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탐구

성경으로의 여행(7) - 아브라함과 믿음의 여정 (창 12-24장)

비전의 사람 2019. 4. 24.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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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의 여행(7) - 아브라함과 믿음의 여정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15:6).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하나님은 이 땅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의를 행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백성을 세우시고자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12:1).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셨고, 그 후에 하란에 체류하는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다. 가나안을 향하여 출발한 아브라함의 나이는 75세이며 기원전 2092년이었다.

 

아브라함이 태어나고 자란 갈대아 우르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번영하는 도시였다. 우르는 지구라트라는 유적지를 남겼는데 이는 달신인 난나르를 숭배하던 신전이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도 메소포타미아에서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다. 우르는 기원전 2000 년 직전에 엘람에 의하여 파괴되고, 그 후에 200 년이 지난 후에 아모리 사람들이 바벨론 제국을 세우게 된다.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와 아내 사라, 그리고 조카 롯과 함께 우르에서 하란으로 이주하게 된다. 그 거리는 약 1,000 km 정도이며 유프라테스강을 따라 하란으로 이주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거주하면서 재산과 종들을 소유하면서 큰 대상의 권세를 얻게 된다. 아브라함은 군주들과 교역을 할 수 있을만큼 큰 자본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가축을 돌보기 위한 318명의 사병을 소유하고 있었다. 아브라함은 데라가 죽은 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나안으로 이주하게 된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가나안 이었기에 믿음의 순종으로 가나안의 세겜에 이르게 된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으로 오는 길에 다메섹에 들르게 되고, 왕의 대로를 따라 내려오다가 얍복강에서 요단을 건너 세겜에 이르게 된다. 그 후에 아브라함은 벧엘에 이르러 하나님께 단을 쌓아 예배를 드린 후에 점점 남방인 네게브 사막으로 옮겨갔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나안에 이른 후에 믿음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히브리서 111절과 같이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순종하며 자라갔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11:1-2) 라고 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에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나아갔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때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11:8). 믿음은 말씀을 의지하며 순종하는 것이다. 말씀을 바라보며 순종하는 과정에는 기다림과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서 100년을 거주하면서 인내하며 순종하는 믿음을 배워야 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세우실 거룩한 민족의 아버지로서 본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기가 넘어지면서 일어서고 걸어가는 과정을 배우듯이, 아브라함의 믿음도 실패와 좌절을 통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배워갔다.

 

1. 아브라함은 기근에서 믿음을 타협하였다.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2:10).

 

아브라함은 기근을 만나자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갔다.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2:10). 아브라함이 살던 메소포타미아의 우르나 하란과 가나안의 산지나 사막과는 환경에 큰 차이가 있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우르는 당시의 번영하는 도시로서 풍요를 누릴 수 있었고, 하란도 당시의 무역로의 요충지로서 부와 번영을 누리던 도시였다.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이미 경제적으로 큰 자산을 얻어 많은 소유와 종들을 가지고 있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온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나 정치적인 야심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이었다.

 

아브라함은 당시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그리 크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오다가 중간인 하란에서 체류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가나안의 세겜이나 벧엘과 같은 산지와 남방의 네게브 사막에 거하다가 기근이 찾아오자 당시의 문명의 중심지인 애굽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간 이유는 애굽에 우거하려(sojourn) 했기 때문이다. 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약속하신 땅보다 비옥하고 소출이 풍성한 나일강의 애굽을 더욱 바라보았음을 의미한다. 당시의 애굽은 피라미드와 같은 거대한 건축물이 있을 정도로 문명의 중심지였다. 하나님은 가나안을 네 자신에게 주신다고 하셨다(12:7). 그러나, 아브라함의 눈에 보인 가나안은 해발 800-1000m 의 산지였고 비가 오면 땅에 스며들어 농사를 짓기도 어려운 땅이었다. 그리고, 산지에는 가나안 사람이 거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어려운 환경과 삶을 지켜보며 큰 기대감이 없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애굽은 당시에 이집트 문명이 발생한 곳으로 나일강의 비옥함으로 풍부한 소출을 얻고 있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기근이 찾아오자 애굽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아브라함이 현실과 타협하여 애굽에 내려간 후에 영적으로 많은 실수를 범하게 된다. 첫째는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것이다.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 (12:12-13). 사래가 비록 65세의 나이였지만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애굽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사래를 자신의 목숨을 위하여 포기하고자 했다. 마침내 바로가 사래를 궁으로 들인 후에 아내로 취하고자 했을 때도 아브라함은 바로에게 사래를 아내가 아니라 누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바로에게 재앙을 내리심으로 바로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아브라함과 아내, 그리고 소유를 다시 가나안으로 보내게 된다. 둘째는 애굽 여인 하갈을 데려온 것이다. 아브라함은 10년을 기다려도 자녀가 없자 사라의 권고로 애굽에서 데려온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게 된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가져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한지 십년 후이었더라.” (16:3). 이스마엘은 애굽 여인인 하갈의 자녀였기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야의 혈통이 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아브라함이 애굽 여인으로 낳은 이스마엘로 인하여 그 후에 큰 고통의 근원이 되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실수를 통하여 믿음의 원리인 순종을 배우게 하셨다. 믿음은 순종이며,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말씀을 바라보며 기다려야 했다.

 

2. 아브라함은 믿음의 눈으로 보기 시작하였다.

“ ...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3:14-15).

 

아브라함과 롯이 차이는 삶의 경험에서 얻는 교훈이다. 아브라함은 애굽에서의 교훈으로 가나안을 떠나지 않지만, 롯은 환경의 변화로 인하여 아브라함을 떠나 죄악이 관영한 소돔으로 처소를 옮겼다.

 

아브라함과 롯은 애굽에서 나오면서 벧엘에 이르게 된다. 벧엘은 가나안의 산악 지대이기에 거주할 수 있는 땅이 부족하였다. 왜냐하면, 아브라함과 롯의 소유가 많아 동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서로 다투지 말고 서로 떠나자고 제안한다. 이때 롯은 요단 들을 바라보며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했다. 그 땅은 하나님이 멸하시기 전이라 애굽 땅과 같이 물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3:10). 롯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떠나 동으로 옮겨 소돔을 거주지로 삼았다. 그러나, 소돔 사람은 악하였고 큰 죄가 가득하였다. 마침내 롯이 소돔에 거할 때에 시날왕 아므라벨과 엘람앙 그돌라오멜 등 네 왕이 소돔와 베라를 비롯한 다섯왕들과 사해 근처에서 전쟁을 하였다. 이들은 메소포타미아의 왕들로서 엘람은 이후에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와 아카디아 왕조를 멸할만큰 큰 힘을 가지고 있었다. 메소포타미아 왕들의 공격에 소돔과 고모라 왕들이 패배함으로 롯을 비롯한 소돔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갔다.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소돔에 거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14:11-12). 아브라함은 자신의 조카가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사병 318명을 이끌고 가나안의 북쪽인 단까지 이르러 전쟁하였고, 다메셋 좌편인 호바에까지 이르러 조카 롯을 구하였다.

 

하나님은 그 후에 소돔의 죄가 관영함으로 심판하신다. 이때 아브라함의 중보 기도로 인하여 롯은 구원을 얻게 된다.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에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19:29). 하나님은 소돔성을 하늘에서 유황과 불로 내리셔서 심판하셨다. 소돔의 죄는 동성애의 죄였는데, 천사가 롯의 집에 있을 때에 소돔 사람들이 찾아와 롯에게 이렇게 요구한다.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19:5). 소돔 사람들이 롯에 집에 온 사람들을 요구하였다. ‘상관하다의 의미는 성적인 관계를 맺다의 의미이다. 이는 아담과 하와가 동침하여 가인을 낳은 것과 같은 히브리어 단어가 사용되었다. 특히 소돔에서는 소도미 (sodomy) 라고 알려진 동성애적인 형태의 성적인 방종과 문란함이 가득했던 것이다. 하나님이 소돔을 멸하실 때에 롯의 아내는 소돔에 대한 연민을 버리지 못하여 소금 기둥이 되었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에도 불구하고 롯과 그의 두 딸은 소돔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롯의 딸들이 롯을 취하게 하여 성적인 관계를 하고 자녀를 잉태하는 죄를 범했다. 큰 딸에게서 모압이 나오고 작은 딸에게서 암몬이 나와 그들의 조상이 되었다. “롯의 두 딸이 아비로 말미암아 잉태하고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 족속의 조상이요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족속의 조상이었더라.” (19:36-38). 후에 모압은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 민족을 저주하며 고통을 주는 민족이 되었고, 암몬은 다윗 왕조때에 이스라엘과 적대적인 관계에서 전쟁하는 이방 민족이 되었다. 하나님은 모압과 암몬의 죄로 인하여 그들을 심판하신다.

 

롯이 믿음의 사람인 아브라함을 떠나 세상의 가치를 따라 죄의 도시에 들어감으로 결국은 하나님을 버리고 가인과 같이 악한 자의 길을 선택했다. 롯은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에서의 하나님의 뜻을 배우지 못했고, 가나안에 들어와서 소돔을 선택함으로 하나님을 뜻에 불순종하였다. 소돔에서 롯은 포로로 잡혀가는 수모를 당했지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고, 불과 유황의 심판을 당하는 소돔을 보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술에 취하여 딸들과 근친하여 자녀를 낳았다. 그의 죄는 이방 민족의 아비가 되어 영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민족의 아비가 되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애굽에서의 교훈을 얻은 후에 약속의 땅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서 땅과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다. “ ...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찐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13:14-17).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께 헤브론에 거하며 예배하였다. 아브라함은 위험에 처한 조카 롯을 단까지 찾아가 구원하였고, 하나님의 심판을 알게 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중보하는 기도를 드린다. 그의 기도로 하나님은 롯을 멸망 가운데서 심판하지 않으시고 구원하셨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떨어져 화려했지만 죄가 관영한 소돔의 멸망을 보면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더욱 굳건해 지게 되었다.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여호와의 앞에 섰던 곳에 이르러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들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점 연기 같이 치밀음을 보았더라.” (19:27-28). 아브라함의 눈으로 소돔의 멸망을 지켜보면서 아브라함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어떻게 바라보게 되었을까 생각해본다.

 

3.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롭게 되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15:6).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 하나님이 약속의 말씀이 살아있고 영원함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따르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주신 말씀은 약속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그것들은 바로 후손과 땅, 그리고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이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 (12:2-3, 7). 하나님은 모든 민족에게 복을 주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셔서 그 이름을 창대하게 하셨고, 모든 민족들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하셨다. 이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이주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자라가면서 더욱 구체화하셨다. 롯이 요단의 동쪽으로 옮겨 소돔성을 향했지만,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 남아 믿음을 지켰다. 이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보는 땅을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영원히 주실 것이라고 하셨다. “...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찐대 네 자손도 세리라.” (13:14-16).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은 가나안 땅과 땅의 티끌같이 많은 자손이었다. 당시에 아브라함은 자녀가 없었고 가나안에 아무런 땅을 소유하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은 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약속을 주신 것이다.

 

창세기 15장에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영원한 약속인 언약을 맺는 장면을 소개한다. 언약이란 고대 근동에서 짐승을 둘로 쪼개어 두 사람이 그 사이를 지나가며 맺는 굳은 약속이었다. , 두 사람이 언약을 깨는 것은 죽음으로써 갚아야 하는 엄숙한 의식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다메섹 사람인 엘리에셀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몸에서 난 씨가 후사가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의 후손은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을 것이라고 하시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고 의롭게 되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15:4-5).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의 씨를 통하여 하늘의 별과 같은 많은 자손이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15:6).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브라함의 자손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거하고 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고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3:16).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후손, 즉 씨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모든 민족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롭게 되어 구원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3:8).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여 모든 이방이 아브라함을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음은 아브라함의 씨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민족들이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자 언약을 맺으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삼년 된 암소와 암염소와 수양과 비둘기 새끼를 취하여 반으로 쪼개도록 하셨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잠이 들자 그 고기 사이로 타는 횃불의 모습으로 지나가심으로 언약을 확증하셨다. (15:17). 하나님의 언약은 변하지 않는 영원한 약속인 것이다. 이때 하나님은 약속의 땅에 대하여 더욱 구체화하셨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이방 나라에서 객이 되어 사백년을 지내다가 사대만에 돌아오게 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15:13).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관영해질 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그들을 심판하시고, 그 땅을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그리고, 그 땅은 애굽강에서부터 유브라데까지의 지경이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자 하나님은 아브람의 이름을 열국의 아비인 아브라함으로 고쳐주시고 나라들과 왕들이 후손에서 나올 것이라고 하셨다 (17:5-6). 그리고, 하나님은 언약의 증거로 할례를 행하도록 하셨다. 할례는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이 지켜야 할 언약의 증거였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17:10-11). 노아는 하나님의 언약의 증거로 무지개를 받았다면, 아브라함은 언약의 증거로 할례를 받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은 할례를 받아야 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브라함은 이삭을 그의 후손으로 얻게 된다.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의 출발점이었다. 이삭을 통하여 하나님은 하늘의 별과 같은 자손들을 주실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이삭을 드린 후에 하나님은 다시 아브라함을 축복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약속은 자손과 땅, 그리고 민족들이 복을 얻는 아브라함의 씨였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22:17-18). 아브라함의 순종은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하였고 믿음의 조상으로서 큰 본이 되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후손과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을 받았으나, 그는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증거로 후손으로는 독자 이삭을 주셨고, 땅에 대하여는 브엘세바의 우물과 헤브론에서 사라의 매장지인 막벨라 굴을 얻을 수 있었다. 하나님의 약속에 비하여 아브라함이 얻는 것은 약속의 출발선이었기에 육신의 눈으로는 초라해 보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하늘의 별과 같은 후손들과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셨으며, 이천년이 지난 후에 아브라함의 씨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나심으로 성취되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복을 우리는 모두 누리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구원의 은혜로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와 예배, 그리고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보여주실 하나님의 영광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8:18). 우리의 현재의 삶은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의 연속이지만, 주님이 오셔서 약속을 성취하시는 날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요일 3:2).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에 그와 같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된다. 우리가 바라볼 기업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11:1).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영적인 눈으로 확신하며 바라보는 것이 믿음이다.

 

4. 아브라함의 믿음은 예배와 순종으로 온전하게 되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11:17).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은 순종에서 시작하여 예배에서 온전하게 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 두시고 다스리며 지키는 것이 히브리 원어로 아바드와 사바로서 예배와 순종인 것과 같다. 하나님의 복은 순종과 예배를 통하여 믿음의 자녀들에게 찾아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아 가나안으로 온 것은 순종의 첫걸음이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다 (12:4). 아브라함이 벧엘에 이르러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다.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12:8).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애굽에 갔다가 다시 돌아온 후에 벧엘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13:4). 아브라함은 애굽에 가서 아내를 누이라 속이고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한 것에 대하여 회개하며 예배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헤브론에 이르러 거기서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다. “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13:18). 아브라함은 자신이 거하는 곳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음으로 예배자의 본을 보여주었다. 아브라함의 예배는 조카 롯을 구하고 돌아오는 길에 살렘에서 멜기세덱을 만남으로 더욱 구체화된다.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과 다른 왕들을 파하고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조카 롯을 데리고 돌아오게 된다. 이때 성경은 살렘왕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맞이하러 나오고 아브라함을 축복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14:18-19). 멜기세덱은 예루살렘으로 알려진 살렘의 왕이었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 그가 아브람에게 나와서 아브람을 축복하였고, 아브람은 십일조를 드리며 반응하였다. 살렘왕은 평화의 왕을 의미한다. 그리고, 멜기세덱의 뜻은 의의 왕이다. 의와 평화의 왕인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아브라함을 축복한 것이다. 아브라함을 축복한 멜기세덱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7:2-3). 멜기세덱은 의와 평강의 왕으로서 아비와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이 항상 제사장으로 있는 자였다. , 그는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항상 제사장으로 있다고 했다. 그의 제사장 직분은 레위 족보에 속하지 않는 자로서 하나님의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하였다.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그 약속 얻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7:6). 아브라함을 축복한 멜기세덱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 설명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며 의와 평강의 왕인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였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멸망의 도성에서 고통하는 롯을 위한 중보 기도에서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소돔의 죄로 인하여 그 성을 심판하심을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간절히 소돔을 멸하지 않으시기를 간청한다. 그의 간청은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 성을 용서하시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의인 오십만 있으면 그 성을 용서하실 것이라고 했다. 아브라함은 오십이 아닌 사십, 그리고 결국 십인을 찾으면 용서하시기를 간청한다. 그러자, 하나님은 의인 십인을 인하여 그 성을 멸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지만, 결국 소돔에는 의인 십인이 없어 멸망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과 그의 두 딸을 멸망중에서 구원하셨다. 아브라함의 중보 기도는 그의 조카를 멸망 중에서 구원한 것이다.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19:29). 우리의 간절한 기도와 전도는 하나님의 심판의 때에 구원하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온전한 믿음은 이삭을 드리는 아브라함의 헌신에서 나타난다. 이삭을 드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와 순종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드리라고 한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22:2). 하나님과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소중한 존재였다. 하나님에게 이삭은 아브라함의 약속의 증거였고, 아브라함에게는 소중한 독자이면서 하나님의 약속으로 얻은 후손이었기 때문이다. 이삭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관계를 견고하게 하는 약속의 후손이었다. 그리고, 모리아의 산은 예루살렘의 성전산으로서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곳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들을 재물로 드리기 위하여 삼일길을 걸어가 모리아 산에 이른다. 그리고, 아들을 잡아 재물로 드리려고 할 때에 하나님은 믿음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축복하신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22:12). 독자 이삭을 드리는 하나님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순종의 믿음이며, 하나님께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는 예배의 믿음이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향하여 그의 자녀가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그의 후손으로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다. 이는 그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인 것이다.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22:18).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크게 기뻐하셨고 약속을 다시 확증하셨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삭을 드린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했다고 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데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11:17-19).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삭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에 대한 확신이었기에, 그의 죽음에서도 하나님은 다시 살리시는 분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애굽에 갔던 아브라함의 초기 믿음에서 큰 믿음의 진보를 이룬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에 이르렀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자손과 가나안의 땅, 그리고 복으로 오실 메시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갔다. 비록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주신 땅을 온전히 소유하지 못했고, 하늘과 별과 같은 자손들을 눈으로 보지 못했지만 그의 마음에는 믿음으로 약속이 살아있었다. 아브라함은 죄로 인한 소돔의 멸망을 지켜보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100세에 아들을 낳는 기적을 경험하면서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 그의 믿음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는 순종을 할 수 있었고, 이삭의 아내를 함족인 가나안의 여인이 아니라 본토 친척에서 얻게 함으로 복으로 오시는 메시야에 대한 소망을 간직하였다. 아브라함은 믿음이 연약하여 애굽 여인 하갈로부터 이스마엘을 낳아 이스라엘과 큰 원수가 되는 민족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하셨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인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