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강해

에베소서 강해(5) -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비전(엡 1:15-19).

비전의 사람 2023. 3. 3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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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5) -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비전(1:15-1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1:17).

 

애배소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적 축복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이 얻게 되는 영적인 부요함에 대하여 알려주기를 원했습니다. 우리가 거듭나게 되는 순간 부유한 자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상속자로 태어나기 때문에 하늘에 속한 영원한 부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와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사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도록 예정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아들의 피값을 지불하셔서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보증하시기 위하여 성령으로 인치셔서 기업에 보증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며 천국에 있을 기업에 보증이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상속자로서 하늘에 속한 기업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기도하면서 그들을 인하여 감사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감사했던 것은 그들의 믿음과 사랑이었습니다.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 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1:15). 교회가 칭찬받는 것은 성도들에게 큰 격려가 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그들의 믿음으로 인하여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믿음은 두 가지의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구원하는 믿음입니다. 이는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마음에 영접하여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믿음은 바로 구원받는 믿음입니다. 다른 하나는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순종하며 살아가는 믿음입니다. 로마서는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사람은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성도를 향한 사랑이 열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믿음의 사람으로서 나타나야 할 덕목은 믿음과 사랑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복음으로 낳은 영적인 자녀들이 믿음과 사랑 안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적인 필요를 위해서 다음과 같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이 시대에 필요한 영적인 덕목을 갖추기를 간절히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1.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성도가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기를 기도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1:17).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에베소 성도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지혜와 계시의 정신이란 지혜와 계시의 영을 의미합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란 다른 말로 하면 영적인 분별력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지혜의 영을 갖는 것은 범사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의지보다 귀하게 여기는 삶을 살아갑니다. 지혜로운 영을 가진 자는 다니엘과 같이 뜻을 정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하면서도 왕이 주는 음식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단했습니다. 그의 믿음은 우상에게 더럽혀진 음식이나 율법에 의하여 부정한 음식을 거절함으로 자신을 순결하게 지키는 믿음이었습니다. 계시의 영이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영적인 안목을 의미합니다. 계시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일반계시로서 하나님께서 자연을 통해서 자신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특별계시로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그 분의 뜻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혜와 계시의 영을 얻게 되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영적인 눈이 밝아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눈이 밝아지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셔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게 하십니다. 고린도전서는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하심이라.”(고전 2:12)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을 아시기에 우리가 세상에서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패니 크로비스는 어릴적부터 눈이 멀어서 아무것도 볼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후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 다른 것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인 눈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며 감격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영적인 눈으로 본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찬송가로 작사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녀는 평생에 팔천편의 찬송가를 작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크로스비의 가장 잘 알려진 노래 중 일부는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Blessed assurance,Jesus is mine)",“예수 나를 위하여(Jesus shed His blood for me)”, “너희 죄 흉악하나(Tho' your sins be as scarlet)”, “예수께로 가면(If I come to Jesus)”, “인애하신 구세주여(Pass me not, O gentle Savior)”, “나의 갈길 다가도록(All the way my Savior leads me)”, “나의 영원하신 기업(Thou, my everlasting portion)"등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충만하게 되면 마음의 눈이 밝아지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의 눈이 있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육신의 눈은 세상 사람이나 우리나 모두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입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우리는 뉴스나 다양한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접하며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이 볼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영적인 눈인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고린도전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며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9-10).

 

우리의 영적인 눈은 마음의 눈입니다. 마음으로 보는 것은 성령이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육체의 눈이나 귀나 마음이 아니라, 성령께서 마음에서 깨닫게 하시고 보여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혜와 계시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영적으로 밝아지면서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눈이 밝아져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고, 은혜와 율법을 구분할 수 있으며, 진리와 비진리를 구분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로마서 1장에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1:21-22).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성령의 조명하심이 없기에, 그들은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짐으로 우준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로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사람이나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거룩과 정결을 떠나 정욕대로 살아감으로 자신의 육체를 더러움에 내어 버리게 되고, 더 나아가 순리를 버리고 동성애의 죄를 범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단에 빠진 자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신격화하는 우상숭배의 다른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은혜를 깊이 생각하며 그 분의 말씀 안에서 자라가게 됩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5:1-2).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 아래서 은혜로 살아가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인 눈이 더욱 밝아지도록 예배를 통하여 선포되어지는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깊이 배우고 묵상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아가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2.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성도가 부르심의 소망에 대하여 알기를 원했습니다.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1:18).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눈인 영적인 눈이 밝아져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은 세상에서 방황하는 우리를 부르셔서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셔서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우리에게는 영광스러운 소망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부르심의 소망은 무엇인가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아브라함은 열방의 아버지로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가나안 땅과 하늘의 별과 같은 후손들, 그리고 메시야가 그의 후손을 통해서 나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그 분의 때에 그의 후손을 통해서 성취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구원하신 소망은 무엇인가요? 우리의 소망 1호는 천국에 대한 소망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2-3).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천국에 처소를 예비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오셔서 우리를 천국으로 데리고 가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천국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합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21:2).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천국을 예비하셨습니다. 주님의 나라에서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부르신 성도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는 것입니다. 디도서는 에수 그리스도가 영광 중에 나타나시는 것을 복스러운 소망이라고 했습니다.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2:13).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복된 소망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은 예수님이 영광 중에 이 땅에 재림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실 때는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에서 강림하시게 될 것입니다. 이때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살아 남은 자들은 구름속으로 끌어 열로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인 바로 우리가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보아야 할 부르심의 소망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에 우리의 몸은 어떻게 되는가요? 우리의 몸은 속 사람이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처럼, 우리의 몸도 부활하신 주님과 같이 새로운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요일 3:2). 우리의 몸이 주님과 같이 새로운 몸으로 변화되어 공중으로 휴거되는 사건은 우리가 간직해야 할 복된 소망입니다.

 

소망이 있다는 것은 희망을 품고 산다는 것입니다. 소망이 없는 자는 절망감과 상실감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기에 점점 믿음에서 퇴보하고 삶에서도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의 여정에서 열정을 품고 날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우리에게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심으로 산 소망이 있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3-4).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소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망은 하늘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 즉 영원한 상속을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영적인 복을 바라보며 기뻐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거듭날 때에 영적으로 부요한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부요함은 오직 믿음의 눈으로만 바라볼 수 있는 영적인 것입니다. 그 영적인 실체는 우리가 주님의 나라에 이르렀을 때에 보게 될 것입니다.

 

3.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자신들이 하나님의 기업임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1:18).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의 영적인 눈이 밝아져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를 알기를 기도했습니다. 성도 안에서의 기업이란 우리가 얻게 될 기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인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신 하나님의 기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영광스러운 보물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우리를 바닷가의 모래 중의 하나로 취급하시면서 무관심하실까요? 우리의 삶에 대하여 무관심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크게 오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어두워지면 과연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실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며 하늘과 땅의 모든 피조물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부여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공중의 새나 들의 백합화보다 소중한 존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중의 새도 기르시고, 들의 백합화도 입히시며 돌보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모든 존재들보다 소중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2-33).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형편을 아시기에 우리가 주님의 일을 기뻐하며 힘쓸 때에 우리의 모든 필요를 더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세셔서 아시는 분이십니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10:30-31).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기에 우리를 지키신다고 하셨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키신다고 고백했습니다(시편 121). 우리는 하나님이 아들의 피값으로 사신 하나님의 소중한 기업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존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소중한 보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이기에 세상가 구별된 삶을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값진 보물로서 자신의 마음과 말, 행실에서 주님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말은 주님과 같이 덕을 세우는 진리의 말을 해야 하고, 우리의 마음은 주님과 같이 온유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행실은 주님과 같이 섬기며 희생하는 선한 삶으로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사사기에서 삼손은 하나님이 구별하신 소중한 기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태어나기 전에 구별하셔서 나실인이 되게 하셨고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삼손에게 큰 힘을 주셔서 혼자서 천명을 상대하고도 이기는 강한 권능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그에게 임하자 그는 사자를 맨 주먹으로 무찌를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소중한 기업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몸을 함부로 대하며 우상을 숭배하는 블레셋 여자들과 교제하며 타락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내면에 들어온 타락이 결국 그의 삶을 무너트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시작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사람이었지만, 그의 마지막은 눈이 뽑히고 연자 맷돌을 매는 노예로서 살아야 했고 마지막에는 블레셋 사람과 함께 다곤의 신전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삼손은 영적으로 실패함으로 인생이 실패했지만, 다윗이나 다니엘, 그리고 느헤미야, 에스더와 같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기업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항상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에 힘썼습니다. 그들의 내면에 가득한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삶에 나타낼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43:3-4).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속하여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셔서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들을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4.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크심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1:19).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향하여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어떠한 것을 알기를 기도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알기 위해서는 마음의 눈인 영적인 눈이 밝아야 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이 그의 백성 가운데 강하게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에서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온 세상을 창조하셨고, 사람은 흙으로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남자와 여자를 만드셔서 온 세상에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신 놀라운 섭리를 통하여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그 생태계 속에서 번성하게 하신 기묘한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아브라함이 백 세가 되었을 때에 아들 이삭이 태어나게 하신 것에서 나타났고, 그 중에서 애굽에 열가지 재앙을 내리셔서 애굽을 심판하신 것에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셔서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를 건너가게 하셨고, 사십년간 이스라엘 자손을 광야에서 지내도록 하시며 그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그의 백성이 가나안을 정복하여 그 땅을 차지하도록 함께 하심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다윗이 골리앗을 무찌르는 것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그 분의 권능을 높이며 그 분의 위험을 드러내게 했습니다.

 

신약 시대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은 사도들을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성전 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나사렛 에수 그리스도이 이름으로 고치는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욥바에 있던 도르가가 선행을 하다 죽임을 당하자, 베드로가 그녀에게 찾아가 기도하자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도 많은 역사가 일어나게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늘에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히신 능력인 것입니다.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1:20).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새로운 몸으로 입히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인 천국에 거하며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행복 가운데 살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날마다 능력을 베풀어 주십니다. 특히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며 구하는 자에게 능력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역대하 16장은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역하 16:9).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쏟을 때에 그 분의 능력을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가 간절히 기도할 때에 기도 응답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에 도우시는 손길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가 영적 싸움을 싸울 때에 어두움과 죄의 권세에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이 주시는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배움으로 우리의 영적인 통찰력이 더욱 자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영적인 눈인 마음의 눈으로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신 소망을 알아야 하며, 성도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기업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엘리야가 보는 환상을 게하시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서서.” 엘리사 선지자가 기도하자 게하시는 하나님의 불말과 불병거가 자신들을 둘러서 아람의 군대로부터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육신의 눈으로 볼수 없는 것을 마음의 눈으로 보면서 살아가는 믿음의 자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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