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향한 부모의 비전
“네가 호렙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를 위하여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려 하노라 하시매.”(신 4:10).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자녀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후에 복을 주셨습니다. 그때 그들에게 주신 명령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따라서 사람들은 생육하고 번성하였습니다.
시편 137편은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그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시 127:3-4)라고 했습니다. 장사가 전쟁에 나갈 때에 화살이 전통에 가득하면 든든하듯이, 자식들이 많은 것은 하나님이 주신 상급으로서 삶이 더욱 든든해 집니다.
자녀들은 하나님이 주신 상급이며 기업이기에 우리에게는 큰 기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들을 사랑으로 키우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워서 미래의 일꾼이 세워야 합니다. 작은 나무가 후에 큰 나무가 되어 열매를 맺듯이, 우리의 자녀들은 지금은 어리고 약하지만 장성한 후에는 가정과 교회에 큰 버팀목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자녀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이 어떠한 믿음과 가치관을 가지고 성장하는 거에도 관심이 있으십니다. 그러므로 신명기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들로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려 하노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해서 바른 믿음의 사람으로 키워가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자녀를 향한 영적인 비전을 품어야 합니다. 그 비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녀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품어야 할 자녀 양육의 비전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1. 부모가 가정에서 영적인 멘토가 되어야 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받은 영향력은 평생 가는 것입니다. 특히 믿음에 관하여는 부모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것입니다.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배운 믿음의 말씀은 평생 그 말씀 안에 거하게 하는 힘이 됩니다.
신명기는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6:7). 자녀들을 말씀으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부지런히 자녀들을 집에서나 길에서나 잠을 자기 위해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쳐야 하는 중요한 이유에 대하여 모세는 신명기 4장에서 3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생명이 되고, 지혜와 지식을 얻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것이요...”(신 4:1).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함은 열국 앞에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신 4:6).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면서 하나님을 경외함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 경외하는 지혜와 지식을 배우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향하여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우리가 성경을 바르게 가르쳐서 디모데처럼 어릴 때부터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워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길이 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우리는 자녀들을 말씀으로 교훈하고 책망하며, 바르게 하고 의로운 삶을 살도록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으로서 우리의 주가 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며 자녀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입니다.
2. 우리는 자녀들에게 믿음의 삶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들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우리는 부모로서 자녀들이 믿음 안에서 바르게 자라가도록 가르칠 책임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말씀으로 자녀들을 훈계하고 가르치기도 하지만, 자녀 양육의 1차 책임은 부모에게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의 삶을 가장 잘 알고 가장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자녀들을 가르쳐야 할 구체적인 삶에 대하여 함께 나누겠습니다.
1. 믿음의 삶을 본으로 보여야 합니다.
“... 그들로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려 하노라 하시매.”(신 4:10).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부모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함을 배우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우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자녀에게 가르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배우는 믿음은 부모님의 말보다도 삶을 통해서 배웁니다. 우리의 행동의 90% 이상은 무의식에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건한 믿음의 부모 아래에서 자란 자녀들은 일시적으로 방황하더라도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비록 세상에서 방황하더라도 자신의 무의식과 의식에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함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에게 식사하기 전에 기도하는 본을 보이면, 자녀들은 식사할 때에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릴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예배하는 모습을 보이면, 자녀들은 평생 하나님을 예배할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십일조를 드리는 헌금 생활의 본을 보이면 자녀들은 부모의 본을 따라서 드리는 삶을 기뻐할 것입니다.
믿음의 삶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과 더불어 사람과의 관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품어야 할 이웃의 가장 핵심에는 가족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족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우리에게 나타나는 행동은 반대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본을 보일 수 있는 영역은 그리스도의 성품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성품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육적인 삶을 버리고 영적이 삶을 살기로 결단함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육적인 삶은 다툼과 시기와 질투, 방탕과 호색에 있습니다. 이러한 삶은 하나님과 관계가 먼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현실의 삶에서 사람들과 다투고 미워하는 것은 본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러한 육신의 삶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각하고 말을 하며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열매에는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가 나타납니다. 가정에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 오래 참음이 가득하다면 가정에는 은혜가 왕노릇하는 작은 천국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삶에서 나타날 때에 자녀들에게 감동을 주고 신뢰성을 얻게 됩니다.
2. 열린 의사 소통을 통하여 선한 영향을 끼쳐야 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마 19:14).
사람들이 예수님께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자, 제자들이 꾸짖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이들을 사랑하심으로 가까이 하시고 대화하는 것을 기뻐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장차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될 것을 아시고, 그들을 축복하시며 기도해 주신 주님이십니다.
부모와 자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는 완전히 다른 시대를 살아왔습니다. 우리의 부모님이 사셨던 시대와 우리의 시대는 다르며, 우리의 자녀들이 살아가는 시대는 다릅니다.
지금의 세대를 흔히 MZ세대라고 부르며, 이는 밀레니얼 세대(M세대, 1980- 1995년생)와 Z 세대 (1996-2010년생)을 통칭하는 용어입니다. 1960년대생은 일반적으로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4년생)혹은 386세대(1960년대생, 1980년대 학번, 30대 직장인 시절)로 분류되며, 산업화 시대의 주역이자 희생과 책임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 세대입니다.
이 두 세대는 역사적 배경, 경제 환경, 교육 방식등이 다르기에 가치관과 삶의 태도에서도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MZ 세대는 자기 표현과 권리를 중시하며, 워라벨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가 만족하는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성공의 조건으로 여깁니다. 소통 방식에서는 자율과 창의성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므로 인스타로 소통하며 비대면 소통을 활발하게 합니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 폰 시대를 접하기에 디지털을 이해하는 속도가 무척 빠릅니다. 이러한 세대는 수평적인 관계에서 소통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386 세대 또는 베이비 부머 세대는 성실하게 일하면 성공한다는 신념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가족과 국가를 위한 희생을 미덕으로 삼았습니다. 우리가 배웠던 가치는 국가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한다 였던 것이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성공의 기준이었습니다. 소통 방식은 수직적인 군대식인 상명하복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연장자나 상사에 대한 존중이 강조가 되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두 세대 간의 사고와 환경, 가치관에 큰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세대는 극심한 갈등과 분열의 아픔을 겪게 됩니다. 부모가 자녀를 이해하지 못해서 서로 마음을 닫기도 하고, 자녀가 부모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됨으로 서로 간에 큰 상처와 아픔이 마음에 흔적으로 남게 됩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어린 시절에 남아있는 상처는 치유되지 못하면 평생 삶에 고통을 가져다 주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하늘과 땅과 같은 두 세대를 연결하는 고리는 어디에 있는가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은혜의 연결고리입니다. 세대 간의 격차를 하나 되게 하고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하는 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라기를 통하여 엘리야를 통해서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모와 자녀가 하나되어 서로 사랑하기를 기뻐하십니다.
서로 하나가 되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의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는 자주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습관을 계발해야 합니다. 대화한다는 의미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마음에 있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의 마음을 이해하고 사랑으로 품으면 마음의 문을 열 것입니다. 그리고 대화를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것이 대화인 것입니다.
다윗이 압살롬이 죄를 범하자 삼년간 만나지도 않고 대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을 사랑했지만, 그와 대화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미웠던 것입니다. 다윗이 마음의 문을 닫고 대화를 하지 않자, 압살롬의 마음에는 반역의 생각을 품게 되고 결국 대적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압살롬이 무너졌고, 이는 다윗에게 큰 슬픔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잘 되기를 원합니다. 사도 요한처럼 우리도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3 2)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자녀들과 마음을 오픈하여 서로 대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자녀가 넘어지는 경우에도 부모의 마음은 그들을 향하여 사랑으로 품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면서 마음에 다리가 연결될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가 자녀에게 희망을 주고, 희망의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와의 대화는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와 카페에서 대화하는 법, 그리고 함께 여행하는 시간을 통하여 가족간의 끈끈한 유대감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강한 가족의 유대감 안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셔야 하는 것입니다.
3. 자녀에게 청지기 의식을 가르쳐야 합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 127:3).
우리는 자식에 대한 정체성을 성경적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즉 자녀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인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녀를 자신들의 소유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면 믿는 자 들 중에서도 자식을 자신의 소유의 일부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성경은 자녀에 대하여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라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자녀의 소유권은 부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를 우리 부모에게 맡기셔서 양육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녀들이 부모가 가르치는 양육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기업이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즉 부모는 자녀에 대한 청지기의 자세를 가져야 하고, 자녀들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살아가야 함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자녀들은 시간을 드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시간의 청지기로서 시간을 아껴서 가치있는 삶을 살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세상의 사람처럼 유흥이나 쾌락을 위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일에 예배하고, 토요일에 학생 청년부에서 예배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시간이 소중한 만큼 자녀들이 시간을 드려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것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배워야 할 것은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0절은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교회에서 선한 청지기 같이 봉사하는 것을 보는 것은 큰 은혜입니다.
자녀들은 교회가 중심이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어린 사무엘이 성전에서 자랐듯이, 자녀들이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사역에 참여하고 식사의 교제를 하며 믿는 자들과 함께 하는 일에 편안함을 느껴야 합니다. 학생들은 주일학교 사역에 헌신하여 섬기는 것을 배우고, 찬양과 악기에 재능이 있다면 자신을 드려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 섬김의 기쁨이 자라서 하나님을 섬기는 은혜가 넘치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재정의 청지기로서 돈을 관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자녀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면 십일조를 드리고, 일부는 저축하고, 일부는 자신의 용돈으로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릴 적부터 예산을 세우는 것을 배우고, 수입에서 십분의 일을 십일조를 드리고, 미래를 위하여 일정액을 저축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했듯이, 어릴 때부터 저축하는 습관을 가르쳐야 합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청소년 사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해마다 가는 선교 여행은 자녀들의 마음을 넓게 하고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특히 해외에서 믿음의 친구들을 사귀며 교제함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큰 마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비전이 자녀들이 다음 세대를 이끌어가는 영적인 주역이 되어 하나님의 일군으로 세워지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녀들을 크게 축복하시는 은혜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네가 호렙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를 위하여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려 하노라 하시매.”(신 4:10).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자녀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후에 복을 주셨습니다. 그때 그들에게 주신 명령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따라서 사람들은 생육하고 번성하였습니다.
시편 137편은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그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시 127:3-4)라고 했습니다. 장사가 전쟁에 나갈 때에 화살이 전통에 가득하면 든든하듯이, 자식들이 많은 것은 하나님이 주신 상급으로서 삶이 더욱 든든해 집니다.
자녀들은 하나님이 주신 상급이며 기업이기에 우리에게는 큰 기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들을 사랑으로 키우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워서 미래의 일꾼이 세워야 합니다. 작은 나무가 후에 큰 나무가 되어 열매를 맺듯이, 우리의 자녀들은 지금은 어리고 약하지만 장성한 후에는 가정과 교회에 큰 버팀목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자녀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이 어떠한 믿음과 가치관을 가지고 성장하는 거에도 관심이 있으십니다. 그러므로 신명기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들로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려 하노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해서 바른 믿음의 사람으로 키워가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자녀를 향한 영적인 비전을 품어야 합니다. 그 비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녀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품어야 할 자녀 양육의 비전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1. 부모가 가정에서 영적인 멘토가 되어야 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받은 영향력은 평생 가는 것입니다. 특히 믿음에 관하여는 부모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것입니다.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배운 믿음의 말씀은 평생 그 말씀 안에 거하게 하는 힘이 됩니다.
신명기는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6:7). 자녀들을 말씀으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부지런히 자녀들을 집에서나 길에서나 잠을 자기 위해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쳐야 하는 중요한 이유에 대하여 모세는 신명기 4장에서 3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생명이 되고, 지혜와 지식을 얻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것이요...”(신 4:1).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함은 열국 앞에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신 4:6).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면서 하나님을 경외함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 경외하는 지혜와 지식을 배우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향하여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우리가 성경을 바르게 가르쳐서 디모데처럼 어릴 때부터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워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길이 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우리는 자녀들을 말씀으로 교훈하고 책망하며, 바르게 하고 의로운 삶을 살도록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으로서 우리의 주가 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며 자녀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입니다.
2. 우리는 자녀들에게 믿음의 삶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들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우리는 부모로서 자녀들이 믿음 안에서 바르게 자라가도록 가르칠 책임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말씀으로 자녀들을 훈계하고 가르치기도 하지만, 자녀 양육의 1차 책임은 부모에게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의 삶을 가장 잘 알고 가장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자녀들을 가르쳐야 할 구체적인 삶에 대하여 함께 나누겠습니다.
1. 믿음의 삶을 본으로 보여야 합니다.
“... 그들로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려 하노라 하시매.”(신 4:10).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부모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함을 배우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우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자녀에게 가르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배우는 믿음은 부모님의 말보다도 삶을 통해서 배웁니다. 우리의 행동의 90% 이상은 무의식에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건한 믿음의 부모 아래에서 자란 자녀들은 일시적으로 방황하더라도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비록 세상에서 방황하더라도 자신의 무의식과 의식에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함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에게 식사하기 전에 기도하는 본을 보이면, 자녀들은 식사할 때에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릴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예배하는 모습을 보이면, 자녀들은 평생 하나님을 예배할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십일조를 드리는 헌금 생활의 본을 보이면 자녀들은 부모의 본을 따라서 드리는 삶을 기뻐할 것입니다.
믿음의 삶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과 더불어 사람과의 관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품어야 할 이웃의 가장 핵심에는 가족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족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우리에게 나타나는 행동은 반대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본을 보일 수 있는 영역은 그리스도의 성품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성품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육적인 삶을 버리고 영적이 삶을 살기로 결단함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육적인 삶은 다툼과 시기와 질투, 방탕과 호색에 있습니다. 이러한 삶은 하나님과 관계가 먼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현실의 삶에서 사람들과 다투고 미워하는 것은 본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러한 육신의 삶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각하고 말을 하며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열매에는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가 나타납니다. 가정에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 오래 참음이 가득하다면 가정에는 은혜가 왕노릇하는 작은 천국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삶에서 나타날 때에 자녀들에게 감동을 주고 신뢰성을 얻게 됩니다.
2. 열린 의사 소통을 통하여 선한 영향을 끼쳐야 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마 19:14).
사람들이 예수님께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자, 제자들이 꾸짖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이들을 사랑하심으로 가까이 하시고 대화하는 것을 기뻐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장차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될 것을 아시고, 그들을 축복하시며 기도해 주신 주님이십니다.
부모와 자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는 완전히 다른 시대를 살아왔습니다. 우리의 부모님이 사셨던 시대와 우리의 시대는 다르며, 우리의 자녀들이 살아가는 시대는 다릅니다.
지금의 세대를 흔히 MZ세대라고 부르며, 이는 밀레니얼 세대(M세대, 1980- 1995년생)와 Z 세대 (1996-2010년생)을 통칭하는 용어입니다. 1960년대생은 일반적으로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4년생)혹은 386세대(1960년대생, 1980년대 학번, 30대 직장인 시절)로 분류되며, 산업화 시대의 주역이자 희생과 책임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 세대입니다.
이 두 세대는 역사적 배경, 경제 환경, 교육 방식등이 다르기에 가치관과 삶의 태도에서도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MZ 세대는 자기 표현과 권리를 중시하며, 워라벨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가 만족하는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성공의 조건으로 여깁니다. 소통 방식에서는 자율과 창의성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므로 인스타로 소통하며 비대면 소통을 활발하게 합니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 폰 시대를 접하기에 디지털을 이해하는 속도가 무척 빠릅니다. 이러한 세대는 수평적인 관계에서 소통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386 세대 또는 베이비 부머 세대는 성실하게 일하면 성공한다는 신념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가족과 국가를 위한 희생을 미덕으로 삼았습니다. 우리가 배웠던 가치는 국가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한다 였던 것이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성공의 기준이었습니다. 소통 방식은 수직적인 군대식인 상명하복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연장자나 상사에 대한 존중이 강조가 되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두 세대 간의 사고와 환경, 가치관에 큰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세대는 극심한 갈등과 분열의 아픔을 겪게 됩니다. 부모가 자녀를 이해하지 못해서 서로 마음을 닫기도 하고, 자녀가 부모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됨으로 서로 간에 큰 상처와 아픔이 마음에 흔적으로 남게 됩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어린 시절에 남아있는 상처는 치유되지 못하면 평생 삶에 고통을 가져다 주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하늘과 땅과 같은 두 세대를 연결하는 고리는 어디에 있는가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은혜의 연결고리입니다. 세대 간의 격차를 하나 되게 하고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하는 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라기를 통하여 엘리야를 통해서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모와 자녀가 하나되어 서로 사랑하기를 기뻐하십니다.
서로 하나가 되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의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는 자주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습관을 계발해야 합니다. 대화한다는 의미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마음에 있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의 마음을 이해하고 사랑으로 품으면 마음의 문을 열 것입니다. 그리고 대화를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것이 대화인 것입니다.
다윗이 압살롬이 죄를 범하자 삼년간 만나지도 않고 대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을 사랑했지만, 그와 대화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미웠던 것입니다. 다윗이 마음의 문을 닫고 대화를 하지 않자, 압살롬의 마음에는 반역의 생각을 품게 되고 결국 대적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압살롬이 무너졌고, 이는 다윗에게 큰 슬픔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잘 되기를 원합니다. 사도 요한처럼 우리도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3 2)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자녀들과 마음을 오픈하여 서로 대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자녀가 넘어지는 경우에도 부모의 마음은 그들을 향하여 사랑으로 품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면서 마음에 다리가 연결될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가 자녀에게 희망을 주고, 희망의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와의 대화는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와 카페에서 대화하는 법, 그리고 함께 여행하는 시간을 통하여 가족간의 끈끈한 유대감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강한 가족의 유대감 안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셔야 하는 것입니다.
3. 자녀에게 청지기 의식을 가르쳐야 합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 127:3).
우리는 자식에 대한 정체성을 성경적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즉 자녀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인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녀를 자신들의 소유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면 믿는 자 들 중에서도 자식을 자신의 소유의 일부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성경은 자녀에 대하여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라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자녀의 소유권은 부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를 우리 부모에게 맡기셔서 양육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녀들이 부모가 가르치는 양육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기업이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즉 부모는 자녀에 대한 청지기의 자세를 가져야 하고, 자녀들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살아가야 함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자녀들은 시간을 드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시간의 청지기로서 시간을 아껴서 가치있는 삶을 살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세상의 사람처럼 유흥이나 쾌락을 위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일에 예배하고, 토요일에 학생 청년부에서 예배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시간이 소중한 만큼 자녀들이 시간을 드려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것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배워야 할 것은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0절은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교회에서 선한 청지기 같이 봉사하는 것을 보는 것은 큰 은혜입니다.
자녀들은 교회가 중심이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어린 사무엘이 성전에서 자랐듯이, 자녀들이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사역에 참여하고 식사의 교제를 하며 믿는 자들과 함께 하는 일에 편안함을 느껴야 합니다. 학생들은 주일학교 사역에 헌신하여 섬기는 것을 배우고, 찬양과 악기에 재능이 있다면 자신을 드려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 섬김의 기쁨이 자라서 하나님을 섬기는 은혜가 넘치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재정의 청지기로서 돈을 관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자녀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면 십일조를 드리고, 일부는 저축하고, 일부는 자신의 용돈으로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릴 적부터 예산을 세우는 것을 배우고, 수입에서 십분의 일을 십일조를 드리고, 미래를 위하여 일정액을 저축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했듯이, 어릴 때부터 저축하는 습관을 가르쳐야 합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청소년 사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해마다 가는 선교 여행은 자녀들의 마음을 넓게 하고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특히 해외에서 믿음의 친구들을 사귀며 교제함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큰 마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비전이 자녀들이 다음 세대를 이끌어가는 영적인 주역이 되어 하나님의 일군으로 세워지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녀들을 크게 축복하시는 은혜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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