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하나님을 섬겨라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신 10:1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여 말씀에 행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신 10:13).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우리에게 큰 행복의 원천이 됩니다. 자신의 삶에서 행복이 사라져 간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르심을 받았는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살전 1:9).
사람은 죄인으로 태어나 살아갈 때는 우상을 숭배하며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으면 삶의 주가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이 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우상을 버리고 살아계시며 참되신 하나님을 섬겼다고 했습니다.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살전 1:9).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우상을 숭배합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우상을 섬기는 자였습니다. “...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수 24:2). 아브라함의 배경은 우상 숭배하는 가정에서 자랐지만,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애굽에서 종노릇하며 바로를 섬겼지만,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속함을 받아 출애굽하여 마침내 가나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랑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만을 섬기는 자들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전에는 우상을 숭배하는 가정에서 자랐거나 그러한 삶을 살았지만, 이제 우리는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하나님을 섬기며’의 의미는 노예가 주인을 향한 자세를 의미합니다. ‘섬기며’의 헬라어 근원은 노예라는 ‘둘로스’에서 왔습니다. 둘로스인 노예는 주인을 위하여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며 섬기는 자입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 로마 인국의 삼분의 일이 노예였다고 합니다. 둘로스는 노예의 신분을 의미하며 주인 앞에 자신을 복종하는 자입니다. 이는 데살로니가 교회는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며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종이 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하나님만을 주로서 모시며 섬기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의 종으로 살았지만 어린양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후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우상과 죄에서 벗어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기는 종으로서의 부르심인 것입니다. 주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주님이 말씀하신 하나님과 재물을 같이 섬기지 못한다고 하신 것은 비유적으로 노예가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듯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노예와 주인은 종속된 관계로서 지시를 철저하게 따르는 자입니다. 우리가 죄에게 순종하며 죄의 종이 되지만, 하나님께 순종하면 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예수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빌 1:1). 예수의 종이라는 뜻은 헬라어로 둘로스 라고 기록했으며, 이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매인 자로서 그 분의 영광과 부르심을 위해 살아가는 영적인 노예가 되기를 기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하여 하나님의 종이 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전 9:19).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하는 아들이었지만, 이제 하나님과 사람의 둘로스인 노예가 되어 주님을 섬겼습니다. 사도 바울이 주님을 섬기는 것이 핍박과 시련의 연속이었지만 섬기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행 20:19). 사도 바울이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자신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속 가라고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순교의 죽음을 맞이할 때 까지 종으로서의 본분을 다했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둘로스, 즉 종으로서의 마음으로 섬기시는가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자기를 낮추시고 둘로스, 노예의 형체를 가지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종은 둘로스 즉 노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노예와 같이 자신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스스로 노예와 같이 낮아지신 것처럼 우리도 둘로스 즉 노예와 같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낮아져서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종의 자세는 칭찬받거나 인정받는 권리까지 포기하고 자신의 의무를 다한 것에 만족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둘로스, 즉 종으로서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섬기기 위하여 자신의 권리를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둘로스, 즉 종으로서 살아가기 위하여 포기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요?
2. 우리는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벧전 2:5).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시고 그 분의 영적인 집을 세우고 계십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벧전 2:5).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서로 연합하여 영적인 집을 세워져 가고 있고, 그 집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 영적인 제사인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구약의 성막에서 섬기던 직분자들을 의미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신약의 성도들을 구약의 제사장으로 비유하며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서 섬기는 특권을 얻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성도의 연합이 하나님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 3:9).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입니다. 구약에 하나님이 성전에 거하셨듯이, 신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처소로 삼아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터 위에 교회를 세운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기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하나님은 교회 안에 거하시며 그 분의 집을 건축하고 계십니다. 에베소서는 교회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가 되도록 성령께서 교회를 세우고 계심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0-22). 예수님 당시의 집은 모퉁이돌을 놓은 후에 돌을 서로 연결하여 건물을 세웠습니다. 그러므로 집은 모퉁이돌 위에 돌이 서로 연결되어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돌과 같이 주님 안에서 서로 연결하여 하나님이 거하시는 영적인 집을 세워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이며 성전인 것입니다.
헬라어로 집은 ‘오이코스’ 입니다. 그리고, 집을 건축하는 것을 ‘오이코도메’ 라고 합니다. 집을 건축하는 ‘오이코도메’를 로마서는 ‘덕을 세우는 일’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롬 14:19). 덕을 세우는 것은 집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세우는 것은 건축가가 집을 건축하듯이 덕을 세우는 사역을 의미합니다. 집을 세우는 자는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집에서 충성해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서 충성했습니다.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히 3:5).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 신실하게 섬겼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인 성막을 의미하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와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 충성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히 3:6). 하나님의 집은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시기 위하여 죽기까지 복종하시며 충성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인 교회를 세워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3.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섬기는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도록 위임한 자를 청지기라고 불렀습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청지기는 ‘오이코노모스’입니다. 청지기인 오이코노모스는 하나님이 은사를 주셔서 교회를 세우도록 위임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오이코스는 집이고, 오이코도메는 집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집을 세우는 청지기를 오이코노모스 라고 불렸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집을 세우는 자인 청지기에게 하나님이 주신 영적 은사를 받았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도록 필요한 은사를 그의 청지기에게 주셨습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부르셔서 성령으로 충만케 하심으로 성막을 짓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케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가지 일을 하게 하시며.”(출 35:31). 하나님은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부르신 후에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고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성막에 필요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각 지체들에게 하나님의 선물인 은사를 주셔서 그 분의 몸인 교회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교회를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인 건물로 비유하지만, 그리스도의 몸으로도 비유합니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으니라.”(롬 12:4-5).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인 교회의 지체로 존재합니다.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 각자의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지체에게 은사를 주셔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서로를 섬기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롬 12:6). 은사는 기도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성령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때 모든 믿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이 영적 은사입니다. 마치 아기가 이 땅에 태어날 때에 자신의 재능을 가지고 있듯이, 우리도 성령으로 거듭날 때에 은사를 받게 됩니다. 우리는 성령의 은사를 가지고 주님의 교회에서 섬기는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로마서 12장에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예언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롬 12:6-8). 로마서 12장 6-8절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각각 예언과 섬김, 가르침, 권위와 구제하고 다스리고 긍휼을 베푸는 은사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은사이며, 섬기는 자는 봉사하는 사역을 의미합니다. 가르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혜롭게 가르치는 능력이며, 권위하는 자는 격려하며 위로하는 사역입니다. 구제와 긍휼을 베푸는 자는 어려운 자를 향하여 불쌍히 여기며 섬기는 자를 의미합니다. 다스리는 자는 영적 지도력으로 다스리는 자를 의미합니다. 고린도전서는 성령의 은사는 교회의 유익을 위한 것으로 각자에게 주셔서 각자의 직무와 역할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가 있듯이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이지만 몸의 지체가 많다고 했습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 12:12). 우리의 몸이 존귀하듯이, 몸의 각 지체는 존귀하고 소중하여 한 지체도 불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24-26). 우리는 몸의 지체로서 교회를 세우는 청지기로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해야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어떠한 일에 은사와 부르심을 받았는지를 돌아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롬 11:29).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은사를 주셔서 지체의 역할을 감당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서 사역자로 섬기기도 하고, 집사와 목자의 직분으로 섬기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서 찬양의 은사나 섬김과 긍휼로 교회를 세워가며, 다스리거나 가르침으로 세워가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대로 주일학교와 기도와 전도 등에도 귀하게 쓰임받는 줄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하지 말고 주님의 교회에서 충성스러운 청지기로 쓰임받는 주의 종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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