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10) -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롬 3:21-31).

비전의 사람 2020. 7. 29.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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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나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3:21-22).

 

로마서는 복음의 위대한 능력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람에게 복음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진노가 모든 사람의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는 유일한 길은 의로운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씀으로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가르칩니다. 유대인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했지만 도리어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있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성적인 죄를 범하고 온갖 추악한 죄로 불의한 일들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사람들이 처한 상황에 대하여 이렇게 지적합니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2:5).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쌓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선한 행실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절망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3:20).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고 율법으로는 단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최근 전 세상을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 19로 인하여 천오백만명 이상이 감염되고 오십만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지금도 감염자와의 접촉을 통하여 감염은 꾸준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미 코로나 진단키트가 나와 사람들의 감염여부를 확인하고 있지만,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오지 않아 사람들이 백신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사람들이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죄에 대한 해결책이 없다면 얼마나 허무하고 절망적일까요? 율법으로는 의롭다 할 육체가 없고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한다는 사실 앞에 사람들은 절망과 상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로마서 1장에서 3장까지의 교훈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로마서 321절을 통하여 새로운 단계의 희망을 제시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소망의 이유에 대하여 나누고자 합니다.

 

1.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3:21).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의의 기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담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이 사망의 진노를 내리셨듯이, 하나라도 죄를 범하게 되면 그 사람을 죄인으로 만듭니다. 절망에 빠진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은 율법 외에 다른 의를 보이셨는데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이 보이신 다른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나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3:21-22). 하나님께서는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하신 의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이셨습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기에 율법으로는 사람이 의롭다 함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나님께서는 은혜로 모든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율법과 선지자를 통하여 이미 증거하신 의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후에 무화과 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자신의 수치를 가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를 약속하신 것을 아담과 하와가 믿는 믿음을 보셨습니다. 왜냐하면 아담이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지었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3:20). ‘하와생명이라는 뜻으로 이제 하와로 말미암아 사망이 아닌 생명을 얻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사망이 이르렀지만 하나님은 사망에 거한 자들에게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생명을 얻을 것에 대한 믿은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3:21). 하나님께서는 가죽옷을 위하여 아마도 어린양을 희생하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죄의 수치를 가리우기 위하여 죽으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모리아 산으로 삼일 길을 걸어갑니다. 이때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는지 묻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이 번제할 어린 양을 준비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22:8). 아브라함의 고백은 번제할 어린 양을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다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이는 온 인류를 위하여 하나님이 준비하실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대로 하나님은 이삭 대신에 수양을 준비하심으로 아브라함은 아들 대신에 수양을 번제로 드립니다. 번제단에 자신을 번제로 드린 독자 이삭은 우리를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드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삭 대신에 번제로 드린 수양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하신 후에 하나님의 의의 기준인 십계명과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의 기준대로 살지 못함을 아셨기에, 그들을 위하여 성막에서 희생제물을 드리는 제사법을 주셨습니다. 이는 사람이 죄를 범한 이후에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 자신의 죄를 희생 제물의 피로 속죄하게 하신 것입니다. 특히 레위기 16장은 일 년에 한 번씩 대속죄일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정결하게 하는 의식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으로 죄가 속죄되어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는 것을 상징한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올 것을 설명하면서 그 분이 바로 우리의 의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23:6). 우리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율법으로 얻는 의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의는 차별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율법으로는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으며, 우리의 희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입는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주이십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 죄인이 되었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절망의 상태에 있는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롭게 하시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구원의 은혜는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구속(redemption)과 화목제물(propitiation), 그리고 의롭다 하시는 칭의(justification)입니다. 그 세 가지의 단어에는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속자(redeemer)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자 되었느니라.”(3:24).

 

구속이란 값을 주고 사는 행위입니다. 이때 값이 치루는 대가를 속전이나 대속물이라고 합니다. 출애굽기는 원래 받는 버릇이 있는 소가 사람을 처서 죽이면 그 소와 소의 주인은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소의 주인이 속죄금을 자신의 생명을 위하여 지불하면 그의 생명은 보존되었습니다. “만일 그에게 속죄금을 명하면 무릇 그 명한 것을 생명의 속으로 낼 것이요.”(21:30). 이와같이 생명을 위하여 값을 지불하여 자신의 생명을 다시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치루는 값을 속죄금이라고 했는데 히브리어로 코페르입니다. 구속과 관련하여 룻기는 친족 구속자인 기업무를 자를 소개합니다. 율법에 의하면 토지는 본래 가문에 남아 그 기업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가난하여 자신과 토지가 팔려 가면 그의 친족이 값을 치루어 그 사람을 다시 종의 멍에에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보아스는 기업무를 자의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나오미를 위하여 밭을 사서 돌려주었고, 룻과 결혼하여 엘리멜렉의 이름으로 후손을 잇게 했습니다. 이는 친족 구속자로서 팔려간 토지를 다시 사서 돌려주고 후손이 없는 친족을 위하여 결혼을 통하여 친족의 후손을 잇게 하는 책임을 감당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같은 친족 구속자가 되시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죄의 노예가 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상징하는 피 값으로 몸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죄와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헬라 시대에는 구속은 넓은 장터에서 사용된 단어입니다. 헬라어로 구속은 장터에서 사오다라는 뜻입니다. 당시의 장터에서는 노예들이 매매되고 있었는데, 값을 지불하여 노예들을 사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골로새서는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1:13-14)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구속은 그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된 것이며 구속이란 우리의 죄가 용서받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는 우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19)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우리를 사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욥은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19:25)라고 했습니다. 나의 구속자는 욥을 구원하신 메시야로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구속자는 자신의 피 값으로 우리를 사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구속자가 살아 계심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은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주어진 것입니다. 은혜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더욱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면 은혜는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으로서 하나님을 대적하여 원수가 된 우리를 위하여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셔서 율법이 요구하는 죄값을 대신 치루게 하심으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율법은 죄의 삯으로 사망을 요구합니다. 율법의 요구는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율법의 요구인 생명을 희생하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이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목제물(propitiation)이십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3:25).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에 대한 두 번째는 화목제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셔서 우리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3:25).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목 제물이 되심으로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화목 제물은 영어로는 propitiation 이라는 단어로 번역했습니다. 이는 화해 또는 속죄라는 의미입니다. 산약의 헬라어로는 헬라스테리온 λαστριον 입니다. 이는 속죄의 수단과 화해의 장소라는 뜻입니다. 구약에서는 헬라스테리온이라는 말은 지성소의 속죄소를 의미했습니다. 화목 제물인 헬라스테리온은 히브리서 95절에서는 속죄소 또는 자비석(mercy seat)으로 번역했습니다.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9:5). 요한1서는 힐라스테리온이라는 단어를 화목제물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2).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를 속죄하기 위한 죄를 용서받는 속죄와 하나님과 화목하는 화목의 의미가 바로 힐라스테리온입니다. 구약의 히브리어로 쓰인 코페르는 속죄소 또는 자비석으로서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번 염소와 송아지의 피를 뿌려 백성의 죄를 속죄하는 언약궤의 덮개를 지칭했습니다.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찌니.”(16:15). 언약궤를 덮는 덮개인 속죄소는 두 개의 그룹이 날개를 펼치고 있는 곳이었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속죄의 의미는 희생 제물의 피로 죄가 용서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그 피를 통하여 진정되고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과 화목하는 곳이 바로 속죄소이며, 그 속죄소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속죄소 또는 자비석이십니다. 속죄소에 뿌린 피가 십자가에서 흘리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상징하며, 속죄소 자체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더 이상 진노하지 않으시고 우리와 화목하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속죄소에 뿌려진 피를 보고 더 이상 죄에 대하여 진노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분의 진노를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쏟으셨기 때문입니다.

 

고대 종교에서는 예배자가 자신의 분노한 신을 회유하기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흉년이 찾아오거나 국가적인 재난이 찾아오면 백성들은 자신들의 신전에서 희생 제물을 드립니다. 몰렉신에게는 아기들을 불에 태워서 바알신에게 바치는 의식을 거행했고, 남미와 같은 아스텍 문명에서는 노예의 심장을 꺼내 태양신에게 바치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은 염소나 짐승을 잡아 자신들의 신에게 바침으로 신의 분노를 멈추기를 기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멈추도록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하신 것입니다. 구약의 모든 희생 제물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며,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되고 하나님과의 화목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분이십니다.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의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3:26).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는 우리를 의롭다고 함으로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의로우셨고 그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의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3:26). 의롭다 하는 것은 영어로 justify 로서 헬라어로는 디카이오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된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을 칭의라고 합니다.

 

의롭다 하는 것은 법정용어입니다. 이는 판사가 피고에게 무죄 판결을 내려서 자유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심으로 죄의 정죄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에서 3장 까지 모든 인류가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죄인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공의는 우리의 모든 죄를 정죄하셔서 진노의 잔인 지옥불에서 심판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의롭다 하는 칭의는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창세기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믿자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15:6).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생명을 구하고자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죄를 두 번이나 범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죄인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심으로 하나님이 더 이상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죄인된 우리가 의롭게 되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구속과 화목제물입니다. 구속이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죄값을 치루게 하심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3:24).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은 값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값을 치루셨기 때문입니다. 화목제물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로 우리의 죄를 속죄하신 것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3:25-2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속죄의 피를 뿌리심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속죄소가 되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의롭다 하심으로 자신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시고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시는 것은 구약에 범한 죄에 대하여 형벌을 내리지 않으시고 기다리시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구주이십니다.

 

3. 의롭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줄 우리가 인정하노라.”(3:28).

 

사도 바울은 의롭게 되는 것에 대하여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행위로 되지 않고 믿음으로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3:27).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줄 우리가 인정하노라.”(3:28).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믿음 자체에 있지 않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이 진실로 믿는 다고 해서 그를 의롭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교도가 우상을 숭배하며 자신은 진실로 신의 존재를 믿는다고 하면서 자신의 신실한 믿음을 이교신전의 의식이나 삶에서 표현한다 하더라도 그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어떤 종교를 갖더라도 진실로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칩니다. 이는 종교 다원주의로서 참된 믿음 자체에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믿음 자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즉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를 자신의 피값으로 사심으로 구속자가 되셨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고 화목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값을 치루신 이후에 우리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신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3:26)라고 했습니다. 의롭게 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가 행하신 대속의 죽으심을 믿을 때에 거듭나는 역사를 경험합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닌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 1:23-25).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우리 안에 새생명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말씀의 능력아래 살아갈 때에 새 생명이 자라가며 새 힘을 얻어 승리하는 삶의 원동력이 되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은 유다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이 되셔서 할례자나 무할례자 모두가 믿음으로 의로다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3:30-31). 하나님은 믿음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십니다. 믿음으로 얻는 의가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운다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의의 기준인 율법을 십자가에서 성취하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외에 다른 의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성령이 내주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율법의 요구인 의와 사랑을 행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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