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강해(8) - 교회가 지켜야 할 거룩 (고전 5장)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
고린도전서 5장은 교회의 거룩함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세상과 교회의 차이는 세상과 예수님과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특징은 죄와 어두움입니다. 그 안에는 음행과 살인과 방탕과 우상 숭배, 술 취함과 비방이 가득합니다.
지난 주에 미국을 뒤흔든 사건이 찰리 커크 암살이었습니다. 청년들에게 보수적인 가치를 가르치며 turning point usa 라는 단체를 세워서 보수의 가치를 주장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가정을 사랑하고 자녀를 낳아 키우는 것을 강조했고, 동성애와 트랜스 젠더를 부정하였고, 낙태를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 미국이 돌아가야 함을 강조했던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찾아온 것은 도리어 혐오를 조장한다고 하며 대학생이 총으로 암살한 것입니다.
그의 영향력이 컸기에 트럼트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국민들이 애도하고, 특히 폴 채플 목사님과 같은 영적 지도자들의 많은 애도가 있었습니다. 그는 믿음의 신념을 위해 희생한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가치와 하나님 나라의 가치의 충돌은 결국 한 무고한 사람의 생명을 잃어버리게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사역했던 고린도는 여신인 비너스 숭배와 음행이 만연한 도시였습니다. 이러한 세속적인 영향력이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인 고린도 교회에 침투하고 있었지만, 교회는 그에 대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형제 중에 음행을 행한 죄에 대하여 징계할 것을 명하고 교회의 거룩을 회복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1. 거룩한 교회는 죄를 슬퍼하며 심각하게 다룹니다.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 통한히 이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고전 5:1-2).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안에 성적 부도덕한 사건이 일어났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음행은 성적인 타락을 의미합니다. 당시 헬라와 로마 사회가 성적으로 문란했지만, 아버지의 어머니와 성적인 부도덕한 행위를 하는 것은 사회에서도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비의 아내를 취했는데, 이는 친모가 아니라 계모를 뜻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사람의 죄를 지적하면서 동시에 그러한 죄를 방관하고 있는 고린도 교회의 책임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이 오히려 교만하여졌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죄에 대하여 슬퍼하며 징계해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책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교만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쩌면 복음 안에서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그러한 죄에 대하여 개인의 자유 또는 개인의 문제로 돌렸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니면 구원받은 자이니 어떠한 죄를 범해도 괜찮다 라는 용납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기도 했을 것입니다.
교회는 지체들과의 관계성 안에서 세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신과의 친분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의 죄를 눈감아 주고 용납하곤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사적인 모임이 아니라, 공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즉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지는 거룩한 공동체인 것입니다.
유다서는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 (유 1:3)라는 메시지로 도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동생인 유다는 교회에 가만히 들어와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꾼 사람들에 대하여 경고했습니다. 즉 교리를 바꾸어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에 음행을 가져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임을 지적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하는도다.”(유 1:7-8). 간음을 행하고 다른 색, 즉 동성애를 추구했던 자들이 하나님의 불로서 심판을 받은 소돔과 고모라의 예로 그들을 경고했습니다.
세상과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별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주님의 몸을 이루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 중의 하나인 두아디라 교회가 잘못하는 일을 책망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자 이세벨을 용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계 2:20-21).
두아디라 교회는 성도들을 유혹하여 행음하게 한 여선지자 이세벨을 용납하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생명이 되시고 주님이 되시는 거룩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뜻을 거스리며 대적하는 어떠한 세속적인 가치를 받아들이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죄를 범한 자는 회개하고 주님 앞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일에 대하여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고전 5:3-4).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로 이러한 죄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했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판단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분별로서 죄를 죄로 규정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라고 했습니다. 이는 교회가 징계할 때에 공동체가 함께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가 이 일에 대하여 함께 의논하여 죄를 징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계모와 음행한 자를 사탄에게 내어 주었다고 했습니다. 이는 교회 공동체를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교제 안에서 벗어나게 함으로, 교회의 거룩을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고전 5:4)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육신이 멸하는 것을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육신이 멸하는 것은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유적인 교만과 정욕을 깨어지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죄에 대하여 징계하실 때는 여러 가지 고통을 동반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육신이 거룩한 교회를 떠나 세상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육체는 타락했지만, 주님이 오실 그 날에는 구원받게 될 것을 가르칩니다.
사도 바울이 언급한 핵심은 음행과 같은 심각한 죄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권위로 징계하여 교회의 거룩함을 지키도록 하는 것입니다. 징계 받은 영혼은 육신이 멸하게 되지만, 결국 주님의 날에 주께서 구원의 은혜로 이끌어 주십니다.
2. 거룩한 교회는 새 덩어리의 정체성 안에서 살아갑니다.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5:6).
고린도 교회는 죄를 애통해야 하는데 도리어 자랑하는 교만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즉 그들은 영적 자부심으로 교만한 가운데 있었기에 자신들 안에 있는 부끄러움을 알지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지적했습니다.
썩은 사과과 사과 바구니의 모든 사과를 썩게 하듯이,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는 것입니다. 누룩은 성경에서 영향력이 퍼져가는 속성을 의미합니다. 이 본문에서는 죄의 부패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곰팡이가 떡에 퍼지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온 떡에 곰팡이가 퍼져서 먹을 수가 없게 됩니다. 곰팡이기 핀 떡을 버리지 않는다면 집안 전체에 곰팡이 균이 퍼져갈 것이빈다. 이와같이 작은 죄를 용납하기 시작하면 교회 전체에 퍼지게 되고 결국 거룩을 무너트리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항하여 누룩 없는 자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 누룩 없는 자라는 뜻은 죄 사함 받고 구원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과거에는 세상의 죄 가운데 살던 누룩과 함께 살던 삶이었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누룩 없는 자들이 모여서 새로운 떡 덩이가 되었습니다. 새 덩어리는 거룩한 교회의 공동체입니다.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는 것은 과거의 죄와 타락한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서의 우상 숭배와 음행, 그리고 불평과 원망의 누룩을 버려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유월절 절기를 마친 후에 바로 무교절 절기를 7일간 지켰습니다. 이때는 집에 있는 모든 누룩을 버리고 무교병을 먹으며 칠일간 지내는 절기였습니다. 이는 과거의 죄를 벗어 버리고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눅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은 출애굽 당시 희생된 어린양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발랐고, 집에서는 누룩 없는 떡을 먹었습니다. 그들이 구원받은 것은 어린양의 피 때문이었습니다. 이와같이 고린도 성도들의 구원은 어린양 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인한 것입니다. 침례 요한이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지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의 죄를 벗어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전 5:8)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유월절의 명절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묵은 누룩이나 괴악이나 악독한 죄의 누룩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우리 입에서 나오는 악한 말이나 생각들을 버려야 합니다. 이는 옛 사람의 죄성과 습관입니다. 대신에 우리가 선택해야 것은 순전함과 진실함의 새로운 떡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특징은 순결 즉 거룩과 진실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속한 교회는 세상의 누룩을 본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위에서 순결하며 진실하게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삶이나, 가정 그리고 교회에서 방관하고 있는 누룩이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위반하거나 불순종하는 묵은 누룩이 있다면 우리는 이것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속한 새 덩어리는 주님의 거룩한 보혈로 세워진 그 분의 몸입니다. 이 곳에서 우리는 거룩함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를 향하여 사랑과 존중을 표현하며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관계를 세워가야 하는 것입니다.
3. 거룩한 교회는 성경적인 교제의 원칙을 세웁니다.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고전 5:13).
사도 바울은 이미 고린도 교회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고 편지를 보낸적이 있는 듯 합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그들과 사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에 대하여 동조하거나 음행하는 자들과 친밀한 교제를 하지 말라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세상에 음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자들과 도무지 사귀지 말라는 것이 아님을 상기했습니다.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 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전 5:10).
사도 바울은 이러한 죄를 범하는 세상 사람들과 전혀 관계를 맺지 말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하면 그들이 세상 밖으로 나가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이러한 사람들로 가득한데, 그들과 만남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아가지만 그들의 가치에 동조하지 말고, 특히 교회 안에서 이러한 죄를 방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언급한 것은 교회 안에서 이러한 자들이 있다면 함께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고전 5:11).
사도 바울은 형제라 일컫는 자, 즉 주 안에서 함께 믿음 생활하는 성도가 이러한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들과의 관계를 끊으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이 열거한 죄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는 음행을 언급합니다. 음행은 성적인 탈선이며 무분별한 성적인 행동입니다. 탐람은 탐욕으로 돈과 물질을 우상시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는 하나님 외의 것을 우선시 하는 것입니다. 후욕은 모욕하는 것으로 언어적인 폭력이나 인격을 무시하는 말을 하는 자드입니다. 술 취하는 것은 술을 즐기며 살아가는 것이며, 토색은 부당하게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한 자들과는 함께 먹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함께 먹는 것은 교제와 연합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죄를 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음행하거나 탐욕과 우상 숭배, 그리고 함부로 말하거나 술 취해 살아가는 자와는 가까운 교제를 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누룩이 퍼져서 온 공동체가 그러한 죄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 사람들을 향해서는 심판할 권세가 없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주님 안에서 죄를 분별하고 다뤄야 할 책임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교회의 거룩을 지키기 위한 공동체적 의무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지만, 교회 안에서 죄를 회개하지 않는 자느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고 했습니다.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고전 5:13). 교회는 거룩을 지키기 위하여 악을 허용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책임은 그들 안에 있는 악을 제하는 것이었습니다. 우상 숭배나 음행, 그리고 유괴 같은 악을 제거함으로 이스라엘의 거룩을 지켜야 했던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우리가 속한 교회가 얼마나 거룩한 곳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거룩을 지키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뜻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이러한 죄를 범하며 회개하지 않을 때에는, 교회는 기꺼이 징계를 통해서 회개케 하고 교회가 자신을 돌아보며 거룩에 이르도록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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