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무엇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가? (막 7:1-23)

비전의 사람 2015. 9. 16. 15:51

무엇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가? (7:1-23)

 

또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7:20).

 

신앙과 종교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종교는 외적인 의식을 중요하게 여기며, 그 의식을 통하여 자신의 믿음의 정체성을 표현합니다. 불교나 이슬람, 그리고 카톨릭과 같은 종교에서는 외적인 종교의식과 구제와 같은 선행으로 자신들의 믿음을 표현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외적인 의식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타락했던 인간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하여 죄사함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누림으로 사랑의 관계에서 영적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외부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변화에서 출발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소중한 영적인 삶의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렀을 때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주님께 찾아와서 주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그 이유는 질문을 통하여 주님을 곤경에 처하게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질문한 이유는 예수님의 제자 중에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의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7:2).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의 행동을 지켜보다가 한 가지 흠을 잡아낸 것입니다. , 제자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지 아니하고 식사를 하면서 씻지 아니한 손으로 식사를 했던 것입니다. 이때 주님은 본문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들이 알아야 할 소중한 교훈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님이 가르치시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도 바리새인의 외식에 빠지지 아니하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거룩한 삶에 대한 교훈을 지키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영적인 교훈은 무엇인가요?

 

1. 우리는 영적인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준행치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7:5).

 

우리의 믿음은 영적인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열심히 많은 문제들을 발생시키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영적인 분별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영적인 분별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했거나, 맹목적으로 교회를 다니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모습에서 이단이 생기기도 하고, 잘못된 신앙관으로 가정과 교회가 큰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도 보게 됩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은 손으로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음식을 먹기 전에는 반드시 손을 씻어야 했습니다. 이런 습관이 종교적인 의식이 되었고 손을 씻지 않는 것을 이제는 부정한 것으로 인식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아니하고 식사하는 모습에 대하여 부정한 손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가치는 씻지 않는 손으로 음식을 먹는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부정한 사람으로 간주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했던 이유는, 영적인 어두움에 갇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지켜야 할 장로들의 유전은 613개로서 이들은 이러한 유전을 하나님의 말씀 보다 더욱 가치있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그들이 유대 사회에서 지켜야 할 율법과 규율에 더 큰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의의 기준은 장로들의 유전이었던 것입니다. 마가복음 73-4절에서는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의 전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손을 씻지 아니하면 먹지 아니하였고,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물을 뿌리는 의식을 지켰습니다. 물을 뿌리는 것은 baptizo 로서 침례와도 같은 말입니다. 이는 그들이 시장에서 돌아오면 전신 목욕을 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시장에서 이방인이나 병자들을 접촉함으로 부정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자신들을 물로써 정결하게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영적인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혼돈에서 살아갑니다. 우리의 주위에는 자신의 행위로 구원받으려는 사람도 있고, 교주를 믿고 따름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는 이단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주님을 섬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고 책망하신 것처럼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부족한 것입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인 복음을 통하여 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마음과 입술의 일치가 필요합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7:6-7).

 

주님께서는 이사야 2913절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십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29:1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로만 하나님을 존경한다고 했지만, 마음은 하나님을 떠나있는 모습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최고의 계명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들도 동일하게 하나님을 입으로만 존경하고 마음은 멀리 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주님이 그러한 말씀을 하신 이유는 그들이 사람의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했기 때문입니다. 그 예로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을 지적하셨습니다. 율법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십계명의 제5 계명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고르반이라고 선포합니다. , 자신의 물건을 하나님께 드릴 것이다라고 하면 사람들이 아무도 사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원래는 자신들의 소유로 부모님을 공경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구실로 부모님을 공경하는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 재물을 후에 자신들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외형적으로는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유익만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7:13).

 

우리도 주님의 가르침을 통하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7:14). 우리는 주님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주님의 말씀과 자신의 현재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주님 앞에서 무엇이 부족한지를 깨닫는 것이 겸손이며 성장의 시작입니다. 자신을 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보려는 것은 자신의 들보를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만을 보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질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마음과 입술로 사랑하는가? 나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 분을 향한 경외심을 보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이 멀어 있었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종교적인 지도자의 행세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며, 그 분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순종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소중히 여기며 믿음으로 함께 달려가는 자가 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3. 우리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자신을 더럽게 합니다.

또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7:20).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추구하는 정결함의 기준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외부적인 정결의식을 통하여 자신의 정결을 추구하였지만, 주님은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7: 15-16). 예수님께서는 그 비유를 더욱 자세하게 설명하십니다. 사람에게 들어가는 것은 배설물로 다시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밖에서 들어가는 모든 식물은 그 자체로 깨끗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즉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는 마음의 거룩함을 통하여 하나님을 공경하는 삶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입니다. 우리는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을 경계해야 합니다. 마음은 경건한 자에게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의를 행하는 근원이 되지만, 죄인에게는 악을 행하며 불순종하는 근원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거하시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한 삶을 향한 열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을 더럽게 하는 12가지의 죄를 지적하십니다.

 

1) 음란입니다. 음란은 성적 부도덕에 관한 행동입니다. 2) 도적질입니다. 도적질은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는 것입니다. 3) 살인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자의 생명을 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4) 간음은 타인과 불법적인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5) 탐욕입니다. 탐욕은 욕심을 부리는 행위로서 주로 성적인 죄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6) 악독입니다. 악독은 악한 행동들이며, 7) 속임은 미끼나 덫으로 다른 사람에게 교활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8) 음탕은 무절제한 음란스러운 행위를 말하며, 9) 흘기는 눈은 악한 눈으로서 이기심과 시기와 탐욕과 증오심과 관련된 생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10) 훼방은 다른 사람에 대하여 중상이나 비방을 말하는 것입니다. 11) 교만은 다른 사람을 비하하며 무례함과 경멸의 태도를 갖는 것입니다. 12) 광패는 영적 깨달음이 부족하여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깨끗한 삶을 원한다면, 우리는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주님의 마음이 되어 이러한 더러운 것을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생각으로 넘어가고, 결국은 입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주님은 마태복음에서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온다고 하셨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15:18).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지킴으로 자신을 깨끗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지키고 생각을 지키며, 더 나아가 입술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신을 깨끗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을 성찰하면서 주님의 뜻 안에서 순종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자 힘쓰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