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을 회복하라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롬 12: 11).
위대한 인생과 작품을 이끄는 힘의 배경에는 열정 (passion) 이 있습니다. 위대한 음악이나 예술, 위대한 조각이나 문학의 뒤에는 포기하지 않는 열정이 있는 것입니다. 열정이 없이는 어떠한 위대한 일도 성취할 수 없습니다. 열정은 인생에 에너지를 공급하며,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됩니다.
열정은 아침에 일어났을 때에 “오늘도 의미있는 무엇인가를 해야지.” 라고 하는 동기를 부여합니다. 열정은 시험과 고난을 만났다 할지라도,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열정이 없이는 인생은 지루하고, 무디며, 일상적인 삶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열정을 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열정적인 삶을 살도록 도우시는 것입니다.
열정은 탐험가로 하여금 사람들이 한 번도 가보지 목한 곳을 탐험하게 하는 이유가 됩니다. 열정은 과학자들로 하여금 밤을 세워 연구하여 새로운 발명을 하게 하는 이유가 되며, 열정은 운동선수로 하여금 더 나은 성적을 위하여 자신의 기록을 넘어서도록 하는 이유가 됩니다.
오늘 우리는 열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힘을 얻게 됩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주님께 와서 묻습니다. “주님,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인가요?” 그러자,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막 12: 30). 주님께서는 우리가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소중한 계명임을 가르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이외의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인생의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며, 주님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중심에는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열정이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열정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 열정의 대상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살아가며, 어떤 사람은 영화에 대한 열정이 있고, 어떤 사람은 정치나 사회 운동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진이나 예술, 여행, 운동 등 수 많은 관심 분야에서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먼저 선행이 되어야 합니다. 인생의 우선순위에서 하나님이 중심이 될 때에, 조화가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는, 우리는 예수님을 향한 열정으로 가득했습니다. 우리의 죄가 사함받고,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시하시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을 때에, 우리의 가슴에는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뜨거운 가슴이 차가워지고, 우리의 열정이 식어지고 마음이 냉랭한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리고는 말합니다. “옛날이 좋았었지”
그러나, 오늘 우리는 열정을 새롭게 회복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서기를 원합니다. 뜨거운 사랑과 열정을 회복하여 하나님께 쓰임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열정을 소멸하는 6 가지의 요인을 분석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회복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며 생각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1. 균형이 깨어진 삶.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시 127: 2).
우리가 사역에 헌신할 때에 두 가지를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는 너무 많은 시간을 사역에 헌신하여 늘 피로와 과로에 힘들어 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역에 너무 적은 시간을 헌신하여 관심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도한 헌신이나 적은 헌신에 치우치게 되면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사역에는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쉼과 사역의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시 127: 2). 우리는 수고와 쉼의 조화를 이루어야 건강한 영성을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낮에는 열심히 일하는 우리에게 밤에는 잠을 주셔서 몸과 마음의 회복을 주시는 것은 일과 휴식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사역의 현장에서 사역을 진행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이유중의 하나가 탈진입니다. 처음에는 좋은 마음과 의도로 사역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늘 헌신하고, 나누며, 항상 섬기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문제는 탈진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재충전을 위해서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 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섬기다가 자신의 몸에는 열정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정된 에너지를 가지고 있기에, 재충전하지 않으면 탈진하여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사역에서 재충전할 수 있는 여유와 마음이 필요합니다. 열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역과 쉼의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사역의 현장에서 재충전하지 않으면, 결국은 피로와 탈진으로 사역의 열정을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더 이상 관심과 열정을 내지 못하게 됩니다.
열정을 잃어버리는 다른 예는 정 반대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즉, 자신을 위해서는 늘 말씀과 충전을 갖는 반면에,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희생과 섬김의 삶을 살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즉, 사역의 현장에서는 헌신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매주일 마다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훈련도 받고, 영적인 충전을 받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성숙과 성장에는 관심이 있지만, 다름 사람을 섬기는 사역에는 흥미가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는 영적으로 비만이 찾아오게 되어 결국은 사역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역이 없는 성경 공부는 약간 위험하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더 알면 알수록, 우리는 그 지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도, 그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는것은 자신의 믿음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기자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약 2: 17)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을 섬기는 사역과 삶에서 균형 (balance) 을 잘 이루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 균형을 수레바퀴의 삶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예배와 기도, 전도와 말씀, 섬김과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균형적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서 승리해야 하고, 지체들과의 교제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전도를 하는 열정과 기도의 열정이 겸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묵상하는 삶과 그 말씀을 기초로 섬기는 사역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삶에서 사역과 안식의 조화를 통하여 마음과 몸이 건강하며, 영적으로도 충만한 소중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사용되지 않는 은사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벧전 4: 10).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재능과 은사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벧전 4: 10).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능과 은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는 우리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섬기도록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신 은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특별한 역할과 공헌을 하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열정을 가지고 그 은사와 재능을 사용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은사나 재능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열정은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직장이나 사업을 하더라고 단순히 물질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과 은사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신 그 섭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도 주님을 섬기면서도,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재능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섬김은 지루하고 따분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사용하여 주님의 교회를 섬긴다면 우리는 더욱 행복하고 기쁘게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직장과 사업에 재능의 100 % 를 활용하지는 못합니다. 우리에게 남은 열정과 재능을 우리는 사역을 통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직장과 사업에서 사용되어지지 않는 재능과 열정을 하나님을 섬기는 사역을 통하여 발휘할 때에 우리는 더욱 행복한 사역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기도 하지만, 자신을 표현하는 기회로 얻기도 합니다. 음악적인 재능을 통항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만, 자신의 좋은 재능을 사용하여 마음속에 있는 열정을 표현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회복하는 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와 재능을 사역에서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 열정을 통하여 우리의 삶은 더욱 행복하고 아름답게 될 것입니다.
3. 고백되지 않은 죄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 ...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픈 중에 다니나이다.” (시 38: 4, 6).
마음에서 고백되지 않는 죄는 우리의 기쁨과 열정을 빼앗아 갑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주님을 섬기고 싶어도, 고백되지 않는 죄로 인하여 죄책감에 살아간다면 열정이 식어지게 마련입니다. 죄책감은 우리에게 기쁨과 확신, 열정을 빼앗아 갑니다. 우리가 죄에 대하여 합리화를 하려고 하더라도, 그 마음속에는 이미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을 수가 있습니다. 열정과 죄책감은 함께 느끼지 못하는 감정입니다.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 ...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픈 중에 다니나이다.” (시 38“ 4, 6). 죄는 무거운 짐 같아서 삶이 구부러지고 종일토록 슬프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죄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만일 죄를 범하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주님께 나아가 자백함을 통하여 자유함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고백하지 않으면, 컴퓨터 시스템이 망가지듯이, 삶의 기쁨과 열정이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백하고 죄의식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되면, 우리는 새로운 열정과 기쁨이 회복되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의식을 치유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 1: 9).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자백한다는 의미는 동의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위가 잘못되었음을 동의하고, 이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으로 새롭게 나아갈 것을 결단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죄를 고백하지 않고 마음에 품고 있다면, 이제는 주님께 나아가 고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의식을 버리고, 이제는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기쁨과 열정을 회복하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4. 해결되지 않은 갈등
“분노 (resentment)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 (욥 5: 2)
갈등은 우리의 삶과 사역에서 열정을 빼앗아가는 요인입니다. 여러분이 하루를 시작함에 있어서 아침에 배우자와 다툼이 있다면, 그 날은 맥이 빠진 하루가 될 것입니다. 마치 타이어에서 바람이 빠져나가듯이, 우리의 사역에서 열정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직장이나 가정, 때로는 교회에서 갈등이 표출될 수가 있습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 노력도 하곤 하지만, 다른 사람으로부터 찾아오는 어려움과 갈등을 피하는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그러한 갈등에서 자신의 열정을 지킬 수가 있을까요? 우리는 열정을 소멸하는 감정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갈등에서 자신의 열정을 소멸시키는 감정들은 원한 (resentment), 질투 (jealously) 와 분노 (anger)입니다. 욥기 5장 2절은 “분노 (resentment)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분노와 시기는 열정을 죽이는 나쁜 감정들입니다. 욥기 18장 4절은 “너 분하여 스스로 찍는 자여. You are only hurting yourself with your anger." 라고 합니다. 분노는 자신을 해치는 감정인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속에서 갈등으로 인한 원한, 시기와 분노를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용서는 이러한 나쁜 감정을 버리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고 계속 마음속에 품는 것은 마음에 불을 품고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뜨거운 불이 자신의 몸을 타게 하듯이, 마음속의 분노는 자신을 태우는 나쁜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원한을 품고 분노를 품고 살아가는 것은, 다른 사람을 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오히려 상처를 받고 고통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속에 열정의 회복을 원한다면, 마음으로부터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에서 떠나 보내어야 합니다. 주방의 음식물 찌꺼기를 버리지 않으면, 악취가 나고 썩어서 벌레들이 생깁니다. 이와같이, 삶에서 일어난 마음의 원한과 분노를 용서를 통하여 보내게 되면, 우리는 삶의 기쁨과 사역의 열정을 회복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5. 교제하지 않는 삶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전 4: 9-10)
우리가 열정을 잃어버리는 이유 중의 하나는 열정의 사람들과 함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그리스도인과 함께하지 않기에 마음속에 열정이 식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정의 사람들과 함께 할 때에, 우리는 마음속에 열정의 불꽃이 타오르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전 4: 9-10). 우리는 내가 넘어졌을 때에 세워줄 수 있는 믿음의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목장을 통하여 열정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교제의 삶을 살아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서로를 세우거나 돕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장을 통하여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며, 혹시 어려운 일을 만나면 서로 도우며, 기쁜 일을 만나면 서로 축복하는 아름다운 공동체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관계를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는 관계의 삶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다른 열정의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되면, 우리도 주님 앞에서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식어지는 경우는 대부분 교회와 거리를 두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들과의 교제도 단정하기 시작하고 교제에 냉담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굳어지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도 차가워지면서, 하나님과도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통하여 영적인 성장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특히 교회의 리더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인간으로서의 허물이 보인다 할지라도, 교회를 위해서 힘쓰고 섬기는 리더들을 존중하며 목자들을 존중하게 되면 더욱 풍성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며 열정이 크게 회복될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주님을 사랑하고 순수한 믿음의 사람들과 가까운 교제를 통하여 열정을 회복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 10: 24-25).
6. 영적으로 빈약한 영혼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 2: 6-7)
우리의 영은 날마다 새롭게 공급받아야 합니다. 육체가 음식을 통하여 양분을 공급받듯이, 영도 새롭게 공급받아야 합니다. 최고의 보약은 음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균형잡힌 영양식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는 활력소가 됩니다. 그러나, 영양을 소홀히 하거나, 음식을 잘 먹지 않으면 몸이 힘을 잃게 됩니다. 에너지가 공급이 않되면, 운동을 하게 되면 지쳐서 금방 쓰러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을 섬기면서 영의 충만한 공급함을 받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어려운 환경에서 영적으로 쓰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영적으로 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찾아오는 문제와 어려움, 피곤과 좌절감을 이길 수 있는 건강한 영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날마다 새롭게 영적으로 공급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주일에 한번 예배드리는 말씀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 각자가 스스로 노력하여 영적인 공급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야합니다. 개인의 묵상과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또한 다른 믿는 신자들과의 교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스스로 읽고 묵상하여 영의 양식을 취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재능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을 돕는 사역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을 나누는 전도의 삶을 살아가야합니다. 이러한 삶이 영적으로 공급받고 더욱 활기차게 살아가는 요소가 됩니다.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에서 살아가게 하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열정으로 그 분을 더욱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분을 더욱 사랑하면, 우리는 더욱 열정으로 그 분의 뜻을 행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그 분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오래 전에 멜 깁슨의 ‘The passion of Christ' 라는 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열정을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이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열정인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과 같은 열정으로 주님을 더욱 사랑하며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일 4: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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