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예수님의 열두제자 (8) - 도마

비전의 사람 2015. 7. 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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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열두제자 (8) - 도마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구게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0:25).

 

우리는 살아가면서 비관적인 사람을 만나곤 합니다. 비관주의자는 검은색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보는 삶에서 긍정적인 요소보다 부정적인 요소를 더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컵에 물이 반쯤 있을 때에, 컵에 물이 반쯤 채워졌다고 하기 보다는, 컵에 물이 반이 비워졌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러한 시각은 자신의 영적 생활에도 영향을 미쳐서 교회의 사역이나 설교나 가르침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을 자주 갖게 됩니다. 비록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주의하지 않으면 이러한 염세주의적인 사고에 빠져서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성향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고자 하는 도마를 사람들은 의심많은 도마라고 칭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등장하는 장면을 보면 주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비관적이고 심지어는 주님의 부활의 증거에 대하여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도마의 영적생활에는 항상 어두운 면을 강조하는 의심이 중심에 있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아마도 도마는 본성적으로 의심이 강한 성향을 가지고 태어났을 것을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도마는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우리도 자신의 성향을 완전히 바꿀수는 없지만, 자신의 부정적인 성향에 의하여 자신의 삶이 통제될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삶이 변화되어 그리스도를 닮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은 그분과의 관계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도마의 삶을 통하여 얻게 되는 영적인 교훈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냉소적인 잘못된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고 그 분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부정적인 태도에 속박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두운 렌즈로 상황들을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도마를 나사로의 죽음의 상황에서 만나게 돕니다. 나사로와 두 누이인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루살렘의 근처인 베다니에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의도적으로 시간을 지체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분의 능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유대의 베다니에 가신다고 하시자, 제자들이 놀라게 됩니다.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11:8).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과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주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신대.” (11:14-15).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었지만, 주님이 행하시는 능력으로 제자들과 유대인들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한 목적으로 유대로 가시고자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에서,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20:30-31)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상황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시는 기회를 얻으신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인도에 대하가 냉소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11:16). 도마는 주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도마는 핍박의 상황으로 들어가시는 주님을 향하여 반대는 못하고, 냉소적으로 반응한 것입니다.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예수님은 제자들이 죽을 것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주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스승을 냉소하는 잘못된 태도를 보인 것입니다. 물론 도마는 두려워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8:58-59)는 말씀에 유대인들이 돌을 들어 치려고 한 경험이 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0장에서 주님이 아버지와 하나이라고 하시자, 유대인들이 돌을 들어 치려고 했습니다. (10:31). 이러한 상황을 알고 있는 도마와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어려움을 회피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적대적인 악의를 품고 있는 유대인드를 만나러 가시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고 주님과 교회를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잘못된 태도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수가 있는 것입니다. 도마는 다른 제자들에게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의 말은 다른 제자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기도 하고, 냉소적인 태도를 배우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태도가 가족들이나 교회의 지체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영적인 혼돈을 믿음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기 전날에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13장에서는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서로 사랑하라는 새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제 떠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 (13:36). 그리고, 주님은 요한복음 14장에서 그들의 염려를 진정시키시기 위하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주님이 떠나 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의 영원한 처소를 예비하시면 다시 오실 것입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14:3). 그리고, 주님께서는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14:4)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도마가 질문합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14:5). 도마의 질문은 베드로의 질문의 연장이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 (13:36). 베드로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라고 물었고, 도마는 더 나아가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고 하셨지만, 도마는 주님이 가시는 곳도 모르고 그 길도 모른다고 응답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도마의 영적 무지를 벗어버리는 진리를 선포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14:6). 주님께서는 그 길을 알지 못한다는 도마에게 주님이 길이다.” 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진리이며 생명이신 것입니다. 주님이 가시는 곳은 아버지가 거하시는 천국인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에 갈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이 천국에 이르는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떤 진리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로서 수많은 사람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철학자들은 나름대로 진리를 발견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들은 아무런 진리를 발견할 수 없었고 오히려 진화론과 같은 사상들을 만들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짓을 말하실 수 없는 진리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참된 진리와 생명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참된 천국의 길과 이 세상의 참된 진리와 참된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세상은 자신들이 가는 목적지와 그 길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전화로 연결되다가, 이제는 인터넷과 앱으로 전세계가 연결되었습니다. 과학 기술은 인간과 인간의 연결을 더욱 간편하게 만들게 됨으로 전 세계가 더욱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과 연결되는 길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가는 길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이성과 논리로는 영적인 차원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의 길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3. 우리는 의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된 제자라 할지라도, 우리의 삶에는 영적인 위기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영적인 위기가 찾아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영적으로 절망의 상태로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의 성향이 비관적이고 부정적이게 되면, 우리의 의심은 더 커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적어도 도마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이후에 이러한 영적인 위기를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 제자들에게 주님의 부활을 선포합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20:18). 막달라 마리아는 친히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에 확신있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들을 닫고 모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친히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0:19-20).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손과 옆구리를 보며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이 다시 살아나셨음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러나, 도마는 제자들과 함께 있지 않았기에 주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이 주를 보았다고 하자, 도마는 부활의 주님을 믿지 않고 의심합니다.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0:25). 도마는 손과 옆구리의 못자국과 창자국을 만져보아야 믿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도마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진리를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는 제자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도마에게 주님은 책망하지 않으시고 며칠 후에 다시 오셨습니다. 주님께서 도마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0:27). 주님은 도마에게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본 도마는 비로서 예수님을 인정하게 됩니다.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0:28). 도마는 부활하신 주님의 손과 옆구리를 만진후에 비로서 주님을 하나님과 구주로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은 이렇게 권면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20:29). 주님은 도마를 향하여 보고 믿는 신앙이 아니라, 보지 못하고도 말씀을 믿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디에 기초하고 있나요? 우리의 믿음이 초자연적인 능력이나 경험을 체험했기에 얻어진 믿음인가요? 아니면 우리의 믿음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믿음인가요? 우리는 경험이나 감정, 더 나아가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인한 믿음을 가진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고, 그 믿음에 기초하여 새로운 생명의 삶을 살아갑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에 대한 냉소적이거나 부정적인 시각이 아니라 긍정적이며 믿음의 태도를 통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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