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마태복음 강해 (26) - 반석위에 집을 세워라 (마 7:23-29).

비전의 사람 2019. 2. 16. 20:54

마태복음 강해 (26) - 반석위에 집을 세워라 (7:23-29).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7:24).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에 발견된 것 중의 하나는 마을이 산위에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수님이 자라신 나사렛도 산위에 있었고, 예루살렘이나 베들레헴 등 여러 도시들이 산위에 있었습니다. 가이드 목사님은 산위의 기온이 선선하기게 그런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접하면서 우기 때에 비가와 범람할 경우에 마을이 휩쓸려 집들이 떠내려갈 수가 있겠구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산은 대부분이 바위로 암반이 되어 있어서 그 위에 집을 지으면 홍수를 피할 수도 있고 견고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광야의 모래위에 집을 지으면 우기 때에 비가 내려서 범람하게 되면 그 집은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건기에는 건조하지만 우기에는 비가와서 광야에 강이 범람하여 올해에도 체험학습 같던 학생들 여러명이 휩쓸려 사망한 적도 있었고, 요르단의 페트라도 비가 갑자기 내리자 범람하여 관광객 여러명이 피하지 못하여 사망한 기사를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건축자는 집을 지으면서 그 땅의 지질을 분석하여 바위위에다가 집을 견고하게 지을 것입니다.

 

주님은 반석위에 지은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인생의 집을 건축하면서 지혜로와야 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가르치시는 지혜로운 건축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7:24-25).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어떠한 시련이 찾아와도 흔들리지 않고 견고히 서게 됩니다. 그리고, 말씀위에 세운 견고한 인생은 주님의 때에 영광스러운 상급을 받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지혜로운 건축자로 비유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그리스도위에 터를 닦았다고 했습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이가 그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 이 닦아 둔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고전 3:10-11).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반석되신 그리스도 위에서 삶을 세워가야 합니다. 그리스도 위에 세운 집에 대하여 판단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공력, 즉 사역과 헌신에 대하여 불로서 검증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위에 세워진 집이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면 그 공력이 진실됨으로 남아있어 상을 받지만, 그 공력이 풀이나 짚과 같이 불에 타서 사라지는 것이면 불가운데서 구원을 얻되 겨우 구원만 받게 됩니다. 우리가 세워야 할 금과 은과 보석의 공력은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헌신한 사역의 열매인 것입니다.

 

주님은 어리석은 자는 머리 위에 집을 지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말씀을 듣고 행치 아니하기에 그의 삶은 무너지게 되고 주님 앞에서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인생에는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위기의 순간을 만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반석위에 견고한 집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 견고한 집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입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가 하나님의 말씀 위에 견고한 인생을 세우며 하나님이 주시는 금과 은과 보석과 같은 공력에 대한 상급을 얻게 될 것입니다. 왜 주님은 말씀을 행하는 자가 반석위에 세운 건축가라고 하셨을까요? 오늘 우리는 주님의 가르침에 대한 깊은 의미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법은 진리로소이다.” (119:142).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진리이기에 변개함이나 거짓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법은 진리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주의 증거는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 (119:143-144) 라고 했습니다. 다윗에게 환난과 우환이 찾아왔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의의 말씀을 의지하여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리의 말씀을 주신 것은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한 구원을 알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진리가 전해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가요? 우리가 진리를 얻기 위하여 순례의 길을 걸어가며 깊은 사색을 한다고 얻지 못할 것이며, 깊은 바다로 들어가 진리를 구하거나 하늘에 높이 올라 진리를 찾아도 발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감추어져 있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 진리를 듣고 깨닫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이렇게 증거합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 3:15-17).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합니다. 그리고,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으로 교훈을 주고 책망을 하며, 우리를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합니다. 성경은 단지 구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가 말씀을 배워서 교훈을 받고 책망을 받고 자신의 행실을 바르게 하며 의로서 교육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될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온전케 되며 모든 선한 주님의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와 지혜로 배우며 성장해 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위에 뿌리가 내려질 때에 다윗과 같이 환난과 우환이 찾아와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그 말씀 안에 뿌리 내려서 승리하게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19:105) 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말씀을 등과 빛으로 삼아 그 길을 따라간 것입니다. 다윗이 말씀을 따라갈 때에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셨습니다.

 

예레미야 시대는 바벨론으로 인한 멸망의 시기였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애굽과 조약하지 말고 바벨론에 항복하면 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거짓 선지자들은 왕과 백성에게 좋은 말을 하면서 거짓을 믿게 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거짓 선지자 하나냐에게 하나냐여 들으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네가 이 백성으로 거짓을 믿게 하는도다.” (28:15) 라고 하면서 그가 금년에 죽을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 후에 스마야라는 사람이 나타나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을 대적하며 거짓을 믿게 했습니다. “내가 스마야를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그가 너희에게 예언하고 너희로 거짓을 믿게 하였도다.” (29:31). 하나님은 스마야와 그 자손을 벌하신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바벨론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의 죄를 징계하시고 70년 간의 포로 생활을 정했음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므로, 시드기야 왕이나 관리들은 바벨론에게 항복하여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에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이르되 만군의 하나님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바벨론 왕의 방백들에게 항복하면 네 생명이 살겠고 이 성이 불사름을 입지 아니하겠고 너와 네 가족이 살려니와 네가 만일 나가서 바벨론 왕의 방백들에게 항복하지 아니하면 이 성이 갈대아인의 손에 붙이우리니 그들이 이 성을 불사를 것이며 너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38:17-18).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음에도 시드기야 왕은 갈대아인에게 항복한 유다인이 자신을 조롱할까 염려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더욱 염려한 것입니다. 그 결과로 시드기야는 바벨론 왕에 의하여 큰 고초를 당하게 됩니다. “바벨론 왕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목전에서 죽이고 또 립나에서 유다의 모든 방백을 죽이며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다가 그 죽는 날까지 옥에 두었더라.” (52:10-11).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시드기야는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고, 그의 자녀들이 자신의 눈 앞에서 죽고 자신의 두 눈이 뽑히고 쇠사슬에 매여 바벨론으로 끌려가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시드가야는 자신의 삶을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모래 위에 건축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환난이 찾아올 때에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기에 그 모든 말씀은 성취되어집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찌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2:3)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거짓되지 않기에 더딜지라도 성취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은 그 분의 열심으로 성취되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2. 말씀의 순종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28:2).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집중하는 말씀은 신명기 64-5 절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당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4-5). 들으라는 히브리어로 쉐마입니다. 이는 단지 소리로 드는 것이 아니라 집중해서 듣고, 들은 것을 반응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말씀을 집중해서 듣고 마음에 새겨야 했습니다. 그 말씀을 더욱 새기기 위하여 그 말씀을 손목에 매고 미간에 붙이며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해야 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자신의 소리를 들으시고 응답하기를 간청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소리로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27:7). 다윗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냥 잊는 것이 아니라 반응하심으로 응답하기를 간청했습니다. 들으라는 집중해서 듣고 반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쉐마로 듣는 자는 말씀대로 행하는 자이며, 말씀대로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얻게 됩니다.

 

모세는 고별 설교를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는 민족으로는 뛰어난 민족이 되게 하실 것이며,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의 복이 임한다고 했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28:1-3).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이 크신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그리하며 순종하는 자는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의 언약을 통하여 말씀을 듣고 언약을 지키면 하나님의 소유가 되며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찌니라.” (19:5-6).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계명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은혜를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과 제사장의 나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존귀한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신명기 말씀을 통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말씀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을 지키며 이러한 복을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대로 오늘날 너를 자기의 보배로운 백성으로 인정하시고 ... 여호와께서 너의 칭찬과 명예와 영광으로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 (26:18-19). 하나님은 그 말씀을 듣는 자는 보배로운 백성으로 바라보시며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복을 누리게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남으로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12:1-2). 하나님이 순종하는 아브라함에게 큰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고, 그의 이름을 창대케 하셨으며 메시야의 혈통을 잇는 복의 근원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는 말씀에 순종하게 됩니다. 그의 순종은 자신의 생명을 드림보다 더 큰 헌신이었습니다. 그의 행함을 보시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다시 축복하십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22:17-18).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크게 축복하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행하지 않는 믿음은 그 믿음 자체가 지식이지 실체가 없는 그림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기를 기뻐했습니다. 다윗의 위대한 믿음의 동의어는 순종입니다. 다윗의 위대한 순종은 하나님을 사랑한 마음의 열매로 나타났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하였기에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자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다윗의 마음을 보시고 언약으로 축복을 주십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삼하 7:16). 하나님은 다윗에게 큰 영광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윗에게는 그 집과 나라가 영원히 보전되고 그의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솔로몬 이후에 나라가 분열하게 됩니다. 북왕국인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 나라를 통치하지만 다윗의 씨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의 19 명의 왕들은 모두가 악한 왕으로 하나님을 떠났고, 왕권도 수시로 쿠데타가 일어나 바뀌게 됩니다. 그러나, 남왕국인 유다는 다윗의 혈통이 나라를 다스리면서 20명 중에 8명은 선한 왕으로 나라를 다스립니다. 다윗을 향한 하나님은 약속은 메시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셔서 이 땅에 천년 왕국을 세우심으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며 탐욕에 취해 있었고 간음을 행하며 이웃을 압제하는 등의 온갖 종류의 죄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모든 저주가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있었습니다. 성령의 사역 중의 하나는 우리를 진리 가운데 인도하며 순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4:17). 보혜사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 우리 안에 계셔서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얻고 주님이 거하시는 풍성한 은혜를 누립니다.

 

3. 말씀의 순종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안에 있게 합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시리라.” (14:23).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거처를 함께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를 더욱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튼튼한 성벽이 되어 주시고 위로가 되어 주시며 기쁨이 되어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간 지내며 가나안으로 향할 때에 어떠한 군사적인 무기나 병거가 있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어느 나라도 이스라엘을 침범하여 그 길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애굽 군대가 이스라엘을 추적하며 그들을 공격하는 순간에 앞에는 홍해가 막고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추격하는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홍해를 갈라지게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이 건너게 하시고 애굽 군대를 물로서 수장시키셨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었습니다. 이때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15:1-2). 하나님의 은혜는 그 백성들을 위하여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셔서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은 나의 힘과 노래시며 구원이시라고 찬송합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그 땅을 분배하게 됩니다. 그 땅의 승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얻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 세대인 사사기 시대에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성경은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2:10)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대는 만나 세대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수하지 않았고 여호와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 사사기 시대에는 이방 민족의 우상을 숭배하며 살아가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사사기 시대에는 지속적인 이방 민족의 침략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성경은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21:25)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순종하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얻게 되지만 불순종하면 하나님의 징계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분열 왕국의 북왕국은 19 명이 모두 악한 왕이었고 하나님을 떠나서 생활했습니다. 그 결과로 앗수르에 의하여 북왕국인 이스라엘은 호세아 왕을 마지막으로 멸망당합니다. 이스라엘은 선지자들의 선포를 무시하고 자신의 힘을 의지하다가 결국 멸망당하게 됩니다. 그 후에 앗수르의 산헤드립이 남왕국인 유다를 침략하게 됩니다. 이때 히스기야 왕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히스가야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는 왕이었습니다. 그는 우상을 전부 가져다가 불태우고 이스라엘의 거룩을 회복했습니다. 유월절 절기를 지키며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찬양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여 앗수르 왕과 그 좇는 온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하는 자가 저와 함께하는 자보다 크니 저와 함께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하는 자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 (역하 32:7-8).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믿음을 보시고 앗수르의 185,000 명의 대군을 하루 저녁에 치셔 시체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십 팔만 오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열하 19:35).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히스기야에게 임하게 되고, 하나님을 도전했던 산헤드립은 니느웨에 가서 죽게 됩니다.

 

우리는 다윗의 고백을 함께 찬양하기 원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 넘나이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니 저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18:1-2, 29-30).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의 반석이시며 요새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 되시기에 하나님을 의지하며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순종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방패가 되어 주십니다. 잠언 기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14:26-27)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를 주시며,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도록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은 말씀을 행하는 순종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집을 건축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건축은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져 날마다 말씀의 순종과 사역으로 세워가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지푸라기와 같이 타서 엎어질 세상 것에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집은 보석과 금과 은과 같이 불에 타지 않는 것으로 지은 집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히 간직해 주시는 삶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열하 19:31). 하나님은 히스기야를 보호하시면서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구원하시겠다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보호하시며 지키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기경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뿌리 내리도록 회개해야 하며, 그 분의 말씀을 붙잡고 열매 맺는 귀한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