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노니아 시리즈(4) - 광야를 이기는 힘, 코이노니아 (출 13: 17-22)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항오를 지어 나올 때에.”(출 13:18).
광야는 지리적으로는 물이 없고 덥고 추운 황량한 공간입니다. 광야에 들어가면 자칫하면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아주 위험한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구속하신 이스라엘 자손을 가나안으로 가는 지름길로 인도하지 않으셨고, 광야의 험한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의도를 가지고 인도하신 길입니다.
성경에는 광야 라는 공간을 영적인 훈련 장소 또는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거쳐가야 하는 길이 바로 광야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로 가기 전에, 요셉이 광야의 모진 고통을 당했습니다. 모세도 광야에서 40년간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윗도 광야에서 도망하며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시며 사탄과의 영적인 싸움을 싸우셨습니다.
하나님게서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실 때, 우리의 반응은 ‘할렐루야! 하나님이 나를 광야 학교로 인도하셨어“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광야는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든 기간입니다. 그 공간에는 인생의 앞길이 막막하고 답이 보이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고난과 건강의 위기 앞에 생명의 등불이 꺼져가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광야에서는 기도도 막히기도 하고 사람과의 관계도 단절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광야는 버림받는 장소가 하나님 앞에서 빚어가는 과정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시간 그 분의 섭리 가운데 우리가 광야를 극복하고 더욱 성장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광야를 이기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요? 그것은 바로 코이노니아에 있습니다. 우리가 광야에서 지쳐 쓰려질 때에 이길 수 힘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힘은 우리가 하나님과 코이노니아 가운데 있고, 공동체와의 코이노니아 안에 거할 때에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하십니다. 광야는 고립되고, 시험을 받으며, 시련의 자리이지만, 하나님은 그 곳에서 함께 하시는 코이노니아로 이기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광야에서의 시간을 혼자 외롭게 고통스럽게 지내는 것이 아니라, 빛 가운데 나와 하나님과의 코이노니아안에 거함으로 일어서서 전진해야 합니다.
1. 우리는 하나님과의 임재의 코이노니아를 살아가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출 33:14).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광야를 지나갈 때에 혼자 외롭게 가도록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 한가운데서 함께 거하시며 동행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서 불순종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죄를 범했지만,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함께 하시며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우리가 이기는 힘은 하나님과의 코이노니아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들어가자 말자 하나님께서는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40년을 인도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출 13:2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걸어가는 광야의 길을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며 빚어 가십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그들의 필요를 채우는 만나를 통해서 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에서 먹을 양식과 마실 물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셔서 그들의 육체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그리고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 자손의 갈증을 채워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만나로 필요를 채우신 것으로 마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임재하시기 위하여 성막을 지으셨습니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출 25:8). 성소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중심에 거하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광야에서 성막을 중심으로 열두 지파가 진을 친 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그들의 삶의 중심이 됨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신의 악단‘이라는 영화는 저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신의 악단은 찬양을 통해서 변화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 ’광야를 지나서‘라는 찬양이 나오며 많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순교 당하는 장면에서 많은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면서 북한의 성도들이 감당해야 할 광야와 같은 삶과 겹치면서 큰 감동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광야를 지나서 찬양은 정진숙 작곡가가 자신의 삶의 체험에서 나온 간증을 찬양곡으로 작곡했습니다. 정진숙 작곡가는 IMF 때에 가족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고, 아버지가 폐암 진단을 받는 시기를 자신의 광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 광야에 서 있다.” 그리고 자신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기도를 통해서 공급받는 과정에서 주님이 도움과 빛이 되시는 분으로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광야는 독사와 추위와 더위와 같은 환경의 두려움이 찾아오지만,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갈렙은 광야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여워 말라.”(민 14:9). 우리의 하나님은 세상의 무엇보다 더 크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한다면 어떠한 광야가 주는 시련과 역경을 이기며 빚어지며 성숙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갈렙의 믿음의 선포를 거부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거부했기에 불평과 원망이 가득했고, 더 나아가 자신들을 메뚜기와 같은 낮은 존재로 인식했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광야에서 믿음으로 살아갔던 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이름은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유대 광야로 도망했습니다. 그곳은 위험이 도사리는 무서운 곳이었습니다. 광야에서 다윗이 한 일은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 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시 63:1-2). 다윗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구했던 것은, 광야의 외롭고 힘든 길에서 하나님만이 자신의 도움이 되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신 23:4)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광야의 위험과 두려움을 이길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재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종살이와 감옥에서 형통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건짐을 받은 이유도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위대한 약속은 바로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지상 사명을 주시며 하신 약속을 우리는 확신해야 합니다. “...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주님이 함께하시는 우리의 여정에서 어떠한 광야의 시험이 찾아와도 담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의 코이노니아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코이노니아를 살아가야 합니다.
“...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하나님의 임재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라고 한다면, 말씀은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 안에 들어오게 하는 통로입니다. 코이노니아는 참여하고 나누고 교제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코이노니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을 뛰어넘어 말씀으로 하나님의 임재에 참여하고 교제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광야는 생존의 수단이 차단된 곳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자손의 생존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만나를 내리신 하나님의 의도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은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이기에 우리의 영혼을 회복시키고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광야에서 우리가 지치고 힘들 때에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을 회복시키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말씀이 자신을 살렸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시 119:50).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다윗은 고난 가운데서 힘들어 할 때에 말씀이 자신을 살리셨다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또한 주의 법을 사랑했기에 고난 중에 이겼다고 고백합니다.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다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시 119:92). 다윗이 광야의 고난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다윗의 즐거움이 말씀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의 악단’이라는 영화는 1994년 북한에서 고통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광야와 같은 삶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핍박과 시련에서도 성경을 읽는 이유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믿는 자들의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의 어머니가 성경을 읽다가 발각이 되어 순교당하는 장면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하의 성도들이 어두움 가운데 촛불을 켜서 성경을 읽는 것은 그들의 말씀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보위부 간부가 성경을 읽고 찬양을 부르다 변화되는 모습은 말씀의 위대한 능력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코리 텐 붐 여사는 2차 세계 대전 당시에 네덜란드 크리스챤으로서 유대인을 보호하다 수용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는 배고픔과 폭력이 가득한 곳에서 광야의 삶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때 그녀는 몰래 반입한 성경을 밤마다 여성 수감자들과 읽으며 말씀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녀는 후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수용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존 번연이 허가 없이 설교했다는 이유로 베드포드 감옥에 12년간 갇혀서 생활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성경을 암송하며 묵상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결국 존 번연은 감옥에서 ‘천로역정’이라는 책을 저술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감옥은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깊이 배우는 학교였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장소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믿음과 인격이 변화되는 곳입니다. 광야에서 말씀의 코이노니아는 광야의 고난을 없애지 않지만, 말씀은 광야에 있는 나를 살리고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올해 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께서 성경 365일 통독을 통하여 말씀의 코이노니아를 이루어가시기를 소망합니다.
3. 우리는 공동체의 코이노니아로 살아가야 합니다.
“... 아론과 홀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출 17:12).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이 광야를 지나갈 때에 주시는 은혜는 바로 동역자들입니다. 믿음의 동역자들과 함께 하는 코이노니아는 주님 안에서 형제 자매로서 서로를 책임지는 삶의 방식입니다.
공동체의 코이노니아는 하나님이 사람이 살아가게 하시는 방식입니다. 창세기 2장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라”라고 하시며 아담을 위하여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부부가 되어 한 가정을 이루며 함께 코이노니아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전도서는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 4:9-12)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광야의 길을 걸어갈 때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위로와 격려가 되어 승리하는 광야의 여정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모세를 위하여 아론과 훌을 붙여 주셔서 동역의 코이노니아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기도는 계속될 수 있었고 결국 승리했습니다. 모세와 아론과 훌이 함께 기도할 때에, 전쟁에서는 여호수아가 싸우며 승리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다윗이 광야의 길을 지날 때에 요나단을 보내셔서 다윗에게 위로가 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동체의 코이노니아를 통해서 광야의 어려운 길을 이기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은 우리에게 공동체의 코이노니아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철새들이 수천 km 를 이동할 때 절대 혼자 날지 않습니다. 맨 앞에서 나는 새는 가장 크게 바람의 저항을 받습니다. 그러면 뒤따르는 새들은 바람의 저항을 덜 받아 최대 70%의 힘을 절약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함께 수천 km를 날으며 공동체를 이룹니다. 그리고 선두의 새가 지치면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나고, 다른 새가 선두를 맡아 그 책임을 감당하며 함께 날아가는 것입니다.
숲속의 나무는 겉으로는 각자 서 있는 것 같지마, 땅속에서는 서로 연결되어 도움을 줍니다. 강한 나무는 영양분을 약한 나무에 전달하고, 병든 나무는 주변 나무들이 주는 영양분으로 힘을 얻습니다. 공동체는 강한 사람만 살아남는 구조가 아니라, 약한 존재를 살려 전체 숲을 지키는 구조입니다. 고린도전서는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고전 12:26)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에는 레드우드 국립공원이 있습니다. 이 거대한 국립공원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 들이 큰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레드우두는 100 m 이상의 큰 나무임에도 불구하고 뿌리가 아래로 깊게 내려가지 않고, 대신 옆으로 퍼져 있다고 합니다. 거대한 나무들의 뿌리들이 서로 얽혀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어서, 바람이 불면 숲 전체가 함께 흔들리고 폭풍 속에서도 거의 쓰러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뿌리들이 서로 양분과 수분을 공급하며 살아나는 것입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혼자 서 있으면 위험하지만, 공동체와 함께 하는 것은 생존에 필수적이다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광야를 지날 때에 물이 없어서 갈하고 먹을 양식이 없어서 쓰러지는 순간에 여러분은 어떻게 이겨나가실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혼자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이겨나가도록 믿음의 공동체를 예비해 주심을 깊이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갈 6: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짐을 지며 아름다운 공동체의 코이노니아를 세워가야 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공동체는 온전한 코이노니아를 이루는 교회였습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행 2:42, 44-45). 그들은 서로의 짐을 지고 함께 물건을 나누며 각 사람의 필요를 위해서 헌신하는 코이노니아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혼자 서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거대한 나무인 레드우드의 뿌리가 서로 연결되어 수분과 양분을 공급받으며 지켜주듯이, 우리도 주님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서로를 지켜주며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서로에게 축복이 넘치는 말씀을 나누며 서로에게 공급해 주며 함께 성장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코이노니아는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참여하는 믿음의 공동체인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광야입니다. 우리가 성경 통독에서 출애굽기를 읽고 묵상하며 광야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치열함이 광야와도 같습니다. 이러한 광야를 이기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요? 광야를 그냥 견디는 것이 아니라, 광야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믿음의 삶의 비결은 어디에 있나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 임재의 코이노니아, 말씀의 코이노니아, 그리고 믿음의 공동체와의 코이노니아에 있음을 발견합니다. 오늘 광야를 지나고 계신 성도님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왜 여기 있느냐‘고 묻지 않으십니다. 대신 이렇게 물으십니다. ”너는 누구와 함께 이 길을 가고 있느냐?“ 광야를 이기는 힘은 코이노니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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