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27) -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롬 8:31-34)

비전의 사람 2021. 4. 7. 16:04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8:32).

 

성경 학자들은 로마서 8장을 성경의 가장 위대한 장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8장의 마지막 문단은 아름다운 산봉오리가 갑자기 나타나듯이, 성경의 위대한 계시중의 한 부분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들은 확신의 찬송, 승리의 노래라고도 합니다.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는 이 문단은 로마서의 에베레스트이며 성경이라는 히말라야 산맥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8:31)라는 질문으로 로마서 8장의 마지막 문단을 시작합니다. ‘이 일이라는 것은 로마서 828-30절에서 가르치는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우리를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양자로 삼아주신 자녀들이 누리는 영적인 특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아들까지 아끼지 아니하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8:31).

 

우리는 하나님이 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위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으로 구원받은 자녀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큰 사랑을 베풀어 주셨기에, 어떤 영적 세력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이는 우리를 대적하는 자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를 대적하는 자가 하나님의 권세 앞에서 무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 말씀은 우리가 시험을 이기게 하는 버팀목입니다. 다윗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의지하며 두려움을 극복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23:4).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했기에 사망의 골짜기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위한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골리앗과 맞서 싸우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를 대적하는 원수는 세상과 육신과 마귀입니다. 세상은 할 수만 있다면 우리를 대적하여 무너트리려 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유혹하여 죄에 빠지게 하기에 우리를 대적하는 통로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사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 2:15). 세상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자랑, 이생의 자랑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는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은 우상 숭배와 인본주의로 사람이 중심이 되는 가치를 따르게 합니다. 우리의 육신도 그 속에 죄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7:20). 육신에 있는 죄의 속성이 우리를 죄의 길로 이끌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이 주시는 생각으로 육신의 생각을 이겨야 합니다. 우리에게 사탄은 강력한 원수입니다. 베드로 전서는 마귀에 대하여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라고 했습니다. 사탄이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에 우리는 안전합니다.

 

우리의 원수인 세상과 사탄, 그리고 육신이 아무리 우리를 대적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사탄이 우리를 공격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이 이 모든 대적들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우리를 보호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실 때에 여리고성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아말렉 군대가 무너졌듯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에 우리는 아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 그 사랑은 아들을 보내시는 희생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8:32). 하나님은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주신 것은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내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독자 이삭을 아끼지 아니하고 드렸기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자신의 전부를 드린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이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을 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물로 모든 것을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아들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셨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대적하는 영적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지키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그 필요를 채우시고 도우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닮아가도록 영적인 필요를 채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빌립보서는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4:19)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도 아끼지 아나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주셨기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도록 그 필요를 채우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2. 예수님은 중보자가 되셔서 완전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9:33).

 

사도 바울은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겠느냐고 했습니다. 송사한다는 것은 법정용어로서 고소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사탄이 하나님이 구원하신 자들의 죄에 대하여 고소하려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가랴 3장에는 사단이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대적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사단을 책망하시며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과 정한 관을 머리에 씌우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3:4). 하나님께서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아름다운 옷과 깨끗한 관을 씌우심으로 사단이 더 이상 송사할 수 없었습니다. 사단은 이와같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참소하는 자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사단에 대하여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12:10)라고 했습니다. 사단이 우리를 참소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안전한 것은 예수님의 피값으로 우리의 죄를 속죄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셨기에 사단은 우리를 재판으로 끌고가 송사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3장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3:24)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은 우리의 선한 행실로 인하여 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죄값을 치루셨기에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정하신 자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 또한 영화롭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셨기에 사탄은 더 이상 우리를 송사할 수 없습니다. 사탄이 우리를 송사할 수 없기에 더 이상 정죄할 수도 없습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8:34). 정죄한다는 것은 죄에 대하여 판결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죄받지 않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죄받아야 할 대상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세상입니다. “다만 네 고집과 네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2:5). 하나님은 세상의 불의와 죄에 대하여 심판하시고 진노를 내리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 세상과 사탄은 우리를 정죄하려고 합니다. 세상과 사탄이 우리를 대적하기 위하여 아무리 정죄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구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정죄받지 않습니다. 로마서 81절은 분명하게 우리가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1-2). 우리가 정죄받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로 죄가 씻음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8:34)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기 위한 희생이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5-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셨을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4:25).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죄 값으로 독생자이신 예수님의 죽음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사망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사망의 권세가 패배하였고, 우리와 같이 의롭게 된 자는 마지막 날에 무덤에서 살아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에베소서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셨다고 했습니다.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1:20).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독생자의 영광을 다시 회복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것은 속죄의 사역을 완성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제사장은 매일 서서 섬기며 같은 제사를 드렸지만,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10:11-13). 제사장은 속죄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서서 같은 제사를 드려야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속죄의 사역을 완성하셨기에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속죄의 사역을 완성하시고 이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그리고 사탄과 같은 원수들이 패배하여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단의 권세를 무너트리는 것이며, 그리스도가 다시 오셔서 사단을 지옥불에 던지실 것입니다.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간구는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중보자로서 기도하고 계심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7:25).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를 믿은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심으로 온전히 구원하십니다. 이는 믿는 자를 송사하거나 정죄하려는 사탄의 역사에 대하여 그리스도가 흘리신 피로 변호하시고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흘리신 보혈로 우리의 죄를 씻었기에 사탄은 더 이상 우리를 정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연약하여 죄에 넘어질 때에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하시며 도우십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의롭게 된 자가 누리는 영적인 특권에 대하여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안에 거하는 주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날마다 승리자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