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15) - 죄에 대한 승리의 비결(롬 6:1-14).

비전의 사람 2020. 9. 16. 18:00

로마서 강해(15) - 죄에 대한 승리의 비결(6:1-1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6:4).

 

사람이 의롭게 됨으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사망에서 은혜의 삶으로 변화됩니다. 사람이 의롭게 된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사라지고 화목하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죄는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했고, 죄는 사망에 이르게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기에 모든 사람에게 사망에 이르게 했습니다. 아담 안에서는 죄와 사망이 왕노릇하여 다스리는 삶을 살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의와 은혜가 다스리는 생명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아담 안에서는 죄가 왕노릇하는 죄인으로 살아가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의와 은혜가 왕노릇하는 생명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죄의 권세에서 이기는 성화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의 권세에서 이기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새생명의 삶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의롭다함을 얻는 칭의(justification)는 죄의 형벌(the penalty of sin)에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자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루어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죄의 권세(the power of sin)를 이기고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거룩한 삶으로 인도합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sanctification)의 구원을 이루어 가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하여 새 생명으로 살아가는 진리를 깨닫는 것이 소중합니다.

 

죄는 아담 안에 있는 자의 왕으로서 절대적인 권세를 행사합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 6장은 그리스도인이 죄의 왕노릇하는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성화의 삶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음은 로마서 61절에서 14절을 통하여 배우는 영적인 원리입니다.

 

1. 의롭게 된 자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6:2).

 

사도 바울이 로마서 520절에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고 했습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의미는 죄를 덮는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게 나타남을 설명한 것입니다. 율법은 죄를 드러내게 하여 정죄와 사망에 이르게 하지만, 은혜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한 후에 의와 생명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자, 유대주의자들이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6:1)라며 반문합니다. 즉 죄에 거하면 은혜가 더하지 않겠느냐고 한 것입니다. 즉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풍성하게 나타나기에, 죄를 더 많이 짓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이 받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6:2)라고 답변했습니다.

 

의롭게 된 자가 죄에 거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의롭게 된 자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었기 때문에 죄에 더 이상 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의롭게 된 자는 아담 안에 서 왕노릇하던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난 자입니다.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함이니라.”(5:21). 의롭게 된 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가 왕노릇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구원받은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었습니다. 아담 안에 거할 때는 죄가 왕이었기에 절대적인 주종 관계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죄의 권세가 믿는 자에게서 끊어졌기에 더 이상 군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하여 죽은 성도는 더 이상 죄 가운데 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죄 가운데 산다는 것은 습관적인 죄를 짓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롭게 된 자는 죄에 대하여 죽었기에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여 산 자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고 했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신 것은,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는다는 것은 죄의 권세가 우리를 다스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는 범죄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우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요일 3:5-6).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거하면 죄를 범하지 않고 의에 거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는 것은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3:9).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죄를 짓지 아니한다는 의미는 완전히 의로운 삶을 산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죄 없다 하는 것은 스스로 속이는 것이며,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요일 1:8,10).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죄를 짓지 아니하는 것은 습관적인 죄를 짓지 않거나, 죄의 권세 아래서 살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셨고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게 하셨지만, 죄의 영향력이 우리에게 남아 있어서 지속적인 유혹과 싸움을 하게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죄의 영향력에서 넘어지면 회개하여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아직 아담안에 속하여 죄의 권세 아래 있는 자는 회개하지 아니하고 죄 안에 거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2. 의롭게 된 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6:4).

 

의롭게 된 자가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어 더 이상 죄 가운데 살 수 없게 하는 영적인 원리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의롭게 된 자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영적인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6:3)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자입니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았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 그리고 부활에 참예함을 의미합니다. 침례는 구원받은 자가 물에 잠기는 의식입니다. 침례 의식은 믿는 자가 물에 잠겼다가 올라오는 그리스도인의 의식입니다.

 

침례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 부활하심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옛 사람이 죽고 장사되었다가 새생명의 삶을 살아가는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영적인 연합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에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자도 함께 죽은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는 것을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받는 것과 동일시했습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3:26-27).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리스도와의 영적인 연합으로 한 몸이 됩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침례로 상징하며 그리스도로 옷입은 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란 성령으로 거듭날 때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영적인 연합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6:4).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이 우리가 새 생명으로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안에서 옛 사람이 죽고 장사가 된 후에,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으로 태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인하여 옛 사람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의 다시 사심과 같이 우리가 새 생명으로 태어납니다. 새생명으로 다시 태어났기에 새 생명 가운데 살게 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6:5).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면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그리스도와 동일시하게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같이 우리의 아담안에 있던 옛 사람이 죽고, 그리스도의 장사됨과 같이 장사되었다가, 그리스도가 새생명으로 부활하심과 같이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새생명으로 탄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새 생명으로 행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삶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믿음의 삶을 의미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성령 충만한 삶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친 포도나무의 비유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15:5).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을 주는 포도나무이시고, 우리는 포도나무로부터 생명을 공급받는 가지입니다. 포도나무와 가지는 서로 연합하여 가지는 생명을 공급받고 양분을 공급받아 자라며 열매를 맺습니다. 가지의 생명이 포도나무에 있듯이,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에 있는 것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서 열매를 맺듯이, 그리스도인은 포도나무인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영적인 공급을 받아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갑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고, 자신 안에 사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20). 사도 바울의 고백은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어 살며 죄 가운데 거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하여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습니다. 이는 아담 안에 있는 자가 모두가 죄의 권세 아래서 사망에 이른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처럼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가 주시는 새생명을 얻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구원의 본질은 새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새 생명은 그리스도가 사시는 생명입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와의 연합으로 믿는 자 안에 사시며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삶은 우리의 옛 사람이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는 자신에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1:21). 사도 바울 안에 사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삶의 주체가 되십니다. 우리가 새 생명으로 행하는 것은, 우리의 생명의 근원되시고 주되신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본질적인 삶을 회복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은 그리스도와 영적인 연합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살아가는 삶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생명의 근원되시는 그리스도를 철저하게 의지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3. 의롭게 된 자는 죄의 권세에서 승리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6:6).

 

사도 바울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6:6). 십자가에 못 박힌 옛 사람은 누구인가요? 옛 사람은 구원받기 전에 가졌던 옛 성품을 의미할까요?

 

십자가에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옛 사람은 옛 성품이 아니라, 아담 있던 옛 사람입니다. 로마서 5장에서 사망이 왕노릇하던 아담 안에 있던 사람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님을 믿기 전의 옛 성품(old nature)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기 전의 옛 사람의 존재입니다. 아담 안에서 살던 때는 아담 안에서 옛 사람이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새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골로새서는 옛 사람과 새 사람을 구분합니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은 자니라.”(3:10).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옛 사람이 벗어지고, 새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새 사람을 입은 자는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된 것은 고린도후서 517절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의가 왕이 되어 다스림을 받는 삶을 살아갑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죄의 몸이란 무엇인가요? 몸 자체가 죄악된 것인가요? 결코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몸 자체가 죄가 가득한 것이 아닙니다. 믿는 자의 몸은 하나님이 성전 삼으신 거룩한 성전임을 알아야 합니다. 죄의 몸이란 죄의 영향을 받는 세상의 통로라는 것입니다. 몸은 세상과 연결하는 통로이기 때문에 죄가 들어오는 입구와도 같습니다. 죄의 몸이 멸한다는 것은 세상과 접촉하는 몸이 죄의 권세에서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의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을 수도 있고, 아담의 죄의 권세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인하여 옛 사람이 추구하던 죄의 본성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이 다시는 죄를 섬기는 종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삶의 본질은 죄를 더 이상 섬기지 않는 것입니다. “ ...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6:6).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은 자가 죄를 섬기지 않는 이유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6:7). 죽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은 자입니다. 죽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 죄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었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난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셨기에 다시는 사망이 그를 주장하지 못합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6:9). 나사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을 받았지만, 그의 육체는 다시 죽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새 몸으로 부활하셨기에, 사망이 예수님에게 권세를 주장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시나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육체의 피곤과 갈증을 느끼신 것은 인간의 육신을 입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예수님이 육체로 계시는 동안 죄의 권세가 예수님에게 역사했고, 사망이 그를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의로우셨기에 사탄이 주는 죄의 권세에 굴복하지 않으시고 완전히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우리의 죄를 위한 희생이셨습니다.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6:10).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며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죄에 대하여 죽으신 것이기에 죄가 더 이상 예수님에게 권세를 주장할 수 없게 되었고, 그 분이 살아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새생명을 얻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새 생명의 정체성을 가질 것을 권면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어다.”(6:11).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죽었기에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여겨야 하며,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 산 자로 여겨야 합니다. 이는 죄를 향한 문을 닫고 하나님을 향한 새로운 문을 통과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4. 의롭게 된 자는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립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6:13).

 

의롭게 된 자는 지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로 여겨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삶은 아담의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새 생명의 삶을 살아가는 자가 취해야 할 삶의 가치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두 가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는 죄가 왕노릇하지 못하도록 몸의 사욕을 거절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6:12). 그리스도인의 죄가 우리의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까지는 연약하여 죄와 질병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우리는 죽을 몸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죽을 몸은 죄의 몸이나 사망의 몸과는 다른 것입니다. 죽을 몸이란 몸이 쇠하여 땅에 묻히는 육체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죄와 사망은 하나님과의 분리로 인한 영원한 형벌의 몸인 것입니다. 죽을 몸은 육신의 사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욕(sinful passion)은 하나님의 뜻과 충돌하는 욕구입니다. 몸의 사욕은 육체의 정욕 뿐만 아니라 생각과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욕구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 보다는 자신의 의지를 따르고자 하는 욕구를 의미하며, 다른 사람의 것을 탐내는 욕구이며,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욕망을 포함합니다.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로 여기기에 죄가 우리의 죽을 몸에 왕노릇하는 일이 없도록 몸의 죄의 욕구에 순종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6:14)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율법 아래 있는 죄인이 아니라, 은혜 아래 있는 의인이기에 죄가 우리를 다스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신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6:13). 로마서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며 우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라는 명령체로서 권면이나 조언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을 향하여 산자가 따라야 할 하나님의 강력한 명령입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에서(11), (12)으로 그리고 몸의 지체(13)로 연결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을 향하여 산 자로 여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죄가 우리의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도록 죄의 사욕을 이겨야 합니다. 그리고 몸이 지체가 불의의 병기가 되어 죄에게 드리지 말고,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며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세상의 죄가 우리가 섬기던 주인이었다고 한다면, 우리의 새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기간이나 조건이나 반복적인 수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지속적으로 드리는 삶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주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있기에 하나님이 우리의 주가 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거룩한 삶을 살도록 도우시는 분이 우리 안에 사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화란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명이 되셔서 몸의 사욕을 이기고 하나님께 드려 그리스도를 닮아 거룩함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통하여 사시는 삶이 거룩한 삶의 출발점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삶이 거룩한 삶이며 성화의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