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탐구

성경으로의 여행(20) - 레위기의 제사법(레 1-7장)

비전의 사람 2019. 8. 31.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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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의 여행(21) - 레위기의 제사법(1-7)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일러 가사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생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찌니라.” (1:1-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부르셔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제사장의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의 나라가 되도록 세 가지를 주셨다. 이는 이스라엘이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했다. 세 가지는 율법과 성막, 그리고 제사법이었다. 율법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의 기준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규범이었다. 그리고, 성막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처소로서 구별된 제사장만이 성소에서 섬길 수가 있었다.

 

하나님이 성막에 임재하신 후에 모세를 부르시면서 레위기는 시작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법을 설명하시면서 다섯가지 희생 제사를 말씀하셨다. 그것은 바로 번제(1), 소제(2), 화목제(3), 속죄제(4-5:13), 그리고 속건제(5:14-19)였다. 제사를 드려질 때는 한 종류의 제사보다는 여러 종류의 제사가 혼합되어 드려질 때가 많이 있었다. 특히 제사장을 구별하는 제사에는 번제와 속죄제, 그리고 소제가 함께 드려졌다. 아론이 드린 첫 제사에서는 번제와 속제죄, 그리고 화목제가 같이 드려졌다 (9). 레위기의 제사법은 이스라엘 백성이 만든 체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였다. 성막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를 상징한다면, 제사법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희생예물을 통하여 속죄함을 받아야 했다. 희생제물은 죄없이 피를 흘려서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죽어야 했다. 이것이 바로 대속하는 죽음으로서 속죄하는 제사였다.

 

구약의 제사의 목적은 세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헌물을 드리는 헌신을 의미하며,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자신들이 범한 죄를 속죄하는 목적으로 제사를 드렸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든 추수는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열매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로 첫 소산물이나 첫 새끼를 하나님께 드려 자신들의 의무를 다하였다.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찌니라 ...” (23:19).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음식을 먹은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의미하는 희생 제사를 드린 원초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더라.” (24:11). 하나님은 그 분의 임재 안에서 식사하는 자들과 함께 하셨다.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신 후에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리고 백성들에게 떡과 고기를 나눠준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상징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그 예비한 자리에 두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니라 ... 모든 백성 곧 온 이스라엘 무리의 무론 남녀하고 떡 한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한덩이씩 나눠주매 모든 백성이 각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삼하 6:17,19). 희생 제물은 하나님을 향한 선물이기도 하지만 음식을 먹는 모습에서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상징한다. 그리고 희생제물은 속죄를 상징한다. 하나님께서 엘리 집의 죄에 대하여는 희생 제물로도 속죄받을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이나 예물로나 영영히 속함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삼상 3:14). 제물은 속죄하는 목적이 있지만 엘리 제사장 가문은 믿음이 없어 하나님께 불순종하였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 앞에 예물로도 속죄함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1. 다섯 가지 제사의 의미

 

첫째는 번제이다.

 

번제는 제물을 물로 완전히 태워 전부를 드리는 제사이다. 번제는 하나님께 자신을 전부 드리는 헌신의 의미를 담고 있다. “...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1:9). 번제는 희생 제물의 전부를 단 위에 불사르는 제사법으로서 그 향이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것을 상징한다. 제사를 드릴 수 있는 동물은 소나 양과 염소 중에서 흠없는 수컷으로 드릴 수 있었다. 그리고, 새로도 드릴 수 있었는데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드릴 수 있었다. 번제의 예물을 선택하는 기준은 자신의 경제적이었으며, 누구든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번제를 드리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셨다. 사냥으로 잡은 짐승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기에 제물로 바쳐질수 없었다.

 

번제를 드리는 목적은 속죄였다.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찌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1:4). 예배자는 자신이 가져온 짐승의 머리에 손을 올려 안수를 하였다. 안수의 의미는 자신을 제물과 동일시하며 자신의 죄를 희생 제물에게 전가하는 것을 의미했다. 예배자는 자신의 죄를 희생제물에 전가함으로, 희생제물은 죄를 범한 사람을 대신하여 피를 흘려 죽었다. 그러므로, 희생제물은 예배자를 위한 속죄의 제물이 되는 것이다. 속죄는 죄의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번제가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분노가 속죄의 희생 제물의 피를 보시고 분노가 누그러지고 예배자를 받아들이시는 것을 의미한다. , 하나님이 짐승을 열납하시는 것은 아벨의 제사를 열납하신 것처럼 예배자를 받아들이시고 관계를 회복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죄의 속죄를 위해서는 반드시 피흘림이 있어야 했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9:22). 짐승의 피로 사람의 죄가 속죄함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예배자는 번제물을 아무 데서나 잡지 말아야 했다. 그는 여호와 앞에서 잡아 동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떠야 했다. 그러면,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그 피를 회막문앞 단 사면에 뿌리고 단 위에 불을 두고 나무를 벌여 놓아 동물의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벌여 놓아 불살랐다. 제물 전체를 단 위에 불사르는 것은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었다. “... 제사장은 그 전부를 가져다가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1:13). 제단 위에서 불로 완전히 태우는 것은 온전한 헌신을 의미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속죄하기 위하여 자신의 피를 하늘의 성소에 뿌리고 자신의 몸을 희생 제물로 드린 온전한 희생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번제물이 되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속죄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드리셨다. “ ...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5:2). 예수님은 자신의 전부를 향기로운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헌신은 우리의 죄를 속죄함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받으시는 속죄물이 되셨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10:45).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희생하셨다. 이는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속죄함을 받은 성도는 이제 자신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려야 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12:1). 자신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은 우리가 매일 드려야 하는 영적 예배이다. 번제는 아침과 저녁에 매일 하나님께 드려져야 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께 드리는 날마다의 희생과 헌신을 상징하는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께 매일 자신을 드려 주님을 섬겨야 하는 의무를 보여준다. 예배자가 동물의 머리에 손을 올려 안수함으로 동물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동물은 예배자의 죄를 짊어주고 피를 흘려 죽음으로 하나님께 드려졌던 것이다. 예배자는 자신의 죄만을 동물에게 전가한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자신의 존재 자체도 하나님께 드려지는 짐승과 자신의 동일시하는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속죄함을 받은 자는 자신의 몸의 소유는 더 이상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세상에서 구별하여 받으셨기 때문이다. 빌립보 교회가 사도 바울을 위하여 헌신한 제물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이었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4:18). 빌립보 교회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드리는 헌신은 번제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둘째는 소제이다.

 

소제는 피가 없는 제사로서 곡물을 드리는 제사이다. 소제로 드리는 예물은 고운 가루와 기름, 그리고 유향의 혼합물로 만들어졌다. “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2:1). 소제의 예물은 요리하지 않을 수도 있고, 요리한 것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소제물은 가져오면 제사장은 일부분을 취하여 단 위에 불살랐다. “그 소제물 중에서 기념할 것을 취하여 단 위에 불사를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2:9). 일반적으로 소제는 독립적으로 드리기 보다는 번제나 다른 제물과 함께 드려졌다.

 

소제는 하나님께 드리는 선물 또는 공물을 의미했다.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땅에서 추수하여 얻은 곡물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중한 곡식이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거룩한 추수 중에서 첫 소산물이나 소중한 곡물을 가져와 감사의 예물로 드렸다.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너의 소제를 삼되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찌니 이는 소제니라.” (2:14-15). 이는 예배자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여호와로서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는 은혜를 주시기 때문이다. 예배자가 하나님께 나아올 때는 빈손으로 오지 아니하고 감사의 예물을 가져와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주 되심과 날마다 공급하시는 은혜에 대한 감사와 헌신의 의미를 담기 때문이다.

 

예배자가 가져온 소제의 일부분만 제단에서 불태워지고, 나머지는 제사장의 몫으로 취하게 하였다.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찌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2:10). 제사장은 땅을 기업으로 얻는 대신에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양식으로 살았다. 이에 소제의 곡물은 제사장들이 날마다의 일용할 양식으로 취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였다. 제사장이 제사하고 남은 곡물을 취하여 양식을 삼은 것은 하나님이 구별하신 자로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대표하는 거룩한 자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소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겸손의 인격을 보여준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시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4:15). 소제는 고운 가루처럼 자신을 철저하게 순종하며 의로운 삶을 사신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누룩이 없는 것은 죄가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룩과 꿀은 제물에 넣을 수는 없었지만, 모든 소제에 소금은 첨가하라고 하신 것은 소금은 변하지 않는 것으로 영원한 언약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변하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언약이시다. 첫 이삭의 소제를 드릴 때는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드리라고 했다. 인격은 주님 안에서 깨어지고 다듬어지면서 형성되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겸손을 배워서, 우리 자신도 주님과 같이 겸손한 인격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주님의 인격이 우리가 변화되어야 할 성품이다.

 

셋째는 화목제이다.

 

화목제는 예배자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교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화목제는 대속의 제물을 드린 후에 제단에 드린 부분을 제외하고는 제사장과 함께 거룩한 곳에서 예배자가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화목제의 희생은 소나 양, 그리고 염소 중에서 수컷이나 암컷으로 드릴 수 있었다. 번제는 수컷으로 드린 반면에 화목제는 음식을 제사장들과 예배자들이 먹는 제사였기에 비둘기와 같은 새의 제물을 드려지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화목제는 번제와 같이 자신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짐승을 잡아 피를 제단의 사면에 부리고, 내장에 덮인 기름과 콩팥은 제단위에서 화제로 태워 드렸다.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단 윗 불 위에 있는 나우 위 번제물 위에 사를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3:5). 하나님께 드린 화목제물은 감사나 서원과 자원의 예물로 드릴 수가 있었다. 하나님께 불에 태워 드린 기름을 제외하고 고기의 가슴이나 우편 뒷다리는 제사장의 음식으로 먹도록 드려지게 하였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 중에서 그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를 취하여 제사장 아론과 그 자손에게 주었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을 영원한 소득이니라.” (7:34). 그리고, 나머지 고기는 하나님 앞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이는 화목제물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어 함께 음식을 나누는 친밀감의 상징이었다.

 

화목제는 희생 제물의 피로서 속죄함을 받은 후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문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3:2).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자는 피로써 자신의 죄를 속죄해야 했다. 그리고, 예배자는 제물의 가장 소중한 부분을 하나님께 드렸다. “그는 또 그 화목제의 희생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찌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단 윗 불 위에 있는 나무 위 번제물 위에 사를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3:3-5). 하나님께 드리는 기름과 콩판과 간은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생명의 중심으로 간주하였다. 화살이 사람의 간을 간통하며 그 결과는 죽임이기 때문이다. 이는 구원받은 예배자는 하나님께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소중한 부분이 제단에서 태워졌듯이, 예배자는 자신의 소중한 부분을 전부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이 필요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화목 제물이 되셨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라.” (3:25).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목 제물이 되셔서 우리를 의롭게 하셔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며 기뻐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영광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5:1). 의롭게 된 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지체들과의 연합에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을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넷째는 속죄제이다.

 

속죄제는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였다.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으로 죄얼을 입게 하였으면 그 범한 죄를 인하여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찌니.” (4:3). 속죄제의 목적은 제사장이나 백성들이 범한 죄를 인하여 속죄 제물을 삼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이때 속죄제는 제사장이 그것으로 회중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들이 사함을 얻는다.’ 는 말씀과 같이 피가 죄를 속죄함으로 예배자의 죄가 용서함을 얻는 것이다. “그 송아지를 속죄제의 수송아지에게 한것 같이 할찌며 제사장이 그것으로 회중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들이 사함을 얻으리라.” (4:20). 속죄제의 피는 죄를 범한 사람의 죄가 정결하게 되고, 백성들의 죄로 인하여 더러워진 성소를 정결하게 하는 목적이 있었다. 그러므로, 속죄제에서는 짐승의 피가 거룩한 성소에 뿌려 성소를 거룩하게 하였다.

 

속죄제를 위하여 사용된 짐승은 수송아지와 염소, 그리고 양은 암컷으로 드릴 수 있었고, 가난한 자를 위해서는 비둘기나 고운 가루 에바 십분 일을 예물로 드릴 수가 있었다. 속죄제는 죄를 슬퍼하며 회개하는 제사였기에 고운 가루로 드릴 때는 유향이나 기름을 섞지 말아야 했다. 속죄제는 부지중에 범한 죄에 대한 회개와 알고도 범한 죄로 구분되었다. 속죄제를 드리는 자는 자신의 죄에 대한 분명한 회개를 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거룩해지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속죄제의 희생 동물의 피를 성소 안에 가져가 휘장에 일곱번 뿌리고 향단에 바르는 경우는 제사장의 죄와 온 이스라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할 때였다.

예배자는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희생 제물을 가지고 성막에 온다. 이때 예배자는 희생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짐승을 죽인다. 머리에 안수하는 것은 자신의 죄를 희생 제물에 전가하는 것이며, 희생 제물은 그 사람을 대신하여 제단에서 피흘림으로 죽어야 했다. 제사장은 희생 제물의 피를 가지고 성소의 휘장에 일곱번 뿌리고 또한 성소의 분향단의 불에 발라야 했다. 나머지 피는 번제단 밑에 쏟았다. 다음에는 속죄 제물의 기름과 콩팥과 간의 꺼풀을 취하여 번제단 위에 불살랐고, 나머지 가죽과 모든 고기와 내장은 진 바깥의 재 버리는 곳에서 불로 태웠다. 희생 제물의 피가 성소에 뿌려진 제물은 모두 진 바깥에서 불태워야 했지만, 놋제단에서 피를 흘린 제물은 나머지 고기는 제사장의 몫으로 돌려졌다. “죄를 위하여 제사드리는 제사장이 그것을 먹되 곧 회막 뜰 거룩한 곳에서 먹을 것이며 ... 그러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 성소에서 속하게 한 속죄제 희생의 고기는 먹지 못할찌니 불사를찌니라.” (6:26,30).

 

속죄제물이 흠이 없어야 했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흠이 없는 자로서 하나님께 자신을 속죄제물로 드리셨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53:6).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담당하셔서 우리의 죄를 속죄하셨다.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53:11).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친히 담당하시기 위하여 죽음에 자신을 드리셨다. 속죄제는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벧전 1:18-19). 예수 그리스도가 피를 흘려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대속물이 되신 것이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속죄의 제물이 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에 우리의 모든 죄가 그리스도 안에서 속죄되어 깨끗함에 이르게 된다.

 

다섯째는 속건제이다.

 

속건제는 배상을 위한 제사의 의미이다. 속건제에는 흠없는 수양을 제물로 드려야 했고, 범죄한 부분에 대하여 오분 일을 더하여 배상해야 했다 (5:15-16). 속죄제에서는 황소와 염소, 암양과 새들을 제물로 드릴 수 있었다. 그러나, 속건제에는 수양만을 드리는 점에서 속죄제와 차이가 있다.

 

속건제는 예배자가 흠없는 수양을 번제단으로 가져온다. 민수기 57절에서는 자신의 죄를 자복하는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그 지은 죄를 자복하고 그 죄 값을 온전히 갚되 오분지 일을 더하여 그가 죄를 얻었던 그 본주에게 돌려 줄것이요.” (5:7). 그러므로, 속건제에서도 예배자는 짐승을 죽이기 전에 자신의 죄를 자복하여 동물에게 전가하도록 머리에 손을 얹었을 것이다. 번제나 화목제와 같이, 피는 단에 뿌려지고 양의 기름과 꼬리 부분, 그리고 두 콩팥과 간에 덮인 꺼풀은 제단 위에서 태워졌다 (7:1-5). 그리고, 제사장은 나머지 부분을 거룩한 곳에서 먹도록 허용되어졌다 (7:6-7).

 

속건제를 드리는 경우는 여호와의 성물에 범과하였을 때이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성물에 대하여 그릇 범과하였거든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되 ...” (5:15). 하나님께 범죄하는 범과에 대하여 성경은 간음이나 우상을 숭배하고 이방인과 결혼 하는 경우를 지칭하였다. 하나님께 범죄했을 때에 속건죄를 드려 자신의 죄를 속죄 받아야 했다. 성물이란 거룩한 것으로서 성소나 거룩을 의미한다. 여호와의 성물이란 하나님께 드린 제사 제물을 의미한다.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은 화목제를 제외하고는 제사장들과 그들의 가족들만이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제사장 외에 다른 사람이 부지중 성물을 먹으면 그 성물에 오분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주라고 하셨다. “사람이 부지중 성물을 먹으면 그 성물에 그 오분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줄찌니라.” (22:14).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은 거룩하여 사람이 함부로 취하여 더럽히지 말아야 했다 (27:9). 속건제는 부지중에 범한 허물에 대하여 속죄를 받을 수 있었다. 부지중에 범한 죄에 대하여 구속죄받기 위하여는 흠 없는 수양을 속건 제물로 드려 속죄를 받아야 했다. 그는 자신이 취한 것에 대하여 오분의 일을 더하여 배상한 후에 양을 제단에서 잡아야 했던 것이다. 하나님께 희생 제물을 드리기 전에 자신이 취한 것에 대하여 오분의 일을 더하여 배상해야 했다. 속건제는 의도적으로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강도질 한 후에 그 사실을 부인하는 경우이다. 그리고, 남의 잃은 물건을 얻고도 거짓 맹세로 그 사실을 부인하는 죄에 해당한다. 누구든지 의도적으로 죄를 범했다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였다면 그는 자신이 취한 물건을 주인에게 오분의 일을 더하여 돌려주어야 했다. 그리고, 자신은 속건제를 드리기 위하여 수양을 제사장에게로 가져와 제물로 드려야 했다. 그리하면, 그는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었다.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는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얻으리라.” (6:7).

 

속건제는 하나님의 성물에 대하여 범죄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거짓 맹세함으로 더럽힌 죄에 대한 속죄로 드렸다. 예배자는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수양을 희생 제물로 드려야 했다. 예배자는 자신의 훔치거나 피해를 끼친 물건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보상을 한 후에 하나님께로 수양을 제물로 드렸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종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속건제물로 드려졌다고 했다. “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53:5).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시고 죽임 당하셔서 우리의 죄를 속죄하심을 보여준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 (53:10).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들의 죄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신 것은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시기 위하여 대속의 제물이 되신 것이다. 속건제는 죄의 값을 양의 희생으로 드리듯이, 인류가 범한 죄를 주님께서 자신의 피값으로 값으시는 것을 보여준다. 속건제는 사람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여 죄의 값을 치루어야 하지만, 드려진 희생 제물로 값을 대신 치루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하나님은 죄에 대한 값을 희생 제물을 통하여 만족하시는 것이다.

 

산상 수훈에서 주님은 속건제의 비유로 형제와의 화해를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5:23). 주님은 형제에게 잘못한 일이 있다면 형제에게 끼친 손실을 배상한 후에 화해를 하고난 후에, 하나님께 나아와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다. 이는 속건제가 자신이 범한 죄과에 대하여 오분의 일을 더한 후에 하나님께 수양으로 희생제물을 드리는 원리에서 나온 것이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믿은 후에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였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19:8). 삭개오는 진정한 회개의 증거로 자신이 훔친 것에 대하여 사배로 보상하고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고백하였다. 삭개오는 주님을 영접한 후에 구원을 받고 자신의 진정한 믿음을 회개를 통하여 보여주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삭개오의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하셨다.

 

레위기의 다섯 가지 제사는 죄인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보여주는 것이다. 번제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화목하는 길을 보여준다. 이는 죄인된 인간은 죽어야 마땅하지만 자신을 대신하여 동물이 피흘려 대신 죽게 하였다. 이때 하나님은 인간의 생명을 위한 대속물로 동물의 희생을 받으시고 사람과 화목하셨다. 속죄제는 정결을 의미하는데 사람의 죄로 인하여 사람과 세상이 더러워짐으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실 수 없게 되었다. 이때 동물의 피가 성소를 정결하게 함으로 하나님이 그의 백성과 함께 거할수 있게 된 것이다. 속죄제는 성소와 사람을 정결케 하는 희생 제사이다. 속건제는 죄에 대하여 대가를 지불함으로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제사이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셔야 하지만 희생된 제물이 그 값을 지불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만족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제사의식은 우리의 죄 값을 위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묘사하는 그림자이다.

 

인간은 죄인으로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짐승의 피로 죄를 속죄한 후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었다. 신약에서는 구약의 제사를 영원한 속죄로 성취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고 있다. 침례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 ...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1:29) 라고 선포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셨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속죄의 희생제물이 되셨음을 로마서에서 가르치고 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라.” (3:25).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피를 흘리셨다. 히브리서 926절은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없게 하시려고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리셨다고 했다. “...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9:26). 구약의 제사는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인 것이다. 구약의 제사는 완전하지 않기에 해마다 드려야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단번에 드리심으로 인간의 죄를 단번에 속죄하셨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9:12).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리심으로 우리를 위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의 죽음으로 믿는 모든 자들은 죄를 속죄받고 거룩함에 이르게 되었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0:10).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사함을 받은 자들은 거룩함과 온전함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