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다굼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 (막 5:41).
마가복음 5장에서는 주님께서 행하신 이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이적에서 우리는 영적인 진리를 보게 됩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 바다를 제자들과 건너가시다가 광풍을 만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서워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주님께서 책망하십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막 4:40). 주님은 창조주로서의 자신을 보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하는 길이라도 풍랑을 만난 제자들처럼 인생의 풍랑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이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심을 인정하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결국 인생의 풍랑을 이겨내는 비결은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를 향하여 잠잠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주님은 모든 상황을 다스리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둘째로, 주님은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영적인 세계의 주권자이심을 보여주십니다. 마가복음 5장 1절에서 20절까지는 귀신들린 거라사인의 사람에 대하여 보여줍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깊에 보아야 할 것은 귀신들린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 사람이 귀신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자 주님과 함께 하기를 원했고, 주님의 은혜 아래서 평안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가 귀신들린 자가 되었을 때의 모습은 사탄이 얼마나 더럽고 추악한 존재인가를 보여줍니다.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나 쇠사슬로도 맬수 없게 되었으니 이는 여러번 고라오가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저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고 있었더라.” (막 5:3-5).
사단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광적인 힘을 갖게 함으로 쇠사슬을 끊게 하였고, 밤낮 소리지르며 자신의 몸을 돌로 상하게 하였습니다. 사탄은 한 사람의 영혼을 이렇게 파괴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자신을 군대로 표현하였고 다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사탄의 존재가 강력하고 그 영향력 아래 있는 귀신들의 수가 많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사탄의 역사는 사람들의 영혼을 파괴하고 자살하게 하며, 더러운 일을 행하게 함으로 그 도시와 국가를 타락시키는 일을 하게 합니다. 사회와 국가를 마약과 매춘 등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더럽하게 합니다. 사탄의 이름 중에 ‘아볼루온’ 이라고도 하는데, 그 뜻은 파괴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거룩하게 되었음을 선포하고 믿음으로 자신을 거룩한 삶으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주님께서 야이로의 딸을 살리는 말씀이 나오게 됩니다. 우리는 야이로의 딸을 죽음에서 살리시는 주님의 능력을 통해서 우리를 영적인 침체에서 깨우시는 은혜를 누리기를 원합니다.
야이로는 회당장으로서 지역사회에서 영향력있는 인물입니다. 회당장은 건물을 관리하며, 예배를 주관하는 영적 지도자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야이로가 예수님께 찾아와 발 아래 엎드리여 겸손하게 주님을 간구합니다. 그의 간구는 죽게 된 어린 딸을 살려달라는 것입니다. 그의 간구는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으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였습니다.
자신의 딸이 죽게 되었을 때에 야이로는 당시의 모든 의사를 불러서 검진하고 치료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런 차도가 없고 오히려 죽게 되는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랑하는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 그는 절망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힘과 재물로는 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야이로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그를 따라갑니다. 그리고, 많은 무리들이 주님을 따라 나서는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야이로의 집에 가는 상황에서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인을 소개합니다. 그녀는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통받던 여인이었습니다. 자신의 몸에서 피가 마루지 않는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팔아서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애썼지만 오히려 병은 깊어져 가는 것입니다. 어떠한 의사도 자신의 병을 고칠 수가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녀의 유일한 소망은 주님이었습니다. 그녀는 주님의 소식을 듣고 주님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녀는 주님의 옷에 손을 대어도 자신의 혈루증이 치유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 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막 5:27-28). 그러나, 그녀의 믿음의 용기는 그녀의 고통이 사라지고 병이 낫는 기적을 경험하게 합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향한 믿음으로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여인의 혈루증을 치유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들은 딸이 죽었으니 더 이상 선생을 괴롭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의 모든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야이로를 향하여,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울며 통곡하는 사람들으 보시고,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선포하십니다. “달리다굼” 이 말씀의 ㅁ의미는 “소녀야 일어나라.” 주님의 말씀에 소녀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고 일어나게 됩니다.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 열 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막 5:41-42). 주님께서 달리다굼의 말씀으로 소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사역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영적인 진리의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1. 우리의 삶은 절망적인 상황을 만나는 존재입니다.
오늘 우리는 제자들, 거라사인의 귀신들린 사람, 딸의 목숨이 위태로운 야이로,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통당한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우리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제자는 주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풍랑을 만나 죽음의 고통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옆에서 주무시는데도, 풍랑이 워낙 세다보니 위협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인생의 풍랑을 만나면서 인생의 위기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갑작스럽게 자신의 안정된 삶에 변화가 찾아오며 물결이 넘나들면서 큰 위기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재 시리아의 난민들은 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들은 얼마전에는 안정된 직장과 가정안에서 평안을 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전이 발발하고 IS 의 공격들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위기를 만났을 때에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는가요?
귀신들린 사람은 인생의 큰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자신의 몸을 자해하고 밤낮 소리지르는 그는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의 덫에 빠지게 되면 어두움의 영향으로 고통속에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정한 희망은 누구인가요?
자신의 딸이 죽게 된 야이로와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의 모습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인간의 절망을 보게 됩니다. 아무리 부유하거나 영향력 있는 삶을 살아간다 할지라도 불안전한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종종 절망스러운 일들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주님의 구원의 소망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인생의 절망적인 순간으로 낙심하고 있을 때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요? 우리는 주님이 옆에 계심을 인정하고 구원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의지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풍랑이 찾아올 때에 주님을 깨우게 됩니다. 비록 주님께서 그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셨지만, 제자들은 주님을 의지하였던 것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책망하신 이유는 제자들이 믿음으로 나아간 것이 아니라, 원망으로 주님을 깨운 것입니다.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막 4:38). 그러자, 주님께서는 믿음이 없는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제자들은 풍랑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던 이유는, 주님이 그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갑작스러운 위기를 만나게 되면 당황하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주님을 원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위기 속에서 함께 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더러운 귀신 들린 거라사인의 소망은 주님이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귀신이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하실 때에 나오게 됩니다. 악하고 더러운 귀신이 주님의 권세 앞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탄의 권세가 아무리 사람들을 미혹한다 할지라도, 주님의 권세는 더욱 강한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크신 능력을 생각하면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주님은 세상의 누구보다 큰 권세의 주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생각하면서 더욱 믿음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야이로의 딸을 향하여 주님은 달리다굼 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그 말씀으로 소녀가 살아나게 됩니다. 그녀가 살아가게 됨으로 야이로와 그 가족은 큰 기쁨을 얻게 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은 주님을 신뢰함으로 자신의 병에서 놓임을 얻게 되고 구원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문제를 주님께 가져와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주님께 가져와서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를 주님은 멸시치 않으시고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주님의 ‘달리다굼’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주님은 죽은 야이로의 딸에게 ‘달리다굼, 즉, 소녀야 일어나라’ 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음성에 소녀는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게 됩니다. 즉, 소녀는 생명을 다시 얻게 됨으로 일어나 걷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달리다굼이라고 하십니다. 영적으로 자는 영혼들이 있다면 이제는 일어나 주를 위해서 걷고 뛸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생명을 얻지 못하여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은 주님이 주시는 복음의 말씀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2:1)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복음으로 살리셨습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생명을 얻은 우리가 영적으로 살아나서 생명력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즉, 영적으로 자는 자 중에 깨어나 열매맺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지체들이 있는지요? 우리의 영적인 삶이 어떤가요? 하나님의 교회에서 잠들어 있는가요? 아니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지 못하고 있으며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지요?
오늘 우리는 소녀를 향하여 주님께서 하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합니다.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 우리를 향한 주님의 음성은 깨어 일어나 생명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일어나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하여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하며, 제자훈련을 통하여 주님의 길을 걸어가며, 세상에서 복음으로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소망을 두고 믿음으로 더욱 순종하며 행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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