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11) - 의롭게 하는 아브라함의 믿음(롬 4장)

비전의 사람 2020. 8. 19.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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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4:3).

 

로마서는 복음의 능력에 대한 변증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는 이유가 복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의를 얻어야 하나님의 진노에서 피하여 구원의 은혜에 이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되는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줄 우리가 인정하노라.”(3:28).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된다는 선언은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큰 혼돈을 가져왔습니다. 유대 랍비들은 사람이 의롭게 되기 위해서는 율법을 지켜야 하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되었음을 변증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의롭게 되는 것이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되는 것을 변증하기 위하여 아브라함과 다윗을 예로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아버지로서 랍비들은 최고의 믿음을 가진 자로 아브라함을 인정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 이스라엘의 가장 탁월한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공통점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시내산에서 모세는 언약의 중보자로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과의 언약을 맺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다윗과는 직접 언약을 맺으시며 그들과 그들의 자손들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과 다윗이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음을 증명한다면, 다른 유대인들도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이나 할례가 아니라 믿음으로 되는 것임에 부인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믿음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유일한 길임을 제시합니다. 사도 바울은 구약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음을 증명함으로, 신약에서는 더욱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믿음과 유대인들이 중시하는 율법과 할례에 대한 본질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1. 아브라함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4:1-8).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4:3).

 

아브라함은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는 복을 누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육적으로는 이삭과 이스마엘을 통하여 유대인과 아랍 민족의 조상이 되었고, 영적으로는 유대인과 이방인들 중의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믿음의 조상으로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을 정도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특히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아브라함으로 거슬러 올라가듯이, 구속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4:2).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는 이유는 그 자신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완전하지 못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가나안에 기근이 찾아오자 애굽으로 내려갔고, 그는 그곳에서 하갈을 데리고 온 후에 그녀를 통하여 이스마엘을 그의 후사로 세우고자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행실로는 의롭게 될 자격이 없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은 그의 믿음이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4:3). 사도 바울이 말한 아브라함의 의롭게 한 믿음에 관한 성경은 창세기 156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이 몸에서 날 후사를 통하여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15:6).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에게 후손이 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신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창세기 121-32절에서 약속하신 것을 다시 확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하여 세상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는 약속이 포함된 것입니다. 이는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린 후에 하나님이 주신 약속과 같은 의밉니다.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22:18). 아브라함의 씨로 인하여 천한 만민이 복을 받는 것은 메시야에 대한 약속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아브라함의 씨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3:16).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은 그의 자손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한 만민이 복을 받는 복음이었습니다.

 

의롭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일을 해서 얻는 것은 은혜가 아니라 빚으러소, 일한 것에 대한 대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4:4-5). 하나님께서는 의를 얻기 위하여 일하는 자를 의롭다 하시지 않으셨십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는 경건치 아니한 자라도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는 일에는 사람의 어떠한 행위가 포함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의롭다 하시는 의는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에베소서 2장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2:8-9)라고 했습니다. 의롭다 함을 얻는 구원에는 행위가 전혀 포함되지 않습니다. 의롭다 함을 얻는 구원은 전적으로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이와같이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얻는 구원의 역사에는 아브라함의 선한 행위가 포함되지 않았고, 오직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328절에서 이미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라고 가르쳤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진리를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하여 다시 확증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고백을 소개합니다.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은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믿음으로 다시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윗이 죄를 범하고 용서받은 후에 기록한 시편 32편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인용했습니다.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4:7-8). 다윗은 이스라엘의 가장 탁월한 왕이었지만 그도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의롭다 함을 얻은 자 였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하고 간접적으로 그의 남편인 우리야를 죽이는 죄를 범한 후에 용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죄를 범한 후에 나단 선지자가 와서 다윗을 책망하였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였고, 하나님이 다윗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삼하 12:13). 이때 다윗이 시편을 기록하며 자신의 죄가 용서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자신을 복된 자라고 했습니다.

 

의롭게 되는 되는 것은 의로운 행실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죄가 용서받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즉 불법의 죄가 용서받고 죄가 가리움을 받을 때에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속죄소에 뿌려진 염소의 피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씻고 가리웠듯이, 의롭게 된다는 것은 선한 행실의 대가로 얻는 것이 아니라 죄가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속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죄가 씻음 받는 것이며 가리움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롭게 된다는 것은 죄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정하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로기조마이로서 은행의 장부(account)를 뜻합니다. 사람이 죄를 범하면 그의 장부에 죄가 입금되어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지만, 하나님이 그의 죄를 그 사람에게 입금하지 않으시고 아들이신 예수님에게 입금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대신 형벌을 받으셔서 죄의 대가로 죽으시고, 우리는 믿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의가 입금되어 우리가 의롭게 된 것입니다. 대속죄일에 희생양의 염소가 우리의 죄의 짐을 지고 광야에 가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듯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의 짐을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31:34)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의롭게 된 다는 것은 선한 행실의 대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죄가 인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의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2. 아브라함은 할례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4:11).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의 의는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되었음을 첫번째로 변증했습니다. 이제 그는 아브라함의 의롭게 된 것은 할례가 아닌 믿음으로 되었다는 두 번째 논증을 합니다.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이 할례를 받고 난 후인지 아니면 할례를 받기 전인지를 묻습니다.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느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 그런즉 이를 어떻게 여기셨느뇨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라 무할례시니라.”(4:9-10).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이 할례시가 아니라 무할례시에 되었다고 했습니다. 즉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은 85세 전인 창세기 156절이고 아브라함의 나이 99세인 창세기 17장에서 할례를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후에 적어도 14년 후에 언약의 증표인 할례를 받았습니다.

 

창세기 17장은 아브라함은 그의 나이 구십 구세의 때에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를 받았습니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17:10-11).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의 언약의 표징으로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표징은 중요한 의미를 새기는 표입니다. 결혼을 한다면 결혼의 표징으로서 결혼 반지를 손가락에 끼우는 것과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결혼을 하는 부부입니다. 그리고 부부의 상징으로서 결혼 반지를 손가락에 끼워서 결혼한 부부라는 상징을 몸에 가지고 다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할례의 참된 의미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상징입니다. 아브라함이 구원을 받아 의롭게 된 것은 창세기 15장이고, 창세기 17장인 약 14년이 지난 뒤에 언약의 표징으로서 할례를 받은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할례의 표는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4:11).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것은 할례를 받기 전에 믿음으로 의롭게 된 의를 표시한 것입니다. 그리하며 무할례자로서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들도 믿음으로 의롭다 하는 확신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할례는 의롭게 된 구원을 상징하는 표(sing), 또는 인(seal)입니다. 이는 오늘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침례를 받음으로 자신의 구원을 상징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표라고 하는 것은 이정표와 같습니다. 서울을 가리키는 이정표는 진짜 서울이 아니라 서울로 가게 하는 표인 것입니다. 이와같이 할례는 구약의 백성들이 의롭다 하는 상징이었습니다. 신약에서는 침례가 구원을 주는 능력이 아니라, 구원을 상징하는 의식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구원이 중요합니다. 사람 앞에서 구원을 받은 증거를 나타내는 것은 침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 그리고 부활을 상징하는 구원의 표입니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에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아 의롭다 함을 얻은 자는 침례를 통하여 자신의 구원을 고백합니다. 인은 seal 이라고 하는데 증명하는 도장과도 같습니다. 여권에 한국 정부의 도장이 찍힌 것은 그 사람이 한국 국민이라는 것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아브라함의 할례가 그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며, 신약시대에는 침례가 그리스도와의 연합하여 구원받았음을 상징합니다. 성경에서는 침례나 주의 만찬은 구원의 도구가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상징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유대인의 조상이면서 동시에 할례를 받지 않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 뿐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에게도니라.”(4:12). 아브라함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육적으로는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지만, 영적으로는 모든 믿는 자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기 전에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사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갈렙은 원래 이방족속인 겐 사람이었으나 유다 지파의 일원이 되었고, 여리고 성의 라합도 이방인이었으나 믿음으로 유대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압 여인인 룻도 이방인이었지만 다윗의 혈통을 낳는 믿음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이는 모두가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이방인이라도 영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신약 시대에 이르러는 이방인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의롭게 된 자는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의 자취를 따라야 합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에게도니라.”(4:12).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취는 하나님께 순종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나 말씀을 따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의 길을 떠난 것은, 오늘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제자가 되어 약속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삶과 같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아브라함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4:13).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약속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4:13).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롭다 하시고 언약을 맺은 것은 아브라함이 율법을 지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믿음의 의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언약을 주신 후에 사백 삼십년 후에 생긴 율법이 그 약속을 헛되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 삼십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3:16-17). 아브라함이 언약을 받은 후에 사백년이 지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율법을 주시기 전에 이미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하나님이 그의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자손들인 유대인이나 이방인 누구라도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는 것입니다. 율법은 사람을 의롭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선하신 법으로서 그 자체는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만일 사람이 그 법에 불순종하면 율법은 하나님의 저주가 임한다고 경고합니다. 율법은 그 자체로 선하고 거룩하지만 죄인들에 대해서는 구제할 법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율법을 지킨 자들이 하나님의 후사라고 한다면, 믿음은 헛되고 약속은 폐하여지게 됩니다.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느니라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4:14-15). 만일 율법으로 의롭게 된다면 믿음의 가치가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 하시는데, 율법으로 의롭다 한다면 믿음은 의미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도 폐하여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한다고 했습니다.

 

율법이 진노를 이루게 하는 것은 율법이 하는 것은 정죄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사람을 의롭게 하는 힘을 가진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며 죄의 삯인 사망을 가져옵니다. 그렇다고 율법이 악한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율법은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고 했습니다(7:7,12). 거울의 기능이 사람의 얼굴에 흠이 있는 것을 보여주듯이, 율법의 기능은 사람의 죄를 씻는 것이 아니라 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죄를 씻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입니다.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며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다고 했습니다. 범함은 영어로 transgression 으로서 율법을 벗어난 죄를 의미합니다. 죄는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인데, 범죄 즉 transgression 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범위를 의도적으로 벗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있는 곳에는 죄가 드러나게 되어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이 없는 곳에는, 의도적으로 율법의 한계를 벗어난 불법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을 의롭다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인 후사가 되는 것은 믿음을 가진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구원받는 약속을 율법에 속한 유대인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이방인 그리스도안에게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4:16). 하나님께서는 믿음에 속한 자에게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열방의 아버지라는 뜻인 아브라함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신 것과 같이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4:17).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게 됨으로 그의 육체의 자손인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모든 믿는 자인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조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후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3장에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줄 우리가 인정하노라.”(3:28)라는 말씀으로 복음을 변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행위나 할례, 그리고 율법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와같이 오늘날 유대인이나 모든 이방인들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모든 사람의 조상이 된 것은 그가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믿는 자는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갈라디아서는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3:14)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임하여 믿음으로 성령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특권을 누립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믿음을 의롭게 되어 약속을 기업으로 받은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약속이 성취도는 영광스러운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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