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성숙한 사람의 증거

비전의 사람 2020. 2. 8. 19:23

성숙한 사람의 증거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1: 2-4).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의 가장 큰 이유는 미성숙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나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의 주요 원인은 사람들의 미성숙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성숙하지 못한 모습으로 행동하거나, 미성숙한 결정을 내리거나, 미성숙한 길을 가게 됨으로 인하여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를 행한 하나님의 뜻은 성숙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성숙하며,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감정적으로 성숙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인의 균형잡힌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숙이란 무엇일까요? 여러분이 성숙함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1. 성숙이 아닌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숙은 나이가 아닙니다. 성숙이란 여러분이 얼마나 오래 살았거나 얼마나 오래 그리스도인이었는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성숙은 나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성숙은 성취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에서 수많은 업적을 쌓을수도 있지만 아직까지 미성숙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수많은 성취와 성공을 이룩했을지라도 성숙하지 않은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성숙은 학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대학을 졸업하고, 수많은 학위를 얻었다고 할지라도, 아직 미성숙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지식과 기술의 성취가 있고, 박사학위가 있더라도 이는 우리를 성숙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성숙이란 무엇인가요? 성숙은 태도인 것입니다. 그리고, 태도는 우리의 인격인 것입니다. 디엘 무디는 인격이란 우리가 어둠에서 행하는 당신이다.라고 했습니다. 인격은 하나님이 우리에 대하여 평가하는 수준입니다. 우리가 성숙했는지 아니면, 미성숙했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태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닮은 태도를 가지고 자라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영적인 성숙을 측정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다른 사람과 비교를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 볼 때에 진정한 비교가 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는 성숙에 대한 매뉴얼과 같습니다. 헬라어로 성숙이란 단어를 온전하고라고 번역되었습니다. 야고보서는 온전한이라는 단어를 다섯 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야고보서는 성숙한 사람의 다섯 가지 증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성숙한 사람은 시험에서도 긍정적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mature) 구비하여(complete)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1:2-4).

 

여러분은 시험에 어떻게 대응하시나요? 성숙의 첫 번째 시험은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문제가 발생하면, 상황에 대하여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신경질적인 반응이나 화를 내며 반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독교는 삶이라는 사실을 발견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우리는 주님의 생명으로 살아갑니다. 주님이 주신 생명으로 우리는 문제에 대하여 올바르게 대처해야 합니다. 인생은 문제의 역속입니다. 인생이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며, 바른 태도로 문제를 대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 나타나는 여러분의 반응은 어떠한가요? 자신에게 일어나는 문제에 대하여 바른 태도를 보이는가요? 아니면 역정을 내고 있습니까? 상황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바라보나요? 아니면 긍정적으로 바라보나요? 여러분의 삶이 감사로 채워졌나요? 아니면, 불평이 가득한가요? 시간의 대부분을 긍정적인 시각인가요? 아니면, 분노하고 있나요?

 

야고보서 기자는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1:12) 라고 하였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시험을 받는 극심한 어려움 속에서도, 오히려 시험을 기쁘게 감당하며 견디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2. 성숙한 사람은 사람의 필요에 민감합니다.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2:8).

 

성숙한 사람은 사람에게 민감합니다. 그는 단지 자신의 필요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필요를 보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의 상처를 이해합니다. 그는 단지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들이 성숙하지 않았을 때는 오직 자신들만 생각합니다. “나는 이것을 원해, 나는 다른 사람에 대해선 관심이 없어.” 그러나, 사랑이란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며, 이는 성숙의 증거인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이것에 대하여 야고보서 21-6절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것이며, 사람을 무시하지 않는 것이며,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에게 모욕을 주지 말며, 착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숙한 두 번째 증거는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사람들을 대하고 있습니까?

 

사도바울은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고전 13:1-2)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능력과 지식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주님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목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25: 35-40).

 

우리가 작은 자에게 한 행동으로 주님 앞에 판단을 받게 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갖거나, 우리가 얼마나 세상에서 유명했거나, 우리가 교회에 얼마나 다녔는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3. 성숙한 사람은 그의 입을 다스리는 자입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3:2).

자신을 다스리는 것은 혀를 다스리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으로 종종 문제에 빠지기도 합니다. 야고보서 3장은 몇 가지 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야고보 기자는 우리의 혀가 배의 키나 말의 재갈과 같다고 합니다. 배의 작은 키가 배의 방향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혀는 작은 지체이지만, 우리의 삶을 조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며, 우리가 말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을 성공시킬 수도, 파괴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이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도 있고, 사람들을 낙심시킬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혀는 우리의 삶의 강력한 도구인 것입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 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4:29). 우리가 말을 할 때는 다른 사람을 세우는데 필요한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더러운 말은 입에서 나오는 부정적인 말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말이 사람들에게 낙심을 주는 말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사람들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나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 세우는 데에 유익이 되지 않는다면, 침묵하는 것이 성숙의 증거가 됩니다.

 

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입술을 다스리는 자입니다. 비록 여러분이 오랜 기간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입술을 다스릴 수가 없다면, 여러분은 아직 성숙을 향하여 겸손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1:26). 만일 우리가 수백개의 성경을 암송하고 성경을 깊이 연구하며, 예배를 매주 드린다고 할지라도, 나의 입술이 늘 험담하며 불평을 늘어놓는다고 한다면, 우리의 경건은 헛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성숙의 증거는 우리의 입술을 다스리는 것이며, 이로 인하여 어떠한 부정적인 말이나 부패한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4. 성숙한 사람은 화평의 사람입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4:1).

 

야고보서 기자는 싸움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지체 중에서 내적인 싸움과 다툼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모인 곳에는 이와같이 싸움과 다툼이 종종 일어나곤 합니다.

 

성숙한 사람은 싸움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평화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평화의 사람인가요? 아니면, 나는 다툼을 일으키는 사람인가요? 나는 논쟁하기를 좋아하고 다투기를 좋아하는 사람인가요? 나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사람인가?

 

성숙한 사람의 특징은 자신의 삶에서 다투기를 피하는 자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그들이 아기와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에서 서로 논쟁하고 다투기를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교회 내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고 다투기를 좋아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미성숙한 증거였던 것입니다.

 

세상에는 왜 이렇게 다툼이 많이 있을까요? 때로는 결혼에도 다툼이 있고, 우리가 일하는 직장에도 다툼이 있습니다. 우리와 동료 그리스도인과도 다툼이 일어나곤 합니다.

 

야고보는 충돌에 관한 이유를 두 가지로 말합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4:3). 다툼의 첫 번째 이유는 이기적이기 때문입니다. 다툼의 원인이 이기적이기에 자신의 유익만을 생각합니다. 이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교만인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에서 다툼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두 번 째 이유는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4;11-12). 우리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기 시작하면, 그 안에서 다툼이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판단하는 것은, 다툼을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판단하지 말아야 할까요? 첫째, 나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오직 판단하실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모든 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판단할 때에, 우리는 모든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판단이 한 쪽에 치우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는 동기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만이 그 동기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 만이 판단하실 권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동기를 알고 계십니다. 그 분은 우리의 마음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제한된 시각과 판단을 하기 때문에 우리의 판단도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이기심과 판단이 다툼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성숙한 사람은 다툼을 멀리하고, 평화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5. 성숙한 사람은 인내하며 기도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5:7, 11, 16).

 

성숙한 사람은 인내하는 자이며, 그리고 기도하는 자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의존하는 그리스도인의 태도인 것입니다. “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5:7). 이는 농부의 비유입니다. 농부는 인내하며 오래 참습니다. 그는 씨를 뿌리고 기다리며,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그는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추수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농부가 기다려야 하듯이, 우리도 때때로 수확을 얻기 위하여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의 응답을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의 부흥을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인내는 성숙의 증거입니다. 우리가 인내를 배우는 유일한 길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은 우리에게 기다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다릴 때에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성숙은 기다리며 기도하고, 기도하며 인내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숙의 증거는 무엇인가요?

 

1. 우리가 어떻게 문제를 대하는가가 성숙의 증거입니다. 우리가 부정적이며 불평하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는 극심한 시험에서도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가?

 

2. 우리는 다른 사람의 필요에 민감한가? 우리는 다른 사람의 필요와 상처, 관심에 대하여 민감한가요? 아니면, 우리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나요?

 

3. 우리는 자신의 혀를 다스리고 있는지요? 우리의 입술에서 부정적이며 루머를 퍼트리고,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말을 하고 있는지요? 아니면, 자신의 혀를 제어하며 다른 사람을 세우고 있는지요?

 

4. 우리는 평화의 사람인가요? 아니면, 문제를 일으키는 자인가요? 당신은 쉽게 분노함으로 다툼을 일으키는 자인가요?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사랑과 은혜를 나누는 평화의 사람인가요?

 

5. 우리는 인내하며 기도하는 성숙한 사람인가요? 아니면, 쉽게 문제 앞에서 포기하는 삶을 살아가나요? 성숙한 사람은 인내하며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