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하라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갈 4:19).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되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는 자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우리를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자녀된 우리는 이름만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 특권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후사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의 영광과 기업을 누리는 것입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 (롬 8:16-17).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에 이르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자녀로서의 상속자의 특권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오시면 우리는 주님과 같이 새로운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며 그 분의 영광을 위한 삶이 되도록 인도하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주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의 형상을 닮아 가도록 미리 정하셨고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로마서 8장은,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29) 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아들의 형상을 본받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목적은 그리스도의 참된 형상을 닮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왜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야 하는가요? 그 이유는 아담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 1:27). 하나님은 그 분의 형상대로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인간의 마음에 죄가 들어오도록 미혹하였고 그 결과로 사람이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죄로 인하여 타락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죄로 인한 타락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사랑해야 할 존재가 미움과 시기와 살인하는 존재가 되어 하나님보다 사탄의 형상을 닮아가는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사랑과 섬김으로 하나님의 거룩과 평안을 드러내야 할 인간이 전쟁으로 서로를 헐뜻고 죽이는 일까지 일어나게 됩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면서 자녀를 죽여서 제물로 바치는 일들도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가나안의 사람들은 자녀를 죽여서 우상의 제물로 바쳤던 역사를 설명합니다. 특히 몰렉과 같은 우상에게는 자녀를 불에 태워서 죽이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수년 전에 페루에서 어린이 유골 160구가 발견되었는데 가슴에서 심장을 꺼낸듯한 흔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우상에게 어린 아이들을 제물로 바치는 악한 종교 의식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인간들의 극단적인 죄악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지만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면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주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이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어 새 사람이 되었지만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형상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거나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깊이 생각하면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하는 간절함을 얻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변화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요?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하는 영적인 원리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성화란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갈 4;19).
우리가 주님과 같이 닮아가는 삶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그 분의 형상을 닮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과 같이 변화된 모습이 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주님이 주시는 말씀과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무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깨어 있다면 주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성숙의 열정으로 변화의 과정을 향한 첫발을 디디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과 같이 변화되고자 하는 분명한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는 것이란 무엇인가요? 이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영원히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셔서 살아가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같이 변화될 수 있는 비밀은 ‘우리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골 1:27). 주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영광의 소망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빌 1:21) 라고 했습니다. 우리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라면 우리는 그 분의 생명을 통해서 변화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갈 4:19) 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의 성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그들의 속 사람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도록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닮아가는 원리는 속 사람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생명이 우리의 영(spirit) 안에 새롭게 태어나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 마음, 그리고 육신은 아직 세상의 가치관과 죄의 유혹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윗이 죄를 범한 후에 자신의 영과 마음을 이전처럼 회복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 51:10). 다윗은 죄로 인하여 오염된 자신의 마음과 영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새롭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가 소망한 것은 정결한 마음과 정직한 영이었습니다. 자신의 영이 순결하고 마음이 깨끗하여 다시 하나님과의 교제의 기쁨을 회복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의 속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빚어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시 51:12). 다윗은 그의 속 사람 안에서 구원의 즐거움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영을 새롭게 되기를 갈망했습니다.
우리도 다윗과 같이 자신의 영과 마음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정결하며 순결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지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져서 변화된 삶이 되도록 일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 1:6) 라고 했습니다.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도록 성령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육신의 일을 버리고 주님과 같이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성화입니다. 즉, 성화란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닮고자 하는 마음이 커집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면서 살다보면 서로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 분을 더욱 닮아가는 삶이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영으로 오셔서 우리 안에 살아 계십니다. 그분의 생명은 너무나 강력해서 우리를 그 분의 형상대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같이 변화되고 있는지요?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주님의 형상대로 빚어지고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2. 우리의 변화는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 3:18-19).
우리의 변화는 자신의 의지와 결심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변화는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새겨지는 것입니다. 바위가 스스로 미켈란젤로의 다윗상과 같이 스스로 조각되지 않습니다. 조각가가 품은 상상대로 바위가 쪼개어지면서 웅장한 다윗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변화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면서 그 분의 형상대로 빚어가시는 것입니다. 그 분이 일하시는 도구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가치와 철학에 의하여 변화되지 말고,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돌아오자 그 얼굴에서 광채가 나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려야 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모세의 얼굴에 비취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모세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광채가 비취게 되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변화되기를 원한다면 주님의 영광과 임재 속에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시간을 통해서 우리의 내면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이 비취게 되며 그 분의 형상이 조금씩 마음에 새겨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주의 영광을 바라봄으로 주님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형상과 같이 변화되는 것은 주의 영이신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자란 스승을 닮아가는 자입니다. 주님의 제자란 주님을 배우고 따르는 자이며 궁극적으로는 주님을 닮은 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의 성도들을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 분을 닮은 자로서의 삶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이들이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그리스도의 영이 그들의 영에 임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숨결을 가지고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생명 또는 영이 있어서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분을 닮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위하여 그분의 임재와 영광 속에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거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영이며 생명입니다. “...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 6:63). 주님의 말씀이 영이요 생명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의 양식을 얻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이기도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삶은 그 분의 영이 우리 속 사람에게 필요한 생명의 말씀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는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1-32). 우리가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삶에서 주님을 닮아가는 제자가 될수 있는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먹는 자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변화되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를 닮지 못하게 하는 잘못된 생각과 개념들을 깨우치고 변화시키게 합니다. 우리 안에는 죄로 인한 타락의 습성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교만이 거하고, 죄의 욕망이 살아 있으며 미움과 분노의 자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닮아가지 못한다면 교회 안에도 세상과 같은 교만과 타락의 모습이 나타나기도 하며, 거짓과 미움과 같은 육신의 모습이 강하게 역사하기도 합니다.
베드로전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장하기 위하여 버려야 할 것들이 있음을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벧전 2:1-2). 우리가 영적인 성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내면의 버려야 할 악독과 시기와 비방하는 말들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면의 속 사람의 타락한 모습을 보며 회개하고 버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그 말씀이 마음속에서 역사되어 열매를 맺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가 제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요 13:34-35).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아들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미워하며 헐뜻는 모습을 보이면서 주님을 닮아간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분노와 쓴뿌리를 가득하면서 주님을 닮아간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마음의 복수와 교만의 모습은 헤롯과 같은 세상의 보여주는 것이며, 아합과 같은 우상을 숭배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합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요일 3:1).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얻게 하셨고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하나님을 사랑하며 지체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을 입은 지체들이 다시 우리를 사랑하면서 교회 안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랑으로 서로에게 다가가는 사랑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며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가득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다윗이 성소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기뻐하였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하면서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와 그 분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시간이 깊어질수록,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는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경건의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의 속사람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가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힘써 하나님의 임재와 그 분의 영광으로 들어가는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로마서 기자는,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롬 5;1-2)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가는 것은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대면한 것과 같이 우리의 영혼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하나님의 충만이 우리 안에 가득함을 의미합니다. 이는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의 기도와 같이, “ ...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 3:19) 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충만이 우리에게 거하면서 우리의 속 사람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충만을 누리기 위하여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를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충만을 누리기 위하여 개인의 삶에서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과의 만남을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체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충만한 말씀과 사랑을 나누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3. 고난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게 하는 과정입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 (고후 12:9).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것이 바로 육신을 의지하려는 옛사람의 속성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한 후에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사시면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십니다. 즉, 우리의 삶의 생명이시며 왕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에 육신을 의지하던 삶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연약함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의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의지하면서 그 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 분의 인도하심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삶은 주님보다 자신의 육체를 의지하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은 육체의 모습에서 우월감과 만족을 느끼는 것입니다. 자신의 외모나 이미지가 중요하고, 사람들로부터 얻는 명성에 더 큰 관심을 갖습니다.
주님의 사역을 하는 과정에서도 자신이 할수 있는 힘을 먼저 생각하거나 계산합니다. 이러한 삶은 육체를 의지하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은 자신이 중심이 되는 삶이 됩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우리가 육체를 의지하는 것에서 주님을 의지하는 삶이 되도록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의지했던 육체의 한계를 보이시는 과정이 바로 고난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육체에 가시가 있어서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오히려 기도 응답을 다르게 받습니다. 주님의 응답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후 12:9) 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능력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난을 통과하면서 주님을 의지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가 주님을 의지하면서 그의 마음과 삶에서는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나며 그 분의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장에서,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고후 1:8-9) 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심한 고생으로 살 소망까지 끊어진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참나무가 어린 가지로 심겨지면 생명이 있지만 연약합니다. 그 뿌리에서 진액을 받아 성장하며 강한 참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새 생명을 얻은 자라도 시작은 아기에서 시작합니다. 아기는 생명을 주신 어머니의 모유를 먹고 자라 성장해 가듯이, 믿음의 자녀들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듣고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 중에서 자신이 의지했던 육체의 지혜와 힘, 물질의 한계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이 궁극적인 삶의 전부가 되심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삶을 통하여 그 분으로부터 오는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28-29).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들의 형상을 본받도록 하나님은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하나님의 선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찾아오는 고난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그 고난 속에서 잠잠히 주님을 바라보며 그 분이 주시는 말씀으로 연단되며 주님의 형상으로 빚어지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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