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예수님의 열두제자(2) - 야고보

비전의 사람 2015. 7. 7.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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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열두제자(2) - 야고보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배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4:21-23)

 

야고보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서 핵심 리더 세명 중 하나였습니다. 형제 요한과 함께 제자로 부름을 받은 야고보는 예수의 제자들 중 최초로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1. 이름의 뜻:

야고보는 야곱의 헬라어 이름으로서 발꿈치를 잡은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2. 인적사항:

1) 그의 아버지는 세베대이고 형제는 사도 요한입니다. 복음서에서 야고보의 이름이 요한의 이름보다 먼저 언급되는 것은 아마도 야고보가 형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2) 아버지 세베대는 어부로서 갈릴리 바다에서 여러 배들을 소유하고 있었고 종들을 고용하고 있었습니다 (1:20; 5:11). 그 기반은 매우 확고했고 요한은 대제사장과 아는 사이였던’ (18:15) 것으로 보아 그 집안은 풍요했습니다.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하나가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18:15).

3)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살로메로 추정한다. (27:56, 15:40)

 

3. 사도 야고보가 주는 영적인 교훈은 무엇인가?

 

사도 야고보가 우리에게 주는 영적인 교훈은 무엇인가요? 사도 야고보의 삶을 조명하면서 그가 주님을 따르면서 변화되는 하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는 강한 자아 중심적인 삶에서 그리스도 중심의 삶으로 변화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삶은 강한 자아의 사람에서 강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1. 야고보는 요한의 형제로서 부유한 집안을 배경으로 합니다.

곧 부르시니 그 아비 세베대를 삯군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1:20).

 

야고보는 요한과 함께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십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1:17). 그러자, 세배대의 아들들이 삯군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갑니다. 세배대는 부유한 어부로서 배를 소유하고 있었고, 그 배에서 일하는 일꾼들도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8장에서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 심문을 받게 됩니다. 이때 사도 요한은 그 뜰에 예수와 함께 들어갈 수 있었지만, 베드로는 문 밖에 서야 했습니다. 그때 대제사장과 잘 아는 제자인 사도 요한이 나가서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세배대는 유대 공동체에서 대제사장을 잘 알만큼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세배대가 부유함으로 영향력을 끼쳤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자신의 부유하고 안정된 가문을 포기하고 주님을 따르는 선택을 하게 된 것입니다.

 

야고보가 주님을 따르기로 결단했고 주님의 핵심 제자였지만 순식간에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디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배경이 부유한 집안을 배경으로 했기에 그의 성격도 거만하고 급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야고보와 요한에게는 특별한 별명을 붙여 주셨습니다. , 보아너게 우뢰의 아들이란 별명을 붙여 주신 것입니다 (3:17). 그 이유는 성격이 급하고 거칠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9자에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다가 사마리아를 지나시는데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렇게 응대합니다.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9:54). 세배대의 아들들은 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자 불을 내려서 멸하기를 소망했습니다. 주님께서 지난 3년 동안 가르치신 사랑과 섬김은 간곳 없고, 오직 자신의 성격대로 대응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자아가 강한 야고보였지만, 그는 주님의 가르침대로 변화되기 시작하여 결국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고 결국은 사도로서는 처음으로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집안의 배경이 생각과 성격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가치, 더 나아가 기질까지도 주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변화를 받아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강하고 거친 기질들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야고보는 지난 3년간 주님으로부터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변화되지 않는 자신만의 아집과 기질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에게도 주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앞서갈때가 참으로 많은 것을 보게 되면서 주님을 깊이 묵상하며 날마다 변화받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2. 하나님은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야고보가 섬기는 종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20:27).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며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시며 올라가십니다. 그 분의 마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주님의 나라에서 높은 자리를 주실 것을 부탁합니다.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야고보의 집안은 부유한 집안이었습니다. 배도 여러 척 있었고 정치적으로도 대제사장과 잘 아는 정도로 영향력있는 집안이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영향력을 가진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에게까지 찾아와서 미래에 주님의 곁에서 부귀 영화를 누릴 것을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은 이러한 질문을 다시 던지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0:22). 주님께서는 야고보에게 나의 마시려는 잔을 마실 수 있느냐고 하셨고, 그들은 마실 것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야고보에 대한 예언을 하십니다.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야고보의 어머니의 제안에 오히려 십자가의 죽음과 같은 잔을 마실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물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야고보를 향하여 으뜸이 되고자 한다면 먼저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함을 가르치십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20:26-27). 주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종이 되어야 큰 자가 되는 것이지, 높은 지위에 앉아있는 것이 큰 자가 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주님도 이 세상에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시기 위해서 오셨고 심지어는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주신 것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20:28). 주님께서는 우리를 섬기셨고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사람들은 왕이 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 삶의 주체가 자신이 되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철저하게 자신이 중심이 되어 살아가는 삶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라의 왕이 되고자 노력하는 자가 있고, 어떤 사람은 직장에서 왕처럼 행동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사람은 가정에서 왕처럼 모든 권력을 행사하려고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주인이자 왕으로서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성숙해질수록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을 닮아가는 자로서의 삶은 자신이 주체가 된 삶에서 그리스도가 주체가 되어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의미를 하나님을 섬기며 다른 지체들과 이웃을 섬기는 데서 발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 자기 중심에서 그리스도 중심으로 변화되어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종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고전 10:33). 우리의 삶에서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종의 모습으로 섬기고자 하는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야고보는 자신의 강한 자아를 가진 자로서 육신적으로 으뜸되기를 원하는 삶을 살아가다가 결국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서 섬기고 결국은 주님처럼 자신의 목숨을 하나님께 드리게 됩니다.

 

3. 주님은 우리가 어떠한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충성되기를 기대하십니다.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12:1-2).

 

믿음은 그 가치를 증명하기 위하여 대가를 요구합니다. 때로는 목숨으로 자신의 믿음을 지켜야 할 때를 만나는 것이 우리의 신앙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지켜온 소중한 믿음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복음의 진리에 대한 믿음을 지키며, 거룩한 교회에 대한 확신입니다. 그리고,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에 대한 소중한 가치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그 진리를 지켜야 하기 위하여 많은 희생을 감수하기도 합니다.

 

최근에 미국에서 미국 장로교회가 동성애자의 결혼과 더불어 안수까지도 인정하는 법안을 가결했습니다. 미국의 장로교단은 170만명의 거대한 교단입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니까 그러한 결정이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동안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온 결과임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무오성을 믿지 않고 자유주의 신학을 받아들였습니다. ,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며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낙태에 대하여도 허용적이고 이혼이나 여성 안수에도 모두가 관대했습니다. 그 결과로 동성애자 결혼 및 안수허용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지켜야 할 진리가 없고, 단지 사람을 기쁘게 하는 종교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1973년 경에 미국의 장로교회에서 분리된 장로교단(PCA)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신학교를 새롭게 세웠고 성경도 진리대로 믿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 결과로 그들은 성경 중심으로 가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서침례교회도 미국의 남침례교회가 자유주의에 물들어갈 때에 진리를 지키기 위하여 분리되어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근본주의 운동이라고 합니다. 많은 대가가 지불되지만 진리를 지키기 위하여 희생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강한 자아 중심의 사도였지만, 주님으로부터 배우고 난 후에 자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하며 자신의 신앙을 지킨 사도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라고 하실 때에 야고보는 요한과 함께 마실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할 수 있나이다.” 그때 주님께서 야고보를 향하여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20:23) 라고 하심으로 그가 마셔야 할 잔이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마시는 잔은 십자가의 희생과 고난, 그리고 죽음의 잔이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야고보는 주님이 가신 그 길을 자신의 믿음 때문에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는 기꺼이 주님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며 순교를 다한 최초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을 향한 충성을 다하기 위하여 마셔야 할 잔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잔은 복음과 주님의 교회를 향한 희생입니다. 우리가 희생하지 않는다면 주님의 교회는 세워질 수 없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희생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생명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면 진리는 지켜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진리와 말씀과 교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크신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야고보는 부유한 가정의 아들로서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야고보는 비록 주님을 따르는 제자였지만 자신의 강한 기질로 인하여 오해도 받고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주님의 가르침을 잘 따르며 초대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고 자신의 묵숨까지도 자신이 믿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희생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목숨까지도 포기할 수 있었던 야고보는 주님의 사람으로서 귀하게 쓰임받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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