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십자가 시리즈(1) -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비전의 사람 2024. 9. 21.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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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시리즈(1) -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지키더라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27:35-37).

 

이 세상에서 십자가는 기도교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십자가가 세워진 건물은 교회로 간주되고 있으며, 십자가와 같은 목걸이나 장신구는 때로는 신앙의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자칭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자들이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라 불릴 수가 없는 것처럼, 십자가를 기독교의 상징으로 여기는 자들이 모두가 그 의미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십자가의 목걸이나 옷에 모양을 내는 자들이 십자가의 의미에 대하여는 무지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중세 시대에 십자가군들이 십자가의 형상을 입고 이슬람과 전쟁을 했지만, 십자군에 속한 자들이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주는 의미를 알지는 못했습니다. 중세 시대나 지금도 십자가의 형상을 강조하는 카톨릭의 사제들이 십자가가 주는 구원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주는 의미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십자가는 단지 나무의 형상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대로 가거니와 ...”(14:21).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24:25-27).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을 위한 주님의 희생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대로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구약에서 예수님에 대하여 기록된 예언이 성취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무덤에서 부활하신 후에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실 때에 그리스도가 십자가와 같은 고난을 당하시고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성경에 기록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에 관한 것을 자세히 가르치셨습니다.

 

빌립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하여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 복음을 전할 때에 그가 전한 메시지는 십자가의 복음이었습니다. 에디오피아 내시는 경건한 사람이었지만 복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는 이사야서 53장의 말씀을 일고 있을 때에 빌립이 그 말씀을 설명하며 예수님을 믿게 했습니다.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8:35). 빌립이 가르친 이사야 말씀은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8:32)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에디오피아 내시를 구원한 메시지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실 것을 예언한 이사야 53장의 말씀이었습니다. 복음을 들은 에디오피아 내시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후에 침례에 순종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은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20: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오신 목적은 온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드리기 위함이셨습니다. 대속물의 뜻은 포로된 자를 자유하게 하는 대가입니다. , the price of redeeming 으로서 구원을 위한 값입니다. 우리가 죄와 사망에 갇혀 포로된 자가 되었습니다. 포로된 자의 운명은 하나님의 진노인 지옥불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원한 고통에서 우리를 건지시고 자유하게 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대신 값을 치루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치루신 값이란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실 것을 말씀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 가서 고난을 받고 죽음을 당한 후에 제 삼일에 살아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16:21). 예수님이 당하실 고난은 십자가의 고난이었습니다. 신명기는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21:23)고 했습니다.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를 받았기에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고 간주해씁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당일에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했습니다. “이 날은 예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19:31).

 

유대인들은 신명기 말씀을 따라 나무에 달린 예수님의 죽음에 대하여 하나님이 내리신 저주라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십자가와 같은 나무에서 죽는 것은 저주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죽으셨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3:13).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기에,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저주를 받아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처형은 역사상 가장 잔인한 처형 방법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사람이 극도의 고통을 느끼며 죽어가는 형벌이었습니다. 로마는 십자가의 처형을 로마 사람에게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로마가 정복한 지역의 살인이나 반란, 그리고 중범죄자에게 내리는 형벌이었습니다. 로마는 주전 4세기에 이스라엘의 갈릴리에서 반란이 일어났을 때에 유대인 이천 명을 십자가에 못박은 일이 있었습니다. 키테로는 십자가라는 단어는 로마 시민에게서 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각과 눈과 귀에서까지도 멀리 사라져야 한다. 왜냐하면 십자가 처형이 일어나거나 그것을 견디는 것뿐 아니라, 그것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로마 시민에게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로마인들은 십자가를 무서운 것을 간주했습니다.

 

당시에 십자가에 죽는다는 것은 가장 고통스럽고 치욕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세상 사람들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믿고 제자가 되는 그리스도인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경배하며 그 분을 위해서 목숨까지 버리는 자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메시지의 위대함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인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고전 1:18, 22-23). 십자가의 메시지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미련해 보이고 어리석게 보였습니다. 십자가의 형벌은 가장 치명적으로 무서운 형벌이고 가장 낮은 자들이나 중범죄자들이 받는 것이거늘,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미련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십자가는 구원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복음의 위대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위대한 복음의 메시지를 성취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로 드리시며 피를 흘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한 희생제물로 몸을 십자가에 드리셨습니다.

 

인자는 자기에게 기록된대로 가거니와 ....”(14:21).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 가운데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범한 이후로 하나님께서는 사망 아래 있는 사람이 다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계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의 길로 보여주신 길은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온 인류를 위한 구원자를 약속하신 하나님은 예수님이 이 땅에 성육신하셔서 오실 때까지 구약의 말씀을 통하여 계속적으로 예언이나 상징을 통하여 메시야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을 가실 때에 인자는 자기에게 기록된대로 가거니와...’ 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에서 성경이 곧 주님에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5:39-40). 주님께서는 성경이 증거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원자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율법과 선지자들이 증거하는 예수님을 바라보기 보다는, 오히려 죄를 정죄하는 율법 자체를 의지했기에 구원을 얻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담이 죄를 범한 후로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한 심판을 내리시면서 동시에 구원을 위하여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 ...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3:15).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분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희생을 통하여 사탄의 권세인 죄와 사망의 권세를 무너트리시고 믿는 자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메시야를 통하여 주시는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했습니다. 그 약속을 믿는 표는 하나님께 희생 제물을 드려서 자신의 믿음을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벨이 하나님께 예배 드릴 때에 희생 제물은 어린양을 드림으로 하나님이 열납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땅의 소산물로 제물을 드렸기에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습니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의 노예로 살아가다가 애굽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양을 잡아 그 피를 인방과 문설주에 바르고, 집에서 고기를 불에 구워 먹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애굽을 심판하실 때에 그 피가 있는 집은 심판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찌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12:1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심판에서 지켜줄 표를 어린 양의 피라고 하셨습니다. 어린 양의 피가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한 이스라엘 자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셨고, 그날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레위기에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다섯가지 제사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중의 첫 번째가 번제입니다.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찌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1:4). 번제물로 드리는 소나 양의 머리에 안수하는 것은 자신의 죄를 희생 제물에 전가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희생 제물은 죄인의 죄를 짊어지고 피를 흘려 죽은 후에 번제단에서 희생 제물로 드려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희생 제물의 희생을 통하여 죄인의 죄를 용서하시고 관계를 회복시켜주셨습니다. 피의 희생 제물이 필요했던 이유는 피는 생명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소와 양의 피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9:22)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단번에 십자가에 드리셨습니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10:10). 우리의 죄가 씻음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이 오시기 약 700년 전에 예언했던 선지자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고난당하시고 죽으실 것을 생생하게 예언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5-6).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창으로 찔리심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죄로 인하여 예수님은 채찍질에 맞으시고 못에 찔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인하여 대신 징계와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예수님에게 담당시키셔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으로 온 인류를 위한 대속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입었나니.”(벧전 2:24)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의 짐을 지시기 위하여 나무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셨기에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어 하나님의 거룩에 이를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담당해야 할 죄의 형벌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죽음을 대속의 죽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십자가의 희생을 통하여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2:8-9).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흙으로 지으시고 영을 불어넣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회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요한일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고 사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으로서 우리를 바라보시며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대신하여 아들을 십자가에서 죄의 짐을 지게 하시고,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2:8)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값을 치루지 않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대속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값을 치루셨기에, 우리는 그 은혜를 깊이 감사하며 믿음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되는 것입니다. 구원얻은 성도는 우리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깊이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더욱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심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살아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 능력이 우리 안에 역사되어 짐으로 우리는 이 세상을 이길수 있고 복음으로 영혼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의 심장에 하나님의 사랑이 살아있기에 우리는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탄의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은혜 아래 살아갈 때에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이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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