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탐구

성경으로의 여행(19) - 금송아지와 성막의 완성 (출 32-40장)

비전의 사람 2019. 7. 31. 16:49

성경으로의 여행(19) - 금송아지와 성막의 완성 (32-40)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32:1).

 

모세가 율법과 계명을 기록한 돌판을 받기 위하여 시내산에 올라간다. 그리고, 모세는 산 위에 올라가 사십일 사십야를 지내며 산에 거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성막 건축과 제사장의 위임식에 대한 규례를 말씀하셨고,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하신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셨다. “여호와께서 시내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31:18).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언약의 증거로 십계명을 기록한 두 개의 돌판을 모세에게 주셔서 증거로 삼게 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산에서 더디게 옴을 보고 배교의 미혹에 빠져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게 된다. 이는 시내산 언약을 통하여 제사장의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되기로 결단하였지만, 자신들의 결단을 지키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성을 보여주고 있다.

 

1.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였다.

 

모세가 산에서 사십일을 머물자 백성들은 아론에게 찾아가 신을 만들기를 요구했다. “...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32:1).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더디옴을 보고 아론에게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라고 요구했다. 자신들을 인도할 신을 만들라는 것은 자신들을 인도하셨던 여호와 하나님을 거절하고 자신들이 애굽에서 보았던 눈에 보이는 우상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모세가 40일간 보이지 않은 시간은 인내하며 기다려야 하는 믿음의 시험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에 세우신 모세가 돌아오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모세가 죽은 줄로 생각하고 자신이 원하는 신을 만들어 섬기고자 했던 것이다.

 

아론은 백성들의 죄에 동참하며 우상을 만들도록 했다. 아론은 백성들에게 귀의 금고리를 빼어 가져오게 한 후에 금송아지 형상을 만들었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이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32:4). 아론은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한 신이라고 선포하였다. 그리고, 송아지 형상 앞에 단을 쌓고 다음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여호와의 축제일이라고 하였다. 송아지 형상은 애굽의 아피스라는 황소의 형상을 한 신을 본떠 만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우상 숭배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결합하여 제사함으로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숭배하면서 겉으로는 여호와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여호와의 절일이라고 선포하였다. 그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대적하여 스스로 부패한 민족의 길을 선택하였다. 그들은 시내산 언약에서 우상을 만들지 말 것을 들었고 순종하기로 결의한 후였지만 스스로 불순종하였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20:4-5).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가면 우상을 숭배하지 말아야 하며 오히려 그들의 신상을 타파해야 했다(23:24). 시내산 언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목소리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준행하겠다고 선포하였다 (24:3). 그러나, 그들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후에 사십일을 기다리지 못하고 금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숭배했던 것이다. “이튿날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32:6). 이스라엘 백성들이 앉아서 먹고 마시여 일어나서 뛰노는모습은 술에 취한 채 탐낙했던 성적인 놀이로서 우상 숭배와 결합된 육감적이며 관능적인 놀이였던 것이다.뛰놀더라는 원래 성적 유희를 포함한 말로서, 육체적 환희를 가리키는 말이다. 당시 이방 종교에서 황소 신은 힘과 생산의 상징으로 인식되어, 그 형상 앞에서 뛰노는것은 성적으로 타락한 행동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제사장의 나라와 거룩한 백성의 정체성을 지켜야 할 이스라엘이 애굽 신의 형상을 숭배하며 스스로 타락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향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부패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이 명하신 길을 떠나 우상 숭배의 죄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셨다.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숭배하며 그것에게 희생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32:8). 이스라엘 백성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애굽의 아피스 신인 송아지의 모습으로 만들어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숭배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지적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우상 숭배로 인하여 이스라엘을 진멸하고 모세를 통하여 큰 나라가 되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32:10). 이때 모세는 자신이 아브라함과 같이 새로운 민족의 족장이 되기로 선택하는 대신, 이스라엘을 향한 중보자가 되기를 선택한다. 그러므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중보자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한다. 모세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과 언약으로 이스라엘을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에서 인도하셨는데, 애굽 사람들이 여호와가 화를 내려 자신의 백성을 시내산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라고 조롱당하지 말기를 간청하였다 (32:11-13). 모세의 중보로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사 화를 이스라엘에게 내리지 아니하였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32:14). 모세는 중보자로서 하나님이 내리시고자 했던 심판을 내리지 않도록 기도하였고 하나님은 모세의 중보에 응답하셨다. “러므로 여호와께서 저희를 멸하리라 하셨으나 그 택하신 모세가 그 결렬된 중에서 그 앞에 서서 그 노를 돌이켜 멸하시지 않게 하였도다.” (106:23).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기록하신 두 돌판을 가지고 내려왔다. “모세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 오는데 증거의 두 판이 그 손에 있고 그 판의 양면 이편 저편에 글자가 있으니 그 판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더라.” (32:15-16).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 백성들이 금송아지 신상앞에서 춤추는 것을 보고 크게 분노하여 돌판을 던져 깨뜨렸다. “진에 가까이 이르러 송아지와 그 춤추는 것을 보고 대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32:19). 모세가 십계명이 기록된 돌판을 깨뜨린 것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파기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부패한 백성이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이며, 그 결과로 언약이 깨어졌음을 의미하신 것이다. 이에 모세는 백성들이 만든 금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사르고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들이 먹도록 하였다. “모세가 그들의 만든 송아지를 가져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우니라.” (32:20). 백성들이 만든 금송아지는 나무로 만든 송아지의 형상에 금으로 덮힌 것이다. 모세가 불에 타서 남은 재를 마시게 한 것은 자신들의 죄에 대한 수치심을 갖도록 한 벌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죄에 대하여 죄 값을 담당해야 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를 범하여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해야 할 만큼의 진노를 가져온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기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었다. 그들이 우연히 금송아지를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부패하였고 목이 곧은 백성이었기 때문이다.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큰 일을 행하신 구원자 하나님을 잊었다고 했다. “저희가 호렙에서 송아지를 만들고 부어 만든 우상을 숭배하여 자기 영광을 풀 먹는 소의 형상으로 바꾸었도다 애굽에서 큰 일을 행하신 그 구원자 하나님을 저희가 잊었나니 그는 함 땅에서 기사와 홍해에서 놀랄 일을 행하신 자로다.” (106:19-22).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기사를 행하셔서 인도하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신들이 만든 우상을 숭배하고자 했던 것이다.

 

2. 하나님은 우상 숭배의 죄를 심판하셨다.

 

모세는 아론에게 책임을 이렇게 물었다.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 백성이 네게 어떻게 하였기에 네가 그들로 중죄에 빠지게 하였느뇨.” (32:21). 모세의 질문에 아론은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기 보다는 모세와 백성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거짓말로 답변하였다. 아론은 백성들이 악하여서 모세가 어찌 되었는지 알수 없기에 자신들을 위하여 인도할 신을 만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금을 모아 불에 던졌더니 송아지가 나왔다고 거짓으로 답변하였다.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어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32:24). 아론은 백성들의 죄를 방조하거나 동조하여 금송아지를 만들었지만, 자신의 책임을 백성들에게 돌리며 거짓으로 금송아지가 나오게 된 배경을 설명하였다.

 

모세는 하나님의 편에 있는 자는 자신에게로 오라고 했다. “...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32:26). 하나님의 편에 있는 자는 우상 숭배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을 의미한다. 이때 레위 자손이 모세에게로 나왔다. 그러자, 모세는 그들에게 칼을 차고 형제와 친구와 이웃을 도륙하라고 하자, 레위 자손이 삼천명 가량을 칼로 죽였다.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며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명 가량이 죽인바 된지라.” (32:28). 레위 자손은 금송아지의 우상 숭배에 참여하지 않았고, 우상 숭배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며 죄를 범한 삼천명 가량을 칼로 심판하였다. 삼천 명이 하나님께 헌신된 레위인에 위하여 죽임을 당한 것은 우상 숭배의 죄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가증스럽고 무서운지를 깨닫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레위 자손의 칼에 죽은 삼천명은 아-마도 적극적으로 우상 숭배를 선동하거나 동참한 자를 의미한다. 레위 자손은 금송아지의 우상에 참여하지 않음으로 멀리서 그들의 우상 숭배와 타락한 제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레위 지파는 죄를 범하는 이스라엘과 스스로를 구별하여 하나님의 편에 섰던 것이다. 이때 모세는 레위 자손이 하나님께 헌신함으로 하나님이 복을 내리신다고 하였다.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그 아들과 그 형제를 쳤으니 오늘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날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32:29). 레위 지파는 레위가 세겜 성에서 범한 죄로 인하여 흩어지는 저주를 받았지만, 하나님께 헌신하는 믿음으로 인하여 복을 누리게 된다. 레위 지파는 하나님이 제사장을 돕는 자로 구별하셨다.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첫 태에 처음 난 자를 대신케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 (3:12). 하나님은 레위인을 구별하여 하나님의 성막에서 섬기는 자가 되도록 복을 주셨다. 레위 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혹하여 우상 숭배의 죄에 빠져 있을 때에 그들의 죄에 참여하지 않고 스스로를 성별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편에 서서 우상 숭배 하는 자를 심판함으로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열정을 드러냄으로 복을 받았다.

 

모세는 하나님께로 나아가 백성들을 위한 중보자의 역할을 한다.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의 죄를 속할까 하노라 하고.” (32:30). 모세는 하나님께로 나아가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기를 구하였다. 만일 백성들의 죄를 사하지 않으시면 자신의 이름을 하나님의 기록하신 책에서 지우기를 간구하였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데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주옵소서.” (32:32).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긍휼의 마음으로 대신 자신이 심판을 받기를 간구한 것이다. 하나님이 기록하신 책은 시편 6928절에서 언급된 생명책을 의미한다. 사도 요한은 생명책에는 의로운 자의 이름이 기록되었고,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는 지옥불에 던져진다고 하였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20:15). 하나님은 죄를 지은 사람이 그 책에서 이름을 지울 것이라고 하셨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32:33).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자는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하여 의롭게 된 자는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라고 하였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 (9:3). 사도 바울은 동족인 유대인을 향한 사랑이 너무나 커서 자신의 영생을 희생하더라도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강한 사명이 있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화목제물로 희생하신 크신 사랑의 마음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백성들을 인도하라고 하셨다. 그들이 갈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앞서 가지만, 하나님은 함께 가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차면 그들의 죄를 보응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32:34).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아직 채워지지 않았지만, 후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불신앙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등을 돌릴 때에 심판하실 것에 대하여 경고하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함께 가지 않으시려고 하신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목이 곧은 백성들로 인하여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진멸하실까 염려하셨기 때문이었다. “너희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중로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33:3). 만일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다가 그들의 죄가 드러나면 그들을 진멸하실 것이기 때문에 함께 하지 않겠다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에 대한 회개의 의미로 자신들의 몸에서 단장품을 제하라고 하셨다. “... 너희는 단장품을 제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일을 알겠노라 하셨음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호렙산에서부터 그 단장품을 제하니라.” (33:5-6). 단장품을 제하는 것은 죄에 대한 회개의 의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슬픔을 표한하기 위하여 애곡할 때에 단장품을 제하고 베옷을 입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를 슬퍼하며 하나님 앞에서 단장품을 제함으로 외적인 겸손과 순종의 마음을 표현해야 했던 것이다.

 

모세는 진 바깥에 회막을 만들어 하나님과 교제하였다.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33:7) 회막이 진 가운데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 거룩한 곳임을 뜻하지만, 진 밖에 회막이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진에 죄가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이다. 하나님은 진을 떠나 바깥에 설치된 회막에서 모세를 만나시고 교제하셨다. 모세가 회막문에 들어가면 구름 기둥이 내려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냈고, 모든 백성이 일어나 각기 장막문에 서서 경배하였다. 이때 모세는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하나님과 교제하였다.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그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33:11). 모세는 하나님께 친히 가셔서 은혜를 입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모세는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이면 자신이 주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주의 백성으로 삼기를 간청하였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주의 백성으로 삼는 표시로 함께 가실 것을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편케 하리라.” (33:14). 그러자, 모세는 하나님이 함께 행하심으로 이스라엘을 천하 만민 중에서 구별하셨기에 항상 함께 하시기를 간구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이시기를 간청한다.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33:18).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원했던 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다시 이스라엘 가운데 회복해 주시기를 간청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죄로 인하여 삼천명의 죽임을 당하는 심판이 내렸기에 그 죄가 자신들의 피로 속죄된 것이다. 이에 하나님이 자신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시기를 원하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은 모세를 사랑하셨기에 자신의 영광을 보이셨다. 하나님은 자신의 선한 형상을 보이시되 반석에 서서 하나님이 지나가실 때에 손으로 모세를 덮었다가 등을 보게 하셨다. “내 영광이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33:21-23). 하나님은 모세의 신실함을 보시고 은혜를 베푸셨고 하나님의 선한 형상을 보여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에도 불구하고 다시 은혜를 베푸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의 죄와 분리되었던 레위 지파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의 죄를 심판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편에 선 자는 나오라고 할 때에 지체하지 않고 모세의 편에 섰던 자들이다. 이에 하나님은 레위 지파의 헌신을 받으시고 복을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상 숭배의 죄로 인하여 삼천명의 사람을 죽이시며 그 죄에 대한 책임을 물으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다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임재하시며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셨다. 이제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시며 다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는 것이다.

 

3. 하나님은 다시 언약을 세우셨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두개의 돌판을 깎아 만들어 시내산에 오르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깨뜨린 십계명을 두개의 돌판에 다시 쓰신다고 하셨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산에 오르자 하나님이 강림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 분의 이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셨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다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 사대까지 보응하리라.” (34:6-7).

 

하나님은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인자와 진실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시지만, 형벌 받을 자의 죄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에 모세는 하나님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시기를 다시 간구하였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다시 세우심을 말씀하시며 그들이 지켜야 할 율법을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서 이방인과 언약을 세우지 말아야 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올무가 되어 이스라엘로 죄를 범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사람들과 구별된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야 했다. “너는 스스로 삼가 네가 들어가는 땅의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 그들이 너희 중에 올무가 될까 하노라.” (34:12).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서 이방인들의 우상을 깨뜨려야 했다. “너희는 도리어 그들의 단들을 헐고 그들의 주상을 깨트리고 그들의 아세라 상을 찍을찌어다.” (34:13). 아세라는 가나안 여신으로 다산을 상징하며 바알의 배우자로 숭배를 받았다.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하는 것은 비를 내리게 하거나 풍요를 위하여 성전의 여사제와 성적인 관계를 맺는 음란 행위가 동반이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세라 상을 찍어 태우라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시기에 그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교절과 칠칠절, 그리고 수장절을 지킴으로 매년 세 번씩 하나님 앞에 나와야 했다. “너희 모든 남자는 매년 세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찌라.” (34:23). 그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빈손으로 오면 안 되었고 항상 제물을 가지고 나와 하나님께 경외심을 보여야 했다.

 

모세가 하나님과 사십일 사십야를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록하신 언약의 말씀인 십계명이 기록된 돌판을 가지고 산에서 내려왔다. 이떼 모세는 하나님과 말씀하였음을 인하여 얼굴에 광채가 났고, 사람들이 그의 광채로 인하여 두려워하자 수건으로 자기의 얼굴을 가리워야 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는 고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씀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더라.”(34:35).

 

사도 바울은 모세의 얼굴을 가린 수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을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고후 3:14-15). 수건이 모세의 얼굴에 비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웠듯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의 마음은 수건이 덮고 있다. 모세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있다가 하나님과 말씀할 때에는 수건을 벗었다. “그러나 모세가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함께 말씀할 때에는 나오기까지 수건을 벗고 있다가 나와서는 그 명하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며.” (34:34). 왜냐하면, 수건을 벗어야 하나님의 영광을 볼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사람들의 완고함은 하나님 앞에서 수건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우는 것과 같은 것이다. 수건은 사람들의 완고한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위해 수건을 벗었듯이,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완고함의 수건이 벗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것이다. , 마음을 덮고 있는 완고함의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벗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구세주라는 진리를 받아들이면 마음에 하나님의 영광이 비추어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우리는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 3:18).

 

모세는 시내산에서 내려온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인 성막을 짓도록 하였다. 성막을 짓기 위하여 브살렐을 지명하고 부르자 하나님이 그에게 지혜와 총명으로 충만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케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35:31). 하나님이 브살렐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심으로 성막을 건축하게 하셨고, 오홀리압을 감동시키시고 지혜로운 마음을 주심으로 성막의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셨다. 특히 성막을 건축하기 위하여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게 하자,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막을 위하여 기쁨으로 드려 넘쳐나자 예물 가져오기를 멈추게 하였다 (36:5-7).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성막을 완성하였고 성막에 필요한 기구들을 배치하기를 마쳤다. 그러자,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으로 성막에 충만하였다. “그가 또 성막과 단 사면 뜰에 포장을 치고 뜰문의 장을 다니라 모세가 이같이 역사를 필하였더라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40:33-34).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자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다.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는 이스라엘 자손이 행진하였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행진하지 않고 장막을 쳤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광야의 길을 행진하였던 것이다. 낮에는 하나님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었고 밤에는 불이 성막 위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었다.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더라.” (40:38).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를 심판하시지만 완전히 멸하시지 않으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든 죄를 회개하였고 하나님은 다시 긍휼의 은혜를 베푸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죄로 인하여 멸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에 모세의 간절한 중보가 그들을 살리는 통로가 되었다. 이는 우리가 죄로 인하여 심판의 위기에서 중보자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구원을 얻게 되는 상징적인 의미이다. 하나님은 깨어진 언약을 다시 회복시키시기 위하여 십계명을 돌판에 다시 기록하셔서 모세에게 주셨다. 그리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아와 성막을 짓게 함으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를 완공하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으로 성막에 가득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도 중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항상 인도함을 받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