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2. 예레미야의 생애와 메시지

비전의 사람 2020. 10. 28.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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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1:5).

 

1. 예레미야의 출생과 부르심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서 약 5km 북동쪽에 떨어진 아나돗의 제사장 가문에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힐기야로서 아비아달의 제사장의 후손으로 추정합니다. 아비아달은 다윗을 섬겼으나 솔로몬의 때에 나단을 섬기는 반역으로 아나돗으로 보내지게 됩니다. 아비아달은 엘리 대제사장의 후손입니다(삼상 14:3; 22:20).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복중에 짓기 전에 아시고 태에서 나오기 전에 구별하여 열방의 선지자로 세우셨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1:5).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태어나기 전부터 열방의 선지자로 세우시고 준비시키셨습니다. 우리의 삶도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세우심으로 구원받게 하시고 주님의 교회를 통하여 일꾼으로 삼으셨습니다.

 

예레미야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은 요시야의 다시린지 심 삼년입니다.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다스린지 십 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1:2). 예레미야가 부름을 받은 해는 기원전 627년으로 당시의 나이가 16-18세의 나이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부르심을 받을 때에 자신을 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1:6). 예레미야는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하고자 했으나 결국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시는 약속으로 부르심에 순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보라 내가 오늘날 너로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족장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1:18-19)라고 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시대의 악함으로 인하여 선지자로서 존중을 받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착고에 채워 감옥에 놓고 죽이려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조롱과 모욕을 감수해야 하는 어려움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수 없나이다.”(20:9).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인하여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불순종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전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많은 핍박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신실하게 전파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결혼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이 땅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며 자녀를 두지 말찌니라.”(16:1). 예루살렘의 멸망이 다가왔기에 백성들이 독한 병으로 죽어도 슬퍼함을 입지 못하고 매장할 사람도 없을 것이며, 백성들이 칼과 기근에 죽임을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가 결혼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는 상징적인 의미였습니다. 성경에는 믿음의 사람들의 상징적인 행동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예비하는 것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였습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음란한 여인인 고멜을 취하여 결혼한 것은 하나님이 음란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인류를 위한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가 함축된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그의 생명의 위협으로 큰 절망을 느꼈습니다. 그는 아나돗의 고향 사람들인 제사장들이 자신을 죽이려는 것을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구조되기도 했고, 예루살렘에서는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심지어는 구덩이에 빠져 죽음의 위기에 처해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의 고통으로 인하여 자신의 태어난 날을 저주하기도 했습니다.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미가 나를 생산하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20:14). 그는 쑥과 독초와 같은 고통을 경험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중심에 불붙듯이 뜨거움이 있었기에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지켜보는 아픔을 당했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다시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3:22-23).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했던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구원을 잠잠히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을 향하여 자신의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함락했을 때에 살아남았지만, 그달라가 암살되자 요하난에 의하여 애굽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애굽에 느부갓네살왕을 보내셔서 하나님이 애굽과 유다 사람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예언을 전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40년간 감당하였고 애굽에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2. 예레미야의 메시지

 

예레미야는 유다가 멸망하기 직전에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이 주신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그는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를 전했을 뿐 아니라 미래의 회복과 소망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열방의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았기에 유다 뿐만 아니라 바벨론과 애굽과 같은 열방에도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생수의 근원이라고 했습니다. “내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2:13). 하나님은 생수의 근원이 되심으로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생수의 근원이 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인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파서 생명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판 우물은 물을 저축하지 못하는 터진 웅덩이였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에서 자신의 필요를 채우려는 모든 노력을 허사이며 도리어 더러워진 물을 마심으로 영적으로 병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지만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되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창조주 하나님을 진흙을 빚어 토기를 만드는 토기장이로 비유했습니다. “.....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18:6). 토기장이가 자신의 손에 잇는 그릇이 파상하면 그것을 부수고 새로운 그릇을 만들 듯이, 하나님께서는 어느 민족이나 뽑거나 파하거나 멸하시는 분이십니다. 민족들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를 멸하시지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재앙을 내리지 않으십니다. 요나가 니느웨성에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자, 앗수르의 왕과 니느웨성의 사람들이 회개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 성을 멸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징계하시기 위하여 앗수르를 사용하셨지만, 유다를 징계하시기 위하여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왕을 내 종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역사의 주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으로서 나라를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시는 주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아시고 시험하십니다. “이는 내 눈이 그들의 행위를 감찰하므로 그들이 내 얼굴 앞에서 숨김을 얻지 못하며 그들의 죄악이 내 목전에서 은폐되지 못함이라.”(16:17). 하나님께서는 행위를 감찰하시고 그들의 마음의 죄악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선지자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17:9)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중심을 살피고 시험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17:9-10).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마음을 시험하시고 그 행위대로 보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패한 마음대로 살지 말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과 성전 중심의 의식이나 희생 제사를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거룩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은 예레미야 923-24절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찌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9:23-24).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의 지혜나 용맹, 부를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아는 것을 자랑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은 인애(loyal), 공평(justice)과 정직(righteousness)를 행하는 자인줄 아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행하시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배우고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애는 하나님의 언약의 영원한 사랑이며, 공평은 정의로운 삶이며, 정직은 의로운 삶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며 예배할 뿐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사랑과 의와 정의로 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레미야가 전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아는 것을 배우고, 그 분의 성품인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행하는 의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변화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이스라엘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다양한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첫 열매였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은 나 여호와의 성물 곧 나의 소산 중 처음 열매가 되었나니 그를 삼키는 자면 다 벌을 받아 재앙을 만났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2: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간조하고 사망의 음침한 땅, 사람이 다니지 아니하고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인도하여 기름진 땅에 들여 과실을 먹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처음 열매로서 하나님이 가나안에 심은 순종한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였습니다.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2:21). 이스라엘은 또한 하나님이 기르시는 양무리였습니다(13:17).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고 인도하셨습니다.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31:3). 하나님의 사랑은 헤세드로서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로 이스라엘을 사랑으로 인도하시고 돌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인도하셔서 그의 백성을 삼으신 것에 대하여 결혼의 관계로 비유하셨습니다(2: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셔서 애굽에서 인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사랑의 관계는 광야의 생활에 한정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와서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기름진 땅에 들여 그 과실과 그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가증히 만들었으며.”(2:7). 가나안에 들어가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떠나 배교의 길을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첫 사람을 버리고 거짓된 우상을 숭배하였고 심지어는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며 숭배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올 죄를 범하면서 성전을 의지하며 거짓 평안을 믿었습니다. 거짓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백성들에게 거짓 평화를 믿게 함으로 도리어 멸망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남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6:13-14). 그들의 유일한 소망은 회개함으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행위를 바르게 하여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게 해야 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곳에 거하게 하리라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7:3-4). 만일 그들이 불의를 행하며 하나님의 전을 믿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우상을 제하여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공평과 정의를 행함으로 바른 관계를 맺어야 했습니다.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공의를 행하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으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스스로 해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거하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 무궁히 준 이 땅에니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도다 너희가 도적질하고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7:5-11).

 

예레미야 선지자는 우상을 숭배함으로 하나님 앞에 가증한 백성이 된 이스라엘 백성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도적과 살인과 간음으로 불의를 행하고 있었습니다. 죄악이 가득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성전에 와서 제사를 드린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제물을 받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눈에는 성전이 도적의 굴혈이 되어 성전을 부정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회개와 순종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왕들과 방백, 그리고 백성들로 인하여 유다와 예루살렘은 느부갓네살 왕에 의하여 기원전 586년에 멸망했습니다. “시드기야 구년 시월 십월에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을 대하여 진을 치고 사면으로 흉벽을 쌓으매.”(52:4). 바벨론왕인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예루살렘은 결국 함락되고 도망하던 시드기야 왕은 붙잡혀 두눈이 뽑히고 사슬로 결박도어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52:11).

 

3. 죄와 회개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강하게 책망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의 근원은 마음에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4:14).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림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17:9).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의 부패와 죄악을 아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범하는 죄는 두 종류였습니다. “너희가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7:9). 이스라엘 백성이 범한는 죄는 거짓된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범하는 윤리적인 범죄였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이었고, 윤리적인 죄들은 공평과 정의와 정직을 거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튼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언약에 순종하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했습니다. 나라들이 자신들의 신들을 버리지 않고 표범이 자신의 색깔을 변할 수 없듯이, 구스 사람도 자신의 피부를 희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새나 동물들은 자연의 원리에 순응하며 살아가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악함은 비정상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유일한 소망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전적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3:40). 그들이 자신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긍휼을 베푸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를 거절했습니다.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우준한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5:22). 결국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거부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징계가 내려졌고 시드기야가 포로로 잡혀가는 모습에서 죄의 참혹한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4. 미래의 소망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징계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했으나, 다시 회복될 소망에 대하여 선포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의 사촌인 하나멜로부터 아나돗의 밭을 샀습니다. 이때는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 군대를 에워싸고 있을 때였습니다. 에레미야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하여 함락될 것을 예언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내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는데 은 십 칠세겔을 달아주되 증서를 써서 인봉하고 증인을 세우고 은을 저울에 달아 주고.”(32:9-10). 예레미야가 밭을 산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믿음에서 온 상징이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예레미야의 두가지 중요한 예언은 바벨론의 칠십년의 포로 생활과 새언약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예언을 했습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29:10).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고레스의 조서에 의하여 칠십년 만에 돌아와 성전을 건축하게 됩니다. 다니엘은 예레미야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바벨론에서 칠십년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것을 알고 기도했습니다. 에스라는 칠십년만에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에 성전은 건축하는 믿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날이 이루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집과 새 언약을 세운다고 하셨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31:33). 예레미야 선지자가 선포한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성령의 거듭남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법을 마음에 두어 그 말씀을 행하게 하시는 것은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게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8:6)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세의 옛언약이 폐하여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새 언약에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예수 그리스도이신 메시야에 대한 소망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의로운 가지를 일으키실 것인데, 그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23:5-6).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의로운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로서 우리의 의가 되신 구원자이십니다.

 

5. 열방을 향한 메시지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이십니다. 그러므로 열방을 향한 메시지를 주심으로 하나님의 주 되심을 보이셨습니다.

 

애굽은 바다와 사막으로 둘려싸인 천연 요새를 자랑했지만 느부갓네살왕에 의하여 정복당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애굽과 애굽 신들을 벌하여 느부갓네살 왕의 손에 붙이실 것입니다.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노의 아몬과 바로와 애굽과 애굽 신들과 왕들 곧 바로와 및 그를 의지하는 자들을 벌할 것이라.”(46:25). 모압은 하나님이 그모스를 숭배한 죄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며 조롱거리가 될 것입니다. “모압이 여호와를 거스려 자만하였으므로 멸망하고 다시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로다.”(48:42). 에돔은 바위를 의지하여 교만히 행했지만,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바벨론은 교만하여 멸망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멸망시킨 것에 대한 보복으로 바벨론을 멸하시기를 뜻을 정하셨습니다. “화살을 갈며 방패를 굳게 잡으라 여호와께서 메대 왕들의 마음을 격발하사 바벨론을 멸하기로 뜻하시나니 이는 여호와의 보수하시는 것 곧 그 성전의 보수하시는 것이라.”(51:11).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바벨론의 악행과 죄로 인하여 메데를 통하여 그 나라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신 주로서 이스라엘 민족을 다스리실 뿐 아니라, 열방의 나라도 다스리시시는 것입니다. 온 세상은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 분의 뜻을 구하는 나라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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