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선한 청지기가 됩시다 (눅 12: 41-48)

비전의 사람 2025. 1. 18. 21:00

선한 청지기가 됩시다 (12: 41-48)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찌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 4: 1-2)

 

오늘 우리는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시는 날이 다가옴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는 또 우리가 주님 앞에서 이 땅에서 행한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심판 받을 날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책임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에 대하여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이는 선한 청지기의 삶을 의미하고 있으며, 더욱 구체적으로는 지혜롭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선한 청지기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을까요?

 

1.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재림에 대한 교훈을 가르치시면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인의 청지기가 되어 지혜롭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청지기는 누구인가요? 청지기는 영어로 ‘steward’, 헬라어로는 오이코노모스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책임을 맡은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주인으로부터 책임을 맡아서 경영하고, 위임한 주인에게 이익을 남기거나 유익을 주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갔을 때에, 요셉은 주인으로부터 집의 소유를 경영하도록 위임을 받았습니다.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39: 4, 6). 요셉은 보디발의 청지기였습니다. 그가 신실하게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자,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그 소유가 풍성하게 넘쳐났습니다. 요셉은 주인의 집에서 지혜롭고 진실한 청지기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주인의 소유권에 대한 권한이 없었습니다. 요셉은 주인이 맡긴 일에 최선을 다하여 충성을 했던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 속했고 하나님이 보디발의 소유를 맡겼다는 것을 인정했기에, 남들보다 더욱 정직하고 진실하게 청지기의 삶을 살았습니다.

 

누가복음 22 장의 청지기는 주인으로부터 종을 관리하는 책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청지기는 때를 따라서 종들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어서 그들을 잘 돌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며, 주인이 올 때에 그 청지기의 신실함을 기뻐하셔서 그 청지기에게 복을 내리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지혜로운 청지기에게 더 소중한 것을 맡기게 될 것입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12:44).

 

지혜로운 청지기는 주인의 것을 최선을 다하여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신실하지 않은 청지기는 주인이 더디 오리라 생각하여 노비를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는 방탕한 삶을 살아가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에 대하여 심판할 날이 다가왔지만, 그 날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방탕하는 삶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청지기의 기본 자세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믿음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시편 24편은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24:1)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인생을 허락하셨고, 그 분이 맡기신 것을 소중히 여기며 믿음으로 최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이 맡기신 것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신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것은 먼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고, 동시에 우리의 행복과 축복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소중히 여기시기에, 하나님께서 소중하게 여기시는 것을 우리에게 맡기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는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2)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은 주인이 타국에 가면서 각각 재능대로 달란트를 맡기고 떠났습니다. 어떤 사람은 금 다섯 달란트, 다른 종에게는 두 달란트, 그리고 또 다른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청지기들은 주인이 맡긴 달란트를 관리하면서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다섯 달란트를, 그리고 두 달란트를 받은 자는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그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고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후에 주인이 돌아온 후에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긴 종들을 축복했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25:21). 그런데, 한 달란트 받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종에 대해서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했습니다. 이는 주님이 우리에게 달란트를 맡기신 후에 다시 돌아오실 때에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마음입니다. 우리에게 맡기신 달란트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주님의 칭찬을 받거나 책망을 받게 될 것이빈다.

 

우리가 책임을 지고 지키며 관리해야 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먼저, 하나님은 우리를 복음의 청지기로 부르셨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0: 24).

 

사도 바울은 주님이 복음을 위하여 택한 그릇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이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복음은 너무나 소중한 것입니다. 복음에는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 보배를 발견한 자는 인생의 큰 축복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의 소중한 가치를 알았기에 젊은 디모데를 향하여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후 1:8). 사도 바울은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옥에 갇혔고, 그리고 디모데를 향하여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복음의 보배를 맡기셨습니다. 이 보배를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맡기면서, 그 복음을 지키며 전파하기 위하여 고난을 기꺼이 받으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평생 가치있는 삶을 추구합니다. 후회함이 없는 가치있는 삶은 복음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고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아니 복음 때문에 살아가는 인생인 것입니다.

 

복음은 사람의 운명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바꿀 뿐 아니라, 사람의 삶을 어둠에서 빛의 자녀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불신자인 영국인 백작이 피지 섬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된 섬의 추장의 신앙을 조롱하는 말을 했습니다. “당신은 위대한 추장이지만, 고작 선교사의 말을 듣고 넘어갔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오. 요즘은 아무도 성경을 믿거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려 하지도 않소. 이처럼 사람들은 더 유식해졌는데 당신은 매우 어리석구려.” 그러자 그 추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축제 때마다 사람을 요리해 먹던 저 돌을 보시오. 만일 선교사들과 예수님이 아니었더라면, 그 분의 위대한 사랑이 야만이이었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바꿔 놓지 않았더라면 당신은 결코 이 섬에서 살아남을 수도 도망칠수도 없었을 것이요. 아마 우리는 당신의 머리를 깨트려서 옛날처럼 맛있게 요리해 먹었을 것이요.”

 

선교사가 전한 복음이 식인종들을 변화시켜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넘쳐나는 사람들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복음은 이와같이 어두움에 사로잡혔던 사람들을 변화시켜 빛에 거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의 청지가가 되어서 복음이 필요한 자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증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열매를 주실 것입니다.

 

19세기 미국의 부흥 전도자 무디 목사는 백만명을 주님께로 인도했습니다. 그는 하루에 한 사람에게 반드시 복음을 전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하루는 아무에게도 전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 잠 자리에 들었으나 책임을 완수하지 못한 생각에 그는 다시 옷을 입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밤중에 거리에 서서 말씀으로 권유할 대상자를 찾는데, 한 술 주정꾼을 만났습니다. 그는 다짜고짜 다가가서 "예수님을 아시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술 주정꾼은 '예수'라는 말을 듣자마자 화부터 벌컥 내었습니다. 무디는 쫒기다시피 하여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후 3개월이 지나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가서 문을 열어보니 예전의 그 술 주정꾼이었습니다. 그 술 주정꾼이 고백하기를 그날 밤 예수님을 아느냐는 말에 크게 화를 냈으나 그로부터 그 말이 내내 귓전에서 떠나지 않아 예수를 믿기로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를 믿음의 청지기로 부르셨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믿고 행하는 삶이 믿음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소중한 일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진리의 말씀을 타협하지 않고 지켜나가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이 타협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딤전 2: 15).

 

교회는 진리를 지키는 기둥이 되어야 하며 반석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진리에서 흔들리고 타협이 된다면, 이 땅의 빛은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권력과 물질의 가치를 위해서 진리와 정의가 타협되는 세상입니다.

 

오래전에 통일교의 교주인 문선명의 구순 생일잔치에 관하여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의아한 것은 그는 이단의 교주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의 지도자들의 축하와 선물을 받은 것이 보도가 되었습니다. 그 중에 전 부시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의 축전이 있엇고, 심지어 김정일은 90 년 된 산삼을 보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기독교 장로인 국회의원이 생일연에 참석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지만, 저의 눈에 비친 것은 한 기독교 교단의 총회장이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의 정치적, 경제적인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통일교는 현재 가평에 500 만 평의 땅에 성지를 조성하고 있으며, 여수와 같은 곳에는 수조원을 들여서 리조트를 세워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통일교의 영향력이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영향력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배후에는 사탄의 역사가 있음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다민족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변화 앞에서 이슬람이 몰려오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슬람은 현제 우리 나라를 아시아의 기지로 삼고 집중적인 포교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결혼이나 대학가의 동아리를 통하여 이슬람화하려는 전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타협하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은 교회가 하나님의 진리를 굳게 잡기 보다는 더 큰 영향력을 위해서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과 복음을 지키려고 하기 보다는, 세속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확장시켜가는 모습에 심히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2009년 국민일보에서는 하나된 십자가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는 한국기도교교회협의회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교회 한국대교구가 주최한 ‘2009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회였습니다. 이는 종교통합운동을 벌이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일환이기도 한데, 이때 참석했던 사람들은 김삼환 목사를 비롯하여, 천주교 추기경, 정교회 대신부, 그리고 주한 교황대사들이었습니다. 또한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도 함께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그들은 갈라진 십자가를 하나로 만드면서, 평화와 교회의 일치를 위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과 삶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성도입니다. 우리는 복음이 타협되어지면 과감하게 순수한 복음을 지키기 위해서 피를 흘렸습니다.

 

마틴 루터는 천주교 사제였지만 복음과 종교의 자유를 위해서 카톨릭에서 개혁되어 분리하였고,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카톨릭의 핍박속에서 죽어갔습니다. 그들이 흘린 순교의 피로 인하여 오늘날 우리는 복음과 순수한 믿음을 지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복음과 진리가 희석되어가고 정치와 종교적인 영향력을 위해서 살아가는 위험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100 년 전 영국이 부흥의 진원지였지만, 자유주의 신학에 흡수되어 그들은 신앙과 부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자유주의의 영향력을 방관하지 않고, 근본주의 운동을 시작하면서 복음과 진리를 지켜나아갔습니다. 그러자, 지난 100 년 동안 미국은 전 세계의 부흥과 선교의 중심지로 쓰임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의 말씀을 지켜나아가야 합니다. 복음과 진리의 말씀을 지켜야 하는 것이 교회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세상과 교단의 풍조에 휩쓸려 진리에 타협하는 교회는 순수성을 잃어버린 교회입니다. 유다서 3절에서는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서 힘써 싸워나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를 물질의 청지기로 부르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6:19-21).

 

하나님의 청지기는 세상의 일시적인 가치를 넘어 영원한 가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물질과 시간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할 때에 영원한 보상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우리를 위하여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라고 하셨습니다.

 

존 웨슬리가 청지기 직분에 대해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첫째 단락에서 할 수 있는 만큼 버시오.”라고 설교하자 제일 앞줄에 있던 농부 집사가 옳은 말이야.”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두 번째 단락에서 할 수 있는 한 지키고 간직하시오.”라고 하자 그 농부는 감격스러워하며, “더 좋은 말씀이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단락에 이르러 할 수 있는 대로 주시오.”라고 하자 그 농부는 얼굴을 돌리면서 , 설교 망쳤구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농부는 재물을 간직하는 것으로 청지기 역할을 다하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나눔으로써 얻는 축복은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질의 청지기 의식은 재물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지 자신의 소유가 아니다.’ 라는 인식에서 시작합니다. 우리가 소유한 물질은 하나님께서 관리하라고 맡기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많은 물질을 맡기기도 하시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적은 물질을 맡기기도 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물질을 관리하느냐가 중요한 이슈입니다.

 

물질의 청지기 의식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물질로 인하여 시험에 들거나 힘들어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에게 재물을 맡기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 물질을 가지고 지혜롭고 진실하게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경제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물질의 청지기라는 의식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재물을 지혜롭게 관리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십일조는 물질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존 웨슬리는 진정한 회심은 지갑의 회심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물질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록펠러 가는 자녀들에게 물질관을 이렇게 가르쳤다고 합니다. ‘10%는 십일조를 하고, 10%는 저축을 하며, 10%는 자선사업을 하라.’ 록펠러 가는 먼저 10%는 하나님께 드리고, 10%는 자신을 위하여, 나머지 10%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물질을 사용할 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물질의 부요함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물질의 청지기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에 만족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넷째, 하나님은 우리를 교회를 세우는 청지기로 부르셨습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벧전 4: 10).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믿음을 가진 믿음의 성도들이 모여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로서 우리는 서로를 섬김으로 세워나가야 합니다. 교회를 세워나간다는 것은, 건물을 높이 세우거나 세상에서 영향력을 확대해나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로서 서로를 섬김으로 몸을 세워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가 세워지게 됨으로, 또 다른 교회를 낳아야 하며 세계 선교를 위해서 크게 쓰임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교회를 세우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통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나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교회를 세우는 청지기로 세우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같은 믿음과 마음으로 주님의 교회를 세워나갈 때에, 우리 교회는 세계 선교를 감당할 수 있는 비전의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믿음으로 함께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 분의 청지기로서 부르셨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그 분만이 영광 받으시는 은혜의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