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이 가르치는 철학과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르치는 본질은 바벨탑을 쌓았던 것과 같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시스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불순종하며 사탄의 종이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살아나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영적으로 분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탄이 하는 일은 결국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하는 일은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덫을 놓아 미혹하는 것입니다. 미혹된 영혼은 사탄의 종으로 살아가다 비참하게 되고 결국은 영원한 멸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우리는 전에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을 뿐 아니라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냈습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2:3). 구원받기 전에 공중의 권세 잡은 사탄을 따랐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때는 우리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행했습니다. 육체의 욕심과 마음의 정욕을 따라 행하던 삶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거부합니다. 그리고 에베소의 아데미 여신을 숭배하고 신전에서 여사제들과 성적인 타락에 빠지고 거리에서 술을 마시며 방탕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행하던 자들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살아가는 모습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2:4-6).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절망적인 형편을 아셨습니다. 우리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 아래서 영원한 멸망의 길로 가게 되는 상황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냥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에 풍성하신 자비로운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인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우리는 죄악이 가득하고 감사하지 않으며, 거룩하지 않은 자로서 전적으로 타락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나 공중의 권세 잡은 사탄에 순종하며 살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죄를 담당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죄로부터 벗어나 생명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죽은 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2:5).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셔서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셔서 생명을 주셨습니다. 구원이란 죄로 죽은 우리를 살리셔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었던 우리에게 참된 생명인 영생을 주셔서 살리셨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죽어 있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얻어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살아가는 자가 되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이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게 되었고, 성경 말씀이 진리임을 믿으며 그 진리의 말씀으로 영적인 양식을 얻는 자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 인도하실 뿐 아니라 죄를 깨닫게 하셔서 회개케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 안에서 교회에 속하여 함께 예배하는 기쁨을 누리게 하십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주 안에서 함께 하는 형제 자매들을 기뻐하며 사랑하며 귀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지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후에 생명의 삶을 살도록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사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2:6). 하나님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늘로 올리시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게 하셨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시고 하늘에 앉히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으키사 하늘에 앉히신 것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것입니다. 헬라어 원본으로 하면 이미 현재 진행으로서 이미 일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늘에 간적이 없는데 어떻게 이 구절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영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의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생명으로서 우리 안에 살아 있지만,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뿐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 거하도록 인도하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에 우리를 인도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로 입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길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구원은 행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선물로 받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2:8-9).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구원이 은혜가 되는 이유는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행위와 같은 노력으로 얻는 것이 구원이라면 한 사람도 구원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의는 하나님 앞에서 더러운 누더기와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의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담이 선악과의 열매를 먹는 한 번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죄인이 되었고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아담보다 더 많은 죄를 지으며 살아온 자들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선한 자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의인은 없으며 하나도 없으며라고 하며 사람들의 죄인됨을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3:10-18).

 

이와같이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입에는 독사의 독과 같이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에서 인간의 절망적인 상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죄인으로 살아가기에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시고 죽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선물인 영생을 얻는 자 되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죄에서 해방되게 하셨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생명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거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3. 구원받은 자를 예비하신 길은 하나님의 선한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2:10).

 

구원받은 자는 누구인가요? 사도 바울은 우리가 선한 일을 위하여 창조된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2:10).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에 우리의 속 사람을 새롭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아네서 선한 일을 위하여 창조함을 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작품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택하시고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선한 일을 하도록 그 길을 정하시고 선한 일을 하는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하는 자가 되도록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독생자이기에, 세상에서 방황하다 입양된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아들을 닮아감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간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들을 행하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기자는 우리가 아들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하나님이 미리 정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8:29-30).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들의 형상을 본받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아들의 형상을 닮아가는 자가 되도록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환경으로 연단하시며 우리의 의지가 그리스도에게 복종되도록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간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종의 모습으로 낮아져 섬기는 자가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이 되었듯이, 우리도 십자가를 지며 주님의 길을 가는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며, 더 나아가 우리의 종의 모습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안에 풍성하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택하셔서 구원하셔서 의롭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의롭게 된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미래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몸을 주셔서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에는 우리가 주님을 닮아가는 겸손의 모습에서 주님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선한 일에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는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6:9)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다 보면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상처를 받기도 하고, 낙심되기도 하며, 더 나아가 절망하기도 합니다. 이때 우리는 피곤을 느끼고 낙심하여 선을 행하기를 멈추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도 바알 숭배자들과 싸우고 승리했지만 이세벨이 죽이겠다는 경고를 받고 낙심하여 멀리 시내산까지 도망했습니다. 그가 동굴에 들어가 더 이상 사역의 길을 가고 싶지 않아 낙심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부르시며 사역의 길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자신만이 하나님을 위한 고독한 길을 간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는 칠천 명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다시 일어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역의 현장을 지켰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제자들은 모두 흩어졌습니다. 제자들은 낙심하여 더 이상 사역의 길을 갈 수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다시 갈릴리 바다에 가셔서 고기를 잡는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만일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양들에게 가서 양들을 인도하며 주님이 부르신 사명을 향하여 달려가라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주님도 우리를 향하여 포기하지 말고 주님이 맡기신 선을 행하는 일을 계속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때가 이르면 열매를 거두며 상급을 얻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새롭게 창조된 이유가 선한 일을 위한 것이기에 우리는 더욱 믿음으로 선한 일에 힘쓰는 주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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