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12) - 아브라함의 믿음의 본질(롬 4:17-25).

비전의 사람 2020. 8. 2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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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해(12) - 아브라함의 믿음의 본질(4:17-25).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4:20-22).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고 했습니다(4:16). 이는 아브라함은 혈통으로는 유대인의 조상이지만, 영적으로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믿는 자의 조상으로 여겨졌습니다. 아브라함이 믿는 자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믿는 자와 같은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4장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되는 것임을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증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기 전에 이미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며, 율법을 지킴으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4:3).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자 되었습니다. 의롭다 함을 받는 자는 행위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죄를 용서받고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않으심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을 의롭게 하는 믿음의 본질에 대하여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가 본받아야 하는 영적인 원리이다.

 

1.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4:17).

 

아브라함의 믿음이 대상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구십 구세가 되자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7:1).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우시며 그를 번성케 하실 것이고 열국의 아비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의 이름을 높임을 받는 아버지(the exalted father)인 아브람에서 많은 사람의 아버지(father of many)라는 아브라함으로 바꾸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17:5)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이 자신을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우신 하나님을 믿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4:17). 하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은 부활의 능력입니다.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능하시기에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또한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분은 무에서 유로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릴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11:17-19).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은 없는 것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하나님의 능력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부활과 창조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짐을 믿었기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고 사라가 90세가 되어 자녀를 낳을 수가 없는 환경이었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서 아들 이삭을 출산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신 주이시며,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구속자이십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구속하셨다고 선포했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43:1). 하나님께서는 온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기에 죽은 자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셔서 새 생명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2:1).

 

우리의 믿음이 아브라함과 같이 견고한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11:3)고 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만물의 주인이시며 온 세상을 다스리심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우리는 영원의 세계를 향하여 하루하루 다가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면 영원한 천국의 복을 누리지만, 죄의 저주로 인한 사망에 이른다면 영원한 형벌을 받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가 믿을 때에 능히 구원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방주를 건축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여 순종함으로 타락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신뢰하여 골리앗과 싸워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2.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4:18).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명령과 약속으로 아브라함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실 땅으로 가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12: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갈대아 우르를 떠날 것을 명령하시면서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12:2).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후손을 주실 것이며, 그에게 복을 주어 이름을 창대케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이르자 그 땅을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명령을 주실 때에 믿음의 약속을 주셔서 상급을 얻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을 주시면서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28:18-20).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부르시면서 그와 함께 하셔서 구원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1:19). 믿음의 사람은 약속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때에 약속을 기업으로 얻게 하셔서 영원한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시험을 받을 때에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약속을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하는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11:17-18).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릴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이삭을 통하여 후손을 주신다는 약속을 받았기에 믿음으로 드릴 수 있었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4:20-21).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기에 그의 믿음은 점점 견고해졌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하실 때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떠났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후손을 주신다는 약속을 하시자, 아브라함은 의심하지 않고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을 것이라는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15:6).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는 아브라함이 자녀가 없자 자신의 종을 후사로 세우려는 마음을 품었을 때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이 약해졌을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 아니라 그의 몸에서 날 자가 후사가 될 것이라고 하시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 후에 아브라함은 믿음이 없어 종인 하갈을 통하여 후사를 잇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후사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구십 구세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열국의 아비가 될 것이며 그의 이름을 아브람에게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라함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17:5). 아브라함이 구십 구세에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약속을 다시 받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의 나이 백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후손에 대한 약속을 주셨을 때에 이미 구십 구세였습니다.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4:19). 아브라함은 거의 백세가 되어 자신의 몸이 이세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고, 사라도 이미 잉태할 수 있는 시기가 훨씬 넘은 구십 세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이루신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3. 아브라함은 우리와 같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4:22-24).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4:22). 사도 바울은 의로 여김을 받은 것은 단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도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도 의롭다고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4:23-24).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의롭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을 믿을 때에 의롭다 함을 얻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로 인하여 대신 형벌을 받으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4:25).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로 인하여 내어줌이 되었습니다. 내어줌이 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대신 죽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자신의 죄로 인하여 죽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대속의 죽음이십니다. 도널드 그레이 반하우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에 대하여 바라바의 시각으로 설명합니다.

 

바라바는 강도요 살인자로서 로마인들에게 체포되어 처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라바가 처형될 즈음에 예수님도 감옥에 붙잡혀 오셨습니다. 빌라도는 모여든 죄 없으신 예수님을 놓아주고 싶은 마음에 군중들에게 살인자 바라바와 유대인의 왕이라고 불리는 예수라는 사람 중에 놓아줄 자를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유월절 기간 중에 죄수 한 명을 석방하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 중에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27:21). 이때 군중들은 죄 없으신 예수님이 아니라, 살인자인 바라바를 놓아주라고 요구했습니다. 바라바는 예수를 놓아주고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칠 줄 알았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간수는 바라바가 갇힌 감옥에 찾아와 감옥 문을 열고 그를 석방시켜 주었습니다. 바라바는 석방되어 군중들에 섞여 골고다 언덕까지 찾아가 자신이 죽어야 할 십자가에서 대신 못박혀 죽으시는 예수님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속으로 저 이가 내 자리를 차지했구나. 죽어야 할 사람은 바로 난데 말이야, 나는 사형 판결을 받은 살인자고, 저 사람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 나를 위해 죽고 있는 거야.”

 

이와같이 우리는 자신의 범죄로 인하여 영원한 형벌의 자리에 떨어져야 하지만, 예수님이 대신 형벌을 받으심으로 우리는 바라바처럼 자유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의 대가를 지불하심으로 구속하셨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자신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살아나셨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이 완성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