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마태복음 (82) -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마 26:17-30).

비전의 사람 2021. 8. 7. 20:27

마태복음 (82) -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26:17-30).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26:28).

 

예수님의 죽으심이 다가오자, 그 분은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의미에 대하여 더욱 세부적으로 가르치시고자 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결국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지는 십자가의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붙잡히게 되자 모두가 도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유월절 만찬을 통하여 유월절 어린양의 참된 의미가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하는 것임을 가르치시고자 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유월절 만찬을 통하여 주시는 영적 의미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유월절 의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26:17).

 

무교절의 첫날은 유월절의 의미합니다. 예수님 당시는 유월절과 무교절을 함께 유월절 절기로 보냈기 때문입니다. 유월절 기간에 유월절을 지키러 온 순례객들은 예루살렘 성 안에 거처를 마련하여 유월절 음식을 먹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제자를 보내셔서 성안에서 유월절 음식을 드시러 물동이를 이고가는 사람을 만나라고 하셨습니다. “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26:18). 주님께서는 유월절을 예루살렘에 보내시기 위하여 제자들을 미리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때가 가까운 것을 아시고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을 보내시고자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유월절 준비를 위하여 성전에서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고, 그 양을 가지고 연회할 장소로 가지고 왔습니다.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28:19). 제자들은 양을 불에 구워서 음식을 준비했고, 무교병과 쓴 나물, 그리고 포도주를 준비했습니다. 주로 10명에서 20명 정도의 사람들이 한 마리의 양을 취하여 유월절 연회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월절 만찬은 주로 해가 진 후인 오후 6시 부터 먹었다고 합니다. 유대인 들은 유월절 만찬 때에 주로 비스듬하게 앉아 식사를 즐겼습니다. 이때 머리는 식사 테이블 쪽으로 가까이 했지만 발은 테이블에서 멀리하고 의자에 놓은 베개에 기대 왼편으로 누워 오른손으로 음식을 먹었습니다. 물론 평소에는 앉아서 식사를 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가 예수님의 품에 의지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러라.”(21:20). 예수님의 품에 의지하던 제자는 바로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요한이었습니다. 이와같이 유월절 만찬에서는 편한 만찬을 위해서 팔로 기대어 비스듬하게 앉아 식사를 즐기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유월절의 만찬은 절기를 지키는 의식이었기에 다음의 절차대로 진행했습니다. 먼저 모임의 리더가 첫 번째 잔을 들고 유월절 절기를 맞이하는 축사를 했습니다. 포도주는 취하지 않도록 물을 타서 잔에 담았습니다. 이 잔은 유월절 절기를 축복하는 잔이었습니다. 그리고 유월절 식사를 위해서 손을 씻어야 했습니다. 손을 씻는 것은 의식적으로 자신을 정결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의 은혜에 감사할 때에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손을 씻어서 자신을 정결케 한 후에 유월절 만찬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때 제자들 중에 누가 크냐고 하는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누가복음 2224절에 또 저희 사이에 그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유월절 중간에 그들은 누가 크냐고 하는 다툼이 일어난 것입니다.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유월절 만찬에 참석할 때에 자신의 지위에 합당한 좌석을 요구하며 다툼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아마도 제자들 중에서 좌석을 두고 다투기도 했고, 그리고 발을 씻는 부분을 두고도 다투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옆으로 기댄채 식사를 하려고 하니까 옆 사람의 발이 먼지가 묻은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주로 손님이 집에 들어오면 종이 그 사람의 발을 씻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들이 주님과 함께 만찬을 하려고 집에 들어왔을 때에 아무도 서로의 발을 씻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일은 낮은 신분을 가진 사람이 행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주님께서 친히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며 섬기는 자가 큰 자가 되는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됨의 조건은 서로를 사랑하는 것임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들은 손을 씻어 자신을 정결하게 하려고 했지만 아직 마음에는 교만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유월절의 세 번째 절차는 쓴나물을 무교병과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두 번째 물에 섟은 포도주 잔을 마시면서 유월절 절기와 음식의 의미를 설명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모임 중에 가장 연소한 자가 그날 밤에 준수하는 모든 의식의 의미를 묻습니다. 그러면, 리더가 유월절 절기와 어린 양과 무교병, 그리고 쓴 나물에 대한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즉 모임의 우두머리가 무리들에게 유월절이란 애굽의 종 되었을 때에 어린양의 피로 구속을 받아 출애굽한 것을 기념하는 것이라는 것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은 이스라엘의 구속을 위해서 희생된 양이었고, 무교병은 애굽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며, 쓴 나물은 애굽에서의 종 되었던 괴로움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시편 113편에서 118편 까지의 시편 말씀을 찬양했습니다. 찬양이 불려질 때에 어린양이 식탁에 올려졌습니다. 이때 리더는 다시 손을 씻은 후에 떡을 들고 축사한 후에 그 떡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면 어린양과 함께 떡을 먹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떡을 떼어 나누어 주시고 포도주를 주시면서 유월절 만찬의 의미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유월절 절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애굽에 있을 때에 그들은 바로를 섬기는 종이 되어 큰 괴로움을 당했습니다. 그들의 고통은 죄의 종으로 살아가며 고통하는 옛 사람을 상징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본래 죄의 종이었기에 고통만 더해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속함을 받아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자유를 얻었고 마침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애굽의 바로를 섬기는 종이 아니라 온 세사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종이 된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죄의 종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기는 종이 되었습니다. 유월절의 의미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을 섬기는 참된 기쁨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을 따르는 자 중에서 배신하는 일이 일어나곤 합니다.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 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저희가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26:21).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만찬을 하시다가 제자 중의 한 사람이 주님을 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근심하여 각각 주님께 질문했습니다. “주여 내니이까”. 그러자 주님께서는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26:23)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가룟 유다가 배반할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가룟 유다는 차리라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가록된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 하였느니라.”(26:24). 주님의 말씀은 가룟 유다의 운명에 대한 준엄한 심판을 내리신 것입니다. 그동안 가룟 유다에게 구원받을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주셨지만, 그는 주님을 메시야로 믿지 않았기에 주님을 은 삼십에 팔아 배반하고 스스로 지옥의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예수를 배신한 유다가 대답합니다. “랍비여 내니이까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26:25). 가룟 유다는 자신이 예수님을 배신한 제자냐고 물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제자들이 다 자신이 배신자냐고 물었기에, 가룟 유다도 주님께 마지 못해 물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가룟 유다에게 그가 주님을 배신하여 자신을 팔 자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주님을 배신한 이유는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주님을 향하여 주여라고 말했습니다. “주여 내니이까.” 주는 하나님에 대한 호칭인 것입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주님을 주라고 부르지 않고 랍비여, 즉 선생이여라고 불렀습니다. “랍비여 내니이까.” 랍비는 선생으로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지식과 삶을 가르치는 스승을 의미합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부인했기에 랍비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아 그 분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았고 제자들 중에서도 신임받는 리더에 속했지만 마음에는 구원의 믿음이 없었습니다.

 

주님이 신뢰하던 사람이 주님을 배반할 것에 대하여 시편은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나의 신뢰하는바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41:9). 내 떡을 먹던 가까운 친구는 음식을 함께 먹던 절친한 사이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발꿈치를 들었다는 은유적인 표현은 말이 뒷발질을 할 때 발굽을 드는 모습으로 말이 발꿈치로 주인을 차 버리고 도망하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즉 주인을 섬겨야 하는 말이 발꿈치로 주인을 함부로 대하여 차 버리고 도망하는 모습입니다.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인하여 성경이 성취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13:18). 주님과 함께 삼년 반 동안 말씀을 가르치시고 음식을 함께 먹던 제자가 발꿈치를 들어 주님을 차고 배신하는 모습을 말씀하셨습니다.

 

삶과 사역의 현장에는 신실하게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발꿈치를 들고 배신하여 큰 아픔을 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윗에게 발꿈치를 든 사람은 압살롬이었습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아들이었지만 아버지를 배신하여 스스로 왕이 되고자 모반을 꾀하여 다윗을 공격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발꿈치를 든 사람 중에 아히도벨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윗의 모사였지만 압살롬이 반역하자 다윗을 배신하고 압살롬 편에 섰습니다. 그는 압살롬에게 압살롬이 왕의 후궁들과 동침하게 하고, 군사 일만 이천으로 다윗을 공격하자는 모략을 베풀었습니다. 이와같이 다윗을 섬기던 자가 뒷꿈치를 들어 배신한 두 사람의 대가는 사망이었습니다. 압살롬은 요압의 칼에 죽임을 당하고, 아히도벨은 고향에 내려가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습니다.

 

주님안에서 연합된 우리는 믿음으로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사탄이 예수님께 자신에게 경배하면 세상의 모든 영광을 줄 것이라고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탄의 유혹을 말씀으로 물리치시고 승리하셨습니다. “... 사단이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4:10). 사탄은 우리를 유혹하여 믿음을 배반하게 하고 주님을 배반하게 찾아옵니다. 때로는 사탄은 우리가 함께하는 교회나 지도자에 대해서도 배반하게 하는 유혹을 심어주려 합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은혜를 항상 감사하면서 믿음을 지켜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구원의 대가였습니다.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26:26).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을 얻습니다. 구원은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의 영원한 천국에 이르도록 새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2:8). 우리는 값을 치루지 않고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인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큰 희생을 치루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유월절 어린양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의 출애굽이 어린양이 희생되어 그 피가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후에 이루어졌듯이, 성도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희생의 대가로 성취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잔을 가지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너희가 이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26:27-28)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떡은 주님의 몸을 상징하는 것이며, 포도주는 주님의 피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피는 언약의 피로서 많은 사람의 죄 사함을 위하여 흘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희생하셨습니다. 즉 자신을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드리신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양이나 염소, 황소의 희생 제물을 드려서 나아갔습니다. 즉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동물의 희생 제물을 통하여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희생 제물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항미라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59:5-6). 우리의 죄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막았고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즉 주님이 주신 떡은 그리스도가 희생하실 그 분의 몸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포도주를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26:27-28). 주님께서는 포도주는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피는 언약의 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죄가 씻게 하는 능력은 그리스도의 보혈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 피가 우리의 죄를 씻는 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피는 언약의 피인 것입니다. 언약이란 하나님께서 그 피를 믿는 자에게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레위기에서 대속죄일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인 지성소에서 속죄소위에 황소와 염소의 피를 뿌려서 자신들과 백성들의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짐승이 죽어야 할 뿐 아니라 그 피가 속죄소 위에 뿌려져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9:22)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죄는 그리스도의 피로써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의 구원은 은이나 금이 아니라,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명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19).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구원을 위한 대가였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자신의 피는 언약의 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굳건한 약속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만찬이 마지막 될 것을 말씀하시면서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마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26:29). 주님께서는 이제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제자들과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아버지의 나라인 천년왕국에서 제자들과 함께 새것으로 마실 것임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지만,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후에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이 주관하신 주의 만찬을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교회가 지켜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 교회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가지 떡과 포도주를 마시는 의식을 통하여 주님의 대속의 죽으심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세상에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하며 교회에서는 믿는 자들이 함께 주의 만찬에 참석하며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