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예수님의 열두제자 (6) - 나다나엘 (바돌로매)

비전의 사람 2015. 7. 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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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열두제자 (6) - 나다나엘 (바돌로매)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1:49).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처음 만나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1:47).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는 의미는, 나다나엘의 정직성을 격려하신 것입니다. 그 속에 거짓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나다나엘의 자기 의를 칭찬하신 의도는 아닙니다. 그의 정직과 착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여 거듭나고 구원받아야 하는 필요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다나엘은 두 가지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바돌로매라고 소개합니다. 마태복음에 예수님의 제자들을 소개하면서, “빌립과 바돌로매...” (10:3)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나다나엘이라고 소개합니다. 나다나엘의 뜻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한 마음과 책한 행실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우리 모두에게는 거듭남의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아무리 종교적이며 교회 생활에서 충실한 삶을 살더라도 그 자체가 구원의 보증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의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는 거듭남의 역사가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존 웨슬리의 회심은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그는 옥스퍼드에서 홀리 크럽을 조직하여 경건한 삶에 힘썼고, 미국으로 건너가 선교 활동을 감당하다가 실패하고 돌아옵니다. 그러던 중에 그는 배에서 모라비안 교도들의 참된 신앙을 체험하게 되고, 올더스게일가의 한 모임에 참석했다가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통하여 하나님께서 마음의 변화를 이루시는 역사를 설명했습니다. 그때 웨슬리는 믿음으로 얻게 되는 구원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그는 일기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오직 그리스도만을 믿는 것임을 느꼈다. 뿐만 아니라 주께서 내 모든 죄를 씻으시고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이 생겼다. 얼마 후에 원수 같은 마귀는 이렇게 속삭였다. ”이것은 믿음이 아니야. 그렇다면 기쁨은 어디에 있느냐?“ 그때에 나는 깨달았다. 평화와 죄에 대한 승리는 우리 구원의 대장되시는 주님을 믿는 믿음에서 필수적인 것을! 뿐만 아니라 깊이 애통하는 사람에게 오는 그 기쁨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때로는 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안 주시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다나엘은 침례 요한이 사역을 행하던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 있게 되었다. 그곳에서 빌립이 그리스도를 만났고 그의 제자가 되기를 결단하게 됩니다. 이제 빌립이 나다나엘을 예수님에게로 데려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1:45). 나다나엘은 빌립의 전도를 통하여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주님의 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1. 종교적인 신념으로는 그리스도의 구원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지만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 없는 무늬만 크리스쳔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없이는 주님 안에서의 거듭남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마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다나엘은 니고데모와 같이 영적인 사각 지대가 있었습니다. 나다나엘은 구약을 열심히 연구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라는 사실을 아직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선지자들이 기록한 메시야를 만났음을 이야기합니다. 빌립은 자신이 만난 메시야는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고 선포합니다. 그러자, 나다나엘이 이렇게 응답합니다.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1:46). 나다나엘의 생각에는 나사렛이라는 동네는 작은 동네이며 다른 지역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세속적인 지역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기에 나사렛은 구약에 언급되지 않는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께서는 미가서의 예언대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나다나엘의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나다나엘은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을 이렇게 초청합니다. “와 보라.” (1:46). 나다나엘이 예수님께로 가까이 가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1:47). 주님께서는 나다나엘을 만나기 전에 이미 그의 마음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며, 그 안에는 거짓된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나다나엘은 놀라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합니다.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나다나엘의 질문에 주님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1:48)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나다나엘은 비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믿게 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1:49). 주님의 나다나엘의 믿음을 격려하시며 앞으로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1:50-51).

 

나다나엘은 무하과나무 아래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나다나엘이 에서를 피하여 도망하는 야곱의 장면을 묵상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는 리브가의 도움으로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형의 축복권을 빼앗었습니다. 그러자, 에서가 화가나서 동생 야곱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야곱이 집에서 도망한 후에 벧엘이라는 곳에서 첫 번째 밤을 지내게 됩니다. 그는 광야에서 돌을 베개 삼아 잠을 자다가 꿈을 꾸게 됩니다. 그 꿈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비전이었습니다. 창세기 28 장에서 야곱은 사다리를 보게 됩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에서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28:12). 야곱은 사다리가 하늘에 닿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 사다리는 야곱이 있는 땅에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늘에 닿은 사다리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다리와 더불어하나님의 천사를 보게 됩니다. 천사는 사다리에서 하늘로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야곱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죄의 삶을 살았던 야곱에서 하나님께서 다가가시는 모습인 것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28:13). 하나님께서는 정직하지 않고 자신의 꾀로 살아가는 야곱에서 자신의 영광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꿈을 꾼 야곱은 놀라 잠을 깨게 됩니다. 그때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그 분의 영광을 보여주신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자, 야곱은,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28:16)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두려워하게 됩니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28:17).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 두려움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꾀와 죄의 모습을 알았기에, 자신의 거룩하지 않은 모습으로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있다는 것은 심히 부족함을 느꼈던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만이 천국에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을 포함한 종교인들이 천국에 이르는 많은 길들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천국에 이르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주님의 선언입니다.

 

나다나엘은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야곱의 생애를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나다나엘은 하나님께서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형 에서의 축복을 빼앗고 달아나는 야곱에게 은혜를 주시는 모습에 무척이나 당황하였을 것입니다. 나다나엘은 야곱의 생애를 묵상하면서 자신은 야곱과 같이 다른 사람을 속이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결단 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는 야곱과 다른 자신의 삶을 생각하며 자신도 모르게 교만한 마음을 갖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나다나엘은 거짓이 가득한 야곱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자신은 정직하기로 결단했을 것입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나다나엘이 무화과 나무에서 묵상했던 그 생각을 말씀해 주시는 나다나엘은 깜짝 놀란 것입니다. 그러자, 나다나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며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야곱이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28:16) 라고 고백한 것처럼, 나다나엘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나다나엘에게 야곱과 같은 큰 비전을 보여주셨습니다.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1:51). 주님께서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고 하셨습니다. , 주님께서 천국에 이르는 길과 문이 되심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천국에 이르는 길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0장에서,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9) 고 하셨습니다.

 

에베소서는 우리의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이루어짐을 선언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2:8-9).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선한 삶을 살아도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다나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세상의 구주이심을 믿게 됩니다. 그리고, 나다나엘은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 자신의 삶을 헌신하게 됩니다. 그의 삶은 선교사로서 인도와 페르시아 등지로 복음을 전했고 빌립과 도마와 함께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는 후에 물에 빠트리는 죽음으로 순교 당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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