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2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들어가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 7:13-14).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좁은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문은 구원의 문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생명과 멸망의 문이 있는데 어느 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영원히 멸망 당할수도 있고 영원히 천국에서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주님이 가르치신 문은 좁은 문입니다. 그러나, 그 문은 좁아서 적은 사람들이 찾는 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주님은 사후 세계가 있음을 가르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 7:13-14).
주님께서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현재 현재를 살아가는 인생에서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은 사람이 죽은 이후에 만나야 할 영원한 세계에 대하여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후 세계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고대 문명이 발달했던 이집트에서는 시신을 미라로 만들어 보존했고, 영혼은 사후 세계에서 불멸하여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왕이 죽으면 그 가는 길을 섬길수 있도록 노예들을 같이 무덤에 가두는 일도 있었습니다. 불교의 윤회 사상은 삶이 계속해서 다음 세상에서 반복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음 세상에는 사람이 아니라 곤충이나 짐승으로도 태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힌두교의 열반 사상은 사람이 죽으면 존재 자체가 없어지고 우주의 큰 생명 원리에 의해 흡수된다고 가르칩니다. 조그만 파도가 큰 파도에 흡수되어 사라지듯이, 사람이 죽으면 그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모든 사람이 결국에 천국에 간다는 것입니다. 이를 보편적 구원론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자신의 창조물에게 영원한 형벌을 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불신자들은 죽자마다 혼이 죽은 뒤 심판을 받고 완전히 소멸된다고 믿습니다. 안식교는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는 동안에 무덤에서 자고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모든 가르침은 이단적인 가르침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삶이 이 세상에서 끝난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육신은 이 땅에 묻히지만, 영혼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천국이나 형벌을 받는 지옥으로 가게 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선지자 다니엘은 몸이 깨어 부활하게 되면 영생을 얻는 자도 있지만, 수욕을 당하여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다 12:3). 다니엘 선지자는 자는 자 중에서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지만, 수치를 받아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죽음을 통하여 영혼이 두 가지의 처소로 옮겨지게 됩니다. 하나는 천국이며 또 하나는 지옥입니다. 생명을 얻은 자는 주님이 거하시는 천국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골로새서는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니라.” (골 3:4)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면 주님과 함께 거하다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믿지 않고 죽은 자는 지옥에서 고통을 당합니다. 주님께서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하여 나사로는 죽어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지만, 부자는 음부라고 하는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눅 16:23-24). 부자는 구원받지 않고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그 결과로 불꽃 가운데서 고통당하는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부자가 간 곳은 영원한 지옥의 심판을 기다리는 음부라는 곳입니다. 요한 게시록의 20 장에 나오는 백부좌 심판을 통하여 사탄과 거짓 선지자들과 함께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주님은 사후 세계가 있기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 10:28). 주님은 몸과 영혼을 지옥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몸은 죽일 수가 있지만 영혼을 죽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몸과 영혼을 심판하셔서 그들의 죄로 인하여 영원한 지옥에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너무나 무섭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사람들은 영원한 형벌의 고통을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2.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종교의 문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마 7:13).
주님은 좁은 문과 넓은 문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넓은 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마 7:13). 이 세상에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도 있지만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 있습니다. 주님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셨습니다. 멸망으로 가는 길은 어떤 길인가요? 그 길은 세상이 사랑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걸어가다 보면 멸망의 문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어떤 문인가요? 그 문은 거짓 선지자의 가르침을 받는 종교의 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영적인 존재이고 세상에 영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기에 더 큰 힘을 가진 자를 의지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정령 숭배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모든 생물과 사물에는 영이 있다고 믿고, 큰 나무나 바위를 의지해서 제사를 지내면서 복을 빌기도 합니다. 때로는 산 정상에서 제사를 드리면서 산신령의 복을 비는 것이 정령 숭배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가는 길입니다. 어떤 이들은 세상에 많은 신들이 있어서 자신이 신을 선택하여 제사를 드리곤 합니다. 이러한 모습도 멸망의 문으로 가는 길입니다.
티벳이나 네팔과 같은 불교에서는 삼보 일배를 하면서 순례를 떠나곤 합니다. 수백 km 를 삼보 일배를 하면서 고행의 순례를 떠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죽을 수도 있지만 길에서 끊임없이 머리를 땅에 대는 절을 하면서 가는 것은 자신의 죄를 씻고 다음 세상에서 나은 존재로 태어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진정한 고행을 하더라도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태국이나 미얀마, 캄보디아 같은 동남아 지역은 불교가 발전했습니다. 그들의 지역에는 큰 불신상이나 불심을 표현하는 탑을 세워서 공을 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진정성을 가지고 마음을 수양하거나 죄를 씻으려고 해도 하나님과의 근본적인 관계가 회복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우상 숭배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지적합니다. 사람들이 금과 은을 가져다가 수공업자에게 주면 그는 그것을 멋진 신을 만듭니다. 그러면, 그 신이라는 것은 움직이거나 말하거나 생각할 수도 없는 그냥 조각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어깨에 메어다가 처소에 두면 사람들은 그것을 향하여 엎드려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신은 경배하는 자의 기도를 들을 수도 없고 고난에서 구하지도 못합니다.
“너희가 나를 누구에 비기며 누구와 짝하며 누구와 비교하여 서로 같다하겠느냐 사람들이 주머니에서 금을 쏟아 내며 은을 저울에 달아 장색에게 주고 그것으로 신을 만들게 하고 그것에게 엎드려 경배하고 그것을 들어 어깨에 메어다가 그의 처소에 두면 그것이 서서 있고 거기서 능히 움직이지 못하며 그에게 부르짖어도 능히 응답지 못하며 고난에서 구하여 내지도 못하느니라.” (사 46:5-7).
우리가 믿고 예배하는 하나님은 세상에서 한분이신 전능자이십니다. 그 분은 영원부터 계셨고 영원까지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이가 없느니라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사 45:21-22). 우리의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을 주시기에 우상을 의지하는 자는 멸망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구원을 얻는 길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하나님 외에 다른 곳에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구원을 얻으려고 스스로 노력하는 길로 가고자 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바라보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선한 행실이나 철학적인 깨달음, 더 나아가 말씀에 순종하는 자기의 의로 구원을 얻으려고 합니다. 자신의 선한 의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모든 노력은 멸망으로 가는 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당시에 최고로 율법을 지키는 종교 지도자들을 강하게 질책하시면서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마 23:27-28). 주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는 큰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에는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은 율법을 지키며 가르치는 자들이었습니다. 당시에 존경받는 종교인들이었고 하나님을 대표하는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의는 자기 의였습니다. 사람에게는 옳게 보이고 영적으로 보였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행위로 자신을 증명하려고 했지만 마음의 죄에 대해서는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율법사들은 자신도 생명의 문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다고 강하게 질책하셨습니다. 주님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하여 송경된 자라고 하셨고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다가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진다고 하셨습니다. “...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신대.” (마 15:14).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것은 소경의 길을 가는 것이며 멸망으로 가는 문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멸망은 영원히 뜨거운 불에서 고통당하는 지옥을 의미하신 것입니다.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 13:49-50). 영원히 타는 불못이 지옥의 형벌입니다. 주님은 심판하실 때에 “...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마 25:41) 라고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지옥은 영원토록 타는 불의 호수인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계 20:14-15) 라고 했습니다. 멸망은 사람이 영원히 고통당하는 지옥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소경에 의하여 인도함을 받는 소경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이 영적으로 어두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고 천국에 간다는 100% 의 확신이 없이 살아가는 것은 소경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마음이 평안하고 사람들이 좋고 교제의 분위기가 좋아서 다니지만, 자신의 영혼에 대한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소경에서 벗어나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바라볼 때에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3.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예수님이십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 7:14).
주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 이유는 그 길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길이 좁고 길이 협착하여 잘 찾지 않는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무엇을 의미하시는 건가요? 생명은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생명은 참된 생명이며 영원히 사는 생명을 의미합니다. 생명을 얻은 자는 부활의 생명으로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생명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영원히 천국에서 살아가는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생명을 주시는 분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시며 이 세상에서 유일한 진리이시며,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이십니다. 우리는 영생을 얻어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요 6: 47-48, 51)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이 되셔서, 주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다고 하셨고, 영생을 얻은 자는 영원히 멸망치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0:28). 주님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 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 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7-10). 예수님은 양이 들어가는 문이 되십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참된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문을 통할 때에 생명을 얼ㄷ게 되는 것이며, 더 나아가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는 그 길로 가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길을 가는 자는 참된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만나 생명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생명을 얻은 자는 생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생명을 얻은 자입니다. 그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영원한 생명이기에 영적인 교제를 나눌수가 있으며, 말씀으로 새 힘을 얻어 영적인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은 후에 생명을 위한 꼴을 얻어야 합니다. 그 꼴은 양의 양식인 초장입니다. 우리의 꼴은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성장할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을 얻게 되고, 기도로 나아가 성령의 충만함을 얻게 됩니다. 우리의 풍성한 삶은 주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의 능력을 공급받으며 순종할 때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람이 죽으면 사후의 새로운 삶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삶은 멸망의 형벌이나 영원한 천국에서의 삶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가는 멸망의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함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인 하나님의 뜻입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 6:40). 우리는 생명의 문이신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됨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은혜를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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