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마태복음(62) - 열매를 맺는 비결은 믿음입니다(마 21:18-22).

비전의 사람 2020. 10. 3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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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21:19).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신 이후에 나귀를 타시고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이때 수많은 군중들이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따르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21:9) 라고 칭송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둘러보신 후에 다시 베다니에 가셔서 쉬셨습니다. 이튿날 예수님께서 베다니에서 나가실 때에 시장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시장하신 것은 그 분은 하나님 되시는 신성과 인간의 모양으로 오신 인성을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이때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무화과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지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무화과의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신 때는 유월절 절기인 3-4월 중이었습니다. 이때는 아직 무화과의 때가 아니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3-4월에 잎이 나기 시작하여 5월 중순 경에 잎이 나고 열매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에 잎사귀만 있는 것을 보식 무화과나무를 책망하셨습니다.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21:19).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가 열매가 없으신 것을 보시고 책망하자, 그 나무가 곧 말랐습니다. 마가복음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서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고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과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엎으시는 성전을 정화하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매.”(11:17)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 밖으로 나가시며 베다니로 돌아가시는 길에 제자들이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주님께 말씀합니다.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11:21).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책망하신 그 무화과나무가 마른 것을 고한 것입니다. 그러자 다른 제자들이 이상히 여겨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21:20).

 

왜 예수님은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으로 앞으로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셨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는 영적인 원리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열매를 맺기를 기대하십니다.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21:19).

 

농부가 무화과나무나 포도나무를 심어 농장을 만드는 이유는 열매를 얻기 위함입니다. 성경에서는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조성한 포도원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5:7).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포도원이었습니다. 이에 농부로 비유하신 하나님께서 땅을 파서 돌을 제하여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랬지만 이스라엘이 맺은 열매는 쓸모없는 들 포도나무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뇨.”(2:21)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귀한 포도 열매를 기대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을 숭배하고 악을 행함으로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농부는 포도나무가 기대했던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 포도나무를 잘라서 불태우는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숭배함으로 가증하게 되었음을 책망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징계하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에브라임이 침을 입고 그 뿌리가 말라 과실을 맺지 못하나니 비록 아이를 낳을지라도 내가 그 사랑하는 자의 태의 열매를 죽이리라.”(9:16). 하나님께서 우상숭배하고 악을 행하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그 뿌리가 말라 과실을 맺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하시며 그들을 심판하실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열매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꼭 필요한 가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이 맺어야 할 열매를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하여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3:8)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회개하였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 열매는 무엇인가요? 세리들은 정한 세 외에는 받지 말아야 하고, 군인들은 힘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들의 소유를 탈취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군인들이 자신들이 받는 임금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찍어 불에 던지시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의 말씀을 통하여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7:16)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열매를 보시고 그 사람을 판단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땅에 뿌려진 씨앗의 비유를 통하여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백배, 육십배, 삼십배의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13:8).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농부로 비유하시며 예수님과 연합하여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그 가지를 제한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15:1-2).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면 과실을 많이 맺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화과의 열매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기대하는 의롭고 선한 행실이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에게서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 같이 하였다고 했습니다(9:10). 그러나 그들은 첫 열매를 맺지 못하고 가증한 우상 숭배의 열매를 맺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아 뿌리가 말라 과실을 맺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앗수르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이 뿌리가 말라 더 이상 열매를 맺을 수 없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그 백성을 앗수르 지역으로 흩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자 나무가 즉시 말랐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24:32)라고 하시며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1장에서 무화과나무가 마른 것은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한 예언의 메시지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앞에서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도리어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임으로 인하여 그 악을 더했습니다. 이에 칠백년 전에 호세아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멸망을 무화과나무의 뿌리가 말라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으로 비유했듯이, 이스라엘이 멸망하여 더 이상 열매를 맺을 기회가 없음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선한 열매가 아닌 외식과 종교에 빠져 있음으로 그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에 예루살렘과 성전은 A.D.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하여 황폐화가 되고 멸망하게 됩니다.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하여 성전이 황폐화되었듯이, 기원후 70년에 다시 한번 로마에 의하여 예루살렘성과 성전이 무너지는 비극을 겪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경고하신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15:6)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제하셔서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가지를 불에 던져 사르듯이, 하나님의 책망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안에서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은 제자들의 믿음을 통하여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21:2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어찌하여 곧 말랐는지를 묻자, 주님은 제자들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근원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열매를 맺는 근원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는 신실한 믿음에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21:21).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을 놀라게 한 것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내리신 심판의 메시지보다는 주님의 말씀의 능력이었습니다. 즉 제자들을 감동시킨 것은 예수님의 예언의 메시지보다는 이적 자체에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열매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통하여 영적인 교훈을 가르치셨습니다.

 

제자들이 배워야 할 것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무화과나무가 즉시 마른 것은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사역을 감당하면서 말씀의 능력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말씀을 전한다면 어떠한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믿지 않으면서 말씀을 전한다면, 그들이 전하는 복음은 아무런 생명의 역사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제자들이 속으로 믿지 않으면서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제자들을 그리스도의 말씀에 굳게 세우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제자들에게 믿음이 결핍되어 있다면 그들은 이스라엘과 같이 잎사귀만 무성한 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이란 의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을 믿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산이 들려 바다에 던진다라는 표현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유대적인 표현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을 때에 죄인이 의롭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을 때에 거듭나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죄인으로 태어나 오직 믿음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기적입니다. 믿는 자는 삶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때에 백세에 이삭을 얻는 불가능한 일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나 구하는 것 이상으로 응답을 얻게 합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3:20). 하나님은 우리가 의심하지 믿음으로 구할 때에 더 크신 은혜로 응답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열매를 맺지 못한 본질적인 이유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호사야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며, 불의를 행하며 악을 행한 이유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들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세상을 사랑했습니다. 불신앙이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신앙입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왕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말씀을 불태운 이유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세상의 환경과 자신들의 지혜를 의지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기 보다는 의식주의에 빠져서 종교적인 생활에 만족하며 살았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불안이나 초조함을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이기는 비결은 믿음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고 그 말씀을 깨닫고 열매를 맺습니다.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13:22-23). 믿음이 없는 자는 말씀을 들을 때에 세상의 염려와 물질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열매를 못하는 가시떨기의 마음과 같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기쁨으로 말씀을 들음으로 인하여 백배, 육십배와 삼십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받음으로 말씀이 마음에 역사하여 열매로 나타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말씀을 받아 열매를 맺듯이, 믿음의 사람은 믿음으로 기도함으로 응답받는 자입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22:22). 믿음은 기도의 삶에 능력을 부어주는 조건이 됩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5:15)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능력을 경험하게 합니다.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고 한 것은, 모세와 엘리야와 같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통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9:23)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것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9:19). 제자들이 믿음이 없어서 주님이 주신 능력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자신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를 묻자, 주님께서는 기도하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9:29). 제자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역의 현장에서 나타나는 비밀은 기도에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에 10일간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할 때에 성령이 임하여 충만함을 얻은 후에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순절에 베드로가 전한 복음의 역사로 삼천명이나 되는 사람이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심하지 않는 믿음의 기도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11:24-25). 하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의 능력이 믿음에 있음을 가르치셨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는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면 그대로 응답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는 받은 줄로 믿는 믿음이 필요하고, 또 하나는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는 자를 용서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할 때에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죄를 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죄가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가 막힌다면 우리는 삶에서 믿음의 열매를 맺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면서 사마리아인의 한 촌에 들어가셨읍니다. 이때 그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야고보와 요한이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9:54)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을 제자들을 꾸짖으시고 다른 촌으로 가셨습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임할 때에 그 능력으로 마음의 원한에 대한 복수로 사용하려는 유혹을 이겨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잘 사용하는 비결은 형제를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예수님안에 거하며 동행하는 삶으로 열매를 맺는 비결은 이웃을 사랑함으로 그들의 허물을 마음으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충만히 거하시며 말씀으로 열매 맺게 하시며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하여 새사람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열매를 맺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후에 말씀을 믿음으로 나타나는 열매는 무엇인가요? 우리에게 나타난 영적인 열매가 풍성한가요? 아니면 아직까지 세속적인 생각과 마음에 사로잡혀 가시덤불과 같은 마음을 가졌는가요? 우리가 열매맺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하여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