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영적인 삶의 원리 (갈 5:16-26).

비전의 사람 2025. 5. 24. 21:20

영적인 삶의 원리 (5:16-2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5:16).

 

영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영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 곧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전인격적으로 변화되는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적인 삶의 주체이신 성령님의 인격과 사역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성령님의 인격과 사역을 이해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삼위일체 하나님 중 한 위격이십니다. 우리는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의 삼위일체의 믿음이 믿음의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본성과 권능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마태복음 28:19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은 아버지 하나님, 예수님과 동등한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힘이나 에너지가 아니라 인격이십니다. , 그 분은 의지와 감정, 지식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에베소서 430절에서는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430절에서는 성령께서 말씀하심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42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14:26)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가르치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알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은 진리의 성령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우리와 교제하시고 인도하시는 인격의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이 믿는 우리를 향한 어떠한 사역을 하시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죄인임을 알게 하시며 죄를 책망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16:8-9)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셔서 회개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때에 거듭나게 하셔서 구원받게 하십니다. ”육으로 난 것ㄹ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3:6-7). 성령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셔서 우리의 몸이 성전되게 하셨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우리 몸을 그 분의 거처로 삼으셔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14:26). 성령님은 진리의 영으로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며 깨닫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안에 거하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인도하십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합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8:14).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변화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우리가 주님의 형상으로 닮아가는 비결은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변화시켜서서 주님을 닮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때 성령님이 우리의 인격 속에서 육신의 생각을 깨닫게 하시고, 대신에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2. 육체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5:24).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때 성령님을 대적하는 다른 욕구가 우리 안에 존재합니다. 그것을 성경은 육체의 소욕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5:17).

 

육체의 소욕은 우리의 육체가 원하는 욕구입니다. 즉 우리가 배가 고프면 음식에 대한 욕구가 강해집니다. 저녁에 저녁 식사가 소홀하게 되면 밤에 야식에 대한 욕구가 강하게 일어납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저녁에 배달 음식을 먹는 습관을 갖는 것입니다. 의지적으로는 저녁 야식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육체의 배고픔의 욕구가 더 커지면 결국 라면이나 치킨을 먹으며 행복해 합니다. 그러나 이런 잘못된 습관이 오래 가면 결국 건강이 무너지게 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육체의 소욕은 죄에 대한 강한 욕구를 의미합니다. 육체의 소욕이란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자기 욕망에 따라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는 마음을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과 충돌이 일어나면서 내적 전쟁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내 자아의 뜻에 따라 살아갈 것인가?

 

우리가 극복해야 할 육체의 소욕에 대하여 갈라디아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5:19-21).

 

우리가 이겨야 할 육체의 소욕은 4가지의 범주로 나뉘어집니다. 첫째는 성적인 죄악입니다.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은 모두가 혼전 성관계, 불륜 등의 성적인 부도덕인 죄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성적인 죄에 빠지지 말고, 그러한 대화에도 참여하지 말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우상 숭배의 죄입니다. 우상 숭배와 술수는 물질과 성공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의미하며, 술수는 주술 행위나 무당에게 찾아가 점을 보는 것, 타로 손금 등과 같은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인간 관계에서의 죄입니다. 이는 원수를 맺는 것, 다툼,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열, 이단의 죄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는 끊임없는 분열과 대립, 경쟁하거나 질투하고 분노하며 무리에서 갈라서는 태도, 진리에서 벗어나 이단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쾌락과 자기 중심의 죄악입니다. 투기는 다른 사람에 대하여 시기하는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그리고 술 취하고 방탕한 것은 쾌락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면, 우리는 항상 이러한 육체의 소욕에 빠져 그러한 죄에 종속될 수 있음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주 분을 내거나 성적인 죄에 빠져 있거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원수를 맺으며 다투는 삶은 결국 육체의 소욕에 의해 살아가는 자기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영적인 삶의 뿌리가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면 육체의 소욕대로 사는 삶의 뿌리는 무엇인가요? 육신적인 삶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며 성령님과 대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뿌리는 죄로 인하여 타락한 본성과 하나님으로부터의 독립적인 삶에 대한 추구입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에 하나님과의 친밀함 속에 살아가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죄가 세상에 들어온 이후로 모든 인류는 하나님이 아닌 자기가 중심이 되는 삶을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죄의 뿌리 자체가 하나님을 떠나 자신이 중심이 되는 교만에 있었습니다. 사탄이 아담을 유혹할 때에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3:5)라고 했습니다. 이는 삶에서 하나님과 같이 스스로 살아가고자 하는 욕구에 대한 유혹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부하고 자신이 중심이 되는 삶은 아담 이후로 세상 역사의 핵심 이야기였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부하고 자신이 중심이 되는 삶을 추구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사람이 중심이 되는 세상, 즉 인본주의의 가르침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학문이나 가치에는 하나님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행동하는 사고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뜻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뿌리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육체의 정욕으로 이끄는 것은 세 가지의 통로가 있습니다. 요한일서는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요일 2:16)라고 했습니다.

 

육신의 정욕은 성적인 욕망과 탐욕을 갈망하는 것이고, 안목의 가치는 눈에 보이는 가치를 따르고자 합니다. 이생의 자랑은 자기를 높이고 싶어하는 명예욕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는 하나님 보다 자신안에 내재되어 있는 자아를 따르는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주님을 따르고자 한다면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자아를 부인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5:24)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면, 자신안에 있는 육신의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과 함께 새로운 여정을 살아가고자 하는 결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를 지도하던 스승은 육체의 욕구와 자아였습니다. 자신을 높이고자 했던 자아가 자신의 삶의 나침반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스승이 되셔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3.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5:16).

 

영적인 삶의 비결은 내가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좇아 행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행한다는 것은 걷다, 생활하다입니다. 이는 성령과의 인격적인 관계에서 함께 걸어가며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삶의 운전대가 내가 아니라 성령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삶의 주인이시기에 우리는 성령님이 미워하시는 죄의 소욕을 먼저 제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거룩한 가운데 주님을 섬기는 따르며 성령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3:3)라고 했습니다. 성령님과 내가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함께 동행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실 때에, 우리의 마음이 육체의 정욕대로 살아간다면 함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때는 성령님이 근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은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영적인 삶의 뿌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깊은 명상이나 교회 생활과 같은 종교적인 활동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거듭남에 있습니다. 우리가 거듭날 때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삶이 새롭게 시작됩니다.

 

성령은 구원받은 자들을 지키시며 보호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며 소유가 되었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되게 하셔서 주님안에 거하게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15:5)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관계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는 주님의 말씀 안에 순종하며 거하는 것이며, 기도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특히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그 분의 몸인 교회와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영적인 삶의 핵심은 교회와 한 몸이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교회의 손님이 아니라, 주체인 것입니다. 교회의 사역이 내 사역이고, 교회의 예배가 내가 참여할 예배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지체들이 나의 영적인 가족으로서 사랑하며 함께 돌보아야 할 영적인 가족인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르는 것입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서 우리에게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고, 그 말씀이 우리의 체질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의 변화는 말씀의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성령님이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14:17).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진리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삶은 성경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 언어와 삶에서 체질화되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의지적으로 말씀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십계명의 핵심은 하나님의 의의 기준대로 살아가는 원칙입니다. 삶의 실천이 없는 삶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깨닫게 하시며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은 성령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성령의 열매는 성령이 우리 속에 거하시며 우리를 통하여 나타나는 증거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삶에 나타나는 열매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5:22-23). 우리가 성령의 뜻대로 살아가면 진리의 말씀대로 행할 것입니다. 진리의 우리의 생각과 마음, 언어까지 변화시키셔서 삶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대로 행하는 삶은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은 우리의 내면과 외면까지 변화시켜서 그리스도의 인격이 우리를 통해서 드러나게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에서는 열매가 맺히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삶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하며, 기쁨과 평안의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진리의 말씀대로 행하는 삶은 우리에게 평안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삶을 두렵게 하지만, 성령님은 우리의 삶에 평안을 가져다 주십니다. 그리고 오래 참게 하시고 자비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시며, 충성되고 온유하며 절제된 삶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온유에 대해서는 우리가 팔복에서 배운 말씀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다스릴 수 있는 마음입니다. 온유한 자는 다른 사람을 포용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온유한 자는 다툼을 멀리하고 겸손하게 수용하는 자입니다.

 

영적인 삶은 이와같이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삶이 됩니다. 영적인 삶은 많은 지식으로 믿음의 말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드러내며 그리스도를 높이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위해서 우리는 영적인 저장소를 충만하게 채워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기도와 말씀으로 자신의 영적 충전소를 채워서 가득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삶을 성령의 충만함을 얻게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삶은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우리의 영적 충전소를 충전하여 성령 충만한 삶이 되게 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의 보금자리는 교회입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의 공동체와 함께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배우며 교제하는 삶에서 평안을 누리게 합니다. 우리는 함께 모여서 영적인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모일 때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전의 은혜를 누리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가 모일 때에 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에 더욱 풍성하게 나타납니다. 영적인 삶이란 우리가 성령 충만하 때에 더욱 강하게 나타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