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예수님처럼 사는 삶(2) - 아가페 사랑

비전의 사람 2017. 1. 21. 15:20

예수님처럼 사는 삶(2) - 아가페 사랑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일 4:16).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며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단어는 사랑입니다. 모든 사람은 사랑받기를 갈망하며 그 사랑을 통하여 내면의 욕구가 채워지며 성장해 갑니다. 사랑이 없는 세상은 폭력과 비방, 그리고, 내전이나 전쟁으로 인한 메마른 모습으로 변해갈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며, 사랑은 상처받은 자를 치유하며, 사랑은 외로운 자에게 기쁨을 주는 신비의 마술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중의 하나는 사랑일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하여 살아가며,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음으로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소중한 사랑을 얼마나 이해하고 계신지요?

 

사랑에 대하여 헬라어에서는 네 가지의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첫째는 필레오(phileo)의 사랑입니다. 필레오의 사랑은 형제간의 사랑(brotherly love) 또는 친구의 우정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형제끼리의 사랑이나, 자매 간의 사랑은 특별합니다. 이러한 사랑이 필레오의 사랑입니다. 또한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과 같은 사랑은 친구간의 우정입니다. 이러한 우정의 사랑이 바로 필레오의 사랑입니다. 지체들간의 사랑도 필레오의 사랑으로 이해되어집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너를 나를 사랑하느냐고 하실 때에, 주님은 아가페를 사용합니다. 이때 베드로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답변합니다. 베드로가 사용한 단어는 아가페가 아니라 필레오로 답변했습니다. 주님이 요구하신 사랑은 아가페의 희생적인 사랑이지만, 베드로의 답변은 형제나 친구간의 우정인 필레오로 이해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깊은 아가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에로스(eros)입니다. 에로스의 사랑은 육체적이며 성적인 사랑으로 이해했습니다. 세번째는 스토르게(storge)입니다. 스토르게의 사랑은 가족간의 사랑입니다. 특히 부모가 자녀에게 베푸는 사랑인 것입니다. 가족간의 아름다운 사랑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향한 사랑은 극히 헌신적입니다. 이러한 사랑이 바로 스토르게의 사랑입니다. 네 번째는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표현되어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인데, 그 의미는 상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아가페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아가페의 사랑에 대하여 더욱 깊이 알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아가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다른 언어인 에로스나 필레오, 스토르게보다 더욱 고상한 단어가 아가페의 사랑인 것입니다. 무엇이 아가페인가요?

 

아가페는 희생적이고 조건없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보여주신 희생적인 사랑이 아가페의 사랑인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아가페의 사랑을 아들을 희생하신 사랑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일 4: 9-10).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고, 그 사랑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희생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가페는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구약의 희생 제물같이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아가페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은 우리의 죄가 용서받아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신 것입니다. 그 분은 십자가의 모진 고통과 시련을 견디셨고 죽음까지도 참으시고 모든 것을 내려놓으셨습니다. 그 분의 사랑이 바로 아가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고 정의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희생의 사랑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일 3: 16). 하나님의 크신 사랑은 독생자의 희생을 통하여 보여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서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심으로 사랑을 보여주셨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우리도 형제들을 향하여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다가가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알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 사랑하지 못하는 자는 새생명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그 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의 삶에서 아가페의 사랑이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8). 하나님이 가장 기쁘게 거하시는 곳은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서로 사랑함을 힘써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일 4:16). 요한일서는 하나님은 사랑안에 거하신다고 했습니다. 또한 사랑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생명안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아가페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혼자하는 사랑은 자신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아가페는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가페는 부부간의 사랑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가정의 공동체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아가페는 교회의 공동체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아가페의 삶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기쁨의 삶이 됩니다.

 

2. 우리가 아가페의 사랑을 살아가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아가페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아들을 죽기까지 모든 것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지요? 우리는 새생명을 누리는 자로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우리에게 나타나는 변화는 새생명을 통한 가치와 삶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그 중에서 가장 뛰어난 변화는 아가페의 사랑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 행실을 통하여 흘러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안에 하나님의 큰 사랑을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5:5). 하나님은 새 생명으로 살아가는 모든 성도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셨습니다. 성도의 마음에 있는 사랑의 씨앗은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이는 짐 엘리엇이 에콰도르의 아쿠아 부족에게 선교하다가 죽임을 당했지만, 그의 아내인 엘리자베스가 다시 찾아가 그들을 품고 섬김으로 주님께로 인도하는 거룩한 사랑의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요일 3:1).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비결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베풀어주신 아가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은 자로서 아가페의 사랑이 체질화되는 새생명의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1) 그리스도안에 거해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5:9).

 

새생명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새생명의 삶에서 표현되어져야 할 중요한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에서 가장 본질적인 부분은 바로 아가페의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가 아가페의 사랑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생명과 아가페 사랑의 근본이신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합니다. 주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한다면, 주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그 분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중국 선교사였던 허드슨 테일러는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거하면, 주님이 우리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신다.” 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생명으로부터 흐르는 사랑을 공급받는 비결은 그 분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5:9). 성경은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의 비유에 대하여 포도나무와 가지를 보여줍니다. 포도나무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을 통하여 가지는 싹이 나고 꽃이 피어 열매를 맺습니다. , 포도나무가 가지의 생명과 양분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사랑은 우리의 생각이나 마음이 아니라, 생명이신 그리스도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15:5)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지 않으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진다고 하셨습니다. 포도나무에 거하지 아니한 가지는 곧 말라 썩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른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능력과 믿음, 아가페의 사랑을 살아가는 비결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인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안에 거하는 비결은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며, 말씀의 순종이 그 분의 사랑안에 거하는 비결인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5: 9-10).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은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 분과의 교제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러한 삶을 통하여 주님의 풍성한 아가페의 사랑을 배워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3:18-19). 우리가 주님안에 거하는 삶을 살며 그 분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면서 울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 분의 아가페의 사랑을 발견할수록, 우리의 마음에 사랑이 풍성해져 우리를 통하여 필요한 곳에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우리가 새생명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비결이 됩니다.

 

2) 아가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5:12).

 

주님의 사랑안에 거함으로 아가페의 사랑을 아는 자는, 이제는 삶에서 아가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5:12)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를 기대하십니다. 우리가 생명의 능력으로 살아가면서 맺는 열매가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사랑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어떻게 표현되어지나요? 사랑은 행동을 통해서 표현되어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 보여주었습니다. 로마서 58절에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이제는 사랑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우리의 사랑의 우선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실 때에 네가 나를 아가페하느냐고 물으셨지만, 베드로는 아가페가 아닌 필레오의 사랑을 언급했습니다. 베드로는 아직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서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요일 2:5).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 충만히 거하며, 더 나아가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감정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은 충동적이며 환경에 의하여 변화가 일어납니다. 감정에 기초한 사랑은 자기 중심적인 사랑으로서 하나님의 아가페와 일치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사랑은 사랑의 행위로서 표현되어지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장에서는 아가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 사랑은 행위로서 표현되어집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3:4-7).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페의 사랑이 우리의 삶에서 나타내는 비결은 주님 안에 거하며 영적인 공급을 받아 성령의 열매를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마음에 기뻐하는 사람들만을 향하여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친한 사람들과만 공동체를 이루는 편협한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아가페는 모든 사람을 향하여 은혜를 보이는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13:10). 특히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믿음의 가정에게 더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 (6:10). 하나님의 아가페는 받을 자격없는 우리를 향한 은혜의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받은 우리는 위대한 사랑을 주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구원받은 자들이 서로를 향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서는 사랑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도록 돕도록 복음 전도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3. 아가페를 통하여 하나님의 풍성함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일 4: 16).

 

하나님은 거룩한 속성을 가지고 계시기에 거룩한 곳에 거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성전에서도 지성소라는 거룩한 곳에 임재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셨습니다. 그의 백성이 죄로 타락하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의 포로로 보내셔셔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정결케 하신 후에 다시 거룩한 땅으로 부르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실 뿐만 아니라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아가페의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미움과 다툼, 그리고 증오를 미워하십니다. 우리가 원수를 미워하고 복수하려고 할 때에, 하나님은 복수는 하나님의 일이기에 너희들은 원수를 용서하고 심지어는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5:44). 주님께서는 우리가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사랑안에 거하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일 4: 16).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십니다. ,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충만히 거하셔서 사랑하는 자의 삶을 풍성케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미워하고 다툼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러한 모습을 싫어하시며 견디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다툼과 미움이 있는 곳에서 떠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을 누릴 때가 언제인가요? 우리가 사랑할 때인가요? 아니면 우리가 다툼과 미움이 가득할 때인가요? 우리가 사랑할 때 행복과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족이나 지체들을 초청하여 식사를 하면 그 안에는 사랑이 있게 됩니다. 그러한 사랑안에 있는 자는 행복과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 곳에서 거하시며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기뻐하시기에 생명의 주되신 그리스도가 기뻐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기쁨이 되며 풍성한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가장 고통스러울 때는 언제인가요? 사랑이 없이 다툼과 분쟁으로 관계에서 금이가고 상처를 주고 받을 때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만을 주장하며 다툼을 일으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의 축복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서 교회와 가정에서의 연합을 이루며 사랑안에서 하나됨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사랑의 새계명을 주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13: 34-35). 주님이 주신 계명은 아가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공동체 안에서 표현되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체들 안에서 서로 아가페의 사랑으로 교제하며 찬양하며 말씀의 은혜를 나눌 때에 하나님이 그 안에서 임재하시며 각 사람의 삶을 풍성케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할 때에 하나님안에 거하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위대한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체들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은 단지 감정적으로 좋은 느낌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공동체 안에서 기쁨으로 거하심으로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케 하시며 은혜가 흘러넘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