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셨기에 독생자 아들을 희생하기까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커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이 안전함을 설명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1.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하나님은 가장 소중한 독생자를 주셨기에, 우리를 위하여 어떤 것도 아끼지 않고 주십니다.
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하나님이 믿는 자를 의롭다 하셨기에 아무도 송사할 수 없습니다.
4. “누가 정죄하리요?”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므로 아무도 정죄할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는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하여 변호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대언자는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로서 법정에서 피고인을 변호하는 변호사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며 변호하시는 중보자이십니다. 다음으로 사도 바울은 중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묻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우리의 확신에 대하여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5).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많은 어려움을 만나곤 합니다. 도리어 우리가 만나는 시련들은 우리와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를 대적하는 일곱 가지의 요소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환난(tribulation)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환난은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아갈 때에 마주해야 하는 시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 16:33)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영적 싸움을 하는 현장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우리는 항상 영적인 현장에서 씨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환난을 만나긴 하지만, 우리는 환난에서 도리어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승리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환난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둘째는 곤고(distress)입니다. 이는 환난을 통과할 때에 우리의 내면에서 느끼는 시련을 의미합니다. 과거 유럽에서는 사형을 선고한 후에, 죄수위에 무거운 것을 올려놓아 가슴이 눌려 사망하는 형벌이 있었습니다. 그때 무거운 것이 가슴을 압박하는 상황이 바로 곤고한 상황인 것입니다. 죄수가 좁은 감옥에 갇혀서 앉거나 일어서기도 불편한 상황에 처한 것이 곤고입니다. 이러한 곤고가 찾아와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셋째는 핍박(persecution)입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핍박을 겪는 일이 있었습니다. 주님도 예수님 때문에 핍박이 찾아올 것이라고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 5:11-12). 우리에게 환난이나 곤고가 찾아와 고통을 줄 수 있지만,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끊을 수가 없습니다.
다섯째는 기근(famine)과 적신(nakedness)입니다. 기근과 적신은 극도의 가난과 좌절을 의미합니다. 초대 교회의 시대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핍박을 받아 추방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마을이나 직장에서 쫓겨나 산의 동굴에서 지내야 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동네에서 옷이 벗겨진 채로 조롱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련이 찾아와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
여섯째는 위험(peril)입니다. 사도 바울도 주님을 섬기는 사역의 현장에서 위험한 일을 만나곤 했습니다.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고후 11:26). 사도 바울은 주님을 섬기기 위하여 선교 여행을 했습니다. 이때 강과 강도, 유대인, 이방인, 시내, 광야와 바다, 거짓 형제들의 위험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에서도 사도 바울이 염려했던 것은 교회였습니다. 자신은 위험한 상황에서 주리며 목마르고 굶고 춥고 헐벗는 삶을 살았지만, 그는 주님이 피로 사신 교회를 더욱 염려했습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위험에서도 사도 바울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곱번째는 칼입니다. 칼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최후에 그의 믿음으로 인하여 칼로 목베임을 당했습니다. 사도 바울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과 많은 형제들이 핍박으로 인하여 처형되었고, 초대의 지도자였던 폴리캅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화형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조금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죽음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을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롬 8:36)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시편 44편 2절을 인용한 구절입니다. 우리가 고난당하는 이유는 주를 위하여 종일 죽임을 당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선지자들이 주를 위하여 많은 고난을 당하고 심지어는 죽임까지도 당했습니다. “또 어떤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 11:37-38). 믿음의 사람들은 희롱과 째찍질, 그리고 결박과 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돌에 맞고 톱으로 켜는 죽음을 맞이하고 칼에 죽기도 했습니다.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는 지난 이천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인하여 죽임을 당했지만, 어떠한 시련도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2.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넉넉히 이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하여 고난과 시련을 겪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자유롭게 주님을 믿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복을 누립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조선 말기나 일제시대, 그리고 6.25 전쟁 중에는 믿음으로 인하여 핍박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서 믿음의 능력은 시련을 이기고 승리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넉넉히 이기느니라’의 뜻은 ‘이기는 자 또는 정복자 이상 (more than conquerors)’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고난과 시련을 정복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무시당하고 버림받고 환난을 당하는 자들이 어떻게 그러한 정복자가 될 수 있는가요? 우리가 세상이 주는 환난과 시련을 넉넉히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풍성하게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환난과 시련을 당할 때에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께서 곁에서 자신을 강건하게 하셔서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다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은 사도 바울이 힘들고 낙심된 순간에 그의 곁에서 도우셨던 것입니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딤후 4:17). 예수님의 사랑은 바울이 힘들어 지쳐 있을 때에 곁에서 강건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은 다시 일어나 복음의 말씀을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믿음으로 인하여 고난과 시련을 당하는 것은 영적 싸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대적하는 자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적 사움이 있기에 육체적으로는 고난과 시련을 당하지만, 영적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승리가 되시기에 그 분만을 의지하고 나아갈 때에 우리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것입니다. 요한1서는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어두움의 주관자들을 이기고 승리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로 인하여 머리가 깨어진 존재입니다. 사탄은 이미 패배했습니다. 그는 속임과 술수로 믿는 자를 넘어트리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기에 안전하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죽기가지 믿음으로 승리한 자들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계 12:11). 믿음의 사람은 그리스도의 보혈의 권세를 가진 자로서 죽기까지도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승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특권입니다.
3.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랑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으로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큰 특권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감동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을 마무리 하면서 가장 영광스러운 문구로 감동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와의 관계에서 장벽이 될 수 있는 것을 열거하면서 이러한 것들 조차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사망입니다. 사망은 우리의 생명을 빼앗아가는 것입니다. 사망은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으로부터 이별하게 하며, 우리가 살아가던 세상을 떠나게 합니다. 그러기에 사망은 가장 두렵게 하는 존재입니다. 아무리 사망이 사람들을 두렵게 한다 할지라도,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사망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게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사람은 사망의 저주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딤후 1:10). 예수 그리스도는 사망을 폐하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고 영광의 날에 썩지 아니할 새 몸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죽음의 문이 두렵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후 5:8)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몸에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쓴다고 했습니다.
생명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생명은 우리에게 많은 도전을 주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에서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눅 8:14)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이 세상의 염려와 세상의 부와 쾌락에 대한 시험을 받는 곳입니다. 이러한 유혹들로 인하여 우리가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자신을 버렸다고 한탄했습니다(딤후 4:10). 이와같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세상적인 유혹을 받아 넘어질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징계와 연단을 통하여 다시 돌아오게 하셔서 관계를 회복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어떠하더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게 합니다.
천사들이나 권세자들, 그리고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은 영적인 존재들입니다. 특히 타락한 천사들이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려 하여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현재 일이나 장래 일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 현재에 우리는 수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요셉과 같이 시련을 겪기도 하고, 욥과 같이 육체적인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어려움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 비록 우리가 현재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장래에도 우리에게 일어날 일들이 있습니다. 사망을 통과한 후에 우리의 육체가 땅에 묻히게 될 때에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는 함께 거하기 때문입니다. 능력은 바로 이 세상의 어떠한 능력으로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다시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높음이나 깊음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 높음이나 깊음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우주의 공간을 지칭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높음이나 바다의 깊음은 우리 위나 아래에 있는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에게서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른 아무 피조물은 하나님 외에 존재하는 모든 것입니다. 즉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을 믿는 자의 삶을 살아갈 때에 시련과 역경을 만나기도 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넘어지기도 하고 시련과 환난을 통과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셔서 우리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삶을 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며 함께 하시기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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