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마태복음 강해(83) - 좌절을 극복하라(마 26:31-35).

비전의 사람 2021. 9. 4. 18:54
728x90

마태복음 강해(83) - 좌절을 극복하라(26:31-35).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26:31-3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시며 유월절 절기의 의미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임을 가르치셨습니다. 떡은 주님이 희생하시는 모이고, 포도주는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언약의 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 감람산으로 가시는 여정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오늘 밤에 제자들이 주님을 버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26:31). 주님께서는 스가랴 말씀을 인요하시면서 하나님이 목자를 치심으로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는 말씀을 하시며 제자들이 주님을 버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버리리다라는 의미는 실족하여 넘어지다, 믿음을 포기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주님이 잡혀가시는 모습을 보고 실족하여 믿음에서 넘어질 것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지금까지 주님으로 인하여 의기양양했던 제자들이 주님이 대제사장이 보낸 무리들에 의하여 잡혀가시는 모습을 보고 두려워함으로 믿음이 무너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26:32)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이며 그 후에 다시 부활하실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이 주님을 향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넘어질 것이라고 하자, 베드로는 다 주를 버릴찌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26:33)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은 실족할 지라도 자신을 언제든지 믿음에서 실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이제 베드로를 향하여 더 강한 어조로 말씀하셨습니다. “...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날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26:34). 주님께서는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베드로는 세번 주님을 부인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으로 인하여 실족할 뿐만 아니라 세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와 제자들은 내가 주와 함께 죽을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26:35)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주님과 함께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결코 떠나거나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단호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위기의 상황에서 그들은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제자들의 실패를 통하여 배우는 영적인 교훈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는 믿음이 연약하여 실족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26:31).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에 대하여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실족하고 넘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며 살아가곤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지난 3년 간 영적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부르신 이후부터 제자로 헌신하여 주님과 동고하며 살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집을 떠나 주님을 따르며 그 분의 가르침을 배웠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보며 감탄하였고, 주님이 가르치시는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진정으로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이심을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따르기 시작한 이후부터 믿음이 성장하고 있었지만 아직 완전한 믿음과는 거리가 멀기만 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제자로서 훈련을 받았지만 결국 주님을 떠나기도 하고 부인하면서 철저하게 제자로서 실패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제자들과 같이 성경의 역사는 실족하고 넘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사단의 궤계에 넘어져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후에 실족했습니다. 첫 사람인 아담의 넘어짐으로 온 세상에 죄와 사망이 다스리는 비참한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지으신 파라다이스 에덴 동산에서 온갖 풍성함을 누렸지만 사탄의 달콤한 속임수에 넘어지고 만 것입니다. 노아도 의롭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예비하여 온 세상을 구원하여 새로운 세상의 첫 사람이 된 자였습니다. 온 세상이 홍수를 멸망할 때에 그와 그의 가족만이 방주에서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홍수 이후에 포도 농사를 지었고, 풍부한 포도 농사를 한 후에 포도주에 취하여 벌거벗고 잠을 잤습니다. 그러한 모습을 함이 보고 형제들에게 비방했기에 함의 아들인 가나안이 저주를 받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무너트린 믿음의 용사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예배하는 자였습니다. 다윗과 같이 위대한 용사이며 왕은 이스라엘의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와같이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았던 다윗은 어느 날 목욕하는 밧세바를 본 후에 그녀와 동침하고 그의 남편을 간접적으로 죽이는 죄를 범했습니다. 다윗은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욕망에 사로잡혀 간음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다윗은 최고의 정상의 자리에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와같이 믿음의 사람이라도 영적으로 방심하면 항상 넘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심지어 위대한 지도자였던 모세도 하나님 앞에서 분을 내어 실족하게 됩니다. 그는 실족함으로 인하여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아무리 탁월한 믿음의 사람이라도 방심하면 실족하고 넘어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가지만 때로는 특정한 영역에서 세상적인 것이 들어오면서 썩어지는 부분이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사탄이 주는 음성을 듣고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노아는 술의 유혹에 넘어가 실족했습니다. 다윗은 성적인 유혹에 무너져 실패했습니다. 모세는 분노를 참지 못하여 넘어졌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향한 기대가 실망하자 넘어졌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셔서 유대인의 왕이 되셔서 로마 군대를 물리치신 후에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다스리시기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들은 왕이신 예수님 곁에서 큰 권세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무리들에 의하여 붙잡혀 가시자 실족하여 넘어졌던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영적인 모습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실족하여 넘어져 낙심한 채로 살아가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만일 넘어졌다면 어떠한 모습에서 넘어져 고통하고 있는가요? 주님께서는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시며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어디에서 실족했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기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2:4-5). 주님은 그들이 사랑이 식어진 이유를 생각하고 다시 첫 사람을 회복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해서도 영적으로 좌절하거나 무너진 곳을 찾아 다시 회복하기를 기대하십니다.

 

2.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26:3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연약함을 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주님으로 인하여 실족하여 넘어질 것을 아셨지만, 그들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넘어지더라도 아주 넘어지지 않을 것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셔서 화려하게 왕으로 등극하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 위하여 고난 받으시고 죽음의 길을 가실 것입니다. 주님은 죽음으로써 모든 사역이 마무리되는 것이 아님을 아셨습니다. 주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사탄의 권세를 무너트리실 것임을 아셨습니다.

 

골로새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하여 사탄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2:14-15).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율법의 권세를 무너트리셨습니다. 그리고 사탄의 권세를 무장해제 하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와 사망의 권세를 무너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기 때문에 사탄의 권세를 대적하는 권세가 된 것입니다. 사탄이 아무리 우리를 율법으로 정죄한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씻어주심으로 사망의 권세를 이기게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외롭고 힘든 길을 가실 때에 제자들은 모두 흩어졌지만 아버지는 주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주님은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16:32)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힘든 고난의 길을 가실 때에 아버지께서 주님에게 힘 주셔서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다시 제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16:33).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을 이기신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은 사망에서 승리하고 부활하심으로 생명의 주가 되셨습니다. 생명이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때에 우리는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4:13)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비천에 처하기도 하고 배고픔과 궁핍의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낮은 곳에 처하는 것이 넘어진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환경이 어려워 낮아지고 궁핍하면 실패했다고 하지만, 우리는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는 복된 시간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승리했듯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통하여 낙심과 실패를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26:32). 주님은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을 아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대로 갈릴리 바다에서 제자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이 이러하니라.”(21:1).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으러 갔지만 아무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말씀에 순종하자 많은 고기가 잡혀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하여 생선을 구워주셨고 함께 식사에 초청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부인하고 떠났다는 실족함이 있었기에 어느 누구도 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떡과 생선을 주시면서 제자들을 격려하셨습니다. 음식으로 제자들의 실족한 아픔을 격려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다시 양들을 먹이는 말씀을 주시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책망하시거나 비난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하여 손수 음식을 만드셨고 그들의 마음에 있는 열정을 표현하게 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러자 베드로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내 어린 양을 먹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며 그들이 가아햘 방향을 제시하셨습니다. 너희들이 있을 곳은 고기잡는 배가 아니라 영혼들을 구원하고 그들을 말씀으로 양육해야 하는 세상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어부로서 고기를 잡고 있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물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실족하고 넘어지자 주님이 주신 사명을 잃어버리고 다시 과거의 모습으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가야 할 길은 양을 먹이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의 마지막 장은 갈릴리에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만나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28:16-17). 예수님께서는 그 분이 말씀하신 대로 갈릴리의 한 산에서 제자들을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지상 사명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8:18-20).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시면서 그들이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부인하고 떠났지만, 이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는 변화되어야 했습니다. 주님은 이제 제자들을 신뢰하시며 모든 족속으로 제사를 삼으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구원받은 영혼들에게 침례를 주고, 그들을 가르쳐 제자를 삼으라는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한 때는 실족하여 넘어졌지만 이제는 주님이 주신 사명을 붙잡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일어설 수 없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위로하시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족하여 넘어졌다 할지라도 우리는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다시 일어서도록 기회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을 회복하여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며,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붙잡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3. 우리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새 힘을 얻어야 합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찌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히라라.”(26:34).

 

베드로는 제자들을 대표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다 주를 버린다 할지라도 자신은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즉 자신은 주님을 향한 믿음이 굳건하기에 결코 실족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26:34)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자신이 주님과 함께 죽을지언정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고백했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진실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고백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고백할 때의 환경은 아직 세상이 그들을 향하여 적대적이진 않았습니다. 이제 곧 하나님의 때가 이르러 대제사장이 보낸 무리들이 칼을 가지고 와서 주님을 잡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조롱한 후에 로마 군인에게 넘겨 십자가에서 죽여야 함을 요구할 것입니다. 이때 제자들의 마음은 주님을 향한 믿음이 사라지고 세상의 변화에 따라가게 될 것입니다. 즉 자신들의 힘으로는 세상을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주님의 말씀대로 제자들은 모두 주님을 버리고 도망합니다. 그나마 베드로는 주님을 따라 대제사장의 바깥 뜰에 있다가 주님을 세번이나 부인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주님을 세번이나 부인하고 난 후에 닭이 울자 심히 통곡했습니다. 결국 베드로 마저도 실족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명령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위로부터 능력을 입게 될 때까지 예루살렘에 거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가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24:49).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지만 아직 그들은 세상을 이길 힘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예루살렘의 마가의 다락방에서 열흘간 마음을 합하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은 120명의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열흘간 마음을 합하여 기도할 때에 성령이 오순절에 임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자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담대함을 얻어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로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하며 복음을 담대히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는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2:40)라고 했습니다. 그 날에 복음을 들은 자가 삼천이나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이 실족에서 일어나 담대히 말씀을 증거하는 증인이 된 비결은 그들이 성령으로 충만함을 얻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8절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을 때에 비로서 실족에서 벗어나 담대한 주의 사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비로서 제자들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후에 그들은 세상을 이기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세상에서의 좌절과 실족함을 이기고 다시 일어나 주님의 사자로서 우뚝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보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은 가장 큰 기적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충만함을 주십니다. 우리가 더욱 기도에 힘쓰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하여 이 시대에 쓰임받는 주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