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사랑이 최고의 가치입니다.

비전의 사람 2025. 9. 17. 14:02

사랑이 최고의 가치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22:37-38).

 

우리의 인생에서 소중한 것에 대하여 성경은 사랑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13장은 사랑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랑을 언급하면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언급합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 13:13). 믿음도 중요하고 소망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우리가 아무리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또한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했습니다. 요한일서는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8)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랑은 너무나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의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이 사랑이기에,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랑은 삶의 체질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이 우리에게 소중하지만, 사랑하는 삶이 되기 위해서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을 감정의 영역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가족이나 배우자, 친구들에 대하여 느끼는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랑을 감정에 한정하지 않고 행동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는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일 3:18) 라고 했습니다. 사랑이란 희생적인 행위에 기초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최고의 사랑은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5:13). 주님은 서로를 향하여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하도록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최고의 친구가 되시는 이유는 자신의 목숨을 우리를 위하여 희생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3장에서 주님은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13:34). 우리가 주님의 제자로서 살아가는 진정한 모습은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사랑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1. 주님의 새 계명은 서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13:34).

 

신약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는 다양하게 표현됩니다. 에로스는 성적인 도는 로맨틱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스토르게는 자연적인 사랑인데 이는 어머니의 자녀를 향한 사랑이나 자녀가 어머니를 향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필레오는 친구간에 나누는 친밀감으로서 우정의 사랑입니다. 아가페는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이는 자신을 부인하며 다른 사람을 향한 헌신적인 사랑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가페의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사랑도 아가페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서로 사랑은 주님이 주신 새 계명입니다. 레위기에서는 유대인들에게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19:18). 하나님께서는 레위기에서 이웃 사랑을 가르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새로운 계명을 주시면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새계명과 구약의 계명과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요? 주님께서 가르치신 세 계명에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라고 정의하셨습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과 같이 다른 사람에게 은혜와 사랑을 보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보여주시는 사랑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가치에 반하는 태도나 행동을 좋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랑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성전을 정결케 하실 때에 그들의 행위를 미워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을 향한 사랑에는 변함이 없으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 우리 안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가득해야 함으로 인하여 우리의 성품과 행위에서 사랑이 증거되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5:1-2). 주님이 보여주시는 사랑은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인 것입니다.

 

2. 예수님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5:12).

 

주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범위는 어디인가요? 그 범위는 배우자와 가족, 그리고 지체들, 더 나아가 직장 동료나 이웃들에게 포함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하나님에서 시작하여 가족과 교회, 세상을 향하여 울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실 때에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슴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20:28). 우리의 사랑도 대가를 바라고 하는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축복하기 위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1) 주님은 우리의 부족함을 이해하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연약함을 이해하시고 변함없이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은 도마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도마를 사랑하셨고, 베드로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그를 품으시고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은 바울의 무지로 인한 핍박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하심으로 구원하셨고 위대한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은 심지어 가룟 유다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비록 가룟 유다의 죄는 그를 영원한 멸망으로 인도하지만, 주님은 가룟 유다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사랑이시기에, 죄의 행위는 미워하시지만 그 사람에 대하여는 변함없는 긍휼과 자비를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사람의 연약함을 아시고 비록 실패하고 넘어지도라도 긍휼의 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때로는 우리를 향하여 함부로 대하거나 삶에서 죄가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정죄하기 보다는 사랑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 소중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행동에 문제가 있다면 이해하기 위하여 이러한 질문들을 할 수 있습니다.

 

1) 과거의 그의 삶이 어떠했는가?

2) 그들의 부모는 그들을 어떻게 양육했는가?

3) 그들은 지금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사람들이 실패하거나 넘어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이유를 이해함으로 그들을 더욱 깊이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그들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단점과 결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이해하고 주님과 같이 사랑하는 삶이 필요한 것입니다.

 

2) 주님의 사랑은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4:32).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용서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마음으로 용서하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감동적인 용서의 사랑을 듣습니다. 얼마전에 미국의 한 흑인 교회에 총기를 가지고 와서 성경공부하는 목사님과 성도들을 향하여 총격을 가해서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큰 슬픔에 빠졌고 다시는 사랑하는 가족을 만날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범인을 향하여 용서를 선포하였습니다. 자신의 가족을 살해했지만, 그들은 그를 용서하는 모습에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IS 가 이집트의 크리스챤을 처형했을 때도 그 가족의 소녀는 그들을 용서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이와 같이 용서를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용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용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대가로 인하여 우리가 얻은 큰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용서를 받았지만, 우리는 삶에서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연약한 마음과 육신이 있기에 자신의 마음에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한 복수 또는 원망의 마음이 가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용서에 대하여 가르치시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혐의에 대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해를 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거친 말을 하거나 비방하며 다니거나, 여러 가지 모양으로 되돌려 주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자신에게 고통스러운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우리가 쓴 뿌리와 분노에 집착하게 되면, 우리의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큰 어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자신의 건강에도 어려움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향한 은혜와 사랑의 마음을 크게 함으로 용서를 실천하고 사랑을 보여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3) 예수님은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8:34).

 

주님께서는 제자가 되어 주님을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습니다. 최고의 사랑은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참된 사랑에는 희생이 포함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부인하고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부모는 자녀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며 양육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목자들이 양들을 돌아보기 위하여 심방과 섬김의 삶을 실천합니다. 또한 어려운 지체들을 위하여 사랑의 헌금을 통하여 사랑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랑은 주님과 같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칭찬합니다. 그들이 드린 물질이 하나님 앞에서 향기로운 제물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칭찬했습니다.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4:16, 18). 우리의 삶이 은혜의 삶이 되는 것은 주님을 신뢰 하면서 가족과 지체들, 그리고 이웃들에게 은혜의 통로가 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3. 우리가 사람을 섬기는 것은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6:6-7).

 

우리는 사람을 섬기지 않고는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섬김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태복음에서 주님은 이러한 말씀으로 교훈하셨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하고.” (25: 35-40).

 

주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주님을 섬기며 돌보아 드린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 우리가 주린 자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이며, 병든 자를 돌보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은 누구인가? 물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섬겨야 할 이 땅의 예수는 우리의 이웃이며 지체들이며 가족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에서 주님을 대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배우자를 진실로 사랑하며 섬기는 모습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섬겨야 할 예수는 곧 우리의 가족이며, 지체들이며 이웃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필요를 가진 자를 외면하는 것은 곧 주님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25:45). 주님은 어렵고 힘든 자들을 외면한 것이 주님을 외면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가정에서 배우자와 부모님, 그리고 교회에서는 지체들, 사회에서는 주위의 어려운 자들을 섬기는 것이 곧 주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섬겨야 할 예수는 곧 우리 주위에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6:6-7). 우리가 사람들을 섬기지만 그러나, 우리가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님을 섬기듯이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그대로 갚아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줄을 앎이라.” (6:9). 우리가 각 사람에게 선을 행하게 되면 주님이 받으신 것을 간주하고 그대로 받게 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희생적으로 사랑한 사람이 있는지요? 누군가를 향하여 진심으로 사랑하며 자신을 희생하고 있는지요?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고 있는지요?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는 비결 중의 하나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 서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