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려의 사람이 됩시다. (살전 5:11-14).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살전 5:11).
격려는 사람을 세우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은 스스로를 낙심으로 이끌어 자포자기 하게 하지만, 격려의 힘은 다시 일어나 한 걸음 나아가게 하는 동력을 가져다 줍니다.
미국 존스 홉킨스병원 소아신경외과 과장인 벤 카슨은 세계 최초로 샴쌍둥이 분리수술에 성공하여 ‘신의 손’ 이라는 별명을 가진 외과의사입니다. 국내에도 소개된 <크게 생각하라>의 저자인 그는 흑인 빈민가 출신의 절망에서 세계 최고의 소아과 의사로 성공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흑인으로, 열등생으로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구구단을 암기하지 못했고 수학시험을 한 문제도 맞추지 못하여 놀림감이 되곤 했던 이런 불량소년이 어떻게 오늘날 세계 의학계에서 ‘신의 손’이라는 칭송을 얻을 만큼 대단한 사람이 되었을까요? 하루는 그에게 기자가 물었습니다. "오늘의 당신을 만들어 준 것은 무엇입니까?"
"나의 어머니 쇼냐 카슨 덕분입니다. 어머니는 내가 늘 꼴찌를 하면서 흑인이라고 따돌림을 당할 때, '벤, 넌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노력만 하면 할 수 있어!'라는 말을 끊임없이 들려주면서 내게 격려와 용기를 주었습니다." 이처럼 부모와 선생님, 가족과 이웃의 격려 한마디는 우리 인생 진로에 참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오늘의 우리가 있게 한 근원도 그때 그분의 격려 한마디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과연 지금 누구에게 격려의 사람이 되고 있는지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어머니의 격려로 벤 카슨이라는 훌륭한 의사로 성장했듯이, 우리의 격려는 지체들과 배우자, 그리고 저녀들의 삶을 세우고 힘을 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번 명절을 맞이하면서 가족들을 만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무엇을 먹고 마시며 시간을 보낼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자매님들은 어떤 음식을 만들어 가족들을 섬겨야 할지를 고민하기도 합니다. 이것 저것으로 탈출하고 싶은 사람들은 해외로 떠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우리는 만나는 사람들을 격려하며 힘을 주고자 하는 열정이 필요합니다. 누군가는 마음을 무겁게 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고민은 어떻게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용기를 주며 격려해서 그리스도께 영광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고 덕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살전 5:11).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 바울이 마케도니야 지역에서 빌립보 교회 다음으로 복음을 전하여 세운 교회입니다. 데살로니가 지역은 로마 황제 숭배가 강하였고 디오니소스 숭배로 우상이 많은 도시였습니다. 그러한 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지만 핍박으로 인하여 사도 바울은 오래 머물지 못하고 떠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으로 세운 데살로니가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믿음이 더욱 자라게 됩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격려하며 칭찬하고 있습니다.
핍박을 당하며 시련을 겪는 교회를 향하여 사도 바울은 그들의 믿음이 자라가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여서 크게 역사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살전 2:13). 그리고,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말씀으로 그들을 격려합니다.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7). 우리가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여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을 교훈합니다. 또한 주님의 오심은 밤에 도적 같이 이르기에 우리는 빛의 아들로 살아야 함을 권면합니다. 핍박을 당하며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에게 믿음의 주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소식은 큰 격려가 됩니다.
사도 바울은 어려운 시기를 지내는 성도들을 향하여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고 권면합니다. ‘피차 권면하고’는 서로를 격려하라는 것입니다. 권면하다의 ‘파라칼레오’는 격려하다의 의미입니다. 이는 성령의 보혜사와 같은 의미로서 ‘곁에서 우리를 도우시는 분’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님께서 우리의 격려자가 되셔서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십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서로를 향하여 힘을 주고 용기를 주어서 격려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덕을 세우는 것은 헬라어로 ‘오이코도메오’입니다. 이는 ‘세우다, 강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서로 영적으로 성숙하도록 도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영적인 공동체를 통하여 서로 세움을 주며 사랑안에서 말씀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영적인 공동체의 삶을 통해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말씀과 사랑으로 격려하고 세워갔듯이, 우리의 공동체도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으로 영적인 공동체를 세워가야 합니다. 우리의 가족도 주님 안에서 모두 새사람을 입어 영적으로 세워가기를 소망합니다.
2. 예수님은 격려하는 자의 본이 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 14:1).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의 지상 사역에서는 힘들고 지친 영혼들을 위한 많은 격려 사역을 하셨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주님의 말씀은 동일하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주님은 염려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중의 새와 백합화의 비유로 염려를 극복하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백합화가 스스로 수고하거나 길쌈을 하지 않지만, 솔로몬의 영광보다도 더 큰 영광을 입고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늘의 아버지께서 모든 형편을 아시기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도록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큰 격려가 됩니다. 아무리 염려할 일이 찾아와도 주님의 말씀을 믿고 나가면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기도하는 삶을 살도록 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 7:7). 우리가 구하는 기도를 하는 것은 아버지께서 좋은 것으로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하버지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심을 가르치셨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늘의 아버지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기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은 큰 힘과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는 자들을 향하여 격려의 말씀을 주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 11:28-29).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비결은 믿음으로 주님을 의존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무거운 짐은 주님께 드리고 우리는 주님이 맡기신 멍에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지신 멍에는 쉽고 가볍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남자만 오천명이나 되는 군중들에게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배불리게 먹이셨습니다. 사람은 수만명의 사람들을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먹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기적의 능력으로 먹이셨습니다. 이는 주님이 연약하고 힘없는 자들을 돌보시는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주님은 그들을 배불리 먹이심으로 격려하셨습니다. 오늘 수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갈급함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그들이 주님께 나오지 않음으로 영적인 은혜를 누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나아간다면 주님은 우리를 영적으로 배불리게 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믿음의 고백을 격려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향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6)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마 16:16-17)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믿음의 고백을 칭찬하시며 격려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 16:18). 주님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통하여 교회를 세우시는 비밀을 보여주셨습니다. 베드로는 헬라어로 페트라입니다. 이는 반석 이라는 의미입니다. 주님께서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신 그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사용하시면서 교회가 반석 위에 세워질 것을 말씀하신 것은 베드로에게 큰 격려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매우 귀한 향유를 부은 마리아의 믿음을 격려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마 26:13). 주님은 귀한 향유를 부어 주님의 장사를 예비한 여인을 칭찬하시며 격려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은 이시간에도 우리의 믿음을 격려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으로 감동을 주시면서 믿음의 결단을 격려하십니다. 그 믿음의 격려는 이 땅에서 열매를 맺게 하시지만 영원한 천국에서 귀한 면류관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 낙심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손과 발의 못자국을 보여 주심으로 격려하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제자들의 믿음을 굳세게 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요 20: 21). 주님은 제자들의 믿음을 세우시고 세상으로 파송하셨습니다.
이와같이 주님의 사역과 가르침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고 따르는 자들을 많은 격려로 힘을 주셨습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믿음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그 믿음의 본질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의지하고 용기를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믿음이란 어두운 세상에서 빛의 자녀들이 용기를 잃지 말고 승리하는 비결이었던 것입니다.
3. 사도 바울도 격려하는 삶의 본을 보여줍니다.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롬 1:8).
사도 바울의 사역과 가르침은 복음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어떠한 절망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용기를 얻어 승리하는 삶이었음을 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다고 돌에 맞게 됩니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끌어 내치니라 제자들이 둘러 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행 14:19-21). 사도 바울은 돌에 맞아 죽음의 위기에 까지 갔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죽을 줄 알고 성밖에 버리게 됩니다. 제자들이 죽은 줄 알았던 사도 바울을 둘러 섰을 때에 바울은 깨어나게 되자 다시 성에 들어가게 되고 더베에 가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의 열정은 그의 낙심과 상처를 극복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지켜보던 수많은 주님의 제자들도 힘을 얻어서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되고 믿음으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믿음의 길을 걸어갈 때에 찾아오는 많은 시련이 있습니다. 그 시련 앞에서도 믿음의 사람들은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사도 바울과 같이 시련을 극복하고 주님이 주신 사명의 멍에를 매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매를 맞고 큰 상처를 입게 됩니다. 낙심될 상황에서도 사도바울은 실라와 함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때 감옥에 큰 지진이 나서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바울은 기도와 찬양으로 스스로를 격려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게 됨으로 깊은 절망에서도 기쁨의 찬양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믿음은 자신을 격려할 뿐 아니라 그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배가 파선하게 됩니다. 배의 사람들이 오래 먹지 못하면서 낙심하며 죽음의 위기에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사도 바울은 배에 있는 사람들을 격려합니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니라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행 27:22-25).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격려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격려는 배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용기와 희망을 주는 메시지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의존함으로 새 힘을 얻게 됩니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격려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2, 37).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아끼지 아니하시고 부어주시는 그 분의 공급하심을 신뢰하게 하며, 삶에서 날마다 승리하도록 하는 원동력이 됨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낼 때에 우리를 위하여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달으며 더욱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고린도전서에서는 우리의 썩을 몸을 심고 부활의 영광의 몸으로 무덤에서 나오게 될 것에 대한 소망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마지막 순간에 홀연히 변화되는 날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고전 15:51). 사도 바울은 부활의 소망으로 우리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 날이 마지막 아닙니다. 우리는 새로운 날을 주님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격려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 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전 15:58). 우리의 수고에 대한 보상을 받을 날이 이릅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다가오게 됩니다. 빌립보서는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에 대한 약속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빌 4:19). 하나님의 약속은 필요를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우리의 모든 필요는 주님 안에서 채워짐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소망의 이유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격려 받고 다른 사람을 격려할 수 있는 원동력은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은혜 가운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4. 우리의 격려의 말과 행동은 다른 사람에게 용기를 주게 됩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히 10: 24).
우리는 가족이나 교회의 지체들, 그리고 자주 만나는 직장의 동료들을 격려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낙심된 자에게 용기를 주고, 지쳐있는 자에게 새 힘을 공급하며 슬픈 자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지혜와 믿음의 격려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처럼 용기를 주며 격려를 줄 수 있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을 격려하는 지혜는 겸손에서 시작됩니다. 저는 얼마전에 이낙연 총리가 젊은 사람들에게 강연한 내용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공손히 인사하십시오, 자신을 낮추세요. 그리고 상대를 높이세요.” 저는 이 말을 들으면서 젊은이들이나 모두에게 필요한 모습으로 공감했습니다. 우리는 먼저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칭찬과 격려를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작은 선물이나 웃음의 미소가 격려가 되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생일을 기억하고 작은 선물을 보내주는 것은 큰 격려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선행에 대하여 잊지 않고 감사의 말을 전하는 것도 큰 격려가 됩니다. 자녀가 부모님의 사랑과 희생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전달하는 것은 한평생동안 희생하신 부모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과 같이 믿음의 고백과 헌신을 격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도 누군가의 격려를 통해서 자라왔습니다. 격려는 사람을 교만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격려는 누군가의 마음에 힘과 용기를 주어서 다시 일어서며 나아가게 하는 힘을 주는 것입니다. 다윗이 분에 못이겨 나발을 죽이려고 하자 아비가일이 나서서 다윗의 믿음과 선행을 격려하게 됩니다. 이때 다윗의 분은 사라지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격려하시듯이, 우리도 서로를 향하여 믿음의 격려로 서로 세우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서로 격려하도록 권면합니다.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살전 5:12-13). 사도 바울은 교회를 다스리는 영적인 리더들의 사역을 알아주며 사랑으로 가장 귀히 여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주님을 섬기는 사역자들이 귀히 여김을 받아야 합니다. 저의 교회는 사역자들을 귀하게 여기는 교회임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교회에서 영적으로 다스리며 가르치는 자들을 사랑으로 가장 귀히 여기기를 원합니다. 저는 성도님들의 사랑으로 귀하게 여김을 받고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사역에 대한 배려로 안식월을 보내주셔서 쉼을 얻는 시간을 갖기도 하고 저의 필요를 위해서 교회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감사를 드립니다. 얼마전에 청년 시절에 섬기다가 타지역에 간 한 형제가 전화를 했습니다. 목사님 가정에 정수기를 달아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좋은 물을 마시고 건강해야 사역을 잘 할 수 있다며 100 만원이 넘는 정수기를 저희 가정에 설치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이며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살전 5:14)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마음이 약하거나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줌으로 서로 격려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격려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격려는 사랑의 말과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명절을 맞이하면서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을 향하여 섬김과 격려로서 서로에게 복이 되는 믿음의 본이 보이시기를 소망합니다.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칠년 대환란 (0) | 2017.10.28 |
---|---|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라 (0) | 2017.10.24 |
침례의 참된 의미 (0) | 2017.10.15 |
마지막 시대를 향한 노아의 교훈 (0) | 2017.10.15 |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징조 (0) | 2017.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