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마태복음 강해 (27) - 예수님은 메시야이시다. (마 8:5-13).

비전의 사람 2019. 2. 16. 20:54

마태복음 강해 (27) - 예수님은 메시야이시다. (8:5-13).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8:10).

 

예수님은 산상 수훈의 말씀을 가르치신 후에 갈릴리 지역에서 주요 사역을 하셨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성경의 예언의 말씀을 미리 보고자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이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복 받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죄의 저주 아래에 갇히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메시야를 약속하셨고, 그 분이 오셔서 모든 것을 회복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메시야가 오시는 약속을 창세기의 에덴에서 하셨고, 그 후에 아브라함에게 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12:2).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고, 그의 자손을 통하여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는 메시야에 대한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변함없는 약속은 다윗에게로 이어지게 됩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삼하 7:16). 다윗의 영원한 나라는 메시야를 통하여 성취될 것에 대한 약속입니다.

 

1. 성경이 증거하는 메시야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1:1).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약속하신 메시야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믿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증거가 곧 나사렛 예수이심을 증거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가 아브라함의 혈통이며 다윗의 혈통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절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1:1) 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의 근원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다윗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보좌가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마태는 또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에 대한 약속이 마리아를 통해서 성취됨을 증거합니다. 또한 베들레헴의 탄생은 미가서에서 에언한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에 대한 예언의 성취임을 증거합니다.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2:5-6).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나신 것은 예언의 성취입니다. 그리고, 침례요한의 사역은 이사야 선지자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3:3) 라는 말씀의 성취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회당에서 이사야 선지자의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61:1) 라는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이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예수님을 낭떠러지로 끌고가서 죽이려고 하자,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갈릴리의 가버나움에 가셔서 말씀을 가르치시며 사역을 중점적으로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남부의 유대와 중부의 사마리아, 북부의 갈릴리 지역으로 나뉠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주로 갈릴리 호수 주변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셔씁니다. 주님이 이 갈릴리 지역에서 사역하신 것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길과 이방의 길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4:13-16). 이는 이사야 91-2절의 말씀의 성취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사역하신 갈릴리 지역은 당시에 로마군의 점령아래 있었고 이스라엘 북부 지역으로 북부 이방인으로부터 수많은 침략을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는 이방의 갈릴리라고 표현했습니다. 어두움의 권세자들에 의하여 영적으로 어둠과 사망의 땅에 방황하던 자들에게 하나님의 기름부은 종인 메시야, 즉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증거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14). 우리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 분에게는 독생자의 영광이 충만했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지만 사람들은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1:11). 유대인들은 성경에 정통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마음을 다하여 믿지 않고 오히려 장로들의 유전을 따르며 전통에 매여 있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진실로 주님을 믿었다면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깨달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사역을 통해서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가 증거한 메시야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5:39-40) 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깊이 연구했지만, 그 성경이 증거하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제 영생을 주시는 주님께로 나아와야 했습니다. 성경에서 증거하는 메시야가 바로 이스라엘 땅에 오셨고, 갈릴리 지역에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2. 예수님의 권능은 그의 메시야되심을 증거합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 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8:17).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은 종인 메시야의 사역에 대하여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61:1). 주님은 기름부은 종으로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시며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와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실 것입니다. 이사야의 예언과 같이 주님은 갈릴리 지역에서의 사역을 이렇게 마태는 기록했습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4:23-24).

 

주님의 사역은 세상의 창조주로서 이 땅에 오셔서 치유와 회복을 하시는 사역이셨습니다. 주님은 아픈 자를 고치시고 귀신에게 고통당하는 자에게 자유를 주시며, 죄에 매여 고통당하는 영혼들에게 영생을 주셔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주님의 사역은 대부분이 갈릴리 지역과 가버나움에서 행하셨습니다. 특히 가버나움은 예수님이 나사렛을 떠나서 거주하시던 곳이었습니다. 당시에 가버나움은 수리아의 다메섹과 가이사랴 항구를 연결하는 길목이었고, 두로와 이집트로 가는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그래서, 그 길을 다니는 상인이나 사람들로부터 통관세를 걷는 세관이 있었고, 주님은 세관에서 세리로 있던 마태를 부르셔서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또한 가버나움에서 주님은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가버나움에는 베드로의 집터가 지금도 유적지로 남아 있습니다. 성경은 로마의 백부장이 유대인들을 위해서 회당을 지어주었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은 백부장에 대하여 유대인들이 이렇게 간구했습니다.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7:5). 그 백부장이 주님께 나아갑니다.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와하나이다.” (8:5). 백부장은 백명의 군사를 거느리는 로마의 군인이었습니다. 그러한 백부장이 유대인들을 위하여 회당도 지어주면서 선한 일을 많이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종이 중풍병으로 고통당하자,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주여 중풍병으로 고통하는 종을 고쳐 주셔서.” 그의 간구는 주님을 믿는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예수님의 능력을 통해서 그 분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메시야임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이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7)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8:8) 라고 했습니다. 백부장은 주님이 오실 필요도 없이 말씀만 하면 종이 나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부하에게 자신이 명령하듯, 주님이 말씀만 하시면 종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이렇게 칭찬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든지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8:10). 주님은 백부장의 믿음이 이스라엘의 어떠한 사람보다도 더욱 진실된 믿음임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라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라고 하시자, 그 하인이 그 시로 낫게 됩니다.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내 믿은대로 될찌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 (8:13). 주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종의 중풍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주님의 권능은 이와같이 믿는 자 속에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능력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기름부은 종인 메시야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외에도 능력으로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어떠한 사람도 할 수 없는 기적을 예수님이 행하신 것은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그 분이 하나님 되심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셨기에, 그 분이 손길이 닿는 순간에 병자가 치유되고 죽은 자가 살아나며 귀신이 떠나가 회복되며, 믿는 자가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주님이 산상수훈의 말씀을 가르치신 후에 산에서 내려오시자 한 문둥병자가 찾아왔습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8:2). 주님은 즉시 그의 문둥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8:3). 이스라엘의 역사상 문둥병이 나은 것은 모세의 동생인 미리암과 나아만 장군 외에는 없었습니다. 모세의 기도를 통하여 미리암의 문둥병이 나았고, 하나님의 선지자인 엘리사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이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주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온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이 말씀하시자, 사람의 능력으로 고칠 수 없는 문둥병이 나았습니다. 주님은 또한 베드로의 집에서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주셨습니다. 갈릴리의 가다라 지방에서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에서 나와서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귀신들을 돼지 떼로 보내시고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주님이 제자들과 갈릴리 바다를 지나실 때에 풍랑이 일자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자, 그 바다가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워 주님을 깨우며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8:25)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8:26) 라고 책망하시며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권능이 하나님의 권능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마태는 주님이 말씀으로 병든 자를 고치시는 사역에 대하여 이사야 53장의 말씀의 성취로 바라보았습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8:17). ,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야의 사역이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서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그 분이 하나님의 기름부은 종으로서의 예언된 사역의 성취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의 기적의 사역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함을 보게 됩니다. 그 후에 주님은 가버나움을 저주하셨습니다.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가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11:23). 주님이 많은 권능을 가버나움에서 행하였지만 그들은 마음이 높아서 회개하지 않는 모습에 주님은 가버나움을 책망하시고 저주하셨습니다. 주님의 저주를 받은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은 오늘날 유적지만 남아 사람이 살지 않는 황폐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으로서 가버나움에 거하던 백부장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하시는 권능을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야 이심을 믿었던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8:10). 주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시며 격려하셨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진정으로 의지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인생의 위기에서 누구를 찾습니까? 문둥병자는 주님을 찾아 치유를 받았고, 백부장은 주님을 찾아와 종이 나음을 얻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자신의 집으로 모셔와 기도를 통하여 장모의 열병이 나았습니다. 풍랑을 만난 제자들은 주님을 깨우며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마태복음 9장에서는 친구들이 중풍병자를 데리고 주님께로 찾아와 치유와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가장 의지하는 대상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권력과 재물을 의지하려는 것은 세상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며 도우심을 구하는 것은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요동하지 않고 반석되신 주님 안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0:38)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이 땅에 오신 메시야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이 우리를 통하여 능력을 베푸시며 고통당하는 자와 갇힌 자들을 치유하며 회복시키는 사역을 감당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을 때에 주님은 우리를 통하여 놀라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14:12). 우리가 주님을 믿으면 주님이 하시는 일을 하며 더 큰 일도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통하여 위대한 일을 하시도록 우리는 주님을 굳건히 믿고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예수님은 구원을 주시는 메시야이십니다.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 (9:6).

 

주님은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병을 고치시거나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유일한 이유는 인간의 죄를 사하셔서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에서 이렇게 증거합니다. “ ...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53:11).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기 위하여 우리의 죄를 친히 담당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죄를 사하는 권세는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이며 죄의 권세 아래 매여있기 때문입니다. 죄를 사하는 권세는 오직 하나님께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는 죄에 대한 심판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하기 위하여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죄를 담당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용서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침상에 누운 채 찾아온 중풍병자를 고치시기 전에 그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때 주님은 중풍 병자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9:2). 죄를 사하는 권세는 하나님의 권세입니다. 주님이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셨기에 죄를 사하시고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권세를 증거하기 위하여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도록 그의 병을 고치셨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9:6). 주님께서는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죄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구원받을 다른 길이 없습니다. 주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백부장은 이방인이었지만 주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천국에 앉을 자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방인이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주님을 거부하고 복음이 이방인에게 퍼져 주님께로 돌아올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백부장은 믿는 이방인의 구원의 본이 되었습니다.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8:11-12). 이스라엘의 본 자손들이 하나님이 선택한 유대 민족이지만 그들은 율법을 의지하고 주님을 믿지 않으므로 지옥불에 떨어져 이를 갈며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듣고 주님을 믿어 구원에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아 영원한 복을 누리게 될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하여 이방인들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유대인은 행위에 의지함으로 부끄럽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9:30-32). 유대인은 율법의 행위를 의지함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지만, 이방인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어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선한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백부장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는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야이심을 믿습니다. 그 분은 우리의 구원자로서 영혼을 구원하실 수 있는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셨기에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주님은 메시야로서 질병과 자연을 다스리시며, 마귀를 이기시고 죄를 용서하시는 권세가 있으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음으로 주님이 주시는 권세로 영원한 안식과 평안을 주님 안에서 누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