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26) -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롬 8:28-30).

비전의 사람 2021. 3. 24. 16:40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믿음의 삶에는 우리의 눈에 항상 행복하고 기쁜 일만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면 모든 것이 잘 된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교회를 다닙니다. 그러나 말씀 안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시험이 찾아오면 넘어지고 실족하게 됩니다. 로마서는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 항상 좋은 일만 있다고는 하지 않습니다. 비록 우리가 성령으로 인하여 생명을 얻어 죄와 사망에서 자유함을 얻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특권을 얻었지만, 우리에게 찾아오는 고난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8:17-18).

 

사도 바울은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한 하나님의 후사이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견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 마주해야 하는 고난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장차 다가올 영광이 있기에 현재의 고난을 믿음으로 견디는 것입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고난을 비롯한 모든 상황에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선을 이루시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성도들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을 미워하거나 대적하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듯이, 우리는 세상에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세상의 무엇보다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선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항상 최선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분을 사랑하는 자녀에게 시련을 허락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뜻을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민족이 바로로 인하여 큰 압제와 고통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당한지라.”(2:23). 이스라엘 백성이 탄식하며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준비하셔서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시는 과정의 일부분이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삶에 찾아오는 고통도 하나님이 선하신 일을 하시는 과정의 일부분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선을 이루느니라는 모두 현재 시제로 쓰여졌습니다. 이는 성도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지속되는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일하고 계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도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고, 지속적인 사랑의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서 선을 이루시기 위하여 간섭하시는 역사의 조건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합력하여 이루시는 선은 무엇인가요? 선은 이 세상에서 추구하는 성공이나 행복, 명예가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의 고난을 따르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선은 바로 다음 구절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8:29). 하나님이 성취하시는 선은 바로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인생의 목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질병이나 고난, 슬픔과 핍박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을 이루어가십니다.

 

사도 바울은 사역의 현장에서 큰 고난을 당했음을 간증했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드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 4:8-9). 사도 바울은 사람들로 인하여 우겨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거나 핍박을 받고, 그리고 거꾸러드림을 당하여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음의 위기에 처하는 순간을 만나지만, 그러한 시련을 통하여 받는 은혜를 고백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자신의 몸에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 ...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10). 사도 바울은 고난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자신의 몸에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이는 자신이 육체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나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난을 통하여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그분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을 통하여 선을 이루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하여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그 곳에서 요셉은 하나님의 은혜로 형통하였으나,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하자 억울하게 옥에 갇혔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2년이란 세월을 지내며 그의 인생이 묻히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바로의 꿈을 해석함으로 애굽의 총리가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고난을 통하여 연단되고 빚어짐으로 형들을 용서하고 화해하는 성숙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으로 인하여 야곱과 그의 가족들이 애굽으로 이주하였고 그 곳에서 400년 동안 거주하며 큰 민족으로 성장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하여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루신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 찾아오는 시련과 고난이 무척이나 원망스럽고 힘들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그 시련을 통하여 주님을 닮아가는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환경을 통하여 찾아오는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2. 하나님은 믿는 자가 아들의 형상을 본받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8:29).

 

로마서 820장은 하나님의 예지와 예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지는 하나님이 구원받을 자를 미리 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8:29). 하나님은 구원받을 자를 미리 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역사에서 주권적인 섭리로 인도하시지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디모데전서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410절은 “ ...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전지하시기에 미리 구원받을 자를 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받을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예정은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것은 구원받은 자들이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8:29).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은 구원받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분명한 뜻입니다. 빌립보서는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1:6)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삶의 환경 속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자가 되도록 일하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셨다고 하셨습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5:8). 예수 그리스도는 아들이시라도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며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불순종하시다가 회개하고 순종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순종이란 좋은 때가 아니라, 시련과 고통을 참으며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임을 배우시며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어려움 속에서 그 분을 닮아가는 과정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318절은 우리가 성령으로 인하여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주님처럼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닮아가는 비결은 시련과 고난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영광을 바라볼 때에 성령으로 인하여 주님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12:2)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할 때에 환경의 어려움을 바라보기 보다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이 당하시는 고난 중에도 십자가를 참으셨고 지금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우리가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은 바로 예수님이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8:29). 예수님이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시는 것은 예수님의 자녀들 중에서 가장 뛰어나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를 양자로 삼으셔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님과 같은 영광의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자녀들이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시기에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맏아들이 되게 하신 것은, 양자된 성도들도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지위를 갖게 하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은 믿는 자를 영화롭게 하십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8:30).

 

하나님은 미리 정하신 자들을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 하십니다. 의롭다 하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가 씻어짐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본래 죄인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형벌을 받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무죄로 처리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비결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롭다 하신 자들을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영화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영광의 몸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요일 3:2).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아직 육체적인 변화가 없습니다. 지금은 우리의 속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면서 행동과 자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납니다. 우리의 육체의 속성은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변화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는 우리가 흑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었지만 곧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고전 15:51).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들의 형상을 따라 변화되도록 성령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우리의 소망은 구속의 날에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 때를 소망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환경을 통하여 역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환경의 시련을 통하여 우리의 자아가 깨어지게 하심으로 주님을 닮아가도록 순종의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순종함으로 주님을 닮아갈 때에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더 큰 은혜로 함께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