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예수님의 열두제자 (9) - 야고보, 시몬, 유다

비전의 사람 2015. 7. 7.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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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열두제자 (9) - 야고보, 시몬, 유다

 

열 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10:2-4).

 

오늘 우리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예수님의 제자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비록 유명한 제자는 아니지만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자신의 역할을 감당했던 제자였던 것입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입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세배대의 아들들과 구별됩니다. 세배대의 아들들은 요한과 야고보였습니다. 그들과 구별되기 위하여 야고보는 작은 야고보라고 불려졌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15:40). 야고보가 작은 야고보라고 불리우는 것은 세배대의 아들인 야고보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더 늦게 부름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마태의 아버지도 알패오이기 때문에 마태와 야고보가 형제라고 보기도 하지만, 이것은 단지 일부분의 추측일 뿐입니다. 그에 대한 성경적인 기록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라는 언급외에 다른 활동이나 사역에 대하여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초대 교회사였던 유세비우스는 작은 야고보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는 한때 훌륭한 애국자였으나 후일에 매우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는 금욕적인 자기 수양에 누구보다도 힘썼던 제자였는데, 12제자 중에서 가장 기도를 많이 한 제자가 이 작은 야고보였다.” 구전에 의하며 작은 야고보는 시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지만, 예루살렘에 돌아와 전도하다가 유대인들에게 잡혀 탑에서 던져졌고 돌과 곤봉에 맞았지만 죽지 앉자 톱으로 켜서 죽임을 당했다고 알려집니다.

 

야고보에 대하여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그는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주님의 제자로의 부르심에 순종하였고 주님의 곁에서 묵묵히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는 다른 제자들 앞에서 나서지도 않았고,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르심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주님이 부르시는 그 날까지 복음을 전하다가 자신의 생명을 주님께 던진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에서도 그 이름이 드러나는 지체도 있지만 묵묵하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기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주님은 이들을 부르셨고 그 분의 뜻대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찌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 4:1-2). 오늘 우리의 삶에서 소중한 가치는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인정에 의하여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함으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부르셨고 주님의 뜻대로 우리를 섬김의 현장으로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청지기로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며 복음의 삼여자로서 귀하게 쓰임받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섬김과 희생을 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오시는 그 날에 놀라운 상급으로 보상하실 것입니다.

 

2. 시몬은 열심당원에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시몬은 베드로와 같은 이름을 가졌기에, 성경은 가난안인 시몬’ (10:4)셀롯인 시몬’ (6:15) 이라고 불렸습니다. 셀롯은 영어로 ‘zeolot’ 이라는 단어를 한국식으로 셀롯이라고 불렀습니다. 셀롯은 우리의 표현은 열심당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 사회에서는 네 가지의 종교적인 부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에센파, 그리고 열심당원들이었습니다.

 

바리새파는 분리시키다, 고립시키다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파라쉬에서 유래했습니다. 바리새파는 회원이 6,000 명으로 가장 규모가 큰 종파였으며, 대중의 지지 기반을 가지고 유대 백성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는 종파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바리새파였고, 니고데모나 가말리엘이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서기관들이 지도자 역할을 하였고, 장로들의 유전을 중요시하면서 예수님으로부터 많은 질책을 받게 됩니다. 그들은 영혼불멸, 부활, 천사, 영들을 믿었습니다. 바리새인이 되기 위해서는 엄격한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바리새파 전통의 부분에서 십일조와 정격 의식 및 음식에 관한 규례들을 지킬 것을 서약하였습니다.

 

사두개인은 귀족 출신의 대제사장과 제사장과 그의 친족들이 속해쓰며, 당시의 엘리트 그룹들이 형성된 분파였습니다. 그들은 정치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고, 모세오경만을 정경으로 인정하였고, 내세, 부활, 영적세계, 천사와 마귀 등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사두개파는 예수님 당시에 산헤드린 공회를 장악하고 있었다. 성경에는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 있지만, 사두개인 중에는 한 사람도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에센파는 광야의 쿰란이라는 지역에서 공동체를 이룬 분파였습니다. 당시의 에센파는 약 4,000 명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러 지역에서 살면서 재산, , 음식, 옷 등을 공유하며 병약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삶을 살았습니다. 에센파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3년 간의 시험기간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들은 금욕주의를 실천하면서 자신들의 경건을 지켜나갔습니다. 침례요한이 광야에서 생활하고 금욕주의적인 생활을 통해서, 성경학자들은 침례요하니 에센파에 속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열심당원은 유대가 로마로부터의 독립을 위하여 유혈 폭동을 일으키는 분파였습니다. 그들은 때로는 궁궐을 습격하고 병기고를 부수어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무장시켜 유혈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열심당원은 로마에 세금내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거룩한 땅이라고 믿었기에 이방 나라에 자신들의 세금을 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왕을 자신들의 주권자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주권자는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로마에 대한 통치권을 부인하였고, 그드를 향한 테러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마사다는 유대인들이 로마에 마지막으로 항거하다가 모두 숨진 전설의 요새입니다. 이때 열성당원 천 여명이 이곳에서 로마에 항거하다가 마지막에는 모두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열심당원은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폭력을 행사하는 분파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열심당원인 시몬을 부르셔서 제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아마도 시몬이 가장 함께 하기 힘들었던 제자는 마태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태는 열심당원이 가장 미워하는 세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바꾸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배워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열심당원은 세금 내는 것을 거부했지만, 예수님은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고 하나님께 드릴 것은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22:21). 그리고, 로마 군인들이 학대하는 상황에서,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5:41) 라고 했습니다. 열심당원은 로마 군인들을 증오했지만,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5:44).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하여 권위에 순종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속의 정부에 순종하되, 영적인 가치는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셀롯인 시몬은 열심당원이 되어 정치적인 운동을 하던 자였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을 품은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는 열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12:11). 우리의 삶에서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는 열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3. 다대오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입니다.

 

다대오로 가장 많이 알려진 이 제자는 이름에 대하여 누가는 그를 유다라고 불렀습니다. 유다는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께 질문을 던졌습니다.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14:22). 이 질문은 예수님께서 왜 세상의 왕권을 차지하지 않느냐는 의미입니다. 유다는 세속 왕국이 빨리 없어지고 예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가 빨리 오기를 바라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다대오 유다는 자신에게 나타내신 주님을 세상에도 보여주게 하심으로 주님의 영광을 더욱 높이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자신의 때가 다가오시기에, 이제는 제자들을 통하여 주님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모습을 통하여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부르셨고 각자의 역할에 맞게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가치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귀하게 쓰임받는 것입니다. 주님의 모든 사역은 소중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소중한 사명을 잘 감당함으로 귀하게 쓰임받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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