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레위기의 다섯 가지 제사

비전의 사람 2019. 1. 24.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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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의 다섯 가지 제사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생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1:1-2).

 

우리는 주일에 예배의 특권에 대하여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이스라엘의 제사를 통하여 제사의 성경적인 의미와 우리가 어떠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하여 다시 한번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에서 처음으로 예배에 대한 모습은 가인과 아벨의 제사입니다. 창세기 4장에서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4:3-5). 하나님께서 아벨의 예배를 받으셨지만, 가인의 예배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아벨이 드린 제물은 피의 제사를 드렸기에 하나님이 받으셨다고 믿습니다. 그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예표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가인은 예배를 드리는 과정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였고 그 결과로 잘못된 길로 가게 됩니다. 노아와 아브라함도 하나님께 단을 쌓고 번제를 드렸습니다.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을 드렸더니.” (8:20). 아브라함도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 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12:7).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면서 시내산에서 일년을 머무르게 됩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받게 됨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원리를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막을 만들게 하시면서 그들과 함께 거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이 성막안에 거하시며 그들 가운데 거하셔도 거룩하지 않은 백성들은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모세나 아론조차도 하나님앞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지성소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며 만나기 위해서는 거룩을 요구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함에 이르러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도록 마련하신 법이 제사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통하여 자신들의 죄를 속죄받을 수 있었고, 그때야 비로서 대제사장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성막의 제사를 통하여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제사의 희생제물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피를 흘리시고 죽으심의 모형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레위기의 제사를 배워야 합니다. 그 제사에서 드려지는 희생 제물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희생의 목적은 속죄(atonement)입니다. 속죄는 히브리어로 כִּפֶּר (키페르) 입니다. 속죄의 히브리적 의미는 덮다 (cover), 씻다 (wipe away), 대신 지불하다 (ransom by substitution) 입니다. , 희생 제물을 드리는 것은 희생 제물의 피로 말미암아 드리는 자의 죄가 속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죄인이 지불해야 할 죽음을 제사드리는 자가 값을 지불하고 짐승을 사서 자신의 죄를 짐승에게 전가하여 죽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피를 단에 뿌리고 향단에 뿌림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 피를 보시고 죄를 덮어 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용서받은 죄인은 하나님과 교제를 회복하여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는 하나님 앞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의 제사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물이 흠이 있거나 수소를 제물로 바쳐야 하는데 불순종하게 되면 하나님이 그 예물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제물을 드릴 때에 번제물의 머리에 손을 얻게 됩니다. 이를 안수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는 희생될 짐승의 머리에 손을 얻는 것은 제사자의 죄가 짐승에게 전가되는 것을 의미하고, 그 짐승이 죄를 지고 희생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찌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1:4). 그리고, 불살라 번제로 드려야 했습니다. 불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기도 하며 죄에 대한 심판의 의미를 담기도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 불로 정결케 되어 하나님이 받으시는 의미인 것입니다. 드려지는 동물은 야생은 금지되었고, 흠이 있는 짐승은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야생에서 잡아온 짐승은 값을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금지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름(fat)은 모두 단에서 태워야 했고, 피는 사람들이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다섯 가지 제사의 규율과 영적 원리에 대하여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번제 (Burnt Offering). 레위기 1.

 

번제의 의미는 올라가다입니다. 이는 하나님께 드림으로 타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번제는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며, 제물의 전체를 태우는 제사였습니다.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1:9). 번제는 제사자의 죄를 속죄하게 되었고 (1:4), 그 피는 단 의 사면에 뿌렸습니다. 제물은 항상 하나님의 성막 앞에 있는 번제단에서 잡고 불로 태워야 했습니다. 이는 다른 곳에서 짐승을 잡게 되면 우상 숭배의 토대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번제는 아침과 저녁으로 매일 드려졌으며, 그 제물은 소와 양이나 염소,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는 비둘기로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번제가 성막에서 아침과 저녁으로 태워지는 의미는 그 제물이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이며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임재하시는 의미를 보여줍니다.

 

번제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번제는 하나님께 전부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번제는 짐승의 가죽만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태워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2. 번제는 의무적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여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이는 예배자가 정성을 다하여 온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였던 것입니다.

 

번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희생의 모형인 것입니다. 예배자가 자신의 죄를 제물위에 안수함으로 전가하여 속죄하듯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기 위하여 온전한 희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번제에서 희생당한 짐승, 더 나아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희생을 묵상하면서 한가지의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다.

 

번제는 사람이 헌신과 자기 포기를 통해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절은 우리 자신을 제물로 드릴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12:1). 우리가 하나님의 제물로 자신을 드리는 삶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것입니다.

 

2. 소제 (Grain Offering). 레위기 2.

 

소제의 히브리어의 기본적인 의미는 선물 혹은 곡물입니다. 소제는 곡물로 드리는 제사였으며 번제, 화목제와 더불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로 드려지는 제물 중 하나였습니다.

 

소제는 예배자가 고운 가루에 기름을 붓고 유향을 위에 놓고 제사장에게로 가져왔습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기름 가루 한 줌과 유향을 취하여 단 위에 불살랐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제사장에게 주어 그들의 양식으로 삼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소제의 제사였습니다. 대부분 소제는 번제나 화목제와 함께 드려졌지만, 독립적으로 드려지기도 했습니다. 소제는 제단에서 불살라 번제처럼 불살라 바치지만, 번제처럼 생명을 하나님께 드리는 행이가 아니기 때문에 손을 얹어 안수하여 자신의 죄를 제물에 옮기는 의식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소제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소제의 근본적인 의미는 땅의 소산을 하나님께 헌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땀 흘려 수고한 열매를 하나님께 감사의 표시로 드리는 것입니다. 레위기에는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너의 소제를 삼되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찌니 이는 소제니라.” (2:14-15). 예배자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다시 드리는 믿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2. 소제는 고운 가루로 드리는데, 이는 최상품의 것을 의미합니다. 요리하지 않은 소제는 최고 품질의 밀가루에 올리브유를 붓고 그 위에 향을 얹어서 준비했습니다. 곡물에 기름을 붓는 것은 제물로 드리는 곡물을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구분하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향은 곡물이 향기롭게 타도록 도왔습니다.

 

3. 제사장은 예배자가 가져온 곡물의 일부를 향과 기름을 곁들어 제단에서 태우고 나머지는 자신의 몫으로 챙겼습니다. “그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2:3). 이는 성막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로 몫을 남기셨던 것입니다.

 

4. 요리한 소제는 화덕에 구운 음식, 철판에 부친 음식, 냄비에 요리한 음식으로 나뉘어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누룩을 화제의 제물에 넣지 못하게 하신 것은, 누룩은 죄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누룩과 꿀은 제물에 넣을 수는 없었지만, 모든 소제에 소금은 첨가하라고 하신 것은 소금은 변하지 않는 것으로 영원한 언약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소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겸손의 인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업으시니라.” (4:15). 소제는 고운 가루처럼 자신을 철저하게 순종하며 의로운 삶을 사신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누룩이 없는 것은 죄가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첫 이삭의 소제를 드릴 때는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인격은 주님 안에서 깨어지고 다듬어지면서 형성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겸손을 배워서, 우리 자신도 주님과 같이 겸손한 인격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소제는 감사의 의미가 있습니다. 예배자는 감사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농사에서 첫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소중한 것을 주님께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헌물이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주님의 인격이 우리가 변화되어야 할 성품인 것입니다.

 

3. 화목제 (peace offering). 레위기 3.

 

화목제는 제사를 드리는 자와 하나님과의 화평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제물의 기름과 일부만 불태우고, 나머지는 제사장과 예배자가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뜰에서 먹는 고기는 하나님과의 화평의 교제였던 것입니다. 화목제는 레위기 711-36절에도 언급되는데, 다음의 세 가지로 나뉘게 됩니다. 이는 뜻하지 않은 감사할 일이 있어서 드리는 감사제, 서원에 따라 드리는 서원제, 특별한 이유 없이 자원해서 드리는 자원제인 것입니다. 화목제의 제물은 소와 양과 염소입니다.

 

화목제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화목제는 가장 기본적인 제사인 번제와 함께 드려야 했습니다.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단 윗불 위에 있는 나무 위 번제물 위에 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3:5).

 

2. 화목제는 제한된 일부만을 태우고 나머지는 제사장과 예배자가 함께 먹었습니다. 레위기 7장에서는 예배자가 하나님께 제물을 가져오면, 제사장은 내장과 기름을 제단에서 태우고, 동물의 가슴살과 우편 뒷다리는 제사장 몫이었습니다. (7:31-36). 나머지 고기는 예배자와 그의 가족, 친지들이 먹었습니다. (7:15-21).

 

3. 고기를 받은 예배자는 감사제였을 경우 이 고기를 그날로 먹어야 하며, 서원제였을 경우 다음날까지 먹으며, 만일 삼일째 되던 날까지 남을 경우 불살라야 했습니다. (7:18). 소제, 속건제, 속죄제의 제물은 제사장만 먹을수 있었지만, 화목제는 예배자가 먹을 수 있었으며, 번제는 사람이 일부를 먹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불살라 바쳐야 했다.

 

4. 화목제의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의미합니다. 화목제는 화목제물을 통하여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3:25).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 제물이 되셔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어 화평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화목 제물로 흘리신 피로 인하여 우리의 지은 죄를 넘어가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받으시고 함께 교제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며 기뻐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5:1-2).

 

우리는 하나님과의 평안을 누리며, 주님 안에서 서로의 교제를 통하여 하나됨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제의 기쁨을 음식을 나누며 서로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화평을 그리스도 안에서 누려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누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온전히 순복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온전한 평안을 누리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4. 속제죄 (sin offering). 레위기 4.

 

죄를 속하는 제사는 속제죄와 속건제가 있습니다. 이 두 제사의 차이점을 명확히 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지만, 속죄제는 제물만 드리지만, 속건제는 남에게 입힌 피해를 보상하고 나서 드리는 것입니다. , 속죄제의 핵심은 하나님께 범죄한 것이고, 속건제의 핵심은 이웃에게 피해를 입힌 일입니다.

 

속죄제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속죄제는 의도하지 않거나 부주의하여 죄를 지었을 때 드리는 제사입니다.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으되.” (4;2). 그릇 범하였으되의 의미는 의도하지 않거나 부주의하여 죄를 지었을 때를 의미하며, 의도적으로 죄를 저지른 사람은 일년에 한 번 있는 속죄일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413절은, “그릇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그 범한 죄를 깨달으면.” 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2. 속죄제는 이렇게 진행됩니다. 죄를 범한 자가 흠 없는 수송아지를 하나님께 속죄 제물로 드립니다. 그리고, 성막으로 가져와서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잡게 됩니다. 제사장은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회막의 성소 휘장 앞에 일곱번 뿌리고, 분향단 뿔에 바르고, 송아지의 피 전부를 번제단 밑에 뿌리게 됩니다. 그리고, 수송아지의 모든 기름을 취하여 번제단 위에 불사르고, 수송아지의 가죽과 고기와 머리와 내장 등은 진 바깥 재 버리는 곳에 가져다가 불로 살랐습니다. (4:4-12).

 

2. 속죄제는 제사장, 이스라엘의 온 회중, 지도자인 족장, 개인인 평민의 죄에 대하여 하나님께 속죄받을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수송아지를 드려야 합니다. 제사장이 먼저 자신을 정결하게 해야만, 백성들의 제물을 거룩하게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범죄에 대하여는 수송아지를 드려야 합니다. 지도자는 숫염소를 드려야 합니다. 지도자와 평민의 속죄제는 일반 제사장이 드리며, 짐승의 피를 분향단의 뿔에 바르지 않고, 번제단의 뿔에만 바르게 됩니다. 성소의 분향단에 피를 뿌리지 않도록 한 족장과 평민의 속죄제는 제사장들이 그 고기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 성소에서 속하게 한 한 속죄제 희생의 고기는 먹지 못할찌니 불사를찌니라.” (6:30). 개인의 속죄제는 암염소를 드렸습니다. 개인이 형편이 어려우면 비둘기 두 마리를 드렸고, 비둘기를 드릴 형편이 못되면, 곡물 10분의 1에바를 드렸습니다. 이 정도의 곡물이면 한 사람이 하루 동안 먹는 양이었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속죄제가 되셨습니다. 속죄 제물로 태우는 부위를 제외한 짐승의 나머지 부위가 성 밖에서 태워지는 것(4:10-12)은 예수님이 예루살렘 문 밖에서 죽임을 당하실 일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13:11-12).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제물은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이 제단에서 먹을 권이 없나니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성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것을 찾나니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것 같이 하느니라...” (13:10-17).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속죄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가 의롭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 5:21).

 

5. 속건제 (guilt offering).

 

속건제는 제물로 드리는 짐승이 한 가지로 제한되는데, 이는 흠이 없는 숫양이었습니다. 그리고, 속건제에는 자신이 입힌 피해액에 오분의 일을 더해서 제사장에게 보상해야 했습니다. 속죄제는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것이지만, 속건제는 피해를 입한 자에게 보상을 해 주고 나서야 드릴 수 있는 제사였습니다.

 

1. 속건제를 드려야 하는 상황에 대하여 남이 맡겨 놓거나 담보로 남겨 놓은 물건을 속이는 경우이며, 두 번째는 도둑질, 세 번째는 강도질입니다. 네 번째는 남이 잃어버린 물건을 줍고도 돌려주지 않은 경우이며, 다섯 번째는 거짓 증언입니다. 이와같이 죄가 되는 일을 했을 때는 속건제를 드려야 했습니다.

 

2. 범죄자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기 전에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속건제를 드리는 절차는 속죄제를 드리는 것과 동일하며, 짐승의 기름기만 제단에서 태우고, 고기는 제사장의 몫이 되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는 속건제가 되십니다. (벧전 2:22).

 

4. 우리가 이웃에게 저지르는 죄는 곧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며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마다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속건제는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몸같이 사랑하는 예수님의 말씀의 표현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피해를 주었다면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하는 원리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이웃을 존중하며 사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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